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94)
◈ 194화. 감시
격변하는 산동무림과 달리 중원의 밤은 폭풍전야를 연상케 할 만큼 무겁고도 고요했다.
상천과의 전쟁 준비를 서두르는 탓이다.
중원맹에선 연일 회의가 이어지고 있었고 그 중심엔 중검문주 명가홍이 있었다.
회의에 참석했던 제갈문이 다소 지친 얼굴로 비각의 정문을 넘었다.
그의 집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적모개가 문이 열리기 무섭게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됐습니까?”
“출정식을 생략하고 사흘 안에 출발할 모양입니다.”
제갈문은 어떻게든 일정을 늦추고자 했으나 의화전에서 결정된 사안을 홀로 돌이킬 순 없었다.
“상당히 서두르는군요.”
제갈문은 지친 얼굴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공교롭게도 며칠 전에 그런 일이 벌어졌으니 다들 분기탱천한 상태입니다.”
그가 말한 것은 대별산 북쪽으로 백 리 밖에 있던 종령문이 사흘 전, 상천의 습격에 멸문지화를 당한 일이었다.
적모개가 말했다.
“상천은 그런 짓을 할 자들이 아닙니다.”
“나야 부각주의 말을 믿습니다만 대부분 중검문주의 주장에 동의하는 분위기입니다.”
중검문주 명가홍은 본색을 드러낸 상천이 중원무림맹과 오대표국의 동맹에 경고를 남긴 것이라며 강하게 주장하고 있었다.
적모개가 혀를 찼다.
“역시 의화전을 여는 게 아니었습니다.”
맹주 위사영의 독단으로 동맹을 거절했더라면 뒷말은 좀 있을지언정 사태가 이렇게까지 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때 말리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당시엔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맹주께서 그런 일을 혼자 결정했다면 분명 반발하는 이들이 있었을 겁니다.”
“중검문주처럼 말이지요.”
마주 본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쓴웃음을 지었다.
만일 맹주 위사영이 독단으로 결정을 내리고 중원삼가가 지지했다면 맹은 여러 파벌로 갈라졌을 것이다.
중원삼가에서 대놓고 맹주를 지지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당금 중원무림은 강자가 몸을 낮추고 약자가 목소리를 키우는 기묘한 구조로 돌아가고 있었다.
약자들에겐 중원무림맹을 벗어나 오대표국과 손을 잡는 선택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분열을 막기 위해선 그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야 하는 게 현실이었다.
‘소공자라면 그냥 속 시원하게 때려눕혔을 텐데.’
적모개는 내심 그가 없는 것이 아쉬웠다.
주변을 살핀 제갈문이 나직이 물었다.
“아직 소식은 없습니까?”
얼마 전 집무실에 침입해 각주의 인장을 훔쳐간 자들.
적모개가 데려온, 자신의 시험을 통과한 두 명의 흑의인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지금 중검문주 명가홍을 은밀히 감시하는 중이었다.
금성표국과 중검문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는 증거를 가져온다면, 일방적으로 흘러가는 지금의 분위기를 뒤집을 수 있다.
적모개도 나직한 목소리로 답했다.
“조금 더 기다려보시지요. 실력만큼은 확실한 사람들입니다.”
* * *
적모개와 제갈문이 대책을 논의할 무렵.
은무대의 주인환과 금성우는 아담한 장원의 지붕에서 중검문주 명가홍을 지켜보고 있었다.
[마치 틀에 박힌 것처럼 똑같은 일상이로군.]두 사람이 눈에 담은 이곳은 중검문의 지부였다.
금성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인환의 말에 동의했다.
명가홍은 중원맹의 회의가 끝나면 이곳으로 돌아와 일절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그가 집을 비운 사이 방을 수색해보기도 했으나 실내에는 증거가 될 만한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가서 눈 좀 붙이고 와라.] [알겠…….]중도에 전음이 뚝 끊긴다.
돌아서던 주인환이 처음 보는 사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반사적으로 몸을 바짝 낮췄다.
선홍빛 입술에 마치 여인처럼 선이 고운 인상의 청년, 운화결의 심복 설지량은 주변을 살피며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대문 안쪽의 처마 밑에 서 있던 무인이 곧장 문을 열었다.
“어디에서 오셨…… 습니까?”
설지량의 얼굴을 본 무인은 그의 중성적인 외모에 흠칫 놀라며 가까스로 말을 끝맺었다.
설지량은 매혹적인 미소를 흘리며 말했다.
“문주님께 설가가 왔다고 전해주시겠습니까?”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천천히 다녀오십시오.”
중검문도가 안으로 들어간 사이, 지붕에 엎드린 두 사람은 설지량을 관찰하며 전음을 나눴다.
