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34)
◈ 234화. 무인과 괴물은 한 끗 차이
진무립이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일 년 뒤 소화산이라고?”
“그래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죽었어요.”
차분히 그녀에게 모든 이야기를 들은 진무립이 빙그레 웃는다.
“내가 다칠까 봐 고민했다는 건가?”
“당신은 혼자가 아니잖아요. 우리 아버지가 신룡인데 당신에게 말한다는 건, 왠지 당신을 사지로 몰아넣는 것 같았단 말이에요.”
“아버지에게 말하면?”
“그럼 화령의 가족들이 다치게 될 테고…….”
“내가 묻지 않았으면 어떻게 할 생각이었지?”
“기다릴 생각이었죠.”
단려화는 자신이 생각했던 바를 말했다.
“이제 곧 소문이 장강을 건널 거예요. 강남 무림이 상천의 정체를 알게 된 뒤에도 당신을 인정한다면, 화령과 상천이 손을 잡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요?”
물론 상천의 근본이 은곡이라고 해서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이다.
화령은 지금까지 그래왔듯 자신들에게 위해가 되지 않는다면 굳이 나서지 않을 테니까.
그러나 전쟁의 일선에 있었던 강남 무림은 어떻게 생각할는지 알 수 없었다.
진무립이 물었다.
“그들이 나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할 일이죠.”
“하하하.”
진무립은 그만 웃고 말았다.
대책이 있는 듯 없는 듯한 것이 그녀의 매력이기도 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좋지 않은 결정이기도 하지.”
“그런가요?”
쏟아지는 달빛 아래, 진무립의 짙은 눈동자가 그녀를 직시했다.
“복령천주가 무림을 위협한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를 죽일 것이고 마교가 우리가 살아갈 땅을 넘본다면 이 세상에서 지워버릴 거다. 나는 나를 따르는 자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반드시 해낼 거다.”
이따금 진무립이 보이는 책임감은 마치 부친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렬하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단려화가 슬며시 눈을 피했다.
‘물어볼까?’
망설임 가득한 생각은 객잔에서 차마 묻지 못했던 것이었다.
“만일…….”
머뭇거리는 그녀는 좀처럼 말을 끝맺지 못했다.
잠시 기다리던 진무립은 마치 그녀의 생각을 눈치챈 사람처럼 웃었다.
“물론 당신을 위해서도.”
굳이 숨길 이유는 없다.
이제는 두 사람 다 서로를 향한 마음을 익히 알고 있으니까.
밤하늘의 밝게 빛나는 초승달이 그녀의 입가에 내려앉는다.
“이럴 땐 똑똑해서 좋다니까.”
* * *
다음 날 아침.
식사를 마친 진무립이 당천의 처소를 찾았다.
새로운 조직을 창설하고 향후 계획을 세우기 전에 남은 숙제를 정리해야 한다.
문을 열자 때마침 진설란과 대화를 나누던 당천이 슬쩍 고개 돌렸다.
“벌써 회의인가?”
“아니. 그건 아니고.”
진설란이 일어나며 반갑게 웃었다.
“이젠 전처럼 대하기도 어려워졌네요. 상천의 천주님.”
부쩍 높아진 진무립의 위상을 고려하면 그렇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세상에서 나를 어떻게 부르든 나는 두 사람이 아는 진무립일 뿐이야.”
전과 다르지 않은 진무립의 미소가 왠지 반갑다.
그녀가 자리를 내주며 비켜섰다.
“왠지 진공자라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어요. 차를 가져올게요.”
진설란이 나가자 진무립은 당천과 마주 앉았다.
“사천에 전할 소식이 있나?”
“있긴 하지만 급한 건 아니다.”
당천이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럼 뭐지?”
회의도 아니고 당장 전할 소식이 있는 게 아니라면 아침부터 자신을 찾아올 이유가 없었다.
당천의 눈을 직시하던 진무립이 차분히 입을 열었다.
“네 동생. 당명의 이야기를 하러 왔다.”
순간 실내에 싸늘한 공기가 번진다.
당천은 차갑게 고개 돌렸다.
“네게 설명할 만한 것이 아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텐데.”
“무슨 소리지?”
“복령천에는 일백의 고수로 구성된 백화무단이라는 조직이 있다. 죽은 설지량이 남긴 정보에 의하면 백화무단의 부단주가 네 동생 당명이다.”
