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307)
◈ 307화. 소화산의 회동
소화산 남서쪽 봉우리의 정상.
절벽 끝에 바짝 엎드린 단려화의 심장이 터질 듯이 쿵쾅거린다.
‘왔어!’
수풀 너머에 바짝 엎드린 단려화의 눈동자가 개미 떼처럼 움직이는 마인들을 확인한다.
‘너무 많아.’
짐작은 하고 있었음에도 이만이 넘는 마인은 정말 질릴 만큼 많은 숫자다.
‘그나저나 무립의 예상은 정말 절묘하구나.’
마인들이 정확히 남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천마의 행방은?’
자신이 천마 장천무와 함께하는 무인의 숫자를 확인한다면 제갈경이 무인을 재배치하는 수고를 덜 수 있다.
그러나 멀리 보이는 언덕 아래로 빼곡한 숲이 펼쳐져 있었기에 장천무의 움직임은 확인할 수 없었다.
‘일단 알려야 해.’
고개 돌린 그녀의 눈에 십 장 밖에 대기 중인 추영당의 거지들이 보인다.
[남쪽으로 움직였어요.]봉추개가 물었다.
[천마도 함께요?]단려화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선 보이지 않아요. 조금 더 살펴봐야겠어요.]그녀가 추영당과 함께하는 것은, 누구보다 뛰어난 감각과 소완공을 익힌 그녀라면 보다 은밀히 적을 관찰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봉추개가 답했다.
[일단 전하겠소이다.]단려화가 자리를 옮기는 사이, 신속하게 남쪽 사면으로 이동한 봉추개가 약속한 수신호를 보냈다.
‘남쪽.’
협곡의 안쪽에서 수신호를 확인한 진무립이 손을 들었다.
“시작하겠습니다.”
분명 뒤에 태종무단 일백이 있을 텐데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고개 돌린 진무립의 눈동자에, 제갈경을 필두로 정중히 포권을 취하는 단원들이 들어온다.
“무운을 빌겠습니다.”
그에 이어 철표개가 빙그레 웃으며 말한다.
“쉬운 싸움은 아니겠지만 단주라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이겨낼 수 있을 것이오.”
모두의 눈빛이 철표개와 다르지 않았다.
진무립의 입가에 여느 때처럼 자신감 넘치는 미소가 깃들었다.
“당연합니다. 황천패의 목을 들고 오겠습니다.”
육병흑궤를 등에 진 진무립이 위사영과 함께 절벽 위로 뛰어올랐다.
제갈경이 탁이신을 보며 말했다.
“악왕께서 선두를 맡아주셔야겠습니다.”
탁이신이 마음먹고 수비를 펼친다면 그것을 뚫을 수 있는 자들은 거의 없다.
그의 무명이 악왕인 것은 천하대전이 벌어지기 이전, 사자곡 전투에서 관문을 막아서던 모습이 마치 조조를 지키던 악래를 연상시킨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었다.
탁이신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그럼 우선 여기서 갈라지지요.”
나직한 목소리에 이어 절벽 밑에 숨어있던 태종무단이 둘로 나뉘어 이동한다.
십여 명의 무인을 대동한 제갈경은 진무립이 올라간 절벽을 조심스럽게 뒤따랐다.
제갈경과 함께하게 된 후영이 멀어지는 풍연에게 전음을 보냈다.
[전투가 끝나면 소공자와 함께 제대로 마셔보자.]죽지 말란 이야기다.
고개 돌린 풍연이 피식 웃으며 주먹을 들어 보인다.
후영도 주먹을 마주 보이며 씩 웃었다.
앞서가던 투백비가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안 가요?”
“간다. 꼬맹아.”
아이 취급하는 걸 싫어하는 투백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죽고 싶어요?”
투백비의 살벌한 눈빛에 후영도 지지 않고 쏘아봤다.
“버르장머리가 없는 놈이구나.”
그때 탁소혜가 투백비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악.”
“밖에서 건방지게 굴지 말랬지?”
시선을 피해 고개 돌린 투백비가 바드득 이를 갈았다.
