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uspicious little prince is a world's top ten masters RAW novel - Chapter (42)
◈ 42화. 북천도문
가까운 객잔에 자리 잡은 일행은 모처럼 따뜻한 물에 몸을 씻을 수 있었다.
먼저 씻고 나온 유대하와 용추가 식사를 위해 일 층으로 내려왔다.
늦은 시간임에도 술을 마시는 손님들로 인해 객잔 내부는 제법 시끄러웠다.
용추와 마주 앉은 유대하가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왜 그렇게 쳐다봅니까?”
마주 앉은 순간부터 자신을 향한 용추의 눈빛이 왠지 심상치 않았다.
“때리고 싶은 얼굴이라서.”
“······.”
아무래도 아까 일이 마음에 남아있는 모양이다.
그때 딱 하는 소리와 함께 용추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윽.”
고작 꿀밤으로 이런 고통을 선사할 수 있는 이는 진무립밖에 없었다.
“사내가 그렇게 좀스러워서 어디에 쓰냐?”
“저놈만 때릴 수 있다면 좀스럽게 살아도 나쁘지 않은 삶일 거 같습니다.”
유대하가 진땀을 흘리며 말했다.
“하하······. 용형. 너무 마음에 담아두지 마십시오. 용형의 외모가 못났다는 게 아니라 용맹하게 생겼다는 말이었습니다.”
“용맹?”
용추가 고개를 갸웃거릴 때 술과 요리가 나왔다.
진무립이 한숨을 삼키며 술잔을 채웠다.
“칭찬이니 그냥 넘어가라.”
“칭찬이군요. 알겠습니다.”
유대하가 용추의 눈치를 살피며 진무립에게 전음을 보냈다.
[용형은······. 어째서 상식이 부족한 겁니까?]바보가 아닌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 있어야 할 무언가가 빠진 듯한 느낌이었다.
[너도 이십 년을 동굴 속에서 무공만 익혀봐라.]유대하가 벌어지는 입을 손으로 가릴 때, 단려화가 마르지 않은 머리칼을 질끈 묶고 내려왔다.
“설마 나 없이 먼저 먹고 있던 건 아니죠? 의리 없게.”
“조금 더 늦었으면 의리 없을 뻔했다. 어서 앉아.”
그녀가 자리에 앉으며 식사가 시작됐을 때, 등 뒤의 목소리가 제법 크게 들려왔다.
“북천도문의 어르신께서 앓아누우셨다며?”
“갑자기 왜?”
“설마 자네, 아직 아무것도 못 들었나? 이번에 북천도문이 어마어마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네.”
순간 진무립 일행의 탁자에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정적이 깃들었다.
오물거리는 횟수조차 줄인 그들은 온 신경을 등 뒤의 탁자에 기울였다.
얼굴이 까만 중년인은 진무립의 기대에 보답이라도 하려는 듯 말을 이어갔다.
“나도 얼마 전 들은 얘기인데, 몇 달 전 어르신의 손주 넷이 한 번에 납치되는 일이 있었다네.”
“그, 그게 정말인가? 몇 달 전 일이 왜 이제야 알려지는 건가?”
“어르신께서 손주들을 얼마나 끔찍이 아끼시는지 모르는가? 소문이 퍼지면 손주들의 목숨을 장담할 수 없을 텐데 어찌 함부로 알리겠나?”
마주 앉은 사내가 자라목을 하고 목소리를 깔았다.
“쉿! 목소리를 낮추게.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는가?”
“이미 알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일세.”
주변의 눈치를 살핀 사내는 조심스럽게 어깨를 폈다.
“그래서 흉수가 요구한 게 돈이었는가? 그것 때문에 빚더미에 앉은 것이고?”
“그렇네. 놈이 요구한 돈이 자그마치 은자 삼백만이라네.”
사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 삼백만? 북천도문에 그런 돈이 어디 있다고?”
“무려 이백 년을 넘게 이어온 명문일세. 게다가 어르신이 어떤 분인지 자네도 알지 않나?”
“알지. 사천 땅에 그만한 군자가 없지.”
북천도문주 이정명은 군자도(君子刀)로 불릴 만큼 인망 있는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이 그를 문주라는 호칭 대신 어르신으로 친근하게 부르는 것은, 무림 방파라는 높은 담장을 허물고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그의 뜻이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재산을 처분하고 평소 친하게 지내온 지인들도 도움을 준 모양이야.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음에도 그만큼 도움을 받았다는 것도 정말 대단한 일이지.”
“그래서 손주들은 모두 구했는가?”
“돈을 주고 되찾기는 했다만······. 흉수는 끝내 잡지 못했다는군.”
“허, 그거참 곤란하게 됐군. 사천맹은 움직이지 않았는가?”
