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28)
◈ 228화. 상천의 행보
적모개가 의기양양한 걸음으로 대문을 넘어섰다.
문 앞에 서 있던 단려화가 말했다.
“어깨가 너무 올라갔는데요?”
“흠. 나 적모개는 상천의 친구가 아닙니까?”
이번 계획에 있어서 적모개가 큰 역할을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적모개가 상천을 친구로 생각하듯, 상천에 있어서 적모개도 고마운 친구임에는 분명했다.
“얼른 들어가 보세요.”
“예.”
눈인사를 한 적모개가 안으로 들어가자 문 앞을 지키던 이들이 아쉬운 걸음을 돌렸다.
어쨌거나 한 명이라도 들어갔으니 자신들의 뜻은 전해질 것이다.
그들이 모두 사라지자 단려화는 서진환에게 물었다.
“혹시 백채주에게서 소식은 없었나요?”
백채륜은 전투가 끝나고 설지량이 남긴 물건을 찾으러 떠난 상태였다.
“아직입니다.”
“음.”
서진환이 의아한 듯 물었다.
“신경 쓰이는 것이 있으십니까?”
그녀는 애써 웃으며 고개 저었다.
“아니에요. 나도 조금 쉬어야겠네요. 대주께서도 너무 무리하지 말고 다른 사람과 교대하도록 해요.”
오로지 진무립의 명에만 움직이는 서진환이었으나 그녀의 거듭된 권유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서진환은 슬며시 고개를 숙였다.
“예. 아가씨.”
처소에 들어선 적모개의 눈동자가 떨떠름하게 변했다.
“어어?”
“뭘 그렇게 놀라?”
“소저의 표정을 봐선 크게 다친 거 같지는 않았는데 이게 뭐요?”
놀란 적모개의 눈동자에, 전신을 새하얀 천으로 칭칭 두른 진무립이 담겼다.
“그렇게 싸웠는데 안 다치면 사람이야?”
“그건 그렇소만.”
“거기 아무 데나 앉아.”
적모개가 의자에 앉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정말 괜찮은 거 맞습니까?”
“외상뿐이야. 며칠 움직이지만 않으면 되니까 걱정할 것 없어.”
적모개는 여전히 걱정스러운 눈빛을 거두지 못했다.
진무립이 자신의 고통을 겉으로 내색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진짜라니까.”
“음.”
“안 믿을 거면 나가.”
“믿겠습니다.”
“…….”
멍하니 쳐다보던 진무립은 그만 실소를 짓고 말았다.
짧은 정적이 지나간 뒤, 진무립의 입이 작게 열렸다.
“고맙다.”
사천에서의 인연을 시작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적모개는 알게 모르게 상천의 행보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나직한 목소리였으나 그 안에 담긴 진심을 모를 적모개가 아니다.
적모개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그건 내가 할 말입니다.”
그가 아니었더라면 자신은 여전히 사천의 한직에서 허송세월을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더불어 중원무림맹은 오대표국의 손에 떨어지고 개방과 주요방파 또한 무사하지 못했겠지.’
진무립은 자신의 인생을 바꿔놓은 은인이나 다름없었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하게 포권을 취했다.
“소공자 덕분에 우리는 보이지 않는 위협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아직 끝이 아니야. 알잖아.”
“물론입니다.”
복령천이라는 숨겨진 실체가 드러난 이상 아직 천하의 안녕은 요원한 일이었다.
지금부턴 그에 대비할 차례다.
적모개가 말했다.
“맹주를 비롯한 중원의 수장들이 소공자를 만나고자 합니다.”
진무립은 침상에 비스듬히 기대앉으며 물었다.
“무슨 이야기가 나올 거 같지?”
“아무래도 상천의 다음 행보에 대해 궁금한 게 많은 모양입니다. 나와 다르게 그분들은 소공자를 잘 모르니까.”
진무립이 짓궂게 웃었다.
“내가 중원의 패권을 원한다고 하면 넘겨줄 거 같나?”
“지금 분위기로 봐선 안 될 것도 없을 거 같은데…….”
진무립과 함께 싸운 중원무림맹의 무인 중 대다수는 천하대전을 겪지 못한 젊은 무인들이다.
그들에게 신룡의 활약은 머나먼 과거의 일이었고 눈앞에서 본 진무립의 신위는 현재와도 같았다.
일부 후기지수를 시작으로 진무립을 마치 신앙처럼 숭배하는 분위기가 번지는 지금, 진무립이 내뱉은 말은 완전히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 같았다.
묘한 정적이 길어지자 적모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설마…… 정말?”
“그럴 생각이었으면 중원은 이미 내 것이지 않았겠나?”
