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39)
◈ 239화. 떠날 채비
수문화의 파격적인 말에 놀라지 않은 이가 없었다.
“신룡이라고?”
“갑자기 그 이름이…….”
가만히 경청하던 제갈가주 제갈경이 섭선을 살랑이며 말했다.
“그렇군요. 본인 또한 총사의 의견에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황보가주 황보한이 미간을 좁혔다.
“가주. 그게 무슨 말인…….”
사석에선 형제와 같은 사이였으나 이곳은 공적인 자리.
아차 싶었는지 황보한은 슬쩍 말을 높이며 물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화령은 무림의 일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걸 알지 않소?”
선우진이 그의 말을 받았다.
“물론 복령천이 팔황문의 후신이라는 게 알려지면 신룡도 두고 보지만은 않겠지. 우리 역시 그가 와준다면 든든한 것은 사실이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소. 이곳 중원무림맹을 구한 것은 분명 상천의 천주요. 게다가 그는 사천과 산동, 멀게는 서장의 지지까지 한 몸에 받고 있지.”
삼가의 가주 모두 천하대전에서 신룡에게 도움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러나 그와의 친분을 떠나서, 현실적으로 오대표국과의 전쟁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은 그를 맹주로 앉히는 것은 생각해볼 문제였다.
적모개가 조심스럽게 의견을 피력했다.
“신룡은 분명 위대한 무인입니다. 그러나 화령은 오랜 세월 외부 활동을 자제하며 내실에만 힘을 쏟아왔습니다. 본인이 수락할지도 의문일뿐더러 진공자를 제치고 신룡을 맹주로 추대한다면…… 납득하기 어려워하는 이들이 나올 겁니다.”
두 사람의 말처럼 이번 전쟁에서 경천동지할 활약을 보인 진무립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특히나 전투에 참여했던 젊은 무인 중에는 진무립을 신처럼 추앙하는 자들까지 있을 정도다.
가주 세대의 무인들에게 단소룡이 이상적인 무인의 표본이었다면, 현시대의 무인들에게 이상적인 무인은 바로 진무립이었다.
제갈경은 빙그레 웃으며 수문화에게 대답을 미뤘다.
“모두의 의견이 이렇습니다. 이제 총사께서 신룡을 맹주로 추천하는 이유를 설명해주셔야겠습니다.”
수문화가 모두를 둘러보며 말했다.
“오대표국과의 전투에서, 여러분은 복령천의 힘을 간접적으로 경험했을 겁니다. 드러난 전력은 조족지혈에 불과합니다. 감춰진 그들의 힘을 고려할 때, 이번 전쟁에 반드시 화령을 끌어들여야 조금이라도 피해를 줄일 수 있습니다.”
제갈경이 그에 이어 설명을 덧붙였다.
“신룡을 보유한 강남 무림은 천하 무림을 구했다는 자부심으로 가득합니다. 그들의 전력을 끌어내려면 신룡을 맹주로 앉히는 것보다 좋은 일은 없습니다.”
경청하던 철표개가 물었다.
“혹시 이것도 천주의 뜻이오?”
수문화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복령천은 팔황문의 후신. 그들의 무공을 잘 아는 본 천은 일선에서 움직여야 한다는 게 천주님의 판단입니다.”
물론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화령의 기라성 같은 고수들이 새파랗게 젊은 진무립의 명령에 따를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부하들의 피해를 줄이자면 그들의 전력은 반드시 필요하다.
몸을 낮춰 신룡을 맹주로 추대하고 자유롭게 움직이고자 하는 것이 진무립의 생각이었다.
철표개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화령은 아직 천산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을 것이다. 복령천이 천산과 손을 잡는다면 우리와 화령이 힘을 합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제갈경이 물었다.
“신룡 대협이라면 분명 천하 무림의 위기를 좌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상대가 팔황문의 후신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요. 그러나, 그가 남이 차린 밥상에 수저를 올리려 할지는 두고 볼 문제입니다. 그를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까?”
이 중 수문화의 생각을 가장 잘 이해하는 것은 바로 제갈경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든 것을 자신들의 주도로 이룩해온 화령이 선뜻 맹에 합류할지는 그조차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수문화의 대답에 망설임은 없었다.
“예. 그를 위해 천주께서 직접 강남에 다녀오실 겁니다.”