[누구지?]고민하던 금성우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잠시 후, 안에 갔던 무인이 밖으로 나오더니 설지량을 데려간다.
[독대할 모양이다. 내가 다녀오지.] [조심해라.]중검문주 명가홍은 무림 칠군에 속하는 인물로 비각조차 감시를 포기한 고수.
살성의 음혼귀영공(陰魂鬼影功)을 익힌 그들로서도 방심할 수 없는 상대였다.
[일 장 안으로 들어가지만 않으면 안전할 거다.]주인환의 신형이 구렁이처럼 건물 뒤로 스며들었다.
값비싼 족자와 도자기로 가득 채워진 화려한 방 안.
설지량이 들어서자 명가홍은 기다렸다는 듯 두 팔을 활짝 펼쳤다.
“어서 오시오.”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간 별고 없으셨는지요.”
“허구한 날 회의만 하고 앉아있으니 그야말로 죽을 맛이라오. 앉으시구려.”
대들보 위에 숨어든 주인환은 차분히 설지량을 살폈다.
‘풍기는 기도는 그리 대단할 게 없는데 국주와 독대를 할 수 있는 자라…….’
때마침 시비가 들어와 조용히 다과상을 내려두었다.
명가홍은 돌아서는 그녀의 엉덩이를 손으로 슬쩍 주물렀다.
“네가 고생이 많구나.”
“아, 아닙니다.”
얼굴이 홍시처럼 붉어진 시비가 황급히 방을 나섰다.
‘경박한…….’
설지량의 눈동자에 언뜻 한기가 스치고 사라졌다.
명가홍은 그것도 모른 채 껄껄 웃으며 차를 권했다.
“준비는 어찌 되어가고 있소?”
설지량은 언제 그랬냐는 듯 밝게 답했다.
“금성표국과 대서표국, 낙진표국은 출정 준비를 마쳤고 회남표국은 전쟁과 동시에 도착할 것입니다.”
설지량의 말에는 태산표국의 이름이 빠져있었다.
“산동에서는 오지 않는 거요?”
명가홍이 고개를 갸웃하자 설지량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역시 아직 듣지 못한 모양이로군.’
지금 오대표국은 전력을 다해 산동에서 넘어오는 소문을 차단하고 있었다.
‘개방의 거지와 비각의 요원을 모두 제거했다곤 하나 길어야 열흘이 한계겠지.’
정보원을 제거했다 한들 세간에 퍼지는 소문까지 모두 차단할 순 없다.
어차피 사흘 뒤에 출정이 시작될 터, 전쟁에 모두의 이목을 돌리고 다음 계책으로 넘어가야 한다.
설지량은 차분히 입을 열었다.
“태산표국은 오지 않습니다.”
“대체 이유가 무엇이오?”
“그것은…….”
대들보 위의 주인환이 귀를 쫑긋거렸다.
아직 그조차도 결과를 듣지 못한 까닭이다.
잠시 뜸을 들인 설지량은 태산표국과의 선을 그었다.
“연락을 취해봐야 알 듯합니다. 태산표국은 애당초 왕래가 적어 그 속내를 알 수 없는 이들이었지요.”
“음. 오대표국으로 불린다 해도 다 같을 순 없는 법이지. 알겠소. 맹에는 그리 전해두지. 그보다 말이오.”
설지량은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이틀 뒤의 해시(亥時) 말, 개봉의 홍월루로 오시지요. 약조한 물건을 드리겠습니다.”
대화에 집중하던 주인환의 눈이 반짝거린다.
‘약속한 물건?’
설지량이 그에게 백영단화를 주기로 약속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르는 사실이었다.
답변이 만족스러웠는지 주인환의 눈에 비친 명가홍은 의미심장하게 웃고 있었다.
“이틀 뒤 밤이라……. 출정 전날이로군.”
설지량은 마주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동맹을 성사시키는 과정부터 오늘까지 정말 노고가 많으셨습니다. 약조한 물건과 함께 술상을 거하게 차려두고 기다리겠습니다.”
“껄껄껄! 기대하며 기다리겠소.”
“그럼 이만 돌아가 보지요.”
자리에서 일어난 명가홍이 가볍게 예를 갖췄다.
“보는 눈이 많아 좋을 게 없지. 멀리 나가지 않겠소이다.”
설지량이 방을 나서자 주인환은 즉시 금성우가 기다리는 지붕으로 돌아왔다.