다소 광오한 말이었으나 진무립이라면 충분히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적모개는 안도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 그럴 줄 알았지.”
수장들이 가장 궁금해하고 걱정했던 문제가 해결된 것이다.
“상천이 다른 뜻을 품지만 않는다면 소공자가 그토록 바라던 꿈도 조만간 이뤄질 것 같습니다.”
상천이 그간 정체를 드러낼 수 없었던 것은 은곡이라는 뿌리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상천은 자신들이 천하에 혈겁을 일으킨 자들과 다르다는 것을 훌륭하게 입증했다.
진무립이 패권을 추구하지만 않는다면, 중원 무림은 상천을 무림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수뇌들의 중론이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분위기는 좀 어떻지?”
전투에 승리했다곤 하나 중원의 많은 무인이 목숨을 잃었다.
반기를 든 중소방파는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었으나 가까스로 천하대전의 피해를 복구했던 중원삼가 또한 큰 피해를 입었다.
적모개가 답했다.
“다들 뒷수습 문제로 정신이 없습니다.”
맹의 수뇌부는 진무립이 깨어나길 기다리며 중검문을 비롯한 중소방파의 처리방안을 고심하고 있었다.
“개방의 분위기도 좋지는 않을 거 같은데.”
순간 적모개의 얼굴에 어둠이 드리운다.
“아무래도 그렇지요. 큰 전쟁 전에 같은 일이 무려 두 번이나 반복되었으니…….”
“한 번은 우연일 수 있으나 두 번은 우연이라 보기엔 어렵지.”
개방은 거지로 구성된 만큼 외부의 유혹에 넘어가기 쉬운 고질병을 갖고 있다.
“사실 소공자에게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
더없이 진중한 눈빛에 진무립도 자세를 고쳐 앉았다.
“말해봐라.”
“우리 개방이 어떤 길로 나아가면 좋겠습니까?”
“그건 네 질문인가? 아니면 방주의 질문인가?”
“방주께서도 같은 고민을 하고 계시겠으나 일단은 내 개인적인 질문으로 합시다.”
“내 대답이 무엇이든 사람이 하는 일에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그건 알고 있겠지?”
“물론입니다. 다만 소공자라면 어떻게 할지 궁금하구려.”
진무립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나라면 거지를 포기한다.”
“…….”
“무공을 익힐 만큼 사지육신 멀쩡한 자들이 왜 빌어먹고 다닌다는 말이냐?”
만일 이 자리에 철표개가 있었더라면 헛웃음을 흘리고 말았을 것이다.
진무립의 입에서 나온 말이 과거 단소룡이 했던 말과 비슷했던 까닭이다.
잠시 황당하다는 듯 쳐다보던 적모개는 이내 생각을 고쳤다.
‘소공자라면 대책 없이 거지를 포기하라고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적모개가 물었다.
“다른 방법이 있겠습니까?”
“방도들에게 녹봉을 지급하는 거다. 매듭이 올라갈수록 많은 녹봉을 지급해 성취욕을 끌어올리고 개방을 진취적인 단체로 탈바꿈시켜라. 나라면 그렇게 할 거다.”
개방의 방도는 임무에 따라 활동비를 받는 경우는 있으나 녹봉은 없었다.
애당초 녹봉을 받는다면 거지라고 볼 수도 없었다.
“돈을 벌어서 말입니까?”
“무인이 있고 정보력이 있는 만큼 돈을 벌자면 못할 것도 없지.”
“우리가 얻는 정보의 대부분은 구걸하는 과정에서 나옵니다. 녹봉을 지급하면서 지금 만큼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구려.”
“구걸해온 재물은 오로지 그자의 몫으로 해라. 삥 뜯지 말고. 너도 동초개한테 많이 뜯었잖아?”
“…….”
“총단에서는 가져온 정보의 진위를 명백히 파악하고 그 가치에 따라 합당한 보수를 지불해라.”
“그럴 돈이 어디서 나온다는 말입니까? 장사라도 하라는 말이오?”
“내가 주마.”
반 박자 늦게 적모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응?”
진무립이 씩 웃었다.
“내가 준다고.”
* * *
진무립이 적모개와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그의 처소 바로 옆에선 판천라마와 당천, 산동의 수장들이 어색하게 마주 앉아 차를 들고 있었다.
“그대가 독왕의 아들인가?”
판천라마의 질문에 당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사천에 산동. 거기에 중원 무림까지 우군으로 둘 수 있다면 상천의 위상이 하늘을 찌르겠군.”
아직 중원무림맹의 수뇌들이 결정을 내린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 모인 이들의 면면을 본다면 그들은 결코 상천과 척을 지고 싶지 않을 것이다.
