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38)
◈ 238화. 전 동초갠데요
가볍게 나뭇가지를 박찬 구소군이 섬전과 같이 전방으로 튕겨 나간다.
‘검랑 서천휘.’
소매를 힐끔 쳐다본 구소군이 씩 웃었다.
‘이런 곳에 괴물이 있었잖아?’
벼락같은 기습에 반응한 자신이 상대의 소매를 자르는 순간, 그의 검은 자신의 소매에 두 개의 바람구멍을 낸 것이다.
“후후후.”
나직한 웃음소리에 진심이 담긴다.
그만큼 강자의 존재가 반가운 것이다.
뒤를 바짝 쫓던 수하가 물었다.
“정말 이대로 가도 되겠습니까?”
후환을 남기고 가도 되겠냐는 질문이었다.
구소군은 전방을 응시한 채 중얼거렸다.
“살아서 내 수발은 들어줘야 할 거 아니야.”
전투가 길어진다면 자신은 몰라도 부하들은 확실히 죽는다.
그만큼 흑사칠랑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엄청난 것이었다.
제대로 듣지 못한 부하가 되물었다.
“예?”
구소군은 싱긋 웃으며 답했다.
“배고프니까 돌아가서 밥부터 먹자고 했어.”
* * *
수문화의 도착으로 새로운 연맹 창설 계획에 가속도가 붙었다.
그는 뒤늦게 합류했음에도 마치 처음부터 함께한 사람처럼 능숙하게 회의를 주도했다.
회의를 수문화에게 일임한 진무립은 상천팔기를 소집했다.
“너희는 돌아가 산채의 식솔들을 대별산으로 은밀히 옮겨라. 늦어도 좋다. 은밀함이 중요하다.”
거련채주 연길상이 물었다.
“산채를 비웁니까?”
“아니. 산채가 완전히 비었다는 걸 알게 되면 곤란하지. 무인은 남겨두고 평소처럼 영업을 이어가라. 단, 누군가 산채에 침입하거나 그런 흔적을 발견했다면 즉시 가까운 산채와 합류해라.”
드러나지 않은 소수정예는 상대하기 까다롭다.
만일 자신이 상대의 입장이라면, 불시에 한 곳씩 기습해 천천히 적의 숫자를 줄여갈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반드시 그렇게 하겠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대비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
앞으로 벌어질 전쟁은 지금까지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다.
소수정예인 적은 그 위치조차 특정하기 어려운 반면 드러난 상천은 천하 각지에 흩어져 있다.
진무립은 전쟁에 앞서 그 부분을 보완할 생각이었다.
“즉시 움직여라. 그리고 내가 소집하면 언제든 집결할 수 있도록 준비해야 한다.”
그때는 분명 마지막 전투가 될 것이다.
일제히 일어난 팔기가 포권을 취했다.
“명을 받듭니다.”
팔기가 떠나자 진무립은 차분히 여장을 꾸리기 시작했다.
옷을 챙긴 뒤 육병흑궤를 드러나지 않게 천으로 감싸고 있을 때, 문밖에서 속삭이는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소공자. 소공자.”
목소리만 들어도 웃음이 나온다.
“들어와라.”
벌컥 열린 문으로 복면을 쓴 은무대원이 쭈뼛쭈뼛 들어온다.
진무립이 허리를 펴고 웃었다.
“걱정 마라. 아무도 없으니까.”
“휴.”
복면을 내린 동초개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진무립이 물었다.
“언제까지 숨어있을 생각이냐?”
동초개가 속삭이듯 말했다.
“방주님한테 치매가 올 때까지요. 얼마 안 남은 거 같으니까 그때까지만 숨어있겠습니다.”
“…….”
그때 열린 문으로 서진환이 들어왔다.
“주군.”
소스라치게 놀란 동초개가 울상을 지었다.
“기척 좀 하고 다니면 안 됩니까?”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서진환이 실소를 참았다.
“지금은 내가 대주다. 동대원.”
“……예.”
동초개는 한숨을 내쉬며 탁자 위의 물을 들이켰다.
진무립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개방의 방주가 찾아왔습니다.”
“커억!”
목구멍으로 넘어가던 물이 도로 튀어나온다.
복면을 잔뜩 끌어 올린 동초개가 문밖으로 튀어 나가더니 이내 다시 뛰쳐 들어온다.
“뭐야?”
“와, 왔는데요.”
문 앞에서 철표개의 목소리가 나직이 들려온다.
“천주께서는 안에 계시오?”
“들어오십시오.”
눈알을 굴리던 동초개가 재빨리 진무립의 뒤에 시립했다.
안으로 들어온 철표개가 가볍게 포권을 취했다.
“사석에선 처음 뵙는구려.”
진무립도 예로 화답하며 말했다.
“그렇군요. 앉으시지요.”
“음.”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던 철표개가 슬쩍 진무립의 뒤를 살폈다.