‘대체 누가 이런 미친 여자를 데려갈까.’
탁소혜가 그의 목덜미를 잡아당기며 나직이 으르렁거렸다.
“마음의 소리가 들리네?”
“…….”
뒤를 돌아본 제갈경이 검지를 입술에 붙였다.
입을 꾹 다문 탁소혜가 미안한 듯 웃으며 두 손을 비볐다.
여기서부터는 그 어떤 실수도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도 인지한 것이다.
빙그레 웃은 제갈경은 협곡의 남쪽 바위 뒤에 몸을 숨긴 태종무단을 확인했다.
‘회동은 아마도 천경봉일 것이다. 남쪽 협곡에서도 충분히 보일 만한 거리야.’
그렇다면 상대의 숫자에 따라 쉽게 아군을 재배치할 수 있다.
잠시 멈췄던 발이 움직이자 뒤따르던 자들도 행보를 재개했다.
악계화와 자영도 그들 중 하나였다.
[악공.] [그래.] [이길 수 있겠지요.]세상의 시선이 어떻든 자신들에게 국주 청금환은 아비와 같은 존재.
오늘 여기서, 그를 버린 황천패의 시신을 보지 못한다면 천추의 한이 될 것이다.
악계화가 생각을 정리하며 말했다.
자신의 머리로도 그 이상의 계획은 생각할 수 없다.
천천히 발을 내딛던 악계화가 문득 실소를 흘렸다.
‘나도 동화되는 건가.’
다른 이들이 그런 것처럼.
마음에 들지는 않으나 숱한 위기를 헤쳐온 진무립이라면 왠지 이번에도 뜻한 바를 이룰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은 비단 자신만의 것이 아닐 터.
진무립을 아는 사람이라면, 그와 조금이라도 함께한 사람이라면 모두가 같은 마음일 것이다.
사람의 마음을 빼앗는다는 것.
정말 무섭고도 대단하지 않을 수 없다.
‘진무립. 필요하다면 내 목도 내놓을 테니 반드시 해내라.’
도파를 쓸어내린 악계화의 눈에 굳은 각오가 떠올랐다.
태종무단이 은밀한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을 때.
협곡에 들어선 장천무 일행은 험준한 산새를 훑어보며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장천무가 말했다.
“왠지 반갑군.”
천산에 비할 만큼은 아니나 기암괴석으로 가득한 소화산의 풍광도 제법 마음에 든다.
곁을 따르던 임화교도 동의하듯 말했다.
“그렇군요. 천산의 신도들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풍경입니다.”
천산은 사람이 살기에 너무 척박하다.
장천무는 작게 끄덕이며 다짐했다.
“곧 그리될 것이다.”
천하를 거머쥔다면 힘들게 살아가는 신도들에게 보다 좋은 환경을 제공할 수 있을 터.
그렇기에 오늘의 회동이 중요하다.
복령천이 후방을 제대로 휘저어준다면 자신들의 꿈에 한 발 더 가까워질 테니까.
천경봉을 향해 천천히 나아가던 장천무의 시선이 문득 바로 옆의 절벽 위를 향한다.
“벌써 도착한 모양이군.”
임화교가 그를 따라 고개 돌렸다.
“예?”
장천무는 이내 시선을 거두고 고개 저었다.
“아니다.”
다시금 발을 내디딘 그들이 바람처럼 사라졌을 때.
절벽 위에 드러누운 단려화는 터질 듯한 가슴을 억누르고 있었다.
‘이 거리에서?’
절벽의 높이는 족히 사십 장.
소완공을 펼친 채로 눈만 내밀어 지켜보고 있었는데 시선이 마주친 것이다.
단려화는 어째서 그가 천마신교의 교주인지 알 수 있었다.
‘고수야.’
그 짙은 눈동자와 마주친 순간 마치 뭔가가 전신을 속박하는 듯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나를 복령천의 무인으로 착각한 게 분명해.’
그게 아니었더라면 그대로 지나가지 않았을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빠르게 반대편으로 몸을 날렸다.
‘어디지?’
