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03)
◈ 203화. 반격의 서막
저물어가는 하루와 함께 풍령객잔의 별채로 초조함이 스며든다.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던 진설란이 슬쩍 고개를 돌렸다.
“괜찮겠죠?”
마치 전투를 준비하는 것처럼 검을 끌어안고 앉아있던 주인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복호채주는 상천팔기 최강의 무인이오. 세상에 그녀를 당해낼 수 있는 인물은 그리 많지 않소.”
진설란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당신은 이곳에 있는 건가요?”
주인환은 목구멍까지 차오른 말을 억지로 삼켰다.
‘당신이 약하니까.’
* * *
컴컴한 어둠 속, 앙상한 나무에 갈라진 달빛이 숲속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물들였다.
나뭇가지에 사뿐히 올라선 이하빈이 금성우에게 물었다.
“소리비도는 가지고 있겠지?”
“예.”
날에 여러 개의 구멍이 뚫린 소리비도는 신호를 보낼 때 쓰는 무기였다.
이하빈이 말했다.
“네가 감당할 수 있는 적은 접근하지 못하도록 차단해라. 감당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났다면 신호를 보내고 퇴각해라.”
각오를 다진 금성우가 비장하게 눈을 빛냈다.
“알겠습니다.”
그녀의 시선이 당천과 육군명, 유대하와 용추에게 차례로 옮겨간다.
“너희 네 사람은 운화결을 맡는다.”
육군명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물었다.
“뭔가 잘못된 거 아니야?”
한 번 상대해본 경험이 있기에 그가 어떤 자인지 잘 안다.
위기의 순간 적모개가 나타났기에 살아남았으나 그는 자신들이 당해낼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그대들이 운화결을 묶고 있는 동안 주변을 정리할 것이다.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 최대한 버텨라.”
당천이 앞으로 나섰다.
“이쪽은 걱정할 것 없소.”
그 당당한 말에 유대하와 육군명이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본다.
사천에서의 당천은 이럴 때 나서는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육군명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건 네가 그놈을 못 봐서 그래.”
이제까지 무림에서 직접 싸워본 상대 중 운화결만큼 무시무시한 괴물은 없었다.
이어서 유대하가 동의하듯 말했다.
“조금 창피한 말이지만 그자는 우리 셋을 상대하면서도 여유를 잃지 않았소.”
당천이 무심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그건 너희들이 약해서 그런 게 아닌가?”
유대하와 육군명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재수 없는 건 여전하군.’
‘누가 이놈이 변했다고 한 거냐?’
둘의 속도 모르고 용추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
육군명이 잔뜩 찌푸린 얼굴로 말했다.
“……너도 같이 싸웠어.”
“음.”
용추의 표정이 한 박자 늦게 일그러진다.
“당천. 그 너희들에서 나는 빼다오.”
“…….”
그날의 용추에겐 자신의 무기가 없었으나 오늘은 다르다.
낮에 잠시 여유가 생긴 사이 대장간에서 쓸만한 철봉을 구해온 것이다.
이하빈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치듯 사라졌다.
“출발하겠다.”
철봉을 움켜쥔 용추가 각오를 다졌다.
“갑시다.”
달빛에 스며든 그들의 신형이 숲의 중심을 향해 빠르게 나아갔다.
홀로 남은 금성우는 사라진 그들을 향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무운을 빕니다.’
* * *
고요한 숲속의 진영.
대부분의 표사들이 개봉에 투입된 가운데 비어버린 진영을 지키는 이는 소수에 불과했다.
적막한 진영에서 유일하게 말소리가 새어 나오는 곳은 서쪽의 커다란 막사였다.
“결국 이렇게 되는가.”
술잔을 채우는 대춧빛 얼굴의 중년인은 낙양 낙전표국의 국주이자 백행전퇴(百行全退)의 무명으로 유명한 고정륭이었다.
