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01)
◈ 201화. 설지량
탁.
경쾌한 발소리와 함께 어둠 속 풍경이 벼락같은 속도로 밀려난다.
잠든 동료들과 헤어진 진무립은 전력으로 신법을 전개하는 중이었다.
‘이대로라면 사흘.’
머릿속으로 사흘 뒤 개봉에 도착한 자신이 떠오른다.
당장 가진 정보는 중원맹과 손잡은 오대표국이 곧 상천과의 전쟁을 선포할 것이라는 것.
전쟁이 두려운 것은 아니었으나 불필요한 희생은 가급적 막아내고 싶다.
미간을 좁힌 진무립은 생각을 고쳤다.
‘이틀로 좁힌다.’
먹고 자는 시간을 배제하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슈우우…….
용천혈로 쏟아진 내력이 지면을 두드리는 순간.
쾅!
굉음과 함께 진무립의 신형이 전방으로 폭사했다.
* * *
운화결의 짙은 눈썹이 꿈틀거린다.
“제갈문과 적모개의 사형이라고?”
일렁이는 촛불이 막사 안을 비추는 가운데, 중원맹 무복을 갖춘 무인이 공손히 부복한 채 말했다.
“예. 맹주의 결정이라고 합니다.”
이건 예상치 못한 일이다.
운화결의 시선을 받은 설지량이 사내에게 말했다.
“돌아가서 명가홍에게 출정준비는 계속 유지하도록 전해.”
“예.”
사내가 막사를 나가자 설지량은 헛웃음을 흘렸다.
“큭큭큭.”
“지금 웃음이 나오나?”
“심장이 쫄깃해지는 이 상황이 즐겁지 않으신가요?”
산동의 소문을 최대한 억누르고 있으나 당장 출정하지 않으면 곧 중원맹에서도 알게 될 것이다.
최악의 상황이 성큼 다가왔음에도 설지량은 웃고 있었다.
운화결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역시 넌 미친놈이다.”
“그런 소리 자주 듣지요.”
그때 막사 밖에서 부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국주님. 중원무림맹의 손님입니다.”
“들여라.”
“예.”
잠시 후, 깡마른 체구에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은영대주 서궁이 들어왔다.
“맹주님의 전언입니다. 출정을 잠시 미룰 것이라 하셨습니다.”
운화결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물었다.
“하루가 늦춰지면 얼마나 많은 자금이 소모되는지 알고 있는가?”
“그건 제 알 바가 아닙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말문이 턱 막힌다.
서궁은 어이없어하는 운화결을 뒤로하고 곧장 막사를 나섰다.
“…….”
좀처럼 보지 못하는 운화결의 모습에 설지량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저자는?”
“맹주 직속의 은영대주입니다.”
운화결은 그의 얼굴과 이름을 머리에 깊게 새겼다.
“방도를 생각해라. 소문이 중원맹에 들어가면 놈들을 상천과 상잔시키는 것은 어려워진다.”
“그건 곤란하군요. 중원맹과 상천을 하루빨리 끝장내야 황천패가 움직일 테니까.”
“그렇다.”
마주 본 두 사람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복령천의 천주 황천패.
부친과 달리 신중하기 그지없는 그라면, 전면에 내세운 오대표국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전에는 움직이지 않을 것이다.
설지량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상황이 변했으니 이쪽도 그에 맞춰 움직여야겠어요.”
“어떻게 할 생각이냐?”
“다른 국주들의 협조를 구해야겠는데 도와주실래요?”
반짝이는 눈빛을 보아하니 벌써 대처할 방법이 떠오른 모양이다.
‘이럴 땐 맡겨도 되겠지.’
운화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지시라고 해라.”
오대표국의 국주들은 모두 동등한 위치였으나 실질적으로 운화결의 말을 거역하는 이는 없었다.
“좋아요.”
싱긋 웃은 설지량이 막사를 빠져나왔다.
‘맹주의 생각은 아닐 테고, 제법 머리를 굴리는 자가 있는 모양이네.’
맹주가 두 사람을 물고 늘어지는 것은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모두가 우연으로 여길지라도 설지량은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지긋지긋한 무림이야.’
미소를 거둔 설지량의 눈에서 시퍼런 살광이 쏟아져 나왔다.
‘역시 사라지는 게 옳아.’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아간 무림이라는 세상.
누구에게도 그것을 거머쥐게 할 생각은 없다.
* * *
잿빛으로 변한 동쪽 하늘이 동이 틀 준비를 끝마쳤다.
출정은 이미 물 건너간 것과도 같았다.
맹주 위사영의 지시로 제갈문과 적모개의 조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보다 못한 명가홍이 위사영을 찾아갔다.
“맹주. 이건 너무 과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위사영이 미간을 좁혔다.
“이건 외외로군. 누구보다 문주께서 분노할 일이 아니오?”
잠시 멈칫한 명가홍이 당혹감을 감추며 말했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두 사람을 죽인다면 중원삼가와 개방이 가만있을 것 같습니까?”
