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46)
◈ 146화. 상천의 실력
진무립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곳으로 오겠다고?”
그들이 마치 자신의 위치를 아는 것처럼 느껴진 까닭이다.
“산채를 둘러보겠다기에 제가 이곳에서 보자고 한 것이니 염려 놓으십시오.”
만일 흑전원주가 온다면 단려화에 이어 두 번째로 산채를 방문하는 외인이 될 것이다.
‘무엇이 궁금한 것이냐?’
잠시 생각하던 진무립은 고개를 끄덕였다.
“굳이 숨길 건 없지. 있는 그대로를 보여줘라.”
“그럴 생각입니다.”
* * *
사흘이 지난 날의 아침.
진무립의 복귀를 환영하고자 집결했던 상천팔기가 후일을 기약하며 대별산을 떠났다.
수문화와 함께 집무실에 틀어박힌 진무립이 밀린 업무를 빠른 속도로 처리해 나갔다.
진무립과 상천팔기의 방문으로 떠들썩했던 산채가 본래의 평온함을 되찾아갈 무렵.
단려화를 비롯해 진무립을 따라온 동료들이 대별산의 연무장을 찾았다.
담장 너머로 강렬한 기합성과 쇳소리가 연신 터져 나오는 가운데 입구를 지키던 무인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았다.
“죄송하지만 이곳은 외인의 출입이 불가합니다.”
“그래요?”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단려화가 걸음을 돌리려 할 때, 그녀의 호위를 맡게 된 은수련이 앞으로 나섰다.
“천주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다. 물러나라.”
“예.”
사내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물러났으나 단려화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에요. 내 생각이 짧았어요. 내가 저분들의 무공을 봐선 안 되는 일이에요.”
육군명이 말했다.
“빼지 말고 그냥 들어가. 하루 이틀 머물 것도 아니고 수련은 해야지. 뭐 어때?”
“아니 그래도…….”
용추가 그녀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함께 수련하면 우리도 검황의 무공을 견식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 갑시다.”
외부와의 교류가 거의 없는 상천의 입장에선 그녀의 무공을 견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자, 잠시만요.”
“들어가시죠.”
유대하가 등을 떠밀고 용추가 팔을 당기자 그녀도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다섯 사람이 새롭게 들어왔음에도 누구 하나 시선을 던지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조용히 담장을 따라 이동하며 사방에서 벌어지는 비무를 눈에 담았다.
창과 봉에 이어 다양한 병기를 쥔 무인들은 마치 생사대적을 만난 사람처럼 매섭게 비무를 펼치고 있었다.
육군명의 미간이 좁아졌다.
‘설마 비무가 아닌가?’
이들이 눈앞에서 펼치는 비무는 혈교를 상대하던 부곡채의 전투보다도 강렬했다.
카카카캉!
귓전을 강타하는 쇳소리와 함께 일행의 시선이 가장 가까운 곳의 비무로 옮겨갔다.
팔다리가 달라붙는 착수의를 입은 검객과 소매가 넉넉한 도객의 화려한 접전은 이곳에서 벌어지는 모든 비무 중에서도 단연 압권이었다.
쏴아아!
장대비처럼 쏟아지는 검극에서 오싹한 검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간다.
수십 다발 검광이 도객의 전신을 내려찍기 직전, 거짓말처럼 뒤로 미끄러진 사내는 회피와 동시에 전방으로 짓쳐 들었다.
쉬익!
옷자락이 나부끼는 소리와 함께 도광이 번뜩이며 일진광풍이 몰아친다.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졌던 검객은 검극을 땅에 찍고는 발끝으로 검파를 박찼다.
콰콰콰쾅!
간발의 차이로 비껴 나간 도광이 흙바닥에 깊숙한 상처를 남기며 폭음을 터트렸다.
뒤로 훌쩍 물러난 사내의 손으로 땅에 박힌 검이 순식간에 빨려들었다.
감탄이 나올 정도로 매끄러운 진퇴였다.
“검을 놓았을 때 만해도 끝난 줄 알았는데 귀접의 묘리를 저렇게 능숙하게 사용하다니.”
육군명이 용추에게 물었다.
“저들은 누구지?”
“대별산은 나도 처음 와봐서 몰라.”
조용히 뒤따르던 은수련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저들은 대별팔수(大別八手)에요.”
“대별팔수?”
“이곳 채주의 직속 부하죠. 산채마다 채주의 명에만 따르는 여덟 명의 무인들이 있습니다.”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육군명이 용추에게 물었다.
“넌 원래 어디에 있었지?”