“손주들이 돌아온 뒤 흉수를 잡지 못한 어르신께선 곧장 사천맹에 도움을 청하셨다네. 맹에선 금호대(金護隊)를 보낸 모양이야.”
“금호대? 금호대라면 사천맹에서도 제법 신경을 써준 모양일세.”
사천맹의 금호대는 거파의 후기지수 중 가장 고강한 이들로 구성된 곳이었다.
하지만 중년인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신경을 써주면 뭐 하는가? 어린것들이 며칠 형식적으로 둘러보곤 밥만 축내다 돌아갔다는군.”
“허, 그럴 수가. 그럼 이제 어쩌는가?”
“내가 그걸 알면 당장 북천도문으로 찾아갔지. 어르신께서도 방도가 없으니 앓아누우신 거 아니겠는가?”
사내들은 혀를 차며 제 일처럼 안타까워했다.
밤이 깊어지며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는 가운데 식사를 마친 진무립 일행은 객실에 모였다.
“북천도문의 평판이 생각보다 좋군요.”
단려화의 말에 유대하가 답했다.
“보통 사람들은 무림인이라고 하면 두려워하거나 경외심을 품기 마련인데 이곳은 다르군요. 저들의 말만 들어도 문주께서 얼마나 좋은 분인지 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상하지 않아요?”
“무엇이 이상하다는 말입니까?”
단려화가 진무립을 보며 물었다.
“오는 길에 분명 음야살귀에게서 이백만을 되찾았다고 했었죠?”
진무립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분명 이백만이었다.”
“그럼 나머지 백만은?”
“나야 모르지.”
진무립은 시치미를 뗐다.
가자미눈을 뜬 단려화가 고저 없는 목소리로 의심스럽게 물었다.
“정말인가요.”
남들보다 월등히 예리한 감각을 가진 그녀에게 어설픈 거짓말은 통하지 않는다.
하지만 진무립에겐 남들보다 월등한 뻔뻔함이 있었다.
“진짜라니까. 날 못 믿는 거야?”
“흐음.”
그녀가 여전히 의심을 지우지 못하는 가운데 유대하의 입이 열렸다.
“너무 늦장을 피우기보단 내일 날이 밝는 대로 가보는 게 좋겠습니다.”
진무립이 말했다.
“난 사실 바로 가서 돈부터 돌려주고 싶었다. 그런데 여기 계신 이분께서 내일 가자고 하신 거지.”
“······.”
단려화의 얼굴이 형편없이 구겨졌다.
말로는 절대 이길 수 없는 상대다.
***
은은한 달빛이 머무는 북천도문의 내원.
걸음을 내딛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정적 속에 처마 밑에서 영준한 용모의 청년이 걸어 나왔다.
“후우······.”
청년의 입에서 캄캄한 어둠만큼이나 짙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사천맹의 회색 무복을 입은 청년은 이정명의 늦둥이 아들이자 소문주인 이환이었다.
위로 누이만 둘을 가진 그는 사천맹에서 생활하다 이번 사건 때문에 휴가를 내고 돌아온 참이었다.
이환이 재차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북천도문의 총관 장용이 어둠을 뚫고 나타났다.
“소문주님. 여기 계셨군요.”
서글서글한 인상의 장용은 매우 정중히 예를 갖췄다.
이환은 착잡한 마음을 감추고 애써 미소지었다.
“아직 안 주무셨습니까?”
“문주님께서 병상에 계시는데 수하 된 자가 어찌 일찍 잠들 수 있겠습니까? 문주님께서는······.”
“깨어나셨다가 조금 전에 다시 잠드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이곳을 지킬 터이니 푹 주무십시오.”
“다행이로군요. 그럼 조금만 있다가 돌아가겠습니다.”
장용이 처마 밑에 등을 기대고 앉았다.
“저도 잠시 바람 좀 쐬고 들어가야겠습니다.”
이환이 곁에 앉자 장용은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파중현의 소식을 확인하러 갔던 중보가 조금 전에 돌아왔습니다.”
이환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어떻게 됐답니까?”
“흉수인 혈천수라를 제거하고 장주 일가를 구출했다고 하더군요. 대검문을 무너뜨렸다던 마도림의 소공자가 말입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이곳 북천도문과 똑같은 일을 겪은 정가장이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예. 장주 일가를 구출한 것은 확실하나 혈천수라를 잡았다는 소문은 모두 낭설로 치부하는 분위기입니다. 인정하기 싫은 사람들의 질투일지, 아니면 정말 거짓일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사람들을 무사히 구했다면 정말 다행한 일입니다.”
안도 뒤에 이어진 것은 꺼질듯한 한숨이었다.
“하지만 이쪽은 흉수의 정체조차 모르고 있으니······.”