“문주께서는 내가 그들을 두려워할 거라 보시오?”
중원삼가에는 위사영에 견줄 만한 고수가 없다.
개방의 방주 걸왕 철표개가 십대고수의 말석에 올랐다곤 하나 검제 위사영과의 차이는 작지 않았다.
“그런 말이 아닙니다. 맹주. 두 사람을 죽인다면 자칫 맹이 두 개로 쪼개질 수도 있는 일이란 말입니다.”
전장이 아닌 이곳에서 죽는다면 중원삼가와 개방의 원망은 자신에게 쏟아질 것이다.
차마 검제 위사영을 죽이려 들지는 못할 테니까.
차를 한 모금 마신 위사영이 나직이 말했다.
“문주. 들어보시오.”
“말씀하십시오.”
“내가 맹주직을 수락한 것은 모든 것을 공정하게 처리해달라는 그대들의 부탁이 있었기 때문이오. 그러나 중원삼가는 자신들의 입으로 공정을 논하면서 뒤에선 그대를 감시하는 위선적인 행태를 보였소. 공정하지 못할 맹이라면 차라리 해체하는 것이 낫소.”
위사영이 생각 이상으로 완강하게 나오자 명가홍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속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겉으로 보이는 행동은 완전히 자신의 편이나 다름없으니 제대로 반박조차 하기 어려웠다.
“이 시점에 그대와 내가 독대하는 것 또한 공정에 어긋나는 것이오. 돌아가서 기다리시오. 조사가 끝난 뒤, 제갈문과 적모개가 정말 사심으로 그대를 감시했다면 반드시 목을 칠 것이니.”
“아니…….”
탁.
찻잔을 내려둔 위사영의 눈이 시퍼렇게 빛났다.
“돌아가라고 하였소.”
단호한 축객령에 어깨를 늘어뜨린 명가홍이 집무실을 떠났다.
잠시 후, 위사영이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되었는가?”
끼이익.
집무실의 한쪽 벽이 거짓말처럼 열리더니 이하빈이 나타났다.
“이 정도면 적어도 이틀은 벌 수 있다. 제갈문과 적모개가 멍청이가 아니라면 말이다.”
위사영은 두 사람의 조사에 공정을 기한다는 목적으로 삼가의 무인을 참관토록 지시했다.
그렇기에 조사 과정에서 섣부른 위해는 가하지 못할 터, 두 사람이 입을 꾹 다물기만 해도 넉넉히 이틀은 지나갈 것이다.
위사영이 말했다.
“목적이 같아 잠시 뜻을 합치게 되었으나 상천에 대한 의심을 거둔 것은 아니다.”
이하빈은 대수롭지 않게 답했다.
“마음대로 해라. 풍령객잔에 머물 것이니 전할 말이 있거든 사람을 보내라.”
돌아서는 그녀의 뒤로 위사영의 전음이 도착했다.
[상천의 뿌리는 설마 은곡인가?]흑백독화 이하빈은 상천팔기의 일원.
그렇다면 상천에는 그녀와 같은 고수가 적어도 일곱 명은 된다는 말이다.
화령조차 이와 같은 젊은 고수를 한 번에 여덟 명이나 배출할 수는 없다.
과거 삼 년을 화령도에 머물렀던 위사영이기에 확신할 수 있었다.
그 말에 내딛던 그녀의 발이 우뚝 멈춘다.
‘검제의 이름은 허명이 아니었던가.’
슬며시 고개 돌린 그녀가 오싹한 미소를 보인다.
[걱정할 것 없다. 우린 놈들처럼 천하를 노리지 않으니까.]문을 연 그녀가 복도로 모습을 감췄다.
홀로 남은 위사영은 지그시 눈 감으며 생각에 잠겼다.
‘역시 은곡은 사라지지 않았군.’
대강 짐작하고 있던 일이다.
탁자 앞에 앉은 위사영은 지필묵을 꺼내 서신을 작성했다.
완성된 서신을 봉투에 밀봉한 그는 벽에 걸린 동아줄을 잡아당겼다.
잠시 후, 복도에서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은영대주 서궁이 나타났다.
“찾으셨습니까?”
명가홍과의 독대를 위해 멀리 물러나 있던 그가 정중히 예를 갖췄다.
위사영이 나직이 말했다.
“심부름을 해줘야겠다.”
서궁은 위사영이 내민 서신을 공손히 받아들었다.
“어디로 전하면 되겠습니까?”
“홍월루주에게 전해다오.”
홍월루주 화명은 천하상단주의 차남이자 화령의 대군사인 화윤의 조카.
서궁은 이 서신이 화윤에게 보내는 것이라고 확신했다.
“예. 맹주님.”
무운전을 나선 명가홍의 귀로 나직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국주님의 전언이오. 출정준비는 그대로 유지하시오.]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렸으나 전음이 들려온 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대체 무엇이냐?’