“산서성 거련채. 사실 부채주가 될 뻔했는데 천주님께서 부르시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사천으로 간 거지.”
물론 거짓말이었다.
유대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채주도 부채주도 아닌 무인이 이 정도 수준이라니…….’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제대로 손속을 겨루는 것조차 불가능했을 것이다.
‘진정한 상천의 일원이 되려면 더욱 강해져야 한다.’
비무를 관전하던 유대하는 몸이 근지러워 참을 수가 없었다.
“한판 붙자. 육군명.”
마침 상대가 필요했던 육군명도 씩 웃으며 빈자리로 걸어갔다.
“안 봐줄 거다.”
“그래.”
마주 선 두 사람이 자세를 낮추며 서로를 눈에 담았다.
단려화가 용추의 어깨를 잡으며 웃었다.
“우리도 시작할까요?”
용추의 표정이 왠지 떨떠름했다.
“왜 접니까?”
용추는 제법 오래 함께해온 단려화의 실력을 잘 안다.
검황의 무공을 이어받은 그녀는 전력을 다해도 상대하기 어려운 강자였다.
“노는 사람이 누가 또 있나요? 은소저와 싸울 수는 없잖아요.”
용추는 짐짓 화난 얼굴로 말했다.
“물어보지도 않고 쉽게 포기하지 마십쇼! 부대주도 비무가 하고 싶을 겁니다.”
고개를 휙 돌린 용추가 은수련을 쳐다봤다.
“하고 싶지 않은데요.”
“그럴 줄 알았소. 역시 나밖에 없구나.”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인 용추는 연무장 한쪽에 세워진 굵은 목봉을 잡았다.
“하압!”
기합을 잔뜩 불어넣은 용추가 단려화에게 봉 끝을 겨눴다.
“경고하는데 살살하십쇼.”
“……그래요.”
* * *
대별산의 무인들과 안면을 튼 단려화들은 하루하루 상대를 바꿔가며 비무 삼매경에 빠져들었다.
집무실에 틀어박힌 진무립은 수문화, 송조광과 함께 표국을 상대할 계획을 수립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상천팔기의 회동이 열린 지 스무날이 지나던 날.
바쁘게 흘러가는 대별산의 입구에 마침내 기다렸던 손님이 도착했다.
“산새가 제법 수려하군.”
쏟아지는 햇살 속에 흑전원주 국영승이 대별산의 전경을 눈에 담았다.
흑의를 걸친 거구의 중년인이 그의 곁으로 다가왔다.
“정말 우리 둘이 가도 되겠소?”
“두려우냐?”
“상대는 산적이오.”
“평범한 산적이라면 이리 찾아오지도 않았을 거다. 네 의형은 천 명의 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았거늘 동생이란 놈이 겁도 많구나.”
흑전원 부원주 번호기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다.
“대목과 비교하면 세상에 겁쟁이가 아닌 사람이 어디 있을까?”
번호기는 무림에 나서기 전의 단소룡과 북경에서 왈패 생활을 함께했던 의형제였다.
왈패 조직을 해체하며 북경을 떠난 단소룡은 무림의 절대자가 되었고 그곳에 남은 번호기는 흑전원에 들어간 것이다.
국영승이 짓궂게 웃었다.
“여차하면 너를 미끼 삼아 탈출할 테니 내 걱정은 말거라.”
번호기는 혀를 내둘렀다.
“당신이라면 그러고도 남지.”
“알면 됐다. 그만 가자.”
산길에 접어든 두 사람의 고개가 우측의 나무 뒤로 향했다.
“길잡이라면 이리 나오거라.”
번호기의 말에 모습을 드러낸 사내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이 거리에서 내 위치를 감지하다니.’
흑전원의 고수들이 대단하다는 소문은 익히 들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는 두 사람 앞에 멈춰 서 포권을 취했다.
“상천의 금소악입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네 직위는 무엇이냐?”
“특별한 직위는 없습니다.”
잠시 금소악을 응시하던 국영승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장서라.”
“예.”
잠시 멈췄던 걸음이 이어지자 번호기가 전음을 보냈다.
[특별한 직위가 없다는 말이 정말이겠소?]일개 평무인으로 치기엔 지나치게 강한 기도가 느껴진 까닭이다.
[거짓은 아닌 것 같더군.]눈빛과 말투, 미세하게 느껴지는 심장 박동의 흐름까지 확실하게 감지한 국영승이다.
그의 예리한 통찰력은 상대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말하고 있었다.
번호기는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저자가 발산하는 기도는 흑전원의 조장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수준이오. 그런 이가 일개 평무사라니.]황실을 수호하는 입장에서 지나치게 강대한 무림세력은 견제의 대상이다.
