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38)
◈ 138화. 전쟁의 끝
무천극의 가슴을 꿰뚫고 나온 검신이 시뻘건 피를 뚝뚝 흘려낸다.
빛을 잃어가는 눈동자에 진무립의 얼굴이 담긴다.
“끄르륵……. 네놈…… 은, 역시 황운천의…….”
피에 섞인 나직한 목소리에 진무립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런 재능 없는 놈이랑 비교하지 말라니까. 기분 나쁘게.”
촤륵!
등으로 삐져나온 검신이 단숨에 뽑혀 나오며 사방에 붉은 피를 흩뿌린다.
“외롭지는 않을 거다. 네놈의 부하들도 금방 곁으로 보내줄 테니까.”
“큭큭…….”
“같이 지옥 정벌이라도 해보시든가.”
빗살같이 그어진 은광검이 미소 띤 무천극의 머리를 단숨에 베어버렸다.
서걱!
둥실 떠오른 머리가 바닥에 툭 하고 떨어진다.
멀리서 지켜보던 천하의 무인들도.
치열한 접전을 펼치던 혈교와 사천의 무인들도.
순식간에 벌어진 그 광경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혈마가 죽었다고?”
“교, 교주님께서…….”
“교주님께서 당하셨단 말인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혈교도들과 달리 공위맹 무인들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공위맹 측 무인들의 입에서 우렁찬 함성이 터져 나왔다.
“우와아아-!”
“혈마가 죽었다!”
“광룡이 혈마의 목을 베었다!”
무천극의 죽음은 아슬아슬한 싸움으로 지쳐가던 이들의 사기를 단숨에 끌어 올렸다.
초평천의 두 눈이 격랑에 사로잡혔다.
‘해냈구나!’
행여 잘못되면 어쩌나 수도 없이 고민하고 걱정했다.
믿고 보낸 뒤에도 몇 번이나 자신의 선택을 후회했었다.
그러나 손자는 기어코 혈마의 목을 베고 약속을 지켰다.
살짝 입술을 깨문 초평천은 이내 고개를 돌렸다.
아직 싸움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사천을 넘본 적도를 남김없이 척살한다!”
“예!”
공위맹의 사기가 하늘을 찌를 때, 부하들과 혈야광인을 제거한 가진천은 가쁜 숨을 고르며 주변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렇게 되었는가.’
왠지 느낌이 좋지 않다 싶더니 결국 최악의 상황이 찾아오고 말았다.
갑자기 피로가 물밀듯이 밀려든다.
“대주.”
강유월과 하종보의 협공을 뿌리친 사광원주 사해가 곁으로 달려왔다.
“클클클! 교주가 죽고 말았구먼. 이제 어찌하시겠는가?”
소교주는 아미산에서 죽었고 교주마저 없는 지금 혈교도들이 의지할 곳은 오로지 가진천밖에 없었다.
가진천은 착잡한 마음을 애써 억눌렀다.
“서장으로 돌아가야겠소.”
서장에는 아직 자신들의 터전이 남아있다.
실혼인의 실험장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상 돌아가기만 한다면 다시 세력을 키워 복수할 수 있다.
사해가 히죽거리며 말했다.
“그렇다면 일단 포위망을 돌파해야겠구먼.”
의견을 통일한 두 사람이 돌아설 때였다.
서쪽 산기슭에서 상천의 무인들이 노도와 같이 밀려들었다.
순식간에 전장에 도착한 그들은 사기가 떨어진 혈교도들을 학살하기 시작했다.
“크아악!”
선두에 선 백채륜과 서진환의 검에는 자비가 없었다.
“내가 막을 테니 뒤를 뚫으시오.”
가진천은 즉시 몸을 날렸다.
엄청난 기세로 짓쳐 드는 가진천의 모습에 백채륜과 서진환이 시선을 교환했다.
[당신은 그대로 적진을 돌파하시오.] [그러지요.]서진환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순간.
가진천의 주변으로 자욱한 혈무가 피어오르더니 시뻘건 검광이 벼락같이 쏘아진다.
쐐애액!
서진환은 전신 공력을 끌어올려 일 점에 온 힘을 쏟아부었다.
콰아앙!
뇌성벽력이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의 신형이 주르륵 미끄러졌다.
가진천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다.
손목에서 느껴지는 반탄력이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상천인가?”
“그렇다.”
두 사람이 대치하는 사이.
백채륜과 상천의 무인들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혈교도들을 휩쓸어갔다.
앞을 막아서는 자들이 추풍낙엽처럼 죽어 나간다.
가진천의 눈에 어둠이 스치고 사라졌다.
‘쉽지 않겠구나.’
포위망을 뚫기는커녕 안에서부터 무너져간다.
