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13)
◈ 213화. 고독한 희생의 결과
팽팽한 긴장감 속에 진무립은 마침내 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당천의 뒤에 그림자처럼 시립한 진무립이 담장 밖 어둠을 응시했다.
[성우. 악계화들을 연무장 밖으로 소집, 팔기에게 언제든 전투에 뛰어들 태세를 갖추도록 하라.]어둠 속에서 작게 끄덕인 금성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운화결이 물었다.
“그대의 말을 종합하면, 내가 정체를 숨긴 채 다른 목적으로 중원무림맹에 접근했다는 것인가?”
“아니라고 할 수 있겠소?”
“산적 무리를 징벌하겠다는 목적에 거짓은 없다.”
적모개가 말했다.
“최근 개봉에 떠도는 소문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겠군.”
말이 끝나기 무섭게 명가홍이 벌떡 일어났다.
“태산표국이 무너지고 그곳의 국주가 팔황문의 잔당이라는 말을 하고 싶은 겐가?”
“뜬소문이라고 할 셈이오?”
“으하하하! 이것으로 확실해졌군.”
미칠듯한 광소를 터트린 명가홍이 품에서 준비해온 장계를 꺼냈다.
“보게나. 이건 자네의 비각에서 입수한 정보일세.”
적모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비각에서 입수한 정보라고?’
그런 게 있을 리 없다.
아니나 다를까 앉아있던 제갈문도 영문 모를 표정이었다.
명가홍이 히죽 웃으며 말했다.
“내 친히 읽어주지. 태산표국, 회남표국. 상천의 기습에 멸문. 무면산왕은 팔황문주 황운천의 팔천영신공을 익힘. 어떤가?”
진무립의 눈동자가 운화결의 미소에 닿았다.
‘이런 싸움은 좋아하지 않나?’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잠시 전음이 끊어지던 사이, 적모개가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비각에선 그런 정보를 입수한 적이 없소.”
“그렇다면 자네의 개방은 어떤가?”
명가홍의 손이 한쪽을 가리키자 모두의 시선이 연무장 입구로 향했다.
“개방의 조당주 지박개가 강호의 동도들에게 인사 올리오!”
상황을 눈치챈 적모개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지박개. 네놈이…….’
사천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총단에 복귀한 자신이 중원맹의 요직에 오르자 사사건건 시비를 걸던 놈이다.
조롱 섞인 지박개의 눈동자가 적모개를 담는다.
‘쯧쯧쯧. 그러게 그냥 촌구석에 처박혀 있지 그랬는가?’
지박개는 개방의 인장이 찍힌 서신을 들고 단숨에 단상에 올랐다.
“조금 전, 중검문주께서 말씀하신 내용은 사실이오. 우리 개방에서도 같은 정보를 입수했소이다.”
활짝 펼친 서신을 모두에게 보이자 무인들의 술렁임이 커지기 시작했다.
“무면산왕이 팔천영신공을 익혔다니…….”
“그렇다면 개봉에 떠도는 것은 상천이 흘린 거짓 소문이란 말인가?”
명가홍이 호통치듯 외쳤다.
“적모개! 그대는 아까부터 주구장창 상천을 옹호하더군. 그대는 나와 운국주의 유착을 입증하겠다고 했었다. 그러나 돌아가는 정황을 보면 나는 그대와 상천의 유착 관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적모개는 강하게 반발했다.
“그런 게 아니오!”
운화결을 슬쩍 쳐다본 지박개가 말했다.
“사천에서 적모개와 함께 올라온 동초개라는 제자가 있소. 얼마 전 도망치듯 총단을 떠난 그자는 지금 상천의 무리들과 함께 어울리고 있지. 이것도 부정할 생각인가?”
“그것은…….”
적모개가 뭔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집행부 무인들이 벌떡 일어났다.
“이것 참 가관이군.”
“그대야말로 상천에서 보낸 세작이 아닌가!”
“감히 중원무림맹과 오대표국 사이를 이간질하는가!”
순식간에 장내의 분위기가 일변하며 지탄의 대상이 적모개로 바뀐다.
“배신자!”
“감히 상천과 붙어먹어 맹을 배신했느냐!”
“사천에서 상천과 함께 싸웠다더니 그놈들에게 포섭된 모양이로구나!”
설지량의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깃들었다.
‘하하하. 참으로 단순한 자들이 아닌가.’
비각의 정보를 조작한 것도, 개방의 조당주를 매수한 것도 모두 그의 계책이었다.
단상 위에 오롯이 선 적모개에게 만인의 지탄이 쏟아지고 있을 때.
[침착해라. 우리에겐 결정적인 패가 있다.]진무립의 연이은 전음이 그의 귓속에 스며들었으나 하늘을 찌를 듯한 원성은 그것을 완전히 파묻고 있었다.
