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00)
◈ 200화. 홀린 듯한 시간
사신을 맞이한 위사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독왕의 아들인가.’
눈앞에 앉은 당천의 기도는 후기지수라 부르기엔 민망할 정도였다.
다소 과장하자면 무림 칠경의 일원인 제갈무용의 기도에 버금갈 정도로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왠지 그에게서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아 반가운 기분까지 들었다.
당천을 거친 위사영의 눈이 뒤에 시립한 여인에게 닿는다.
‘뿌연 안개처럼 존재 자체가 모호한 여인이다. 평범한 사신단은 아니로군.’
제갈무용을 힐끔 쳐다본 당천이 입을 열었다.
“주변을 물려주십시오.”
“본 맹의 원로원주요. 그가 듣지 못할 말은 없소.”
“제갈세가의 무인입니까?”
제갈무용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노부는 제갈무용이라고 하외다. 긴한 이야기가 있는 듯하니 그만 돌아가 보겠소.”
당천은 이하빈을 슬쩍 쳐다보고 말했다.
“제갈가의 사람이라면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음.”
당천이 무슨 이야기를 가져왔을지 궁금했던 제갈무용은 못 이긴 척 자리에 앉았다.
“제가 당가의 소가주이자 공위맹 사람이라는 사실은 다름이 없습니다. 다만, 공위맹의 사신으로 찾아온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당천은 그답게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제갈문과 적모개를 사형시키십시오.”
예상치 못한 말에 위사영과 제갈무용은 자신들의 귀를 의심했다.
“…….”
불편한 침묵이 시작되자 진설란은 한숨을 집어삼켰다.
[대뜸 그것부터 말하면 어떡해요? 과정이 빠졌잖아요.] [대뜸 그것부터 말하면 어떡해요? 과정이 빠졌잖아요.]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인 당천이 말을 덧붙였다.
“이건 적모개가 맹주님께 전해달라고 부탁한 말입니다.”
두 사람의 미간이 좁아진다.
“부각주가 내게 전하라고 했다?”
“소협. 그게 무슨 말이오?”
“제갈문은 제갈세가의 소가주. 그런 이의 사형은 출정을 늦출 수 있을 만큼 파급력이 있다고 합니다.”
제갈무용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출정을 미루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이번 출정이 어떤 의미인지 그들도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상천과 중원무림맹은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얼마 전 종령문이 대별채의 산적에게 멸문지화를 당했소이다. 중원무림맹과 오대표국이 손을 잡은 것을 알고 경고를 보내왔다는 말이외다.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일이오.”
“종령문의 멸문은 상천의 소행이 아닙니다. 제갈문과 적모개가 중검문주를 감시한 것은 그가 삿된 마음을 품고 동맹을 주도한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위사영이 물었다.
“상천의 소행이 아니라고 확신하는 이유는?”
예상한 질문이었고 대답도 준비됐다.
당천의 목소리가 집무실에 낮게 깔린다.
“그들의 천주가 바로 광룡 진무립이기 때문입니다.”
“…….”
짧은 정적이 스쳐 간 뒤, 제갈무용의 눈이 부릅떠졌다.
“광룡 진무립? 설마 사천의 광룡을 말함인가? 그와 무면산왕이 동일인물이었다?”
“예.”
“믿을 수 없네.”
뒤에 서 있던 진설란이 입을 열었다.
“사실이에요. 그가 바로 사천을 혈교의 침공에서 구한 마도림의 소공자이자 공위맹 태종무사인 진무립입니다.”
놀란 제갈무용과 달리 위사영은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차분히 차를 들이켰다.
“천주와 광룡이 동일인물이라고 치지. 그러나 그게 종령문의 멸문과 무관하다는 증거는 될 수 없다.”
당천은 이제 자신의 역할이 다했음을 직감했다.
천천히 일어난 그는 이하빈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의문 섞인 시선 속에 죽립을 벗은 그녀가 자리에 앉았다.
“우리는 종령문을 공격한 적이 없다.”
짙게 깔리는 무뚝뚝한 음성에 위사영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우리?”
“나는 상천의 복호채주 이하빈이다.”
연이어 드러나는 엄청난 사실에 제갈무용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광룡과 무면산왕의 진실.
그리고 눈앞에는 상천의 거산채주가 앉아있으니 마치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반면 위사영은 끝까지 냉정을 잃지 않았다.
‘혹시 이 여인의 무공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이들이 있었으나 아직 내색할 때가 아니다.
위사영이 물었다.
“종령문의 멸문과 상천이 무관하다고, 그대의 목을 걸고 말할 수 있겠는가?”
