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12)
◈ 212화. 결전의 시간
중원무림맹의 대연무장에 수천에 달하는 무인들이 집결했다.
출정 준비를 유지한 채 대기하던 무인 전원이 맹주령으로 모인 것이다.
각 부대가 열을 맞춰 늘어선 가운데, 중천대주 선우빈의 귓속으로 나직한 전음이 파고들었다.
[대주.]슬며시 고개 돌린 곳엔 조장 황용이 있었다.
[가주님의 말씀을 모두에게 전했느냐?] [예. 내색하지 말고 긴장을 풀지 않도록 단단히 일러두었습니다.] [오늘 밤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조장들을 외곽으로 배치하고 항시 주변을 경계하도록 지시해라.]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반드시 이 안에서 벌어질 것이다.
[알겠습니다.]부하들이 조용히 움직일 무렵, 입구에서 위사의 목소리가 솟구쳤다.
“집행원의 고수들께서 입장하십니다.”
모두의 고개가 일제히 돌아간 곳에는 집행부와 중천대 부대주 황보춘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들의 뒤로, 두 손이 묶인 제갈문과 적모개가 보인다.
부대주 황보춘과 시선을 교환한 선우진은 전방으로 고개를 돌렸다.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집행부에 이어 명가홍이 들어오며 단상 위를 쳐다보았다.
“맹주께서는 아직이신가?”
목소리에서 다소 거만함이 느껴진다.
자신의 힘에 확신이 생긴 까닭이다.
대답은 그의 뒤에서 들려왔다.
“귀한 손님이 찾아와 조금 늦어지실 게요. 아직 금성표국주도 도착하지 않았으니 느긋하게 기다려 보십시다.”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제갈무용을 비롯한 원로원의 고수들이 있었다.
전방으로 고개 돌린 명가홍이 코웃음을 쳤다.
‘답답한 늙은이. 내 앞에서 고개를 빳빳이 들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맹 내의 무인들이 속속 집결하고 있을 때, 무운전 최상층에선 위사영과 진무립의 대화가 이어지고 있었다.
“저들이 선수를 칠지 모른다고?”
진무립은 확신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가정이 아니라 확신이다. 놈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반드시 움직일 거다.”
지금까지의 흐름을 보았을 때, 상대 진영엔 분명 머리 쓸 줄 아는 자가 있다.
그런 자가 자신이 왔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게다가 이 자리에서 저들의 정체가 만천하에 폭로된다면, 놈들이 무력 행동에 나설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진무립이 말을 덧붙였다.
“누구도 위에 서지 않는 평등한 세상은 힘의 논리가 우선시되는 무림에선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다. 선택의 시간이 왔다는 말이다.”
“그대의 계획을 들어보지.”
“그 전에 묻지. 중검문과 뜻을 함께하는 방파의 수장들이 모두 몇이지?”
위사영은 차분히 자신이 파악한 내용을 말했다.
“직접적으로 명가홍을 따르는 자들은 열둘. 그들 무리가 이끄는 분위기에 편승에 지지하는 자들은 스물셋이다.”
“나머지는 중립이란 말인가?”
“스스로 자신들의 권력을 경계하는 삼가는 파벌을 만들지 않았다. 남은 자들은 중립이라고 볼 수 있겠지.”
진무립이 차갑게 눈을 빛냈다.
“놈들에게 움직일 조짐이 보이면 명가홍을 따르는 열두 명의 수장을 벤다. 그것만이 피해를 줄일 방법이다.”
“명분을 확보하기도 전에 말인가?”
“명분이 죽은 사람을 살려주지는 않는다.”
위사영은 그만 실소를 흘렸다.
“아직 나는 그대를 완전히 믿는 것이 아니다. 종령문의 멸문에 관여치 않았다는 확증과 세간에 떠도는 소문의 진상이 밝혀지기 전까지는 그럴 수 없다.”
진무립은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답답하지만 중원맹의 맹주 된 입장에서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러나 위사영도 사람인 이상, 이렇게라도 말해둔다면 명가홍 무리를 면밀히 주시할 것이다.
그때 은영대주 서궁이 문밖에 도착했다.
“맹주님. 금성표국주가 도착했습니다. 모든 준비가 끝난 듯합니다.”
위사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가봐야겠군. 두 사람은 맹의 귀빈으로 참관을 허락하겠다.”
진무립은 집무실을 나서는 위사영에게 당부하듯 말했다.
“명심해라. 전투가 벌어진다면, 삼가를 제외한 누구도 믿어선 안 될 거다. 피해를 줄일 방법은 먼저 움직이는 것뿐이라는 것도 알아둬라.”
문을 향해 걷던 위사영이 문득 발을 멈추고 물었다.