절벽의 건너편 산을 살피던 그녀의 시야에 몸을 숨긴 제갈경이 담긴다.
그 역시 단려화를 발견한 듯 손을 흔들었다.
단려화는 재빨리 수신호를 했다.
‘모두 일곱이에요!’
약속된 수신호에 제갈경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한다.
‘분명 황천패를 지키는 호위도 있을 거다. 그렇다면…….’
그는 즉시 함께 온 무인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폭풍전야의 고요함이 깃든 소화산의 산새.
곳곳에서 분주한 움직임이 이어지는 가운데 마침내 황천패와 약환이 북쪽 절벽 아래 도착했다.
맑은 하늘을 쳐다본 황천패가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발을 내디뎠다.
“기다리고 있겠군.”
높게 떠오른 태양이 성큼 다가온 약속시간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 빨리 오지는 않았을 겁니다. 조금 기다렸다 해도 상관은 없지만 말입죠.”
마인들을 이끌고 중원에 들어왔다는 건 확실하게 일전을 준비했다는 것과 같다.
여기까지 와서 회동이 어긋나길 바라지는 않을 것이다.
“어쨌든 늦어서 좋을 건 없지. 서두른다.”
“예.”
지면을 박찬 그들이 절벽에 솟아난 바위를 차례로 박차고 뛰어올랐다.
순식간에 정상에 오른 그들은 빠르게 두 개의 봉우리를 넘어 천경봉에 도착했다.
사방으로 오십 장 너비의 너른 분지.
소화산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이곳이 바로 천하의 운명을 결판낼 회동 장소였다.
황천패 일행이 도착하기 무섭게 장천무 일행이 반대편 분지에 올라선다.
오십 장의 간격을 두고 마주 본 두 사람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젊군.’
실제로도 두 사람은 비슷한 연배였다.
“먼 길 오느라 고생했네!”
바람에 실린 황천패의 외침이 장천무의 귓속을 나직이 파고든다.
“…….”
황천패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장천무가 천천히 앞으로 걸어간다.
복령천 측 무인들이 가져온 탁자와 두 개의 의자를 분지의 중앙에 내려두었고.
천마신교 측 무인들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그 위에 술병과 두 개의 잔을 내려두었다.
장천무를 따라 걸으며 가자미눈을 뜨고 지켜본 임화교는 내심 감탄을 금치 못했다.
‘역시.’
단순히 신법을 전개해 움직였을 뿐이지만 흑의인들의 움직임은 나무랄 데 없이 가볍고 경쾌했다.
저들이 황천패의 호위임을 감안하더라도 엇비슷한 자들로 백여 명이 넘는다면 충분히 천하를 노려볼 만하다.
거의 동시에 탁자 앞에 도착한 두 사람이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자리에 앉았다.
“황천패다.”
히죽 웃은 황천패가 손을 내밀었고.
“장천무.”
짧게 답한 장천무가 그 손을 잡았다.
가볍게 잡은 손이 가볍게 풀어지며 자리로 돌아온다.
굳이 신경전을 벌일 필요가 없다는 걸 두 사람도 아는 것이다.
곁에 선 임화교가 술잔을 채우자 황천패가 물었다.
“자네는?”
임화교가 공손히 고개 숙이며 답했다.
“임화교라고 합니다. 교의 천정각을 맡고 있습니다.”
황천패가 씩 웃는다.
“제법 똘똘하게 생겼군. 중히 쓰이겠어.”
임화교는 담담하게 잔을 채우고 물러났다.
‘음. 생각과는 좀 다른 인물이로군.’
머리를 쓰는 지낭의 입장에서 속내를 감추고자 하는 자들은 되려 파악하기 쉽다.
그러나 황천패는 그런 부류가 아닌 듯하다.
서로를 향해 잔을 들어 보인 두 사람이 그것을 동시에 들이켰다.
이번엔 장천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본론부터 들어가지. 나는 단순히 회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전쟁을 하러 왔다.”
“알지. 이만의 무인이 산 밖에서 기다리는 중이잖나?”
