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199)
◈ 199화. 사신
흰 눈에 부딪힌 달빛이 환하게 물들인 세상.
어디가 길인지, 어디가 전답인지 확인조차 할 수 없는 들판을 두 남녀가 빠르게 내달리고 있었다.
두꺼운 장포를 휘날리며 앞서 나가던 여인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저기 성문이 보여요! 제대로 온 것 같아요!”
그 말처럼 눈 덮인 들판의 끝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밤안개에 휩싸인 성문을 보며, 앞에서 뿌듯한 듯 웃는 여인은 바로 진설란이었다.
“내가 뭐라고 했어요? 지름길이라고 했잖아요.”
“…….”
당천은 대답을 아낀 채 눈을 가늘게 떴다.
진설란이 안내하는 길로, 사천을 떠나 무려 달포나 노숙을 이어온 두 사람이다.
그들의 몰골은 개방도로 오해해도 할 말이 없을 만큼 처참한 상황.
성문이 빠르게 가까워지는 가운데 당천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잠시 멈춰봐라.”
“뭐예요? 어서 들어가서 객잔을 잡고…….”
“그게 아니다.”
속도를 줄이던 두 사람의 발이 하얀 눈 속에 틀어박힌다.
“지름길을 안다고 하지 않았나?”
“그랬어요.”
“상천의 대별채가 언제 저런 성으로 바뀐 거지?”
“…….”
“솔직히 말해라. 너 길 모르지.”
방향을 잃은 진설란의 눈알이 좌우로 자연스럽게 움직인다.
“모르면 어쩔 건데요? 여기까지 와서 돌려보낼 건가요?”
중경을 떠난 당천은 자신을 뒤따라온 진설란을 돌려보내려고 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당천을 따라올 수 있었던 큰 이유는 바로 지름길을 안다고 자신했기 때문이다.
“…….”
할 말을 잃은 당천이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쳐다보자 진설란은 싱긋 웃었다.
“당신, 전보다 표정이 많이 풍부해졌어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당천의 얼굴이 본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온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다. 저길 봐라.”
당천의 손가락이 가리킨 곳은 성문 위에 걸린 현판이었다.
“대체 개봉에서 무슨 수로 그놈을 만난다는 말이지?”
대별채를 목표로 움직인 두 사람이 그곳에서 무려 수백 리나 떨어진 개봉에 도착한 것이다.
진설란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당천의 팔을 잡아끌었다.
“일단 들어가서 좀 씻고 생각해보자구요.”
“성문은 닫혔다.”
“무공은 이럴 때 쓰는 거예요.”
끌려가는 당천은 한숨을 집어삼켰다.
그녀의 뻔뻔한 모습이 왠지 누군가의 얼굴과 겹쳐 보인 까닭이다.
인정하지 않겠지만 진무립과 만난 뒤로 많은 것이 달라진 두 사람이었다.
밤이 짙게 내린 거리가 한산하다.
당천을 이끌고 개봉에 들어선 진설란은 한참을 배회한 끝에 불빛이 새어 나오는 객잔을 찾았다.
“이봐요.”
잠시 후,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리더니 어린 점소이가 졸린 눈을 비비며 나타났다.
점소이는 두 사람을 위아래로 훑어보곤 말했다.
“개방의 총단은 동문 밖에 있는데요.”
“…….”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그녀가 머뭇거리는 사이 문이 스르륵 닫힌다.
턱.
그녀는 다급하게 문을 잡았다.
“우린 개방도가 아니고요. 여기서 하루 묵어갈 거예요. 방이 있나요?”
점소이가 곤란한 얼굴로 고개 저었다.
“아니요.”
“안에 손님도 없는 거 같은데요?”
“거지를 들이면 객주님한테 혼난단 말이에요.”
울상을 지은 점소이는 매몰차게 문을 닫았다.
“인심이 야박하네요. 중원 사람은 다 이런가요?”
“사천에서도 거지를 받아주는 객잔은 없다.”
“…….”
“개봉의 무림 방파를 찾아가서 당가의 이름을 대면 방 좀 빌려주지 않을까요.”
“당가의 자식이 거지꼴로 찾아온다면 퍽이나 반가워하겠군.”
그때 닫혔던 문이 벌컥 열렸다.
“비켜. 똥 싸러 가게.”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왠지 익숙하다.
두 사람의 고개가 반사적으로 돌아갔다.
“어?”
“…….”
그들 앞에 나타난 거구의 사내는 바로 용추였다.
“오랜만이군. 똥 좀 싸고 온다.”
두 사람을 지나친 용추가 번개같이 객잔 옆으로 사라졌다.
만날 리 없는 곳에서 옛 지기를 만났으니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유대하의 도움으로 객잔에 들어선 당천과 진설란은 모처럼 제대로 씻을 수 있었다.