납치된 조카들이 돌아온 것은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이백 년 유구한 역사의 북천도문이 존폐를 걱정해야 할 만큼 상황은 좋지 않았다.
흉수에게 건넨 은자 삼백만이 고스란히 날아갔기 때문이다.
전답과 사업장, 장원을 담보로 사천맹에 빌린 돈은 무려 은자 팔십만이고 오랜 인연을 가진 방파들이 융통해준 돈도 무려 백오십만이다.
돈을 갚지 못하면 길거리에 나앉아야 하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달빛을 바라보는 이환의 눈빛이 암울하다.
‘이제 곧 연맹분담금을 내야 할 시기인데 이걸 어쩐다.’
사천맹의 운영에는 돈이 들어간다.
운영비의 절반 이상은 네 개의 거파들이 내고 있다지만 중소방파들도 매년 일정 금액을 납부해야 했다.
그러나 문도들의 월봉도 밀린 판국에 연맹분담금 이야기를 어찌 꺼내겠는가?
나직한 한숨이 이환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이 일을 해결할 수만 있다면 악귀에게 영혼이라도 팔고 싶구나.’
분위기가 무거워지자 장용은 화제를 돌렸다.
“성도 생활은 어떠셨습니까?”
사천맹에서 이환의 소속은 중소방파 후기지수들로 구성된 철검대(哲劍隊)였다.
“벽만 느끼고 있습니다.”
“벽이라니요?”
“중소방파와 거대방파 사이에 세워진 보이지 않는 벽 말입니다.”
맹이라는 이름 아래 뭉쳤으나 후기지수들에 대한 인식이나 대접도 소속에 따라 크게 달랐다.
상황을 짐작한 장용은 씁쓸하게 웃었다.
“족히 수백 년을 사천의 강자로 군림해온 이들입니다. 쉽게 무너질 벽이 아니겠지요. 마음을 비우시는 게 편할 것입니다.”
“그러려고 노력 중입니다.”
“저는 소문주께서 그저 몸 건강히 돌아오시기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이환은 뒷말을 속으로 삼키며 애써 웃어 보였다.
‘돌아올 곳이 남아있다면 말입니다.’
답답한 가슴을 문지른 이환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들어가 봐야겠습니다. 밤이 늦었으니 어서 돌아가 쉬시지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고 했습니다.”
돌아서던 이환의 발이 멈췄다.
장용은 말을 이어갔다.
“불안은 위에서 아래로 역병처럼 퍼져 나갑니다. 저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으니 너무 염려하지 마십시오.”
수장이 불안해하면 문도들도 불안해진다.
문주가 쓰러진 이상 북천도문의 기둥은 소문주 자신이다.
그 말을 알아들은 이환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구사일생의 구멍이 가까운 곳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아직 모르고 있었다.
***
북천도문에 드리운 어둠이 가시며 새벽하늘이 밝아왔다.
탁자에 엎드려 쪽잠을 자던 총관 장용이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벌써 아침인가.”
아주 잠깐 눈을 붙인 거 같은데 지저귀는 새소리가 제법 요란하다.
창문을 열자 시원한 새벽공기가 들어오며 몽롱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하루하루가 조급한 나날.
급할수록 돌아가야 한다는 말을 되새기며 여유를 찾으려 하는데 수문위사가 찾아왔다.
“총관님.”
“아침부터 무슨 일인가?”
“손님이 찾아왔습니다. 문주님을 뵙고자 한다는데 차마 아뢸 수가 없어 이리로 왔습니다.”
“손님? 어디에서 온 손님이라더냐?”
“마도림에서 왔다고 합니다.”
“마도림이라고?”
정가장의 사건을 해결한 마도림이다.
장용의 목소리가 다급해졌다.
“내가 만나볼 터이니 안으로 모시거라.”
“예.”
북천도문에 들어선 진무립 일행은 문 내의 우울한 기운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유대하가 조심스럽게 전음을 보냈다.
[분위기가 마치 초상집 같습니다.]진무립도 같은 생각이었다.
‘며칠 더 늦었으면 정말 초상집이 됐을지도 모르겠군.’
지금부터 북천도문의 마음을 사로잡아야 할 시간이다.
두 개의 전각을 지난 일행 앞으로 장용이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본 문의 총관 장용이라고 합니다.”
진무립이 정중히 포권을 취했다.
“마도림의 진무립입니다.”
“진······. 혹시 마도림의 소공자가 아니십니까?”
“그렇습니다.”
장용의 눈이 부릅떠졌다.
‘이 청년이 대검문을 무너뜨리고 정가장의 일을 해결한 소공자라니.’
정가장의 사건을 해결한 진무립이 왔다는 것은 흉수에 대한 정보를 가져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초조함을 감춘 장용은 집무실 문을 활짝 열었다.
“어서, 어서 안으로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