당천의 고개가 느릿하게 돌아온다.
잠시 후, 그는 믿기지 않는 듯 눈을 부릅떴다.
“그놈이 살아있다는 말이냐? 그럴 리 없다. 그 녀석은 분명 내 손으로…….”
순간 정신이 번쩍 든 당천이 입을 다물었다.
진무립의 뇌리에 불현듯 번개 같은 생각이 스쳐 갔다.
“알고 있었군.”
“…….”
진무립의 날카로운 눈빛에 당천은 지그시 눈을 감았다.
기묘한 정적 속에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립이 나직이 그를 불렀다.
“당천.”
“……어디까지 알고 있지?”
“그가 광마라는 사실까지.”
당천의 입가에 쓴웃음이 맺힌다.
감춰온 가문의 치부가 진무립의 입에서 흘러나왔으니 씁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천은 그답지 않게 한숨을 내쉬었다.
“십일 년 전. 내가 열여섯, 그 녀석이 열다섯이 되던 해였지.”
묻어둔 기억을 되살린 당천이 옛이야기를 시작했다.
의외로 먼저 두각을 나타낸 쪽은 동생 당명이었다.
당시 사천에 나타난 흉적, 음혼귀소(陰魂鬼笑) 추용보를 제거한 당명은 사천의 떠오르는 신성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반면 조용히 폐관과 출관을 반복하며 수련에 매진하던 당천은 그 실력이 드러나지 않았던 시기.
한 살 터울의 동생이 먼저 두각을 보이자 세가의 중역 사이에선 당명을 소가주로 삼는 게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오기 시작했다.
“녀석이 달라진 것도, 우리 사이가 멀어지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놈은 무엇을 하든 항상 나를 의식하기 시작했지.”
일이 터진 것은 그로부터 반년 뒤였다.
쏟아지는 선망의 눈길과 주변인들의 추앙에 자신감이 생긴 당명은 소가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길 원했다.
그러나 독왕 당조는 그의 청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미 소가주를 내정했다는 이유였으나 콧대가 잔뜩 높아진 당명에겐 그런 이유가 성에 찰 리 없었다.
당명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을 이용해 당천이 경쟁을 피한다는 소문을 은밀하게 퍼트렸다.
억측으로 변질된 소문은 당가의 위상을 실추시켰고 분노한 당조는 당명을 뇌옥에 가둬버렸다.
당명의 달라진 위상과 재능을 아까워하던 일부 원로들이 당조를 설득했고 결국 두 사람의 대결이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조용히 경청하던 진무립이 물었다.
“결과는?”
돌아온 대답은 다소 의외였다.
“내가 졌다.”
당천이 폐관을 거듭하며 홀로 수련해온 것과 달리 당명은 무수한 실전을 경험하며 부쩍 성장한 상태였다.
당명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당천을 압박했으나, 당시 독공을 중점적으로 수련하던 당천은 살초를 봉인한 채 전투에 임한 결과였다.
둘의 비무를 지켜본 당조는 소가주 자리에 변동이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비무에 승리하고도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 당명은 거칠게 항의했다.
그러나 당조의 결정에 번복은 없었고 결국 당명은 며칠 뒤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았다.
긴 이야기가 끝난 뒤, 물로 목을 축인 당천이 고요 속에 입을 열었다.
“놈과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오 년 뒤였다. 북광촌의 혈사를 조사하러 가던 길이었지.”
관의 요청으로 북광촌으로 향하던 당천이 하루 거리의 마을에 묵을 때였다.
밖에서 들려온 비명에 뛰쳐나간 당가의 무인들은 충격을 금할 수 없었다.
피에 젖은 몰골로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살해하던 괴인.
광마의 정체가 바로 당명이었기 때문이다.
십여 명의 당가 무인들은 그를 저지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웠다.
그러나 오 년 만에 나타난 당명은 사라질 때보다 더한 괴물이 되어 있었다.
반 시진도 채 되지 않아 당천을 제외한 동료들은 모두 그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당천은 그들의 희생을 발판으로 놈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었다.
그리곤 도주하는 그를 쫓아간 끝에, 절벽에서 뛰어내리는 놈의 가슴에 비도를 관통시켰다.
마침내 긴 이야기가 끝나자 진무립이 혼잣말을 했다.
“광마가 한동안 나타나지 않았던 게 바로 그런 이유였나.”
