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02)
◈ 202화. 절호의 기회
청명한 하늘에서 원을 그리던 새가 빠르게 하강한다.
푸드득.
날갯짓을 하며 속도를 낮춘 하얀 새가 개방의 조당(鳥堂)으로 내려앉았다.
불가에 잔뜩 웅크린 채 꾸벅꾸벅 졸던 당주 목탑개가 벌떡 일어났다.
한달음에 달려간 목탑개는 발목에 매인 전통을 열었다.
‘역시.’
이번에도 산동의 소식이다.
전서를 확인한 그는 빠르게 주변을 살핀 뒤 종이를 꿀꺽 삼켰다.
그때 문밖에서 추레한 장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에서 온 것이냐? 혹시 소방주가 보내온 것은 아니더냐?”
소걸개는 지금 서안에 머물며 천산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는 침착하게 머릿속으로 생각해둔 말을 꺼냈다.
“아닙니다. 곡양에서 근황을 보내왔습니다. 겨울나기 힘들다며 지원금을 좀 보내달라고…….”
“거지가 지원금은 무슨 지원금이야. 없다고 해라.”
예상과 다르지 않은 반응이다.
목탑개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예. 장로님.”
설지량은 누구도 상상 못 할 만큼 말도 안 되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었다.
개봉 전역의 감시.
은곡의 무공을 익힌 자들에게 평상복을 입혀 거리를 감시하며 소문을 확인했고, 모든 객잔에 일급표사를 파견해 소문을 원천봉쇄한다.
누구라도 입에 산동을 올리는 순간 그 즉시 서슬 퍼런 경고를 받게 될 것이다.
이 무모한 계획이 가능한 것은 설지량의 두뇌와 더불어 삼대표국에서 끌어모은 엄청난 숫자의 고수들이 있기 때문이다.
백표대급 무인은 사백오십에 태산표국 자영이 이끌던 흑살대 수준의 무인이 삼백.
거기에 일급표사가 무려 일천이 넘는다.
물론 이 또한 임시방편에 불과할 뿐, 사람이 하는 일에 구멍이 없을 수는 없다.
그러나 중원무림맹이 이대로 맹 내 대기를 유지한다면, 며칠간 소문을 차단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숲속의 텅 빈 막사들을 둘러본 운화결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정말 엄청난 놈이로군.’
문득 설지량과 같은 자가 밑에 있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진다.
조용한 진영을 거닐던 운화결이 임교영의 막사를 찾았다.
회색 무복의 여인과 담소를 나누던 그녀가 운화결을 보며 빙그레 웃는다.
“주변이 조용해졌네요.”
임교영과 마주 앉아있던 귀여운 인상의 여인이 예를 갖췄다.
“지여령이 주군을 뵈어요.”
양 갈래머리를 한 그녀는 금성표국에서 두 번째로 강한 양천대의 대주였다.
“네가 여기 있었구나.”
지여령은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아가씨께서 적적하신 것 같아서요.”
“고맙다.”
“아니에요.”
눈치 있게 일어난 그녀가 막사를 나갔다.
단둘이 남게 되자 임교영은 표정을 바꿔 걱정스럽게 물었다.
“계획이 틀어진 모양이네요.”
“사람이 하는 일에는 변수가 있기 마련이다. 지량이 움직이고 있으니 걱정할 것 없다.”
임교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일이 잘 끝나면 그가 나타나겠군요.”
그가 누구인지,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운화결은 모르지 않았다.
운화결은 그녀의 곁에 앉으며 부드럽게 웃었다.
“무면산왕도, 복령천주도 나를 이기지 못한다. 삼 년이다. 그 안에 천하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으로 바뀌게 될 거다.”
그의 미소와 마주하자 마음속 불안이 씻은 듯 사라져간다.
그녀도 마주 웃었다.
“그럼요. 상공께서 하시는 일인데 잘될 거예요.”
임교영을 애틋한 눈길로 바라보던 운화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거라. 일정이 미뤄졌으니 잠시 바람이나 쐬고 오자꾸나.”
“이제 곧 밤이 올 텐데요?”
“밤공기를 벗 삼아 객잔에서 술 한잔하는 것도 운치 있는 일이 아니겠느냐?”
배시시 웃은 임교영이 겉옷을 찾았다.
“좋아요.”
* * *
중원무림맹 무운전의 밀실.
포박된 제갈문과 적모개가 의자에 나란히 앉은 가운데 앞에 선 사내들은 분을 억누르고 있었다.
염창도의 곱슬한 수염이 파르르 떨린다.
“각주. 정말 이렇게 나올 생각이오?”
지그시 눈 감은 적모개는 실눈을 뜨고 제갈문을 살폈다.
제갈문은 분명 뛰어난 인재였지만 연륜이 풍부한 인물은 아니다.
‘입만 열지 않아도 며칠은 훅 간다. 제발 어쭙잖은 의기(意氣) 따위는 버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잘 이어지고 있다.
그때 참관인으로 지켜보던 청년, 중천대주 선우빈이 입을 열었다.