두 사람은 묵묵히 금소악의 뒤를 따랐다.
황궁에서 손님이 온다는 사실은 진무립을 비롯한 극소수의 수뇌부만 알고 있었다.
산채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을 보내는 가운데 녹의를 입은 무인이 진무립의 처소 앞에 도착했다.
“천주님. 흑전원주가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문 너머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지객당(知客堂)으로 모셔라.”
“예.”
부하의 발소리가 멀어져간다.
진무립과 마주 앉은 단려화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직접 마중 나가지 않아도 괜찮겠어요?”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으로 보여?”
그녀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한가해서 차를 마시는 게 아니었나요?”
두 사람 사이엔 김이 식은 찻잔이 놓여 있었다.
이미 한참 전부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던 두 사람이었다.
진무립이 말했다.
“황제고 뭐고 내 위에 있는 사람은 딱 한 종류밖에 없어.”
“그게 누군데요?”
“상천의 가족들.”
“흑전원주는 그렇게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에요.”
“그를 잘 아는 모양이군.”
“종종 아버지를 만나러 화령도에 오시거든요.”
그는 부친과 북경에서부터 알고 지낸 가까운 사이였으나 일에 있어서만큼은 일말의 사심이 없는 강직한 사내였다.
진무립이 물었다.
“참을성은 좀 있는 자인가?”
“천하와 황실의 안위가 걸린 문제라면 결코 가볍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예요. 아버지와 사흘 밤낮을 토론한 적도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단 말이지.”
나직이 읊조린 진무립이 싱긋 웃었다.
“그렇다면 걱정할 거 없어. 손을 잡길 원하는 건 우리만이 아닐 테니까.”
말이 끝나는 순간 진무립의 안면이 꿈틀거리더니 다른 사람처럼 인상이 변했다.
단려화는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배우는 거 하난 정말 기가 막히게 빠르다니까.’
마도림의 검술을 익힐 때도 느낀 것이지만 진무립은 뭐든지 경이로운 속도로 배워나간다.
“다녀오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는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잘하고 와요.”
사방으로 삼 장 너비의 실내.
가구라곤 탁자 하나 덩그러니 놓인 지객당은 황량한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의자는 단 두 개.
지금은 국영승과 번호기가 마주 앉아있었으나 무면산왕이 들어오면 한 명은 일어나야 한다.
번호기가 불쾌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무례한 자로군.”
“천하에서 가장 신비로운 단체다. 그런 곳의 수장이라면 적어도 이 정도 배짱은 보여줘야지.”
“정말 산적 놈들을 무림의 방파로 인정할 생각이시오?”
“왈패와도 손을 잡았던 나다. 대화가 통한다면 그러지 못할 이유가 있나?”
왈패 출신인 번호기의 눈썹이 묘하게 꿈틀거린다.
“언제 적 이야기를…….”
국영승이 피식 웃으며 찻잔을 쥐었다.
“네놈들에게서 세상사가 정말 예측할 수 없게 흘러간다는 걸 배웠지. 일개 왈패도 천하제일인이 되었는데 산적 두목이라고 안 될 건 없지 않나?”
“대목은 날 때부터 그만한 그릇을 타고난 사람이었소. 무면산왕이 용이 될 놈인지 뱀이 될 놈인지는 만나보고 말씀하시오.”
“그럴 생각이다.”
그때 문이 열리며 복면을 눈 밑까지 끌어올린 서진환이 들어왔다.
“천주님께서 입장하십니다.”
국영승과 번호기의 고개가 약속한 것처럼 돌아간다.
뒤이어 검게 빛나는 장포를 두르고 눈구멍만 두 개 뚫린 흑면탈의 사내가 들어왔다.
‘이자가 무면산왕.’
번호기는 미간을 좁혔고 국영승은 헛웃음을 참지 못했다.
‘이 정도였느냐?’
상대의 전신에서 느껴지는 기운이 없다.
그 말은 자신과 동등한 수준이거나, 아니면 윗줄의 고수라는 얘기다.
광룡 진무립을 보고 놀란 게 몇 달 지나지도 않았는데 여기 또 하나의 괴물이 있었다.
황궁의 눈 밖에서 엄청난 고수들이 속속 나타나는 이 현상은 결코 달가운 일은 아니다.
진무립은 천천히 걸어가 번호기의 앞에 멈춰섰다.
번호기가 고개를 드는 찰나, 가면 너머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대는 나와 대화를 나눌 자격이 없다. 꺼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