마주 앉은 염소수염의 중년인, 서안 대서표국의 국주인 무영신표(無影神慓) 이무위가 술잔을 낚아채며 대꾸했다.
“산동과 이곳 하남은 붙어있네. 따지고 보면 지금까지 소문을 차단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게지. 설지량 그자의 수완은 인정할 수밖에 없어.”
“능력이야 익히 안다만 나는 그자의 속내를 모르겠단 말이야.”
“속내야 아무래도 상관없네. 우리에게 중요한 건 능력 있는 무인일 뿐이야.”
“그야 그렇네만…….”
말끝을 흐린 고정륭이 미간을 좁혔다.
“일이 자꾸만 틀어지는 건 조금 신경 쓰이는군.”
“사람이 하는 일에 변수란 있기 마련이니까. 그래도 설지량의 대처는 훌륭한 편이지.”
이무위는 설지량을 그만큼 높게 평가하고 있었다.
고정륭이 말했다.
“태산표국과 회남표국을 동시에 잃은 건 변수로 치기엔 너무 큰일 아닌가? 그보다 내 술잔 내려놓게. 대갈통을 뚫어버리기 전에.”
섬뜩한 협박에도 이무위는 되려 웃어 보인다.
“큭큭큭! 그런 반응 좋군.”
고정륭은 눈살을 찌푸렸다.
“내 반응이 궁금해서 자극하는 짓 좀 그만할 수 없나? 어린아이도 아니고 말이야.”
“툭 치면 어린아이처럼 바로 반응이 나오는데 어찌 그만둘 수가 있겠나?”
고정륭의 고개가 막사 밖으로 휙 돌아간다.
“공맹아. 오늘 니들 국주 다시 뽑아야쓰겠다.”
휘장이 걷히더니 등에 장궁을 걸머진 호리호리한 사내가 들어왔다.
그는 이무위를 바라보며 말했다.
“차기 국주는 속하에게 맡기십시오.”
이무위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진다.
“……이 새끼가.”
공맹이 짓궂게 웃는 순간이었다.
술잔을 던진 두 사람이 별안간 막사를 뚫고 몸을 날렸다.
쐐애액!
간발의 차이로 장막을 뚫고 들어온 흑창이 탁자를 쪼개며 틀어박혔다.
콰앙!
굉음과 함께 찢겨나간 막사가 나풀거리며 솟아오른다.
가까스로 몸을 뺀 공맹이 눈을 부릅떴다.
‘뭐냐?’
감지할 시간조차 없었다.
그가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눈앞의 두 사람이 움직였기 때문이었다.
인근에 머물던 다섯 명의 대표두가 막사를 박차고 튀어나왔다.
“무슨 일입니까?”
도파에 손을 올린 이무위는 대답 대신 어둠 속을 노려보며 외쳤다.
“누구냐!”
“그대가 운화결인가?”
간담을 서늘하게 만드는 냉막한 목소리는 그들의 귓속을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이윽고 십 장 밖의 숲속에서 다섯 명의 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앞으로 나선 이하빈이 손을 내밀자 지면에 단단히 꽂혀 있던 흑창이 빗살같이 빨려들었다.
‘고수!’
막을 틈도 없었다.
그녀의 절묘한 귀접은 모두의 뇌리에 강렬한 경종을 울렸다.
구우우우…….
늘씬한 체구에서 발산하는 태산 같은 기운은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이무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정말 여길 노린단 말인가? 그럴 만한 무인은 없다고 들었는데?’
설지량의 계획 중 유일한 허점은 바로 이곳, 본진이었다.
그는 단 하나의 허점을 대표두들과 국주들로 보강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운화결은 임교영과 개봉으로 향한 상태였다.
천천히 그들을 둘러본 이하빈은 재차 물었다.
“누가 운화결이지?”
가늘게 뜬 눈으로 적을 살핀 육군명이 고개를 저었다.
“없군.”