빠르게 씻고 나와 새 옷으로 갈아입은 두 사람이 유대하들의 객실을 찾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유대하와 용추를 지나친 진설란의 눈이 침상에 걸터앉은 이하빈에게 닿았다.
‘이 사람은…….’
그녀의 차가운 눈동자와 마주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만 같다.
당천이 느끼는 감정은 그녀 이상으로 복잡했다.
상대가 풍기는 차가운 기도는 부친에게서조차 느껴보지 못한 것이었다.
‘고수!’
상천에는 그녀와 같은 채주가 일곱 명은 더 있을 터.
당천은 그제야 부친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
이런 고수를 거느린 진무립에게 수완을 배웠으면 하는 것이다.
유대하가 말했다.
“이분은 상천의 복호채주 이하빈 소저입니다.”
“흑백독화.”
진설란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그녀의 무명이 새어 나왔다.
유대하는 이하빈을 보며 말했다.
“이 두 사람은 당가의 소가주 당천, 아미의 속가제자 진설란 소저입니다.”
이하빈의 붉은 입술이 작게 열린다.
“길게 인사를 나눌 시간은 없다. 앉아라.”
초면에 건네는 말투치곤 다소 딱딱했으나 감히 반발할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그만큼 그녀가 발산하는 은은한 기도는 경외감이 들 정도로 대단했다.
두 사람이 한쪽에 앉자 유대하는 자신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자신들이 진무립을 만나 상천에 들어가게 되었으며 이곳에 돌아와 적모개를 만난 일까지.
처음 듣는 사실에 놀랄 법도 했으나 두 사람은 의외로 침착한 얼굴이었다.
전쟁이 끝나고 진무립과 함께 사라졌으니 대강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하의 이야기가 끝나자 당천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적모개가 중원맹의 형옥으로 끌려갔다는 말인가? 육군명이 그를 따라갔고?”
“그렇소. 새벽이 오기 전에 무슨 수를 내야 하오.”
이들은 지금 적모개를 따라간 육군명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짧은 침묵에 이어 이하빈이 입을 열었다.
“그대. 당가의 소가주라고 했었지.”
“그렇소.”
“당가의 이름을 빌려야겠다.”
“…….”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방도가 있으십니까?”
“당가는 공위맹의 구성원. 당가의 소가주가 공위맹의 사신으로 도착했다면 맹주와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사신으로 온 것이 아니오.”
“안다. 그대는 그저 내가 시키는 말만 전하면 된다.”
“들어보겠소.”
“맹주를 만나면 독대를 청해라. 그 뒤에 상황을 설명하고 비각주 제갈문과 부각주 적모개의 사형을 건의해라.”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유대하가 다급하게 말했다.
“사형이라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건 안 됩니다.”
고분고분하던 용추까지 반발할 정도였으나 이어진 이하빈의 목소리엔 흔들림이 없었다.
“그것만이 네 친구를 구하고 시간을 벌 수 있는 방법이다.”
모두의 머리가 복잡하게 돌아갈 때, 복도의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육군명이 돌아왔다.
“적모개가 맹주와 만나…….”
들어서자마자 당천과 진설란을 발견한 육군명이 눈을 부릅떴다.
“어? 이게 누구야?”
진설란이 빙그레 웃었다.
“오랜만이네요. 육소협.”
“여기서 두 사람과 만나게 될 줄은 몰랐군. 마음 같아선 회포라도 풀고 싶으나 그건 좀 미루자고.”
당천이 말했다.
“대강의 이야기는 들었다. 다녀온 일부터 설명해라.”
“그거 잘됐군.”
육군명은 자리에 앉기 무섭게 말했다.
“적모개를 만나고 왔다. 맹주를 만날 방도를 찾아야 해.”
유대하가 물었다.
“맹주를 만나야 한다고?”
“그래. 맹주에게 자신들을 사형시키라고 말해달라더군. 그런데 암도가 막혀서 침투할 길이 여의치 않아.”
“…….”
순간 실내에 싸늘한 공기가 감돌며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입을 다물었다.
육군명은 이들의 반응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실소를 흘렸다.
“놀랐지? 사실 나도 그놈이 미친 줄 알았단 말이야. 그런데 들어보니 일리가 있더라고.”
“그게 아니다.”
이어서 모두의 시선이 이하빈에게 쏟아졌다.
그녀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렇다. 그 방법밖에 없다.”
* * *
개봉의 성벽을 넘은 당천이 중원무림맹으로 통하는 숲길에 접어들었다.
달빛이 스며드는 음산한 숲속, 죽립을 눌러쓴 진설란과 이하빈이 그의 뒤를 바짝 쫓는다.
빠르게 나아간 세 사람이 작은 공터에 도착한 순간이었다.