가진천이 마지막 각오를 다지고 있을 때, 후방에서 대해와 같은 기운이 짓쳐 들었다.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들며 시꺼먼 검광을 흩뿌리는 인물은 바로 초평천이었다.
쿠콰콰쾅!
간발의 차이로 비켜나간 공격이 대지에 끔찍한 상흔을 새긴다.
혈교주의 목이 떨어지고 상천까지 합류한 이상 초평천은 더 이상 힘을 아낄 필요가 없었다.
역대 마도림주에게만 전수되는 무공, 무천마검(武天魔劍)을 전개한 초평천은 거침없이 가진천을 몰아붙였다.
숨 가쁜 전쟁이 점점 끝을 향해 치닫는다.
남궁설은 새로이 나타난 흑의인들을 바라보며 침을 꿀꺽 삼켰다.
“저들은 누구지?”
그녀와 함께 몸을 낮추고 있던 무인들의 눈에도 같은 의문이 떠올랐다.
그때 뒤에서 남궁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상천이다.”
“오라버니!”
“그래.”
남궁도는 씁쓸한 얼굴로 그녀의 곁에 앉았다.
곤륜의 제자 장오가 마른 입술을 핥았다.
“저들이 그 상천이라니.”
소문만 무성한 상천의 무공을 직접 견식한 자는 거의 없었다.
그들은 힘을 과시하지 않는 대신, 자신을 먼저 건드린 자들은 절대 살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산파 제자 유대수의 눈동자가 거칠게 흔들렸다.
“벌써…….”
거침없이 질주하던 상천의 무인들은 순식간에 적진 한복판을 관통하고 방향을 틀었다.
적진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군계일학이었다.
“상천의 무위가 저 정도라면 대체 무면산왕은 얼마나 강하단 말인가?”
천하십대고수의 일인이자 상천의 천주 무면산왕.
새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들불처럼 커져만 간다.
그때 누군가의 나직한 목소리가 모두의 귓전을 스쳐 지나갔다.
“광룡이 다시 움직인다.”
상천의 움직임에 시선을 빼앗겼던 그들은 다급하게 진무립을 찾았다.
호흡을 고른 진무립은 즉시 단려화의 곁으로 달려갔다.
한가로이 인사를 주고받을 경황은 없었다.
그녀를 비롯한 흑사칠랑과 노고수들은 사광원의 괴물에 맞서 필사적으로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었다.
검파를 움켜쥔 진무립의 귀로 그녀의 다급한 전음이 틀어박힌다.
[이들은 지독한 자폭공을 익혔어요! 섣불리 죽이면 안 돼요!]이미 그들의 자폭공에 당한 호천단의 고수가 열 명이 넘었다.
그녀의 전음에 멈칫하는 순간 지랑 현진학의 전음이 도착한다.
[길을 여는 수밖에 없네.]말을 듣는 순간 진무립은 곧장 그의 의도를 눈치챘다.
“노사님. 길을 열겠습니다.”
전세가 역전된 이상 포위망을 살짝 열어도 상관없다.
“알겠네!”
강유월은 두말없이 노고수들과 좌우로 물러났다.
그 사이로 사광원의 고수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그들이 모두 포위망을 돌파한 직후였다.
다른 혈교도들이 그들을 따라나서려 하자 현진학은 장우기를 그들 앞으로 집어 던졌다.
“막아!”
장우기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또 나야?”
“네가 우리 대장이잖아?”
이쯤 되니 자신을 대장이라고 하는 저들의 저의가 궁금해질 정도다.
“이럴 때만 대장이지?”
분노 섞인 장우기의 주먹이 밀려드는 혈교도를 향해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이게 바로 노비의 주먹맛이다!”
일권에서 쏟아진 태산 같은 기운이 순식간에 혈교도들을 덮쳐갔다.
“피, 피해라!”
쿠아아앙!
등 뒤에서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올 때, 진무립은 사광원의 고수들을 쫓아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이십 장이나 내달렸던 그들은 빠져나오지 못한 혈교도들을 확인하곤 발을 돌린 상황이었다.
선두에 선 사광원주 사해가 히죽거렸다.
“클클! 그다지 복수는 생각하지 않았네만 제 발로 와준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제아무리 교주를 죽인 진무립이라지만 승산은 충분하다.
‘교주를 상대하느라 놈도 적잖이 지쳤을 것이다. 폭멸금사공(爆滅禁邪功)을 감당할 수는 없을 것이야.’
무천극의 혈천장에 준하는 위력을 가진 폭멸금사공이다.
혈천장과 다른 점이라면 목숨을 담보로 하는 대신 상대가 절대 피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진무립은 슬쩍 뒤를 쳐다봤다.
공위맹 무인들과의 간격은 십 장이 넘는 거리.
‘이 정도 거리라면 상관없겠지.’
주변에 휘말릴 아군은 없다.
좌에서 우로 움직인 진무립의 눈동자가 스무 명에 달하는 노물들을 확인했다.