“이보게. 자세한…….”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염창도의 고개가 휙 돌아간다.
“중천대주. 그대와 부대주는 어디까지나 참관인의 자격으로 이 자리에 있다는 걸 명심하시오.”
“…….”
황보춘이 그들을 살피며 전음을 보냈다.
[형님. 아무래도 시간을 끄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을 위해 시간을 끈다는 말이냐?]의도는 알아도 목적을 알 수 없다.
마른 입술을 깨문 황보춘이 머리를 굴렸다.
‘노리는 게 무엇인지만 알아도 도울 방법이 있을 텐데.’
그때 양척방주 목충이 윽박지르듯이 말했다.
“그대들이 조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우리 집행부는 비각의 무인들을 하나씩 잡아 앉혀 조사할 수밖에 없소.”
제갈문의 어두워진 표정을 확인한 적모개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이럴 줄 알았지.’
눈을 뜬 그는 황보춘에게 무언의 시선을 던졌다.
‘놀러 왔어?’
‘나서라는 거요?’
눈치 빠른 황보춘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그건 허락하지 않겠소. 맹주께서 허락하신 것은 두 사람의 조사뿐이오. 다른 자들을 조사하려거든 그분의 허락을 받아오시오.”
목충이 혀를 찼다.
“허! 이거 정말…….”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모든 게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상황이 뒤집혔으니 속에서 천불이 들끓었다.
회심의 미소를 감춘 적모개가 보란 듯이 눈을 꾹 감았다.
진무립은 바보가 아니다.
오대표국의 셋이 개봉에 모였다는 걸 그들도 곧 알게 될 터, 아니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습적인 출병이 이뤄지기 전에 분명 상천에서 움직일 것이다.
‘소공자. 내 노력을 잊지 마시오.’
진무립은 결코 잊지 않을 것이다.
적에게는 무자비하지만 아군에게는 한없이 관대한 인물.
진무립에게 자신은 분명 아군의 범주에 들어있을 테니까.
같은 시각, 밖의 일을 살피고 처소로 돌아온 명가홍을 설지량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체 이자는…….’
문을 열 때까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빠르게 주변을 살핀 명가홍이 문을 닫았다.
“여긴 어떻게 들어온 것이오?”
빙그레 웃은 설지량은 마치 이 방의 주인처럼 자리를 권했다.
“한 번도 와본 적이 없기에 구경 좀 해볼까 하고 왔습니다. 앉으시지요.”
의자에 털썩 주저앉은 명가홍이 낭패한 얼굴로 말했다.
“틀렸소.”
“무엇이 틀렸습니까?”
“이대로는 출정을…….”
“그렇게 서두를 것 없습니다. 여유를 가지십시오.”
명가홍은 의아한 듯 쳐다봤다.
백영단화의 생각에 마음이 급한 것은 사실이었으나 그 이상으로 서둘러온 건 저들이었기 때문이다.
설지량은 그의 입이 열리기 전에 물었다.
“제갈문과 적모개는 다문 입을 열지 않겠지요?”
명가홍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그걸 어떻게 아셨소?”
출정을 막고 시간을 끌고자 한다면 그 방법이 가장 확실할 것이다.
설지량은 역시나 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간을 끄는군. 그렇다면 믿는 구석이 있다는 소리인데.’
지난 몇 해간 맹에서만 머문 제갈문에겐 그럴 구석이 없다.
그렇다면 적모개다.
‘누굴 기다리는 거지?’
설지량의 머리가 맹렬히 회전하며 다양한 가능성을 떠올린다.
‘적모개는 사천에서 상천과 함께 싸운 경력이 있다. 출정을 막고자 한다면 분명 상천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설마…….’
번뜩이는 생각이 스쳐 가며 설지량의 두 눈이 반짝거린다.
‘무면산왕이 개봉에 온다?’
절호의 기회가 제 발로 굴러들어오고 있었다.
* * *
홍월루의 최상층의 창문이 활짝 열렸다.
거리를 내다보던 화명은 흡족한 표정을 지었다.
“추위가 많이 누그러졌구나.”
살갗이 에일듯하던 겨울바람에도 한결 여유가 깃들어 있었다.
화롯가의 의자에 몸을 기댄 화명이 차를 우릴 때였다.
“루주님. 중원맹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이리 모셔주세요.”
“예.”
잠시 후, 안으로 들어온 은영대주 서궁이 가볍게 예를 갖췄다.
“앉으십시오.”
“돌아가 봐야 합니다.”
서궁은 대뜸 품에서 서신을 꺼냈다.
“맹주님께서 루주께 전하는 서신입니다.”
화명이 묘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입니까? 아니면 숙부님입니까?”
“그저 전하라고만 하셨습니다.”
무심하게 대답한 서궁은 그대로 몸을 돌렸다.
단단히 밀봉된 봉투를 보아하니 확실히 자신에게 보낸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화명은 어리석지 않았다.
‘너무 유명한 숙부를 뒀다니까.’
실소를 흘린 화명은 벽에 걸린 줄을 잡아당겼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검은 무복을 입은 강팍한 인상의 중년인이 들어왔다.