[저놈은 누구냐?] [뭔가 잡은 거 같다.] [뭔가?]그사이 설지량이 장원을 나서자 주인환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지금은 설명할 시간이 없다. 너는 저자의 뒤를 밟아 어디로 돌아가는지, 누굴 만나는지 확인하고 와라.]대략적인 내용은 파악했으나 대화에서 상대의 소속을 정확하게 확인하지 못했다.
금성우는 되묻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비각에서 기다리겠다.]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의 신형이 꺼지듯 사라졌다.
금성우와 헤어진 주인환은 곧장 개봉의 북문을 나섰다.
눈 덮인 세상 속, 앙상한 나무가 신법을 전개하는 주인환을 빠르게 지나쳐 간다.
순식간에 숲으로 들어간 그는 제갈문이 알려준 암도에 도착했다.
암도를 은밀히 지키고 있던 비각의 무인은 주인환을 알아보고 조용히 길을 내줬다.
컴컴한 어둠 속을 나아간 주인환은 곧장 제갈문의 집무실에 도착했다.
사색에 잠겨있던 제갈문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셨습니까?”
주인환은 가쁜 숨을 억누르며 답했다.
“이틀 뒤, 해시 말의 홍월루입니다. 표국 측 사람으로 보이는 자가 중검문주에게 약조한 물건을 건네겠다고 했습니다.”
제갈문의 두 눈이 반짝거렸다.
“그게 정말입니까?”
“조금 전 중검문주가 그자와 독대하는 것을 직접 들었습니다. 대화 내용에서 정확한 소속을 파악할 수 없었기에 제 동료가 미행하는 중입니다.”
고개를 끄덕인 제갈문이 천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 부각주는 어디에 계신가?”
천장을 뚫고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의방에 간 것으로 압니다.”
“가서 이리로 모셔와 주게.”
“전하겠습니다.”
천장 너머의 기척이 안개처럼 흩어졌다.
* * *
주인환이 비각에 도착할 무렵.
설지량을 미행하는 금성우는 개봉의 중심부를 지나고 있었다.
‘뭘 저렇게 사는 거냐.’
기둥 뒤에 숨은 금성우는 노점에서 군것질거리를 사는 설지량을 응시했다.
이곳에 오기까지 그는 다섯 차례나 노점에 들렀다.
두 손 가득 요깃거리를 든 설지량은 가까스로 전낭을 꺼냈다.
“어르신. 많이 파십시오.”
계산을 마친 설지량이 콧노래를 부르며 골목에 접어들었다.
금성우가 그를 따라 도착한 곳은 골목 안쪽의 아담한 장원이었다.
담장에 바짝 붙으니 안에서 제법 강인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뭘 그렇게 사 오는 것이냐?”
운화결의 퉁명스러운 말에도 설지량은 신이 나서 말했다.
“오는 길에 아가씨 생각이 나서 사 왔지요. 아가씨! 안에 계신가요?”
부엌에서 나온 임교영이 설지량의 두 손을 보며 활짝 웃었다.
“오늘은 무엇을 사 오셨나요?”
설지량은 어깨를 으쓱하며 손에 든 것을 내밀었다.
“아가씨께서 좋아하시는 월병과 만두, 당호로에 당과까지 사 왔습니다.”
사뿐사뿐 걸어온 그녀가 배시시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어머나. 역시 날 생각하는 건 지량밖에 없네요.”
그녀는 팔꿈치로 운화결을 쿡 찌르며 말했다.
“상공. 이런 점은 보고 배울 필요가 있어요.”
설지량이 약 올리듯 혀를 내밀었다.
“보고 배우시랍니다. 주군.”
“……조금 뒤에 따로 보자.”
설지량은 능글맞게 웃으며 임교영의 뒤로 숨었다.
“아가씨. 저런 무서운 사람의 어디가 좋습니까?”
“그러게 말이에요. 상공. 지량을 괴롭히면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
귀엽게 엄포를 놓은 그녀가 다시 부엌으로 들어갔다.
“역시 아가씨가 주군의 보약입니다.”
“그건 무슨 소리냐?”
“소식을 듣고 줄곧 어둡던 얼굴에 미소가 깃들지 않았습니까?”
“…….”
은밀히 담장 안쪽을 살핀 금성우가 빠르게 몸을 숨겼다.
‘저자는 금성표국주 운화결이다.’
직접 본 적은 없으나 비각에서 알려준 용모파기와 일치한다.
버릇처럼 좌우를 확인한 금성우는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그와 거의 동시에 담장을 쳐다본 설지량이 작게 입을 열었다.
“갔습니다.”
운화결이 미간을 찌푸렸다.
“너답지 않게 미행을 달고 온다 싶더니……. 대체 어떤 놈이냐?”
설지량은 턱을 매만지며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저와 같은 음혼귀영공을 익힌 잡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