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275)
◈ 275화. 감지하다
따사로운 아침 햇살이 서안의 웅장한 성벽을 감싸 안는다.
끼이익.
거대한 성문이 열리기 무섭게 한 필의 말이 쏜살같이 뛰쳐나갔다.
‘천산이라.’
황색 장포를 두르고 말과 혼연일체가 되어 달려나가는 이는 바로 서진환이었다.
‘대체 그분께선 어디까지 보고 계신 걸까?’
자신이 천산으로 가는 것은 진무립이 생각한 만일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진무립은 상황에 따라 헛걸음이 될 수도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서진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주군의 생각에 쓸데없는 것은 없다.
이번엔 왠지 느낌이 온다.
‘이번 임무는 이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열쇠가 될지도 모른다.’
다름 아닌 진무립의 명이다.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주군.’
결의에 찬 서진환이 행보에 박차를 가했다.
서진환이 서안을 벗어날 무렵, 동문 인근에선 진무립 일행이 소걸개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오늘부터 개방은 모든 힘을 동원해 중원에 들어오는 마인들을 감시하겠소.”
소걸개의 눈빛이 여느 때보다 결연하게 빛난다.
천하를 뒤덮은 전운이 피부로 여실히 느껴지는 까닭이다.
진무립이 말했다.
“머지않아 맹과 본 천의 계획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개방에 적지 않은 보수가 지급될 겁니다.”
“천하에 위기가 닥쳤는데 그깟 보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육봉개의 손이 그의 입을 덥석 틀어막았다.
“왜 이래요.”
육봉개가 곱게 눈을 흘기며 타박했다.
“진짜 눈치 좀 챙기십쇼.”
“…….”
진무립은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육봉개의 손을 치운 소걸개가 정중히 예로 화답했다.
“천주.”
“예.”
소걸개는 따스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전쟁이 코앞이오. 앞으로 천주께선 이제껏 겪어보지 못한 수라장과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천주께서 그 어떤 역경과 마주하더라도 능히 해쳐나갈 거라 믿는다오. 무운을 빌겠소.”
소걸개가 본 진무립은 분명 단소룡과 달랐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고강한 무공과 목표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추진력은 젊은 시절 단소룡을 연상케 할 만큼 훌륭하다.
단소룡이 천하를 위기에서 구한 것처럼 진무립도 능히 그와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거란 확신이 든다.
뜻밖의 말에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진무립이 이내 빙그레 웃었다.
“설령 천자가 올지라도 제 의지를 꺾을 순 없습니다. 다음에 뵙지요.”
진무립 일행이 동문을 나서자 소걸개가 육봉개의 머리를 후려쳤다.
따악!
움찔한 육봉개가 머리를 부여잡았다.
“악! 왜 때리십니까!”
“자꾸 남들 앞에서 스승 얼굴에 먹칠을 하고 싶으냐!”
육봉개도 지지 않고 소리쳤다.
“구걸하려고 일부러 얼굴에 먹칠하는 거지도 있는데 뭐가 문젭니까! 주는 돈을 마다하는 거지가 더 이상한 겁니다!”
“…….”
순간 말문이 턱 막힌 소걸개는 재차 육봉개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딱!
머리를 움켜쥔 육봉개가 씩씩거리며 쳐다봤다.
“아악! 내가 틀린 말 했어요?”
소걸개는 대꾸도 없이 몸을 돌렸다.
“제아무리 거지라도 양심은 있어야지. 우릴 먹여주고 재워주던 천하에 혈풍이 불게 생겼는데 그깟 푼돈이 중요하겠느냐?”
“오.”
뒤따르는 육봉개는 내심 감탄하며 물었다.
“그럼 스승님 몫까지 제가 가져가도 될까요?”
“아니.”
* * *
서안을 떠난 진무립 일행이 북동쪽으로 길을 잡았다.
지금은 빠르게 움직여 만리추종향의 흔적을 찾아야 한다.