“어서 오시게!”
두 팔을 활짝 펼치며 히죽 웃는 사해의 좌우로 사광원 고수들이 화살처럼 짓쳐 들었다.
“멍청하긴.”
무천극을 상대하느라 적지 않은 내력을 소모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천음지체를 타고난 진무립의 내력은 고작 한 번의 싸움에서 완전히 소모될 만큼 녹록한 것이 아니었다.
벼락같이 뽑혀 나온 은광검에 농도 짙은 백광이 피어오른다.
서로의 간격이 일 장까지 좁혀졌을 때, 사광원 고수들이 일제히 검붉은 장력을 퍼부었다.
운선보를 전개한 진무립의 신형이 순식간에 우측으로 이동했다.
콰쾅!
지면에 격돌한 장력이 사방으로 기파를 흩뿌린다.
“좌측일세!”
사해의 외침에 목표를 잃은 그들이 방향을 돌리는 순간이었다.
쌔애액!
가공할 기세로 짓쳐 든 진무립의 검극에서, 마도림의 무공이자 경화사검의 마지막 초식인 파광난무(波光亂武)가 쏟아져 나왔다.
슈아악!
얼음장처럼 투명한 수십 다발 검광이 경쾌하게 솟구치더니 일시에 적을 찍어누른다.
쿠콰콰콰콰콰!
순식간에 두 개의 목이 둥실 떠오르고 세 명의 몸이 벌집처럼 꿰뚫렸다.
탓!
발끝으로 땅을 강하게 박찬 진무립이 후방으로 화살처럼 튕겨 나간다.
“아아!”
그들은 그제야 진무립의 의도를 눈치챘다.
쿠아아아앙!
엄청난 굉음과 함께 육편이 비산하고 일진광풍이 전장을 휩쓸어간다.
삼 장 밖까지 몸을 피한 진무립도 지독한 독기와 사이한 기운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큭!’
전신 공력을 끌어올려 육신을 보호한 진무립이 포탄에 적중한 바위 파편처럼 튕겨 나갔다.
멀리서 진무립을 주시하던 자들에게 보이는 것은 시꺼먼 흙먼지밖에 없었다.
화산파 제자 유대수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어떻게 된 거지?”
그들이 본 것이라곤 진무립이 엄청난 공격을 퍼붓고 빠져나오는 게 전부였다.
잠시 후, 불어온 바람이 흙먼지를 걷어간 자리는 매우 처참했다.
벽력탄이 터진 것처럼 움푹 꺼진 땅에는 검붉은 피가 고여 있었고 사방으로 흩어진 팔다리와 시꺼먼 육편이 보인다.
그곳으로부터 오 장 밖에 선 진무립은 넝마가 된 옷을 뜯어내며 힘겹게 일어나고 있었다.
곤륜파 제자 장오의 두 눈이 거칠게 흔들렸다.
“저자에게는…… 두려움이라는 게 없단 말인가?”
저들을 유인한 것을 보면 아군이 휘말리지 않는 곳에서 싸우려 했다는 의도는 알 수 있다.
그러나 위험을 무릅쓰고 저런 방법을 사용하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다.
자칫하면 목숨이 날아갈 방법을 누가 사용하겠는가?
무천극의 목을 베고, 금지된 사공을 사용하는 이들을 단신으로 처리한 진무립의 담력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모두 입을 열지는 않았지만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두려움이 없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확신이 있었던 거지.”
그들의 시선이 우측 끝, 죽립을 눌러쓴 사내에게 옮겨갔다.
“그대는?”
슬며시 들어 올린 죽립 아래로 핏기 가신 젊은 사내의 하관이 보인다.
“조금 멀리서 온 사람일세.”
히죽 웃는 젊은 사내는 바로 육군명이었다.
중독에서 가까스로 회복한 그는 진무립이 불허한 까닭에 전투에 참여할 수 없었다.
고작 일 할의 내력도 온전히 끌어올릴 수 없는 상태로 싸우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전투를 대신해 그에게 주어진 임무는 이 자리에 모인 세작들의 출신을 확인하는 것.
육군명은 임무에 충실해 세작들의 동향을 파악하고 있었다.
사광원의 고수들이 공멸하고 상천의 무인들이 맹위를 떨치자 사기가 땅에 떨어진 혈교도들은 빠르게 무너져갔다.
그들의 활약에 힘입은 사천의 무인들도 그간 쌓여온 분노를 토해내듯 거침없이 적을 공격해갔다.
다시 죽립을 눌러쓴 육군명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해냈구나.’
안도하는 마음과 함께 저 자리에 함께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공존한다.
그로부터 반 시진이 지날 무렵.
화려하게 피어오른 초평천의 검광이 지친 가진천의 가슴을 꿰뚫으며 치열했던 전투의 막이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