더불어 이번 전쟁에서 오대표국이 일소됨과 동시에 반기를 들었던 중소방파가 몰락하며 힘의 공백이 적지 않게 발생했다.
‘진무립은 무림의 기류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중원무림이 바보가 아니라면 상천과 손을 잡고 싶을 것이다.’
당천도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천과 산동에 서장까지 상천과 함께하기로 공표한 이상 중원 무림이 더 큰 위기를 자초하지는 않겠지. 진무립. 이번 일은 네 뜻대로 되겠구나.’
입을 다문 두 사람이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이가장주 이웅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그보다 천주께서 좀처럼 깨어날 기미가 보이질 않는구려. 행여 많이 다친 것은 아닐는지 모르겠소.”
양소방주 묵운정이 허연 수염을 쓸어내리며 탄식했다.
“의원의 말로는 며칠 더 지켜보아야 한다고 하였으니 차분히 기다려보십시다.”
그에게 모든 것을 건 이상 진무립의 쾌차는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었다.
그때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슬며시 문이 열렸다.
유대하와 용추가 직접 다과상을 들고 온 것이다.
이웅이 튕기듯 일어나며 물었다.
“혹시 천주께서 깨어나시었소?”
유대하가 밝게 웃었다.
“예. 외상이 아물 때까지 거동이 조금 어려울 듯하나 큰 부상은 아니랍니다.”
안도한 산동의 수장들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구려. 참으로 다행이야.”
유대하와 함께 들어온 용추가 판천라마를 빤히 쳐다보았다.
“무얼 그리 보는 건가?”
“……아니오.”
슬그머니 고개 돌린 용추가 침을 꿀꺽 삼켰다.
‘사람 머리가 저렇게 맨들맨들할 수도 있는 건가?’
광룡대의 전유보다 더욱 빛나는 머릴 가진 자는 처음이다.
그냥 넘어가기엔 그의 민머리가 너무도 탐스럽게 반짝거렸다.
‘그냥 미친 척 만져볼까?’
용추가 곁눈질로 그의 머리를 힐끔거리고 있을 때, 이가장주 이웅이 도조강에게 물었다.
“전선문주. 상처가 제법 크다고 들었는데 괜찮으시오?”
“아아. 걱정할 것 없소. 나도 크게 다친 줄 알았는데 벗어보니 살갗만 조금 갈라졌을 뿐이오.”
다과상을 정리하는 용추는 고민에 빠졌다.
‘물어보면 만져보게 해주지 않을까?’
이가장주 이웅이 걱정스럽게 말했다.
“전선문주답지 않게 갑자기 비명을 내지르기에 놀랐지 뭐요. 대체 어디를 다치신 거요?”
도조강이 얼굴을 붉히며 말했다.
“고환이오.”
때마침 용추가 혼자만의 생각에서 벗어났다.
“한번 만져봐도 됩니까?”
“싫소.”
* * *
겨울 아침의 서늘함을 머금은 야산에 사박이는 발소리가 울려 퍼진다.
“후우.”
나직한 숨결이 뽀얀 연기처럼 흩어져 갔다.
고개 돌린 백채륜의 눈에 부지런히 따라오는 백하진과 한천유가 보인다.
“지쳤습니까?”
격전이 끝난 직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출발한 탓에 세 사람 다 적잖이 피곤한 상태였다.
한천유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이 정도는 아무렇지 않습니다.”
백하진이 말했다.
“채주님과 다녀올 테니 힘들면 여기서 쉬어라.”
“멀쩡하다니까.”
애써 대수롭지 않게 말한 한천유가 성큼성큼 앞서 나갔다.
백하진이 꿋꿋이 걷고 있는데 자신만 쉬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백채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가 알려준 정보가 사실이라면 분명 이 근처에 있을 겁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천유가 눈을 가늘게 뜨고 어딘가를 가리켰다.
“혹시 저거 아닙니까?”
그가 가리킨 곳에는 지붕 한쪽이 무너진 을씨년스러운 관제묘가 있었다.
“그런 것 같군요.”
“먼저 가서 확인해보겠습니다.”
한달음에 달려간 한천유는 걸리적거리는 문을 치워내고 안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오른쪽 구석 바닥이랬지.’
타다 만 궤짝을 치운 한천유는 조심스럽게 바닥을 들어냈다.
뒤따라 들어온 백하진이 물었다.
“찾았나?”
“그래.”
작게 대답한 한천유는 팔뚝만 한 목곽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거야.”
습기가 차지 않게 이음새에 기름을 듬뿍 먹여둔 것을 보면 관제묘가 불탄 뒤에 숨겨둔 모양이었다.
‘복령천의 기밀정보.’
마른침을 삼킨 한천유가 슬며시 백채륜을 돌아봤다.
“열어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