“찾으셨습니까?”
“화령도에 보낼 서신입니다. 이걸 그분께 전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예를 갖춘 중년인이 곧장 사라졌다.
그에 이어 방을 나선 화명은 복도 끝의 방문을 활짝 열었다.
화로에 불을 붙여둔 채, 침상에 누운 사내다운 용모의 장년인이 그의 시야에 들어온다.
침상 곁으로 걸어간 화명이 그를 흔들었다.
“진대협. 중원무림맹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는 모양입니다.”
침상에 누운 장년인은 바로 무림 칠경의 일원이자 위사영의 지기인 화검(火劍) 진대천이었다.
과거 위사영과 함께 무림을 주유했던 그는 지금 천하상단의 일을 돕고 있었다.
부스스한 몰골로 일어난 진대천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싸우냐?”
“아직은 아닌 모양입니다만.”
“싸우면 말해라.”
시큰둥하게 대꾸한 진대천은 도로 몸을 눕혔다.
* * *
개봉의 복잡한 거리.
옷을 두껍게 입고 호객을 하는 노점상들, 몰려든 거리의 인파는 겨울의 찬바람마저 몰아낼 정도로 북적거린다.
대로에 들어선 유대하는 죽립을 슬쩍 들어 올려 주변을 살폈다.
겉보기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거리였으나 그는 알 수 있었다.
여느 때와는 공기가 확연히 다르다.
‘이놈들 정말 제정신인가?’
곳곳에서 은밀한 시선들이 느껴진다.
개봉의 대로는 그야말로 복마전이었다.
죽립을 깊게 눌러쓴 유대하는 얼굴을 매만지며 역용을 점검했다.
‘이 정도면 알아보지 못할 거다. 도리어 죽립을 쓰고 다니는 게 더 눈에 띌 지경이야.’
그는 자신을 향한 시선을 느끼며 죽립을 벗었다.
그러자 느껴지던 시선이 거짓말처럼 사라진다.
‘일단 돌아가자.’
유대하가 객잔으로 돌아가고 있을 때, 은무대의 금성우와 주인환은 성문 인근을 거닐고 있었다.
[지독한 놈들이군.]주인환의 전음에 금성우는 헛웃음을 삼켰다.
[이게 가능할 줄이야.] [자리를 옮기지. 채주께서 말씀하신 걸 시험해봐야겠다.]시선을 교환한 두 사람은 성문에서 벗어나 대로에 접어들었다.
“자네 혹시 소식 들었는가?”
“무슨 소식?”
“글쎄 산동에서 말일세. 태산표국이…….”
그때였다.
[죽기 싫다면 입을 다무는 게 좋을 것이다.]서슬 퍼런 경고가 주인환의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역시!’
이하빈의 예측은 정확했다.
‘산동의 일이 성공했구나.’
그녀의 생각처럼 저들이 이렇게까지 하면서 막고자 하는 것은 바로 산동의 소문이 퍼지는 것이었다.
일부러 움찔한 주인환이 입을 꾹 다물고 골목으로 들어갔다.
[따라온다.] [충돌은 피하라고 하셨다. 사라지자.]마주 본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그들의 신형이 안개처럼 사라졌다.
저녁 무렵, 정탐을 마친 그들이 풍령객잔의 별채에 모여앉았다.
창밖을 슬쩍 살핀 이하빈이 고개를 끄덕였다.
“여긴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감시의 눈길은 느껴지지 않았다.
주인환이 말했다.
“채주님의 예측대로였습니다. 저들은 산동의 소문을 막고자 거리를 감시하는 중입니다.”
이어서 육군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감시하는 눈이 족히 천 명은 넘더군. 놈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짓을 벌이고 있어.”
당천이 말했다.
“그러나 인적 드문 골목까지 감시의 눈이 미치는 건 아니었다. 빈틈이 없는 건 아니야.”
진설란이 그의 말을 받았다.
“그런 곳까지 전부 감시하려면 십만대군이 와도 불가능할 거예요. 주로 대화가 활발히 오가는 곳만 골라서 지켜보는 눈치예요.”
구석에 앉은 용추가 히죽 웃었다.
“놈들이 저렇게 경계한다는 것은 산동에서 그만큼 완벽한 결과가 나왔다는 말이 아닐까?”
모두가 의외라는 듯 용추를 쳐다보는 가운데 가만히 듣고 있던 이하빈이 입을 열었다.
“주군께서 하시는 일이니 완벽한 게 당연하다.”
진무립에게 불가능이란 없다고 굳게 믿는 그녀였다.
이하빈은 두꺼운 천으로 꽁꽁 싸맨 기다란 뭔가를 등에 묶었다.
“당천, 용추, 육군명, 유대하. 무기를 챙겨서 일어나라.”
유대하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뭘 하려고 하십니까?”
“절호의 기회다.”
“기회?”
모두의 의문 섞인 시선 속에 그녀의 눈이 서늘하게 빛났다.
“놈들의 본진은 텅 비었을 것이다. 수뇌를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