유대하가 말했다.
“인상착의를 보면 저 둘은 낙전표국주와 대서표국주인 듯합니다.”
대서표국주 이무위가 도신을 뽑아내며 물었다.
“네놈들은 누구냐?”
돌아오는 대답은 그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시작하지.”
말이 끝난 순간 이하빈의 신형이 지면을 박차고 쏘아졌다.
쾅!
돌가루가 흩날린다 싶더니 눈앞에서 시꺼먼 흑창이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피해라!”
고정륭의 벼락같은 외침에 대표두들이 일제히 산개한다.
콰콰콰콰콰쾅!
뇌성벽력이 동반된 흑창은 얼어붙은 땅거죽을 순식간에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녀의 경천동지할 신위는 대표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이년은 대체 누구란 말이냐?’
흑창이 방향을 트는 순간 유대하들의 귀로 차가운 목소리가 파고들었다.
“국주들을 맡아라.”
운화결이 없다면 그에 맞춰 계획을 수정할 뿐이다.
그 순간 날아간 막사 밑에서 솟구친 창이 고정륭의 손으로 빨려 들어간다.
쌔액!
유대하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외쳤다.
“당천!”
“안다.”
무심한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손에서 한 줄기 섬광이 일직선으로 쏘아졌다.
구암환영공 일광낙비(一光落飛)의 초식.
쏴아아!
백광을 흘리며 맹렬하게 회전하는 비도가 정확히 창대를 직격한다.
카아앙!
날카로운 쇳소리와 함께 손에 잡히던 창이 튕겨 나갔다.
창을 놓친 고정륭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비쳤다.
‘이런!’
그는 한 자루 창으로 흑천비류창과 영화무한봉을 동시에 사용하기 때문이었다.
“너는 저게 없으면 안 되는 모양이구나?”
히죽 웃은 육군명이 벼락같이 쇄도하며 도신을 치켜들었다.
“정륭!”
그의 위기를 감지한 이무위가 고절한 보법으로 육군명을 막아갔다.
화살처럼 쏘아진 도신이 육군명의 흑광에 거칠게 부딪쳤다.
쾅!
손끝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힘에 육군명의 눈이 살짝 커졌다.
‘엇?’
튕겨 나간 그의 팔이 크게 벌어지는 순간이었다.
“감당할 수 있겠는가! 애송이!”
쉬익!
이무위의 좌수에서 뽑혀 나온 검이 육군명의 가슴을 오싹하게 파고든다.
‘우도좌검이라고? 이게 가능한 일인가?’
풍기는 기세나 움직임이 운화결에 미칠 정도는 아니었으나 역시 오대표국의 국주들은 만만치 않았다.
이를 악문 육군명이 다급하게 몸을 비트는 순간.
“합!”
기합성과 함께 맹렬하게 짓쳐 든 용추의 봉 끝이 검신을 거칠게 때려 박았다.
콰앙!
간발의 차이로 위기에서 벗어난 육군명이 두 손으로 도파를 움켜쥐었다.
“이제 알았다. 여긴 내게 맡겨!”
자신이 이무위를 붙잡는 동안 무기를 잡지 못한 고정륭을 끝내는 게 빠르다.
육군명을 믿는 용추는 두말없이 고정륭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사이 재차 솟구친 고정륭의 창대로 당천의 일광낙비가 적중한다.
쾅!
고정륭의 눈에 불길이 솟구쳤다.
“이놈들이!”
어느새 지면을 박찬 유대하의 신형이 고정륭의 정면으로 쏘아진다.
좌측에선 용추까지 봉을 내지르며 달려들었다.
보법을 극성으로 전개한 고정륭이 우측으로 길게 미끄러지자 유대하도 그에 맞춰 방향을 틀었다.
쉬익!
아래부터 솟구치는 매끄러운 검초가 고정륭의 흉부를 압박한다.
“창이 없으면 안 될 줄 아느냐!”