순간 철표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렇다면…… 천주가 여장을 꾸리고 있었던 것이 강남에 가기 위함이었단 말이오?”
어제 진무립을 만나러 갔을 때, 육병흑궤를 천으로 덮고 짐을 꾸리는 걸 기억하는 까닭이다.
수문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중원의 젊은 무인들은 염려하실 것 없습니다. 신룡을 맹주로 추대하는 게 주군 본인의 의지라는 걸 알면 크게 반발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음.”
나직한 침음성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가운데 침묵을 유지하던 소림의 방장 정현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
“아미타불. 그들이 거절할 수도 있으니 연계하는 방법도 고려해봄이 좋겠소이다.”
수문화가 그에 대답하기 전에 당천의 입이 먼저 열렸다.
“그럴 필요 없습니다.”
“음?”
진무립의 자신감 넘치는 얼굴이 떠오르자 당천은 저도 모르는 사이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라면 반드시 해낼 테니까.”
절대 불가능할 것만 같던 계획도 현실로 만들어온 진무립이다.
지켜본 시간은 그리 길지 않으나 그가 나선다면 무엇이든 가능할 거란 확신이 든다.
이어서 산동의 대표 묵운정이 허허롭게 웃었다.
“그렇군. 그분이 하기로 결심했다면 우리는 의심할 필요가 없소.”
두 사람의 확고한 믿음에 적모개는 헛웃음을 흘렸다.
자신 역시 그들과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 * *
아직은 겨울의 투명함으로 가득한 팔령산.
휘몰아치는 찬 바람이 앙상한 나무를 흔들고 지나간다.
오솔길을 따라 비틀거리며 올라가던 운화결이 나무를 붙잡고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이제 겨우 중턱에 다다랐을 뿐인데 전신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직 부상의 여파가 육신에 머무는 까닭이다.
‘교영.’
그녀를 떠올리던 운화결이 발을 내디디며 쓰게 웃었다.
‘미안하다. 지량.’
그에겐 미안하지만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는 임교영과 배 속의 아이뿐이다.
사박.
떨리는 발이 흰 눈에 지나온 흔적을 늘려간다.
한참을 걸어간 운화결은 마침내 목표로 했던 봉우리 정상에 도착했다.
아담한 분지의 좌우로 보이는 일 장 남짓한 절벽.
절벽 앞을 가린 바위 너머엔 팔존이 머물던 동굴이 있을 것이다.
힘겹게 걸어간 운화결이 마침내 동굴에 들어섰다.
가늘어진 눈동자에 텅 빈 공동이 뼈아프게 들어온다.
‘늦었나?’
분명 얼마 전까지 사람이 머물렀을 텐데 그 어떤 흔적도 보이질 않았다.
비틀거리며 벽을 짚은 운화결의 눈에 정광이 스쳐 지나갔다.
‘아니다. 있다!’
온전한 몸 상태가 아닌 탓에 무인의 기도를 느끼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벽에 닿은 손끝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다르다.
미약한 탄 냄새까지 느껴지는 걸 보면 얼마 전까지 횃불을 걸었던 게 분명했다.
‘안에 있거나, 아니면 어디선가 분명 나를 보았을 것이다.’
은밀히 주변을 살피던 운화결이 힘을 잃고 쓰러져간다.
“큭.”
나직한 신음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진 순간.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시꺼먼 복면인이 나타났다.
“혹시 운국주시오?”
힘겹게 고개 돌린 운화결이 모깃소리만큼이나 작게 대꾸했다.
“그렇다.”
복면인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보니 제법 놀란 모양이다.
“설마 살아있었단 말인가?”
마지막 전투의 생존자가 없다는 것은 몇 번이나 확인했다.
그런데 운화결이 넝마가 된 몸으로 돌아왔으니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복면인은 한달음에 달려와 운화결의 맥을 짚었다.
‘맥이 너무 약하다. 그래도 서두르면 살릴 수 있겠어.’
운화결은 복령천에서도 한 손에 꼽힐 만큼의 강자.
그뿐 아니라 직접 진무립을 상대한 그의 경험은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떻게 돌아왔는지는 나중에 묻더라도 지금은 그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품에서 검은 단약을 꺼낸 그는 그것을 운화결의 입에 밀어 넣었다.
“조금만 참으십시오.”
약을 먹인 복면인이 조심스럽게 운화결을 등에 업었다.