“안다면 대화가 쉽겠군. 바라는 조건을 말해라.”
황천패는 생각해온 바를 서슴없이 말했다.
“우선 천하를 둘로 나눌 거다. 자네는 강북, 나는 강남.”
장천무가 물었다.
“우선?”
“자네는 두 개의 태양을 용납할 수 있겠나?”
그 말에 이어 황천패가 히죽 웃는다.
“나는 그렇게는 안 되겠는데.”
장천무의 입가에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건 마음에 드는군.”
“무림맹과 화령을 완전히 세상에서 지운 뒤, 오 년간 서로의 영역을 인정하는 것으로 하지.”
오 년이라면 어느 정도 전쟁의 뒷수습이 마무리될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금 천하의 패권을 놓고 겨뤄보자는 말이었다.
소매로 얼굴을 슬쩍 가린 임화교가 입술을 달싹거렸다.
[온전히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이삼 년은 시간이 있을 겁니다.]천산의 사람들을 중원에 데려오기 충분한 시간이다.
장천무는 담담한 얼굴로 대답했다.
“좋다.”
일차 합의가 끝나자 약환이 킬킬 웃으며 말했다.
“그럼 무림맹을 상대할 세부 계획을…….”
그 순간 마주 앉은 두 사람의 고개가 동쪽으로 돌아갔고.
휘이이…….
그들의 머리칼을 쓸어가는 실바람이 일진광풍으로 변해가더니 언덕 밑에서 뭔가가 불쑥 튀어나왔다.
쐐애애액!
날카로운 파공성과 함께 무수한 화살이 장대비처럼 쏟아진다.
임화교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떠졌다.
“기습!”
그의 외침이 끝나기 무섭게 양측 호위들이 주군의 앞을 막아섰고.
카카카카카캉!
화살이 튕겨 나가는 순간.
복면을 쓴 한 무리의 무인들이 분지 끝에서 섬광처럼 짓쳐 들었다.
선두에 선 위사영의 전신에서 활화산 같은 기운이 폭발했다.
쿠우우우!
산봉우리가 마치 무너질 듯 울부짖었고.
“물러나라.”
나직한 목소리에 이어 황천패와 장천무가 앞으로 나섰다.
위사영이 풍기는 기세는 호위들이 감당하기 어렵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위사영이 빠르게 등 뒤로 수신호를 보내자 육군명과 유대하, 악계화와 천진서가 분신처럼 우측으로 미끄러진다.
‘가자!’
위사영의 벼락같은 검이 장천무를 향해 쏟아졌고 네 사람의 공격이 황천패의 목을 노려간다.
‘황천패!’
악계화의 두 눈에 시뻘건 불길이 치솟았고.
쐐애액!
줄기줄기 쏟아진 도광이 그의 전신을 덮쳐 간다.
좌우로 갈라진 유대하와 육군명이 양쪽에서 초식을 전개했고 훌쩍 뛰어오른 천진서의 검은 벼락 치듯 떨어졌다.
“큭큭큭!”
히죽 웃는 황천패와 무표정한 장천무가 동시에 검을 뽑아 들고 내력을 끌어올렸다.
슈아악!
양측의 공격이 허공에서 충돌하는 순간.
쿠콰콰콰콰콰쾅!
고막을 후려치는 굉음과 함께 얼어붙은 땅거죽이 거꾸로 치솟았다.
서걱! 서걱!
솟구친 땅거죽 사이에서 섬뜩한 소리와 함께 찢어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온다.
“크아아악!”
위사영과 무인들이 두 명의 절대자에게 온 힘을 쏟아붓고 물러나는 순간.
솟구쳤던 땅거죽이 가라앉으며 피에 젖은 대지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컥…….”
억눌린 신음이 들려오는 곳에는.
정확히 열 구의 시신을 발아래 둔 진무립이 임화교의 목을 움켜쥐고 있었다.
“천하의 패권이 걸린 회동이라…….”
부르르 몸을 떠는 임화교의 눈동자에, 절대자들을 향한 진무립의 오연한 눈빛이 떠오른다.
“나도 끼워주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