적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는 지금 소화산 주변부터 돌아볼 생각이었다.
작은 마을에서 하루를 묵은 이들은 그대로 북상해 누런 황하의 물결과 마주했다.
단려화가 마차에서 내리며 말했다.
“이제 여길 어떻게 건너죠?”
유속이 그렇게 빠른 것은 아니었으나 강폭이 족히 오십 장은 되어 보인다.
“마차를 버리고 간다.”
주변을 돌아본 진무립은 금성우에게서 육병흑궤를 건네받고 큼직한 돌 다섯 개를 주웠다.
당우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그거로 무엇을…….”
“내가 건너편에 도착해서 신호하면 눈을 감고 무조건 앞으로 달려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지면을 박찬 진무립이 강물 위로 날아올랐다.
촤아악!
전방으로 손이 뻗어 나가며 다섯 개의 돌이 차례로 허공에 떠오른다.
탓!
첫 번째 돌을 박차는 순간 진무립의 신형이 화살처럼 전방으로 쏘아졌다.
“아아!”
그 고절한 신법에 당우의 입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순식간에 다섯 개의 돌을 박찬 진무립은 차분히 건너편 강변에 내려섰다.
만일 무거운 육병흑궤가 없었더라면 네 개의 돌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진무립은 주변에서 큼직한 돌을 주워 발밑에 모았다.
“뛰어!”
손을 흔드는 진무립의 목소리가 물결 소리를 뚫고 넘어온다.
단려화가 봇짐과 검을 단단히 고정시켰다.
“내가 먼저 갈게요.”
솔직히 진무립처럼 할 자신은 없었다.
그래도 진무립이 뛰라고 했으니 뛴다.
끌어올린 내력을 용천혈에 집중한 그녀가 지면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탓!
엄청난 속도로 튕겨 나간 그녀의 신형이 이내 속도를 잃고 서서히 강물로 추락한다.
그녀의 발이 물 위로 한 치 앞까지 떨어진 순간.
쐐애액!
절묘하게 날아든 돌이 휘젓는 그녀의 발에 정확히 닿았다.
탓!
두 번째 돌을 박찬 그녀는 진무립의 말처럼 그냥 눈을 감아버렸다.
날아오르고 떨어지길 반복할 때마다 날아든 돌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녀의 발을 밀어주었다.
순식간에 건너편에 도착한 그녀가 환한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할 수 있어요!”
단려화가 돌을 주워 오는 사이 은무대가 차례로 강을 건너온다.
그들은 진무립의 수신호위답게 고절한 신법으로 도강에 성공했다.
마지막 남은 당우가 허탈한 마음을 감추며 건너편을 쳐다봤다.
‘이거 못하면 큰 망신인데.’
모두의 시선이 초조하게 당우의 가슴을 콕콕 찔러온다.
다른 방법이 없다.
마음을 굳게 먹은 당우가 멀리서부터 달려와 강물 위로 도약했다.
‘모르겠다!’
파공성을 흘리며 날아든 돌이 두 눈 질끈 감은 당우의 발에 정확하게 걸린다.
탓!
‘어?’
추락하던 자신이 다시금 위로 떠오른다.
네 개, 다섯 개의 돌이 연이어 걸리자 자신이 생긴 당우가 슬쩍 눈을 떴다.
“오!”
어느새 강의 절반 이상을 건너왔다.
탁! 탁!
추락할 때마다 절묘하게 날아든 돌은 정확히 당우의 신형을 허공에 띄워 올렸다.
이변은 당우가 아닌 다른 곳에서 발생했다.
오 장 안쪽까지 접어든 당우가 강물로 추락하고 있을 때, 단려화가 당혹스러운 얼굴로 외쳤다.
“도, 돌이!”
돌이 없었다.
넉넉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당우의 신법이 떨어지는 탓이었다.
“어어!”
기겁한 당우의 발이 강물에 닿기 직전이었다.