현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은 무인들을 외부로 내보내지 말라는 소리다.
급변한 맹주의 처사도, 서두르고 뭔가를 감추려 하는 표국의 행동도 좀처럼 이해되질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깊은 늪에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우라질.’
명가홍은 목구멍까지 치미는 욕지거리를 가까스로 삼켰다.
여기까지 온 이상 돌이킬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 * *
중원무림맹의 남쪽 숲.
신법을 전개해 쭉쭉 뻗어 나가던 이하빈의 고개가 우측으로 돌아간다.
[객잔으로 돌아간다.]먼저 나와서 기다리던 당천과 진설란이 그녀의 뒤로 따라붙었다.
나올 땐 성벽을 넘어왔던 세 사람이었으나 돌아갈 땐 달랐다.
어느새 활짝 열린 성문으로 사람들이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거리에 접어드니 이른 하루를 시작하는 사람들이 분주하게 거리를 오가고 있었다.
죽립의 벌어진 틈으로 이하빈의 눈동자가 바쁘게 움직였다.
변복한 채 거리를 오가는 사람 중 다수에게서 제법 강한 기운이 느껴진다.
‘역시 움직이기 시작했나.’
이하빈이 기도를 안으로 감추자 당천은 즉시 진설란에게 전음을 보냈다.
작게 끄덕인 진설란은 즉시 내력을 갈무리하며 그의 곁으로 바짝 붙었다.
걸음을 늦춘 이하빈이 당천에게 물었다.
“개봉에 객잔이 몇 개나 되지?”
사천 밖의 세상이라곤 강남에 가본 게 전부인 당천이 그것을 알 턱이 없다.
“나도 모르오.”
진설란이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대략 백 개 정도 되지 않을까요?”
잠시 생각하던 이하빈이 혼잣말을 했다.
“감당하지 못할 숫자는 아니로군.”
머릿속으로 어떤 가설이 떠오른 것이다.
진설란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건 무슨 소리예요?”
때마침 전방에서 나무를 진 나무꾼이 접근한다.
‘이놈도 무인인가.’
이하빈은 진설란에게 고개를 흔들어 보였다.
“아니다.”
기도를 감춘 나무꾼이었으나 이하빈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그녀의 생각처럼 평범하게 지나가던 나무꾼의 눈이 진설란을 스쳐 지나간다.
이하빈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완벽하게 기도를 감춘 당천과 달리 진설란에게선 미미한 기운이 흘러나오고 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금세 후미에 미행이 따라붙는다.
이하빈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우린 감시당할 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자들은…….’
그녀는 즉시 두 사람에게 전음을 보냈다.
대로를 거닐던 이하빈 일행이 좌측의 골목으로 사라진다.
‘어디로 가는 것이냐?’
행인으로 위장한 흑표대원은 빠르게 그 뒤를 따라 골목에 접어들었다.
“사라졌다고?”
분명 세 사람이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그의 눈에 담기는 것은 텅 빈 골목이었다.
그때 담장 너머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그의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사라지긴.”
반사적으로 돌아선 흑표대원이 팔을 들어 올렸다.
허공에서 뚝 떨어지는 왼발이 손목에 막힌다.
탁!
이하빈의 눈에 이채가 번진다.
‘이런 놈들을 보냈단 말인가?’
상대의 수준을 가늠하고자 힘을 좀 뺐기로서니 너무 가볍게 막아낸다.
기습을 막아낸 사내가 반격을 취하려는 찰나, 이하빈의 반대 발끝이 그의 복부를 번개같이 후려쳤다.
퍽!
진심이 담긴 그녀의 공격은 여지없이 적중했다.
“컥!”
허리가 낫처럼 휘어진 사내의 뒤통수로 그녀의 손날이 작렬한다.
콰직!
정신을 잃은 사내가 지면으로 허물어졌다.
상황이 마무리되자 담장 안쪽에 숨어있던 당천과 진설란이 나타났다.
“미안해요.”
진설란은 미안한 기색이 가득한 얼굴로 자책했다.
이 정도면 되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적당히 기도를 감췄으나 상대의 눈을 피하지 못했다.
당천이 말했다.
“마주친 자들의 기운을 고려하면 사천에서처럼 행동해선 안 될 거다.”
진설란은 다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부터 확실하게 하겠어요.”
“가자.”
이하빈의 신형이 바람같이 나아가자 두 사람은 그녀를 바짝 뒤쫓았다.
빠르게 객잔에 도착한 이하빈은 은밀히 기감을 퍼트려 내부를 살폈다.
‘없군.’
이 층에서 느껴지는 육군명 등을 제외하면 무인의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세 사람이 계단을 오르는 순간이었다.
누군가 객잔으로 들어서며 구석 자리에 털썩 주저앉는다.
마지막으로 계단을 오르던 이하빈은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제정신인가?’
오면서 머릿속으로 생각했던 말도 안 되는 가설이 들어맞았다.
놈들이 개봉 전역을 감시하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