적모개가 진무립의 목소리에 집중하고자 미간을 좁힐 때였다.
운화결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스치듯 사라졌다.
‘역시 너는 대단한 녀석이다.’
본진이 습격당하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음에도 설지량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냈다.
그를 슬쩍 쳐다본 운화결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무면산왕. 네놈은 천하의 공적으로 이 자리에서 죽어줘야겠다.’
사태가 예정대로 돌아간다면 굳이 부하들을 움직일 것도 없다.
두 걸음 앞으로 나선 운화결이 중원무림맹 무인들에게 포권을 취했다.
“금성표국의 수장, 운화결이오. 불미스러운 일로 중원맹의 영웅들을 찾아뵙게 되어 송구스럽기 이를 데 없소.”
적모개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아직 내 이야기가 전부 끝나지 않았소.”
“상천의 사주를 받은 그대로 어떤 헛소리로 맹의 영웅들을 기만할지 모르는데 어찌 두고만 볼 수 있겠소?”
“나는 사주를 받아 움직이는 것이 아니오!”
“그렇다면 그대의 의지로 상천과 손을 잡았다는 것인가?”
전음을 보낼 필요도 없었다.
진무립은 당연히 적모개가 부정하리라 생각했다.
그가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뻔뻔해질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의 그는 첫 만남에서 지부를 내 것이라 우기던 그날의 적모개가 아니었다.
“내가 상천을 택한 것은, 온갖 협잡꾼들이 득시글대는 오늘날의 중원무림맹이 공정을 논하던 당초의 기치를 잃어버렸기 때문이오! 산적이라며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는 그들이지만 적어도 당신처럼 위선자는 아니오!”
예상치 못한 말에 진무립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적모개?’
운화결은 그만 웃음을 터트렸다.
“크하하하! 결국 그대의 입으로 실토하는군. 모두 보시구려. 부각주는 스스로 상천과 손을 잡았다고 실토했소. 더 이상 무슨 설명이 필요하오?”
쏟아지는 살기와 분노로 번들거리는 눈빛들이 적모개의 전신을 난도질하듯 틀어박혔다.
“하늘이 무섭지도 않느냐!”
“감히 흉악한 산적 놈들과 손을 잡고도 그 목이 붙어있길 바라는가!”
들불처럼 일어나는 비난에도 적모개는 움츠러들지 않았다.
“나는 중원무림맹에 들어온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내 자신에게 떳떳하지 않았던 적이 없소. 이 모든 것은 무고한 희생을 막기 위한 나의 의지요. 무의미한 전쟁을 벌여 아까운 젊은이들을 사지에 몰아넣으려는 음모를 막고자 함이오!”
진심이 담긴 적모개의 외침이 끝나자 운화결은 실소를 흘리며 걸어 나왔다.
“그대의 의지라고?”
운화결과 적모개의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당천은 슬며시 품에 손을 넣었다.
‘손이 움직이는 순간 친다.’
그때 발을 멈춘 운화결이 고개를 휙 돌렸다.
“부각주의 말이 모두 사실인가? 무면산왕!”
순간 장내에 무거운 정적이 감돌더니 경악한 무인들이 운화결의 시선을 좇는다.
“무면산왕이라고?”
“산적의 수괴가 이 자리에 왔단 말인가?”
운화결의 한쪽 입꼬리가 길쭉하게 올라갔다.
“언제까지 숨어있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나?”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당천의 뒤에 서 있던 진무립이 슬며시 복면을 내리며 걸어 나왔다.
진무립과 적모개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친다.
“사천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뻔뻔한 인간이었는데.”
적모개는 씩 웃었다.
“당신이 무엇을 위해 싸우는지 익히 아는데 어찌 면피를 위해 거짓으로 행동할 수 있겠소?”
저들을 위선자라고 욕하면서 스스로가 위선적인 인물이 되고 싶지도 않았다.
사천에 묻혀있던 자신을 알아봐 준 진무립의 앞에서는 더더욱 그랬다.
진무립도 그에게 미소로 화답했다.
계획이 조금은 달라지게 되었으나 상관없었다.
적모개의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진 까닭이다.
아슬아슬하면서도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가운데 당천이 헛웃음을 흘리며 걸어 나왔다.
“모두가 변해가는군.”
자신도, 적모개도.
진무립과 만난 자들은 모두 그의 영향을 받아 달라졌다.
그때 단상 한쪽에 몰려있던 중소방파의 수장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뽑아 들었다.
“무면산왕! 네놈이 겁도 없이 사지로 걸어들어왔구나!”
“이 자리에서 네놈을 베고 천하의 악적들을 차례로 일소할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대로 완벽하게 진행되어간다.
운화결과 설지량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떠오를 때였다.
“누가 감히 상천의 천주를 핍박하는가!”