‘기도가 형편없는 자로구나. 저런 자가 호위라니, 천주의 친인척인가?’
기도를 숨긴다고 숨긴 모양인데 안 하니만 못해 보인다.
속으로 혀를 찬 철표개가 입을 열었다.
“사천에서부터 본 방의 제자를 살뜰히 챙겨주었다고 들었다오. 방을 대표해 진심으로 감사하외다.”
“모두 능력 있는 인재들이었습니다. 귀히 쓰시면 분명 제 역할을 할 것입니다.”
철표개는 누런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차후 인사에 참고하겠소이다.”
그는 이어서 본론으로 들어갔다.
“얼마 전에 본 방의 제자와 대화를 나눴다고 들었다오.”
“적모개 말입니까?”
“음.”
고개를 끄덕인 철표개가 말했다.
“그에 대해 몇 가지 묻고자 왔소.”
“말씀하십시오.”
“알고 있겠지만 본 방은 전란이 일어날 때마다 내홍에 휩싸여 고생한 경험이 있소. 어찌하면 같은 역사를 반복하지 않을까 고민하던 차에, 천주께서 제안한 방법이 본인의 흥미를 끌더구려.”
“월봉을 지급하는 방법 말이로군요.”
“그렇지. 처음엔 거지에게 월봉이라니 가당치 않은 말이라며 웃었지. 그런데 며칠 생각해보니 말이오.”
철표개가 물로 목을 축이며 말했다.
“우리가 지금 거지라고 해서 평생 빌어먹기만 하고 살 운명을 타고난 것도 아니더란 말이지.”
과거 단소룡도 사지육신 멀쩡한 자들이 빌어먹고 다닌다며 탐탁지 않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평생을 빌어먹고 살아온 녀석들이 이제 와서 돈을 벌자니 마땅히 할 만한 것이 없단 말이오. 듣자 하니 천주께서 그 방도를 제시해주신 것 같은데…….”
차마 대놓고 물어볼 순 없었는지 철표개가 말끝을 흐렸다.
진무립은 그날 적모개에게 자신이 돈을 주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웃음을 참았다.
“기다려주십시오.”
자리에서 일어난 진무립이 서랍 앞으로 걸어갔다.
철표개가 자신을 찾아오리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일이다.
그는 서랍에서 준비한 전표를 꺼냈다.
“지금 제가 가진 것은 이게 전부입니다. 그래도 체계를 다지고 월봉을 지급한다면 석 달 정도는 버틸 수 있을 겁니다.”
봉투를 열어 전표를 확인한 철표개가 벌어지는 턱을 손으로 바쳤다.
‘이걸 그냥 주는 건 아니겠지. 필요한 건 분명 본 방의 정보일 것이다.’
그는 지금 상천에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상천이 무림에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은 일, 정보력이 부족하다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 가능한 일이다.
개방이 정보를 파는 것은 생소한 것이 아니다.
다만, 전시일 때는 개방에서 정보를 사는 이들이 적잖이 있으나 평화가 길어질 때는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었다.
철표개가 모른 척 물었다.
“상천에서도 자금이 적잖이 필요할 터인데……. 혹 바라는 것이 있으시오?”
“앞으로 개방에서 입수하는 정보를 주기적으로 받아보고자 합니다.”
“주기적이라?”
“어디에 흉작이 들었는지, 홍수로 피해가 큰지, 어느 지역의 쌀값이 얼마인지. 마적이 나타나지는 않았는지. 이쪽에서 원하는 정보를 구해주십시오.”
철표개는 의외라는 듯 물었다.
“그게 무림의 일과 무슨 관련이 있소?”
“본 방은 머지않아 본격적으로 표국을 운영하게 됩니다. 표행비는 상단에서 얻는 순익의 이 할로 대신할 생각이지요. 개방에서 구해주는 정보를 상단과 공유하고 상행에 나선다면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순간 적모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간 오대표국이 받아온 표행비를 고려하면, 상단에서 얻는 순익의 이 할은 되려 싸다고 볼 수 있다.
분명 상인들은 반길 것이다.
여기에 개방의 정보를 상행에 이용한다면, 더 큰 수익을 얻어 낼 가능성이 크다.
좋은 결과를 낸다면 대량표국에 표행을 의뢰하는 상단도 늘어날 터.
상단도, 상천도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상천이 상단의 수익을 나눠 갖고 통행세까지 받아간다면…….’
어쩌면 금력으로 천하상단을 앞지르는 결과가 나올지도 모른다.
철표개는 벌어지는 입을 가까스로 다물었다.
진무립의 노림수는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개방과의 관계가 돈독해진다면 우리에게 불리해질 만한 일이 생길 경우 곧장 알려올 것이다.’
짧은 침묵 속에 철표개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분명 손해 볼 것은 없는 제안이다. 그런데…….’
잠시 후, 생각을 정리한 철표개가 말했다.
“어려운 일은 아니로군. 그러나 그 전에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구려.”