전방으로 내뻗은 진무립의 우장에 새하얀 기운이 운집한다.
쏴아아아!
“핫!”
짤막한 기합성과 함께 떨어지던 당우의 신형이 진무립의 손으로 빨려들기 시작했다.
백하진에게 알려준 백라자수의 수법을 응용해 당우를 끌어당기는 것이다.
경천동지할 내력을 가진 진무립만이 가능한 수법이었다.
“우와악!”
경악한 당우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발끝이 젖어오는 것을 느낄 틈도 없이 당우의 신형이 강변에 안착했다.
“헉! 헉!”
가슴 철렁했던 순간이 지나가며 당우가 가쁜 숨을 토해냈다.
어느새 다가온 진무립이 당우의 어깨를 두드리며 웃었다.
“훌륭했다.”
고개 든 당우가 멋쩍게 웃는다.
훌륭한 건 자신이 아니라 진무립이라는 걸 안다.
그럼에도 은무대 앞에서 자신을 생각해 칭찬을 해주니 고맙지 않을 수 없었다.
때때론 과격한 면모를 드러내기도 하지만 당우는 진무립이 누구보다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역시 존경할 수밖에 없는 무인이다.
“가자.”
“예. 소공자.”
황하를 무사히 건넌 진무립 일행이 빠르게 숲속으로 들어갔다.
당우에게 속도를 맞춰 움직이던 진무립이 그에게 물었다.
“얼마나 남았지?”
당우가 영문 모를 얼굴로 쳐다봤다.
“뭐가요?”
“네가 가진 만리추종향 말이다.”
“열 명분은 될 텐데 스무 명은 어렵습니다.”
“잘 아껴둬라. 쓸 일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네.”
빠르게 지나가는 풍경 속에 진무립은 시일을 계산했다.
‘강을 건넜으니 소화산까지는 대충 이틀 거리다. 그 안에 나타나 다오.’
복령천의 근거지를 찾아낼 수만 있다면 지금보다 다양하고 확실한 계책을 그려낼 수 있다.
선두를 달리며 생각에 잠긴 진무립은 다양한 가능성과 계책을 떠올렸다.
한낮을 뜨겁게 달군 열기가 밤을 맞이하며 한풀 꺾인다.
휴식을 최소한으로 줄인 이들은 강행군을 이어간 끝에 멀리 소화산이 보이는 산 능선에 도착할 수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수풀을 어루만지며 지나가는 가운데 높은 나무에 오른 진무립이 멀리 소화산을 눈에 담았다.
“두 시진이면 도착하겠군. 오늘은 여기서 쉬지.”
“예.”
밑에서 나직이 대답한 은무대가 빠르게 움직이며 노숙을 준비한다.
어느새 곁에 올라선 단려화가 같은 곳을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 산이 소화산인가요?”
“저기 사슴뿔처럼 보이는 산이다.”
진무립이 가리킨 곳을 보니 그 말처럼 눈에 확 띄는 산이 보인다.
단려화가 물었다.
“혹시 여기 와본 적이 있어요?”
달빛이 있다곤 하나 첩첩산중 속에 정확히 소화산을 알아보고 있으니 신기한 것이다.
진무립이 물었다.
“내가 누구지?”
그녀가 뭘 묻냐는 듯 쳐다본다.
“당신은 진무립이잖아요.”
문득 자신이 질문을 잘못했다는 걸 깨달은 진무립이 실소를 삼켰다.
상천의 천주와 마도림의 소공자.
그와 같은 자신의 신분은 그녀에겐 아무 의미가 없는 것들이다.
그녀에게 자신은 오로지 진무립일뿐이다.
진무립이 다시 말했다.
“삼두육비의 괴물. 천하 산적의 수괴가 바로 나 아니겠어? 당연히 소화산도 가본 적이 있지.”
“아!”
그녀는 그제야 이해했다는 듯 활짝 웃었다.