“멈추시오.”
나무 위에서 시꺼먼 인영이 뚝 떨어지며 앞을 막아섰다.
“이곳은 중원무림맹의 영역이오. 외부인의 출입은 허하지 않으니 돌아가시오.”
복면 위로 드러난 상대의 눈빛에서 강렬한 경계심이 드러난다.
곁눈으로 이하빈을 슬쩍 쳐다본 당천이 앞으로 나섰다.
“본인은 사천당가의 소가주 당천이오.”
그는 품에서 당가의 신분패를 꺼내 상대에게 던졌다.
‘당가의 소가주?’
금패를 확인한 복면인이 그것을 돌려주며 물었다.
“당가의 소가주가 이곳엔 무슨 일이오?”
당천은 절도 있게 예를 갖췄다.
“사천 공위맹주님의 명으로 은밀히 중원의 맹주님을 뵙고자 왔소.”
“지금은…….”
“극악무도한 상천의 일을 논의하고자 하오.”
그 말에 복면인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짧은 침묵이 스쳐 간 뒤에, 복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소식을 전하고 오겠습니다.”
“알겠소.”
복면인이 사라지자 이하빈이 차갑게 말했다.
“극악무도한 상천이라. 제법이로군.”
진설란이 진땀을 흘리며 당천을 변호했다.
“그래도 훌륭한 임기응변이었다고 생각해요.”
“안다.”
* * *
서책 한 권 보이지 않는 단출한 집무실.
가구라곤 탁자 하나가 덩그러니 놓인 실내에 위사영과 제갈무용이 마주 앉았다.
“무슨 말을 드려야 할지 모르겠구려. 맹주.”
모든 사실을 들었음에도 위사영은 담담한 얼굴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주길 바라시오.”
“지난 삼십여 년, 우리 중원삼가는 힘을 가진 자의 역할을 뼈저리게 통감하며 중원을 하나로 모으고자 노력해왔다오. 이런 일로 분열이 일어나선 안 되겠지요.”
“음.”
나직이 침음하는 위사영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원주.”
“말씀하시구려.”
“이건 맹주의 입장이 아닌, 내 개인적인 사견이라 생각하고 들어주시오.”
위사영은 머릿속으로 할 말을 정리하며 물었다.
“이렇게까지 해서 중원무림맹을 유지할 필요가 있겠소?”
중원삼가는 모든 부분에서 양보하고 배려해왔으나 다른 방파와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기만 한다.
“맹주께서도 천하대전을 겪으셨으니 익히 알지 않소이까? 분열된 힘은 그 어떤 것도 해낼 수 없소이다.”
“과거의 인연으로 맹주직을 수락하긴 했으나 내게는 그자만큼의 인덕도, 사람을 끌어당기는 능력도 없소.”
제갈무용은 위사영이 말하는 그자가 누군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
천하 무림의 유일무이한 절대자, 신룡 단소룡을 말하는 것이다.
“내 발로 걸어왔으니 맡은 책임은 다할 것이오. 그러나 지금의 사태를 보면 모두를 하나로 결집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생각하오.”
“그럼 맹주께서 생각하시는 방법은 무엇이외까?”
“동의하지 않으실 텐데.”
“맹주께서는 이제까지 한 번도 사견을 내신 적이 없었지요. 일단 맹주의 의견을 듣고 싶소이다.”
위사영의 눈빛이 처음으로 차갑게 빛났다.
“힘이 없다면 이 거친 무림에서 정도(正道)를 걷는 것은 불가능하지. 다른 길을 걷고자 하는 자들은 힘으로 찍어누르고, 그 뒤에 그대들의 질서에 편입시키는 거요.”
“우린 한 번 비슷한 방식으로 실패를 경험했소이다.”
“훌륭하게 성공한 무리가 바로 이 무림에 존재하지 않소?”
“그게 누구란 말입니까?”
위사영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상천.”
“…….”
“그들은 천하 산적을 모조리 때려눕히고 자신들의 질서에 편입시켰소.”
그의 입에서 당면한 적을 칭찬하는 말이 나오자 제갈무용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바른길을 걷는 자들이 아니외다. 멸문지화를 당한 종령문을 보면 모르시겠소? 그들은 상생이란 위선을 내세우는 악의 무리일 뿐이외다.”
“혈풍을 일으킨 것까지 옳다고 하는 것은 아니오. 그들처럼, 중원삼가도 반대하는 자들을 힘으로 누른 뒤에 정도를 걷게 하면 될 일 아니겠소.”
“그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오.”
위사영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소.”
자신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중도의 입장에서 중원무림맹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
상대가 원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각을 세울 필요는 없다.
그때 문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맹주님. 사천 공위맹에서 사신이 찾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