일갈을 토해낸 고정륭의 손바닥이 유대하의 검신을 정확하게 후려쳤다.
쩌엉!
청명한 쇳소리와 함께 유대하의 신형이 빙그르르 회전한다.
쌔애액!
회전하는 유대하의 검신이 간발의 차이로 고정륭의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놈!”
일갈을 토해낸 고정륭의 일권이 유대하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슈우욱!
유대하는 즉시 검파를 내리찍었다.
쾅!
검파와 주먹이 충돌하며 유대하의 신형이 순식간에 튕겨 나갔다.
손목의 엄청난 통증에 유대하는 미간을 좁혔다.
‘역시 국주는 국주인가.’
무기가 없다지만 쉽게 볼 상대가 아니다.
과거의 자신이었다면 지금의 한 수에 크게 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때의 유대하가 아니다.’
밀려나던 유대하의 발이 언 땅을 파고드는 순간.
고정륭의 지척까지 돌진한 용추의 봉 끝에서 영화무한봉 타척진봉의 초식이 벼락같이 쏟아졌다.
“제법 쓸만한 물건을 들고 있구나!”
부릅뜬 고정륭의 눈동자가 원을 그리는 봉 끝의 궤적이 담긴다.
‘감히 내 앞에서 영화무한봉을 펼치다니.’
자신과 같은 무공이기에 흐름과 흐름 사이의 약점이 또렷하게 보인다.
흔들리던 봉이 아래로 향하는 순간, 솟구친 고정륭의 손바닥이 빗살처럼 떨어졌다.
콰앙!
굉음과 함께 철봉 끝이 지면에 처박힌다.
‘오, 이걸 때렸어?’
전광석화같이 회전하는 봉 끝을 정확히 가격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이채가 떠오른 용추의 눈에, 봉 끝을 찍어 누르는 고정륭의 발이 들어왔다.
“이건 내가 잘 쓰도록 하마.”
히죽 웃은 고정륭은 철봉 끝을 움켜쥐고 강하게 끌어당겼다.
그때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졌다.
‘엇?’
힘과 내력에 절대적인 자신을 갖고 있던 고정륭이 되려 용추에게 끌려간다.
상대가 신력을 타고난 장사라는 걸 미처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며칠 굶었어?”
고개를 갸웃한 용추가 봉을 허공으로 치켜들었다.
워낙 어이가 없던 고정륭은 봉을 놓을 생각조차 못 한 채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런!’
그사이 맹렬하게 돌진한 유대하가 지면을 박차려 할 때였다.
[물러나라.]사천 제일의 후기지수 당천은 결코 의미 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탓!
발끝으로 언 땅을 찍은 유대하가 순식간에 물러난 순간.
슈아아아아!
고정륭의 시야에 허공을 가득 채운 암기 다발이 빨려들 듯 확장됐다.
‘아니?’
당천의 입가에 그답지 않은 미소가 깃들었다.
“아는 사람들은 나를 백파비도(百波飛刀)라고 부르지.”
과거 소천무군 단자룡에게 패하기 전까지, 승승장구하던 당천에게 붙여진 무명이다.
이어서 활짝 펼쳐진 두 팔이 안쪽으로 교차했고.
쌔애애액!
동시에 허공을 가득 채운 암기가 회오리치듯 회전하며 그의 전신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아!’
고정륭의 두 눈에 절망이 깃드는 순간.
쿠아아앙!
굉음과 함께 폭우처럼 쏟아진 암기가 그의 전신을 벌집으로 만들어버렸다.
후두둑.
살점이 뒤섞인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져 내린다.
구암환영공 만월천비(萬月千飛)의 초식이 완벽한 형태로 발현한 순간이었다.
나직이 숨을 고른 당천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초식이었음에도 당천의 목표는 조금 더 위에 있었다.
탓!
지면을 박찬 당천이 다음 상대를 찾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