“그대는 두렵지 않은가?”
진무립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무엇을 두려워해야 하지?”
“명분도 얻기 전에 중소방파 수장들을 벤다면, 그들을 따르는 수천, 수만의 식솔들이 그대를 원망할 것이다.”
진무립이 피식 웃었다.
“명분이 있으면 원망도 사라지나?”
“원망할 명분이 없어지겠지.”
“타인의 시선에는 관심이 없다. 난 내 식구들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지옥 불에 떨어질 각오가 되어있다.”
위사영은 물끄러미 진무립을 바라보았다.
‘무리를 이끄는 능력에선 나보다 낫군.’
명분을 중시하는 중원무림맹의 기준에서 보면, 진무립은 악인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러나 따르는 수하들의 입장에선 진무립만 한 수장이 없을 것이다.
고개 돌린 위사영이 문을 열었다.
“가지.”
* * *
일렁이는 수십 개의 횃불이 대연무장을 대낮처럼 환히 밝혔다.
도합 삼천에 달하는 무인들이 도열한 가운데, 정면 단상에 수뇌들이 착석했다.
그 앞에 덩그러니 놓인 두 개의 의자에는 적모개와 제갈문이 앉아있었다.
눈으로 주변을 슥 훑어본 적모개가 두 눈을 반짝였다.
‘소공자. 오늘은 어떤 술수로 나를 놀라게 할 거요?’
진무립은 언제나 자신의 예측을 뛰어넘는 계책을 세우곤 했었다.
만인의 시선이 온몸에 쏟아지는 와중에도 두렵다기보단 기대감이 먼저 떠오른다.
단상의 좌측에 앉은 운화결은 담장 밑의 어둠 속에 스며든 설지량을 찾았다.
[외곽의 감시는?] [살존이 있으니 문제 될 게 없습니다.] [그건 그들이 우리의 계획에 순순히 협조할 때의 이야기겠지.]외곽에는 양천대의 호위를 받는 임교영이 있을 것이다.
운화결의 노파심에 설지량은 빙그레 웃었다.
[아직 우릴 버릴 때가 아니니 염려 놓으십시오.]그때 입구에서 우렁찬 외침이 들려왔다.
“맹주께서 입장하십니다.”
일제히 몸을 돌린 삼천의 무인들이 위사영을 발견하곤 예를 갖췄다.
“맹주님을 뵙습니다.”
나직한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밤하늘로 울려 퍼진다.
가볍게 손을 들어 화답한 위사영이 단상으로 향했다.
뒤따르는 진무립의 눈에, 죄인처럼 단상의 중앙에 앉은 적모개가 들어왔다.
[조금만 참아라.]미소 띤 적모개의 입술이 작게 열렸다.
‘나는 걱정할 것 없소.’
맹주 일행을 주시하던 설지량의 눈이 후미를 따르는 복면인에게 닿았다.
‘그자다.’
숲속에서 자신과 조우했던 인물.
그때의 강렬한 눈빛은 결코 잊을 수 없었다.
그는 즉시 운화결에게 보고했다.
[주군. 후미를 따르는 자들 중 복면 쓴 인물이 무면산왕입니다.]운화결의 시선이 닿은 곳엔, 보란 듯이 눈웃음치는 진무립이 있었다.
[관은 맞춰두었나?]제법 먼 거리임에도 상대의 전음이 마치 바로 옆에서 말한 것처럼 또렷하게 들려온다.
운화결의 한쪽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간다.
[보고 싶었다.]어느새 단상 위에 올라선 위사영이 모두를 돌아보며 말했다.
“모두 이 자리에 모인 연유는 알고 있을 것이오. 서론은 생략하겠소.”
위사영이 적모개에게 손을 들어 보였다.
“부각주는 어떤 의혹도 남지 않도록, 본인이 생각하는 바를 이 자리에서 전부 털어놓으시오.”
“감사합니다.”
적모개에게서 시선을 거둔 위사영이 늘어선 무인들을 향해 말했다.
“그대들은 부각주의 말을 차분히 경청해주길 바라오.”
말을 마친 위사영이 단상 중앙의 빈 자리에 착석했다.
위사영은 적모개가 하고 싶은 말을 모두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었다.
남은 일은 계획대로 진행하는 것뿐이다.
[시작하지.]진무립의 나직한 전음에 적모개가 작게 끄덕였다.
“비각의 부각주, 적모개입니다. 불미스러운 일로 맹도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일, 사죄의 말씀부터 올립니다.”
맹도들에게 정중히 예를 갖춘 적모개가 나직이 숨을 골랐다.
‘소공자. 집중할 테니 말 더듬지 마시오.’