무슨 일이 벌어질 때마다 소문은 무성했으나 광마가 직접 나타난 적은 없었다.
당가의 입장에선 차마 광마가 당명이라는 사실을 공표하기 어려웠을 거다.
그의 마지막을 본 것도 당천이었으니 다신 광마가 나타나지 않을 거란 확신도 있었다.
당천이 믿기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절벽 아래로 강이 흐르긴 했으나 높이가 무려 삼십 장이었다. 일광낙비(一光落飛)에 당하고도 살아남았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진무립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건 나중에 확인하면 알게 되겠지. 어쨌든 죽여도 상관없다는 걸 확인했으니 됐다.”
“…….”
진무립은 골몰히 생각에 잠긴 당천을 뒤로하고 방을 나섰다.
복도 끝에 서 있던 진설란이 흠칫 놀라며 물러난다.
“저는…….”
“몰랐지?”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모르는 척해줘.”
진설란의 어깨를 슬쩍 두드린 진무립이 밖으로 나왔다.
내리쬐는 햇살과 함께 아침의 서늘한 공기가 진무립을 반긴다.
‘존경받는 무인과 피에 젖은 괴물은 한 끗 차이다. 당한 입장에서 본다면 그놈들의 생각도 이해는 되는군.’
물론 그놈들은 무림을 없애버리겠다는 야망을 가졌던 두 사람이었다.
진무립은 검은 장포를 휘날리며 발을 내디뎠다.
‘복령천이 우리가 사는 세상에 위협이 된다면, 나는 놈들을 세상에서 뿌리 뽑을 때까지 괴물이 될 것이다.’
* * *
떠들썩한 거리의 분위기가 개봉에 들어선 수문화 일행을 맞이했다.
인파 사이를 나아가던 수문화가 주변을 둘러보며 웃었다.
“어딜 가나 주군의 이야기로구나.”
손님 가득한 노점에서도, 아이들이 모여든 좌판 앞에서도 온통 진무립의 이야기뿐이었다.
곁을 따르던 정이상이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당금 무림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 아닙니까?”
눈 밑까지 복면을 끌어 올린 은수련이 재촉하듯 말했다.
“중원맹은 북문 밖에 있습니다. 그만 돌아보고 가시지요.”
그녀는 한시라도 빠르게 복귀해 동료들과 만나고 싶었다.
반면 그녀와 달리 절대 서두르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었으니, 바로 죽립을 눌러쓴 동초개였다.
‘지금 가면 분명 방주께서 계실 거야.’
전투가 끝난 뒤로 중원의 수장들이 맹에 모여 연일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오는 길에 들렀던 분타에서 방주가 자신을 찾는다는 말을 듣고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그는 슬쩍 수문화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총사. 급할 것도 없으니 식사라도 하고 가시지요.”
수문화가 뒤를 돌아보며 물었다.
“잘 아는 곳이라도 있습니까?”
반평생을 사천에서 살아온 거지가 개봉의 무엇이 유명한지 알 턱이 없다.
“가다 보면 나오지 않을까요?”
은수련이 한숨을 내쉬며 돌아섰다.
“먼저 가보겠습니다.”
“소저!”
동초개가 다급하게 그녀의 소매를 낚아챘다.
“뭐죠?”
그는 울상을 지으며 간곡히 부탁했다.
“누구에게도 내가 왔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지요.”
한숨을 삼킨 그녀가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은수련이 떠나자 수문화가 둘을 돌아보며 씩 웃었다.
“잘됐군. 가지.”
“어디로 갑니까?”
“개봉에서 가장 유명한 홍월루가 과연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군.”
정이상이 눈살을 찌푸렸다.
“기루?”
수문화는 그의 어깨를 툭 치며 돌아섰다.
“그러지 마라. 이게 내 역할이니까.”
“기루에서 술 마시고 노는 게 총사의 역할입니까?”
“홍월루주가 누군지 몰라?”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던 동초개가 뭔가 생각난 듯 손뼉 쳤다.
“아!”
정이상이 영문 모를 얼굴로 동초개를 쳐다봤다.
“루주가 누굽니까?”
“홍월루주 화명은 천하상단주의 차남이에요.”
수문화가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내디뎠다.
“주군이 판을 깔아줬으면 그 위에 집을 세우는 게 총사의 역할이지.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