순간 그녀의 입가에 싸늘한 미소가 번진다.
“이 목은 내 것이 아니라 주군의 것인데 어찌 함부로 걸 수 있을까?”
이하빈은 느긋하게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믿지 않아도 좋다. 싸워서 손해 보는 것은 우리가 아니라 그대들이니까.”
“두렵지 않다면 굳이 여기까지 와서 전쟁을 막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전쟁을 막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내가 모시는 분이 무의미한 전쟁을 좋아하지 않으시니 그에 따를 뿐이다.”
마주치는 두 사람의 눈빛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진다.
초조하게 지켜보던 진설란이 용기를 냈다.
“상천의 천주는 공위맹주님의 혈육이에요.”
“전쟁이 벌어지면 공위맹이 상천의 편에 선다는 이야기인가?”
“물론이에요. 그러나 그가 공위맹주님의 핏줄이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우리 사천무림이 그를 은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죠.”
비록 초평천이 공식적으로 입장을 낸 것은 아니나 전쟁이 벌어진다면 십 할의 확률로 사천무림은 진무립을 위해 싸울 것이다.
그녀의 말처럼 중원의 소식을 접한 사천무림은 언제든 진무립을 도울 채비를 마친 상태였다.
제갈무용의 입술이 달싹거린다.
오늘 들은 내용이 전부 진실이라면 전쟁의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제갈문은 사익을 탐하는 인물이 아니야. 그가 명가홍을 감시했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더불어 이들의 정체를 확인할 시간도 필요하다.’
잠시 생각하던 위사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벌어야겠소. 원주께서는 당분간 나와 적이 되어야 할 것이고.”
제갈무용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적이라니요?”
위사영은 거침없이 대답했다.
“제갈문과 적모개를 사형에 처하겠소.”
* * *
짙은 어둠 속, 잠에 빠졌던 무인들이 눈을 뜨며 중원무림맹이 조용한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무인들이 속속 연무장에 집결하는 가운데 중검문주 명가홍의 숙소 앞으로 일부 수장들이 집결했다.
채비를 마치고 나온 명가홍이 물었다.
“준비는 어찌 되어가고 있소?”
“일각 안에 준비가 끝날 겁니다.”
그때 매부리코에 강팍한 인상의 사내가 다급하게 달려왔다.
“숙부님!”
염창도를 바라보며 숙부라 부르는 사내는 승천대주 염자청이었다.
고개 돌린 염창도가 의아한 듯 물었다.
“벌써 준비가 끝났느냐?”
염자청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게 아닙니다. 큰일 났습니다.”
“큰일이라니?”
“매, 맹주께서…….”
그 심상치 않은 표정에 명가홍이 다그치듯 물었다.
“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해보게.”
수장들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염자청은 침을 꿀꺽 삼키며 말했다.
“비각주와 부각주를 사형에 처하겠다고 하십니다!”
“…….”
차가운 바람과 함께 짧은 정적이 스쳐 지나가고.
이내 수장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뭐라고?”
명가홍이 주먹을 불끈 쥐며 물었다.
“맹주께서는 어디 계시냐?”
“지금 연무장에 계십니다.”
“가자.”
명가홍을 필두로 그 무리들이 일제히 신법을 전개했다.
‘제갈문과 적모개의 사형?’
스산한 어둠 속, 정문의 그늘에서 번을 서던 위사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횃불이 사방을 훤히 밝히는 대연무장.
집결한 무인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젊은 사내의 목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맹주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사형이라니요?”
중천대주 선우빈에 이어 부대주 황보춘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대체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입니까?”
단상에 올라선 위사영은 차분하게 주변을 돌아보았다.
‘오는군.’
연무장의 입구로 헐레벌떡 달려오는 명가홍 무리가 보인다.
위사영은 이하빈과 나눴던 대화를 떠올리며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제갈문과 적모개는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중검문주를 사찰하는 대죄를 저질렀다. 본 맹주를 능멸하고 중원의 수장들을 기만했으며 맹의 분열을 야기한 두 사람을 사형에 처해 기강을 바로잡을 것이다.”
명가홍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설마 맹주가 미친 것인가?’
중립을 유지해온 위사영에게 제갈문은 유일한 수족이나 다름없는 인물.
아무리 생각해도 위사영의 처사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위사영의 가늘어진 눈이 명가홍을 훑고 지나간다.
‘시간을 벌고자 한다면 중원삼가를 죽일 놈들로 만드는 게 낫다.’
복호채주 이하빈의 조언이었다.
그들을 완전히 믿는 것은 아니나 양측 모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다.
중원삼가 무인들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위사영을 쳐다보고 있을 때였다.