진무립의 전음이 재차 그의 귓속을 파고들기 시작한다.
그의 말을 머리에 새긴 적모개는 쏟아지는 시선 속에 차분히 입을 열었다.
“본인과 각주께서 옥사에 갇힌 이유는 모두가 알고 계실 것입니다. 본 맹과 오대표국의 동맹. 비각이 중천문주 명가홍 대협을 주시한 것은 상천과의 전쟁을 위한 동맹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명가홍이 비릿한 미소를 보이며 물었다.
“부각주가 나와 오대표국의 유착을 입증한다 하여 이 자리에 모두 모이지 않았소. 뜸 들이지 말고 증거를 말씀해보시구려.”
적모개는 슬쩍 돌아보며 말했다.
“맹주께서는 어떤 의혹도 남기지 않으시고자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셨습니다. 저는 맹주님의 뜻에 따라 모든 의문점을 하나씩 지목하며 설명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조금 지루하더라도 끝까지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적모개의 정중한 태도에 명가홍은 불편한 내심을 감춰야 했다.
전방으로 고개 돌린 적모개가 말을 이어갔다.
“유착을 입증하기에 앞서, 우리는 동맹의 체결부터 전투를 준비하는 과정까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적모개는 운화결을 슬쩍 돌아본 뒤 말했다.
“당초 금성표국주께서 본 맹에 동맹을 제안하며 제시한 것은 상천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운화결이 답했다.
“그렇소.”
그가 위사영을 만나 제안했던 것도, 명가홍이 의화전에서 열변을 토하며 주장했던 것도 산적에게 통행세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적모개가 다시 입을 열었다.
“상천의 시작은 분명 산적의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황실의 흑전원은 인근 치안을 유지해온 상천의 공을 참작해 그들을 정식 무림 방파로 인정했습니다. 본 맹이 명분을 중시한다면, 그들의 질서를 무작정 거부할 것이 아니라 대화부터 시도했어야 합니다.”
고요한 침묵 속에 적모개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퍼져나간다.
“그런데 중검문주께서 주도한 의화전은 그 모든 과정을 생략한 채 속전속결로 상천과의 분쟁을 택했습니다. 우리가 그들의 질서를 거부해 얻을 것과 잃을 것을 계산하지도 않은 채 말입니다.”
명가홍이 벌게진 얼굴로 항변했다.
“산적의 질서를 따르는 것이 명예로운 행동인가?”
적모개가 여유롭게 웃으며 대꾸했다.
“상천이 통행세를 받은 게 하루 이틀입니까? 명예를 찾을 거라면 그 전에는 왜 입을 다물고 계셨습니까? 상천이 흑전원의 인정을 받아 산적의 꼬리표를 뗀 뒤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문주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촌철살인같은 일침에 명가홍은 할 말을 찾지 못했다.
시선을 거둔 적모개가 무인들을 눈에 담았다.
“상천과의 전쟁에서 입을 피해가 두려워 그간 충돌을 삼갔으면서, 오대표국이 손을 내밀자 이때다 싶어서 명예를 부르짖는 것이 과연 본 맹의 정의입니까? 이건 위선입니다.”
진무립은 적모개를 통해 이들이 감춰온 치부를 거침없이 드러냈다.
아니나 다를까 일부 무인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다.
적모개의 입이 다시 열린다.
“당초 오대표국이 제안한 것은 상천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공유한 목적이 조금씩 달라지더니 종령문의 멸문으로 전쟁이 확정됐습니다. 상천이 종령문을 멸문시킬 이유가 무엇입니까?”
명가홍이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르며 입을 열었다.
“오대표국과 동맹을 체결한 본 맹에 경고를 남기기 위함이 아니오!”
“그들이 바보가 아닌 이상 흑전원에서 넘겨준 서류의 인장이 마르기도 전에 만인에게 지탄받을 행동을 하겠습니까?”
“이미 증거가…….”
“비각에선 그런 증거를 입수한 적이 없습니다.”
적모개의 고개가 운화결을 향해 휙 돌아갔다.
“종령문을 멸문시킨 것은, 본 맹과 상천을 상잔시켜 중원을 먹어치우기 위한 국주의 계책이 아닙니까?”
“하하하!”
쏟아지는 시선 속에 운화결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전에 한 가지 묻고 싶군. 그대는 비각의 무인인가? 아니면 상천의 끄나풀인가?”
지금까지 적모개의 대화를 곱씹어보면 운화결의 지적은 무리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의문 섞인 눈빛이 집중되는 가운데 적모개는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말했다.
“그렇게 묻는다면 나 역시 묻지 않을 수 없군. 금성표국주. 표국주로 위장한 당신의 진짜 정체는 무엇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