“말씀하십시오.”
“본 방이 상천에 종속된 것으로 보이는 건 바라지 않소이다.”
진무립은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원하는 자들에겐 얼마든지 돈을 받고 정보를 팔아도 됩니다. 새롭게 세워질 맹에도 개방의 정보를 파십시오. 전시가 아닐 경우에 한해서 말입니다.”
상천에만 정보를 공급하는 게 아니라면 우려할 만한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다른 곳에서 상천이 원한 것과 같은 정보를 원한다면 어쩌시겠소?”
“물론 본 천에 정기적으로 넘기는 정보는 다른 곳과 공유해선 안 되겠지요. 그것을 위해 지불하는 돈이 아니겠습니까?”
“음.”
기로에 선 철표개는 턱을 매만지며 생각에 잠겼다.
‘이 정도라면…… 해볼 만하겠구나.’
그가 고민에 잠겨있을 때, 진무립의 귀로 동초개의 전음이 파고들었다.
[소공자. 사결제자 월봉은 좀 두둑이 주라고 해줘요.]철표개를 바라보는 진무립은 동초개를 돌아볼 수 없는 상태.
진무립이 웃음을 참고 있을 때 재차 전음이 들려왔다.
생각을 마친 철표개가 결심한 듯 끄덕였다.
“좋소이다. 그럼 세부적인 내용을 차차 조율해보십시다.”
자금을 확보해 월봉을 줄 수 있다면 개방은 지금과는 다른 단체로 탈바꿈할 수 있을 것이다.
진무립이 그의 뜻을 반기며 답했다.
“분명 개방에도 득이 되는 일일 것입니다.”
“아직 맹의 일이 끝나지 않았으니 남은 일은 실무자를 보내 논의토록 합시다. 그간 상천과 교류가 잦았던 적팔개를 보내겠소이다.”
진무립의 뒤에서 답이 들려온다.
“적팔개가 아니고 적모개.”
“아아, 그렇지. 적모…….”
왠지 익숙한 목소리다.
순간 철표개의 눈이 동초개에게 닿았다.
“네놈…… 혹시 내 밥그릇 깨 먹고 도망친 동팔개더냐?”
동초개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부정했다.
“아닌데요? 전 동초갠데요.”
“…….”
“음.”
묘한 정적 속에.
뭔가 잘못됨을 깨달은 동초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 인생 참.”
진무립이 한심하게 그를 쳐다봤다.
‘등신인가.’
* * *
다음 날 아침.
새벽부터 이어진 무운전의 회의가 막바지로 치닫고 있었다.
수문화가 당천을 바라보며 물었다.
“사천에 연락은 취했습니까?”
당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전투 결과와 함께 맹의 창설에 대한 내용을 정리해서 보냈습니다. 곧 소식이 도착할 겁니다.”
철표개가 가볍게 탁자를 두드리며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렇다면 세부적인 사안은 대부분 정리되었구려. 이쯤에서 맹주를 정해야 다음 사안으로 이어갈 수 있지 않겠소?”
그와 동석한 적모개가 슬쩍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맹주를 맡을 만한 인물은 역시 진공자밖에 없습니다.”
모두의 시선이 약속한 듯 적모개에게 모여들었다.
‘복령천을 상대하려면 가장 유능한 인물에게 역할을 맡겨야 한다.’
적모개는 차분히 논쟁거리를 차단했다.
“이 자리에 계신 선배님들에 비하면 어리다곤 하나 경험이 없다곤 할 수 없을 겁니다. 혈천대전의 승리부터 산동과 중원까지, 그는 훌륭하게 스스로를 증명해왔습니다.”
그에 이어 산동 무림의 대표격으로 참여한 전검문주 묵운정이 말했다.
“우리 산동 무림은 이미 상천과 그 뜻을 함께하기로 했다오. 구심점이 되어야 한다면 역시 상천의 천주밖에 없다고 생각하외다.”
그에 반대하는 이는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중원삼가는 큰 타격을 입었다.
더불어 소림과 무당은 과거 천하대전에서 입은 궤멸적인 피해를 아직도 온전히 복구하지 못했다.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한 상천의 천주를 맹주로 삼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선우세가주 선우진이 말했다.
“상천의 천주께서는 사천 무림과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으니 모두를 하나로 응집시키기에 부족함이 없겠지요.”
그의 의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때, 수문화가 입을 열었다.
“저는 생각이 조금 다릅니다.”
상천의 무인인 그가 반대를 표명하자 모두가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묵운정이 의구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총사. 그게 무슨 말씀이시오? 다른 누가 그보다 나을 수 있단 말이오?”
“처음부터 제 머릿속엔 오로지 한 명만이 있었습니다.”
제갈세가주 제갈경이 묘한 눈빛을 보이는 가운데 황보한이 물었다.
“그게 누구요?”
수문화는 즉시 대답했다.
“화령의 영주인 신룡 대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