위사영은 손을 들어 명가홍을 가리켰다.
“중검문주.”
명가홍은 복잡한 속내를 안으로 감췄다.
“말씀하십시오. 맹주.”
위사영은 그를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비각의 횡포를 막지 못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리겠소.”
위사영이 수많은 무인 앞에서 정중히 예를 갖추자 명가홍은 다소 놀란 듯 말했다.
“그게 어찌 맹주의 잘못이겠습니까?”
“곁에 두고도 제대로 살피지 못한 것이 바로 내 죄요. 하여 나는 두 사람의 목을 베어 상심한 중검문주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오.”
명가홍의 미간에 옅은 주름이 패인다.
‘무슨 생각이지?’
그간 줄곧 말을 아껴온 위사영이 오늘따라 너무도 과감하다.
“전쟁을 앞둔 지금 그럴 것까지는 없습니다. 그들의 조사는 집행원에 맡기시고 지금은 눈앞의 일에만 전념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큰 싸움을 앞두었기에 확실히 해야 하는 것이오. 흐트러진 기강으로 어찌 전쟁에 승리할 수 있겠소? 두 사람을 일벌백계하여 규율의 엄격함을 보일 것이오.”
그때 제갈무용과 원로들이 연무장의 정문으로 들어왔다.
“맹주! 그건 아니 될 말씀이오!”
쩌렁쩌렁한 고함에 명가홍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대체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이냐?’
이제 곧 운화결과 약속한 출정시간이다.
당장 짐을 싸서 떠나도 모자랄 판국에 시간을 허비하고 있으니 속이 꽉 막힌 듯 답답해졌다.
고절한 신법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제갈무용이 노성을 터트렸다.
“아직 집행원의 조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어찌 두 사람을 죽인단 말씀이시오?”
“원주께서 비각주의 자백을 들었다고 하지 않으셨소?”
“내가 그와 대화를 나눈 것은 아주 찰나의 시간에 불과했소. 자세한 사정을 들어보아야 하지 않겠소이까? 사형이라니, 가당치도 않소!”
“죄인을 감싸는 것은 비각주가 제갈가의 혈육이기 때문인가? 그대들이 바라는 공정은 대체 어디에 갔단 말이오?”
“본 가의 핏줄이 아니라 다른 방파의 무인이었어도 내 입장은 다르지 않았을 것이오. 적어도 형을 집행하기에 앞서 본인의 사정을 자세히 들어봐야 한다는 말이오.”
제갈무용의 말에 이어 삼가의 무인들이 이구동성으로 목소리를 쏟아냈다.
“원주님의 말씀이 옳습니다!”
“이건 너무 부당합니다!”
그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자 위사영은 한숨을 내쉬며 손을 들었다.
“갈!”
내력이 실린 웅장한 목소리가 물결처럼 퍼져 나간다.
입 다문 무인들의 눈이 원망으로 가득한 가운데 위사영은 차분히 말했다.
“좋소. 그렇다면 원주의 의견도 반영하지.”
이어서 그의 시선이 집행원의 무인들에게 닿았다.
“집행부는 지금 당장 조사를 시작하시오.”
그에 명가홍이 앞으로 나섰다.
“맹주. 이제 곧 오대표국과 약조한 시간입니다.”
“본 맹의 비각주가 맹의 구성원을 사찰한 전대미문의 사태가 벌어졌소. 이 일을 수습하지 않고 전쟁에 나설 수는 없소.”
“아니, 그렇게까지…….”
위사영은 조급한 명가홍의 말을 단호하게 잘랐다.
“은영대주는 운국주에게 가서 출정을 늦출 것이라고 전하라.”
단상 밑에 서 있던 깡마른 체구의 사내, 은영대주 서궁이 즉시 예를 갖췄다.
“예. 맹주님.”
우두커니 선 명가홍은 서궁이 떠나는 것을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시작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마치 뭔가에 홀린 듯한 시간이 훅 지나갔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 * *
“으음.”
모닥불가에 누운 단려화는 스며드는 찬바람에 옷깃을 더욱 단단히 여몄다.
슬며시 일어난 진무립은 자신의 장포를 벗어 그녀의 위에 덮어주었다.
[진환.] [예. 주군.]진무립이 육병흑궤를 걸머지며 말했다.
[지금부터 려화를 나라고 생각하고 지켜라.]회복 중인 은수련이 함께 오지 못한 까닭이다.
서진환이 눈앞에 부복하며 물었다.
[먼저 가실 생각이십니까?] [전부 챙겨서 가면 늦는다. 개봉에서 보자.]진무립의 신형이 한 줄기 바람을 남기며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