“그랬군요. 그래서 이렇게 길을 잘 찾아서 오는 것이었구나.”
진무립은 부드럽게 웃으며 그녀의 어깨를 감쌌다.
“그만 내려가서 쉬지. 소화산을 둘러보려면 내일은 아주 바쁠 테니까.”
모처럼 느껴보는 진무립의 온기가 반갑다.
그녀의 얼굴에 달빛만큼이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내려가요.”
나무에서 내려오니 순식간에 작은 숙영지가 만들어졌다.
누울 준비를 하려던 진무립의 눈에 가부좌를 튼 채 눈썹을 꿈틀거리는 당우가 들어온다.
잠시 후, 눈을 뜬 당우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무립이 물었다.
“뭔가 느껴지는 게 있나?”
“아닙니다. 그건 아닌데…….”
확실히 느껴지는 건 없었으나 뭔가 간질간질한 느낌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당우가 멋쩍게 웃었다.
“피곤해서 그런 건지도 모르겠네요. 일단 자야겠습니다.”
“그래. 먼 길 오느라 고단했을 거다. 푹 쉬어라.”
“주무십시오. 소공자.”
산 능선의 작은 공터에서 하룻밤을 보낸 진무립 일행은 날이 밝기 무섭게 숙영의 흔적을 지웠다.
만일 성유기가 말한 계추월의 회동이 함정이라면, 여기부턴 흔적을 감추며 극도로 조심히 움직여야 했다.
하늘 높게 치솟은 거목으로 빼곡한 산속.
은무대와 두 사람은 나무를 타고 이동하는 진무립을 일렬로 조심히 뒤따랐다.
그렇게 두 시진을 조심스럽게 나아가자 마침내 기화요초가 만발한 소화산의 절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느긋하게 풍경을 감상할 여유는 없다.
발을 멈춘 진무립이 즉시 부하들에게 명했다.
“놈들이 소화산에 다녀간 흔적을 찾아야 한다. 함정이 있을지도 모르니 둘씩 짝지어 종으로 움직여라.”
은무대가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예.”
진무립이 나무를 박차고자 무릎을 굽힐 때였다.
“모두 잠시 기다려주세요.”
평소답지 않게 떨리는 단려화의 목소리가 모두의 발을 붙잡았다.
진무립이 물었다.
“무슨 일이야?”
“그게…….”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단려화는 어쩔 바를 모르며 어색하게 웃었다.
“왠지 느낌이 좋지 않아서요. 더 들어가면 안 될 것 같은 기분이랄까…….”
단려화는 자신의 감각이 남들보다 훨씬 예리하다는 것을 안다.
그런 자신의 감이 이 앞으로 가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흐르는 정적 속에 산새가 지저귀며 일행의 머리 위를 날아간다.
단려화의 두 눈이 좌우로 슬며시 움직였다.
‘괜히 말했나?’
확실하지도 않은 자신의 느낌만으로 이들을 붙잡았으니 괜히 미안해진 것이다.
짧은 기다림 끝에 진무립이 정적을 깨고 말했다.
“돌아간다.”
단려화가 화들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간다구요?”
“당신이 가자고 했잖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냥 제 느낌이 틀렸을지도 모를 일이잖아요.”
“난 당신의 감을 믿어. 당신이 그렇다면 여기서 돌아가는 게 맞아.”
은무대도 그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여 그녀의 부담을 줄여준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그들도 진무립 못지않게 단려화의 감을 믿고 있었다.
그녀의 마음이 왠지 모르게 따뜻해진다.
이젠 정말 이들이 한 가족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가지.”
진무립이 발을 돌리는 찰나, 별안간 당우가 몸을 부르르 떨었다.
“느껴집니다.”
단려화가 반색하며 그를 돌아본다.
“당소협도요? 역시 안에 뭔가 있는 거 같죠?”
“그, 그게 아니고요.”
전율에 사로잡힌 당우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저는 만리추종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