담장 밖에서 벼락같은 외침이 터져 나오더니 십여 명의 무인들이 나타났다.
누군가가 눈을 부릅뜨고 외쳤다.
“저분은 산동 양소방의 묵대협이 아닌가?”
앞으로 나선 묵운정이 검병을 손에 쥐고 외쳤다.
“그에게 무기를 겨누는 자들은 우리 산동무림의 적으로 간주할 것이오!”
묵운정과 전선문주 도조강, 이가장주 이웅을 비롯해 산동의 수장들이 진무립을 돕고자 밤낮없이 달려온 것이다.
진무립의 눈에 이채가 떠오른다.
‘저들이 어떻게 여길?’
수문화에게 아무런 언질도 듣지 못한 터라 놀라움은 제법 컸다.
[무립!]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온 그곳엔 죽립을 눌러쓴 단려화와 서진환, 백하진과 한천유도 함께 있었다.
오는 길에 산동의 무인들과 합류한 것이다.
그때였다.
“아미타불!”
나직하면서도 심금을 울리는 불호가 울려 퍼지더니 좌측 담장이 먼지가 되어 흩어졌다.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향한 곳에는 가사를 걸친 다섯 명의 중이 있었다.
“본좌의 벗에게 검을 겨눈다면 누구든 서장의 힘을 맛보게 될 것이다.”
“서장이라고?”
예상치 못한 상황에 운화결은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꼈다.
현기마저 느껴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서장 무림의 절대자, 포달랍궁의 궁주 판천라마였다.
그에 이어 당천이 비수를 손에 쥐고 외쳤다.
“사천 공위맹은 언제든 상천과 함께 싸울 준비가 되어 있다!”
적모개의 붉어진 눈시울에, 우두커니 서서 가슴을 문지르는 진무립이 담겼다.
‘그렇지. 생소할 것이오.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할 것이오.’
평생을 다른 이를 위해 싸워온 진무립이다.
그런 진무립을 돕겠다고 천하 각지의 무인들이 먼 길 마다치 않고 달려왔다.
언제나 남을 위해 살아온 진무립에게 있어서 지금 느끼는 감정은 생소할 수밖에 없었다.
적모개는 소매로 눈가를 훔치며 웃었다.
‘이들이 몸소 찾아온 것은 당신이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다는 증거라오.’
산동과 서장, 사천무림까지 상천의 편에 서자 명가홍을 비롯한 수장들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이냐!’
이를 바드득 간 명가홍이 운화결을 쳐다보며 답을 요구했다.
운화결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웃음을 흘렸다.
“큭큭큭. 그대들은 무면산왕의 실체를 모르는가? 놈은 팔천영신공을 익힌 황운천의 후계자다!”
“황운천의 후계자?”
목소리의 주인공은 당천이었다.
“무면산왕의 실체라, 모를 리가 없지. 나와 함께 혈교와 맞서 싸운 사천의 광룡이 그대들이 보고 있는 상천의 천주다.”
불어온 바람과 함께 장내에 싸늘한 정적이 깃들었다.
잠시 후, 한 박자 늦게 경악한 무인들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사, 사천의 광룡이라고?”
“무면산왕이 그 진무립과 동일인물이란 말인가!”
술렁임이 극에 달하자 당천이 다시 외쳤다.
“사천 마도림의 소공자. 광룡 진무립이 바로 상천의 천주다! 혈교의 침공으로부터 사천을 구한, 공위맹주의 손자인 그가 어찌 황운천의 후계자일 수가 있겠는가!”
명가홍이 항변하듯 악을 썼다.
“비각과 개방에서 함께 확인한 사실이다! 거짓일 리가 없다!”
순간 담장 너머에서 쩌렁쩌렁한 외침이 하늘로 솟구쳤다.
“그 정보는 틀렸다!”
고개 돌린 무인들은 담을 뛰어넘는 표사들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태산표국의 정복으로 갈아입은 그들이기에 알아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저, 저자는 태산표국의 벽력도 악계화?”
운화결의 눈에 순간 어둠이 스쳐 지나갔다.
‘생존자가 있었단 말인가.’
어둠 속에서 지켜보던 설지량은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저들의 존재는 예상치 못한 변수였다.
쌓이고 쌓인 변수는 어느새 감당하지 못할 만큼 덩치를 불려버렸다.
악계화가 모두를 향해 목청을 키웠다.
“내 목을 걸고! 개봉에 떠도는 소문에 거짓은 없다! 태산표국은 무너졌고 죽은 나의 주군은 분명 팔황문의 후예였다! 그러나!”
쏟아지는 시선 속에 악계화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운화결을 노려보았다.
“금성표국주 운화결! 저자 역시 같은 팔황문의 후신이자 지금은 이름을 바꾼 복령천의 하수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