이내 동굴 밖으로 나선 그는 신법을 전개해 빠르게 팔령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눈앞의 풍경이 순식간에 밀려나는 가운데 운화결은 만족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됐다.’
첫 번째 관문은 통과했다.
다음 관문은 복령천의 중심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이었다.
‘기다려라. 교영. 반드시 네 곁으로 돌아가겠다.’
결의를 다진 운화결의 정신이 아득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 * *
굳게 닫힌 공위맹의 대전 앞이 젊은 무인들로 가득하다.
“중원에서 당천의 서신이 도착했다지?”
“분명 그렇게 들었네. 광룡이 오대표국과의 전투에서 승리한 모양이야. 그 때문에 맹의 수뇌가 모두 집결한 게 아닌가?”
“어디 승리뿐인가? 단신으로 일천의 적을 광풍처럼 휩쓸었다고 하더군.”
진무립과 함께했던 기억을 끄집어낸 그들은 반가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그들의 뒤로.
청성의 조영성과 당가의 당소소가 나란히 서서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오대표국의 실체가 복령천이라고 하더군. 그 팔황문이라는 놈들의 후신이란 말이지.”
당소소가 진중한 얼굴로 말했다.
“그래. 하지만 여기서 기뻐해선 안 돼.”
복령천이라는 실체가 드러난 이상 보이지 않는 적의 위협에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조영성이 실소를 흘렸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들어봐라. 북광남신이란다. 우리의 대주가 신룡에 버금가는 위상을 갖게 됐는데 오늘 하루 정도는 기뻐해도 나쁘지 않아.”
가만히 그를 쳐다보던 당소소가 지그시 눈 감으며 웃었다.
“사천의 빛은 천하의 어둠을 걷어낼 빛이 되어가고 있구나.”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풍연이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소공자.’
몰락한 대검문의 무인에서 소공자 직속의 광룡대가 되었다.
그의 곁에서 싸우고자 하는 일념으로 지옥 같은 수련을 이겨내고 오늘까지 살아왔다.
천하에 기묘한 전운이 감돈다.
풍연은 그와 만날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확신했다.
‘곧 찾아뵙겠습니다.’
진무립은 떠났지만 한시도 수련을 게을리한 적이 없었다.
천하의 절대자로 군림한 그에게 달라진 자신들을 보여주고 싶다.
돌아선 그의 눈에 한경과 주초, 전유와 후성이 보인다.
후성이 그를 쳐다보며 물었다.
“소공자가 우릴 잊은 건 아니겠지?”
전유가 민머리를 슥 매만지며 말했다.
“그럴 분이 아니라는 거 알지 않은가.”
한경이 씩 웃으며 도파를 두드렸다.
“적은 분명 강할 거야. 그분과 함께하고 싶다면 지금보다 훨씬 강해져야 해.”
주초가 동의하듯 묵묵히 끄덕인다.
동료들 사이를 지나친 풍연이 연무장으로 발을 옮겼다.
“수련이다.”
사천 무림이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아침의 고요함이 창문 틈으로 스며들었다.
진무립이 검은 장포를 걸쳤을 때였다.
문이 벌컥 열리더니 면사를 쓴 단려화가 들어왔다.
“짐은 다 챙겼어요?”
평소보다 높은 음색에서 작은 흥분이 느껴진다.
화령도로 출발하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무려 삼 년 만에 돌아가는 길이 반갑지 않을 수 없다.
진무립은 빙그레 웃었다.
“그래.”
서진환이 들어오며 예를 갖췄다.
“속하들도 준비가 끝났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냐?”
그때 열린 문으로 한동안 보이지 않던 위사영이 나타났다.
“강남으로 가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먼 길이 되겠군. 떠나기 전에 홍월루에 들렀다 가시오.”
연일 회의가 이어지는 사이 위사영은 맹과 홍월루를 오가고 있었다.
그곳에 화령의 무인, 악왕 탁이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를 불러와 회의에 동석할 생각도 했었으나 그가 한사코 거절한 탓에 성사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진무립이 그와 만난다면 이야기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될지도 모른다.
진무립이 보일 듯 말 듯 한 미소를 지었다.
홍월루에 화령의 무인이 머물고 있다는 걸 수문화에게 들은 까닭이다.
“알겠습니다. 홍월루에 들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