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29)
129화 이백이십일 조 (1)
이강은 시험장에 도착했다.
시험장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마치 흐르는 물에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파를 따라가면 되었다.
시험관의 의복을 입고 있는 자가 이강의 이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그대는 221조요. 뒤돌아보시오.”
이강이 잠자코 뒤로 돌자, 시험관은 흰 종이로 만든 표찰을 이강의 등에 붙였다.
이백이십일(二百二十一)이라고 적힌 것이었다.
“4인 1조로 진행될 것이오. 이미 둘이 저쪽 푯말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같은 조를 찾아 기다리시오.”
4인 1조로 진행되는데 221조다. 그 말은, 이미 천 명 가까이 지원했다는 뜻이다. 이강의 뒤에도 줄이 꽤 남아 있었으니 엄청난 경쟁률이었다.
「젊은 애들이 많으니까 공기가 좋네.」
청안광마는 반지에서 나와 한가로이 걸어 다녔다. 풍운의 꿈을 꾸고 있는 후기지수들을 구경하며.
‘꼭 노인네처럼 말하긴.’
「강호 선배로서 후배들을 보면 흐뭇한 게 당연하지.」
‘후배는 무슨, 그리고 얘들은 다 정파 무인들이잖아.’
청안광마는 이 무림맹에 무림공적으로 지정되어서 살해당했다.
그러면서 속도 좋은지, 그녀는 씩 웃었다.
「설마 15인 안에 못 드는 건 아니겠지 너?」
‘…….’
그럴 생각은 없었다.
그리고, 221의 표찰을 붙이고 있는 두 명의 후기지수가 이강을 반겼다.
“여깁니다!”
“아, 안녕하세요…….”
개성이 확실해 보이는 청년 둘이었다.
그들이 먼저 포권으로 인사했다.
“강서의 경천검문에서 온 조명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저는…… 사문은 딱히 없고요. 단봉을 조금 배웠습니다. 귀주에서 왔어요. ……아! 이름은 소운이라고 합니다.”
조명휘라는 청년은 눈빛에서 맑은 정광이 흐르는, 척 봐도 뛰어난 후기지수였다. 말하는 것도 싹싹하고 차려입은 것도 푸른 영웅건을 둘러서 맵시가 있었다.
반면 소운이라는 청년은 몹시도 유약해 보였다.
범상찮은 단봉 두 개를 등에 교차해서 매었는데,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청림의 백이강이라고 합니다.”
“하남일지시죠?”
조명휘가 싱글거리며 물었다.
“……그런 별호가 퍼진 것 같긴 하더군요.”
“대단하세요!”
소운이 그리 감탄하고 조명휘도 눈을 빛냈다.
이강은 또 한 번 의문을 느꼈다.
“이렇게 묻는 것도 좀 이상하지만. 제 별호가 그렇게 유명합니까?”
“모르셨습니까? 이미 하남에서는 백 형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조명휘는 이강과 동갑이었는데, 넉살도 좋게 바로 백 형이라고 불렀다.
“마두 인면약탈자를 훌륭하게 잡아내 성주님의 치하를 받고, 무림맹주인 신승께서 재능을 알아보셔서 직접 참가를 권하셨다던 후기지수!”
인면약탈자의 정체를 알아낸 것은 그렇다 쳐도, 신승이 참가를 권했다는 것은 아는 사람이 적다.
이강은 비로소 확신했다.
그의 이름이 퍼진 것은 조규서나 신승의 입김이 더해졌음이 분명했다.
씨익 웃는 조규서의 얼굴이 떠오르는 듯했다.
“뭐…… 그렇게 됐습니다.”
이미 소문이 퍼진 이상 주워 담을 수는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나쁜 소문도 아니었으니.
그때, 거대한 덩치의 사내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이백이십일 조 맞소?”
“예, 맞습니다만, 형장은……?”
조명휘의 물음에, 사내는 씨익 웃으며 자기를 소개했다.
“구인남이오! 사문은 신비문파라 밝힐 수 없소.”
“신비…… 문파요?”
구인남이라는 가명을 쓴 팽구인이었다.
그는 놀랍도록 빠른 경공으로 이강을 따라잡는 데 성공한 것이다.
결국 같은 조를 받을 수 있었으니 힘든 것도 잊고 활짝 웃었다.
일행들은 다시 한번 자기소개를 나누었다.
“하하, 구 형이 가장 연배가 높으시니 맏형이시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말 편히 하시죠.”
“그럴까? 으하하하.”
팽구인은 산적마냥 껄껄 웃었다.
대기하는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그들은 꽤 오래 차례를 기다려야 했다.
이강이야 가만히 있어도 상관없는 사람이지만, 종종 이런 어색한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는 유형이 있는 법이다.
조명휘가 바로 그랬다.
“시간도 남는데. 일차 시험 전까지 서로의 포부나 나눠 볼까요?”
“포부?”
“예, 구 형. 먼 귀주에서 온 소운 소협도 있고. 다들 이곳 무림맹까지 온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흠, 괜찮은 생각이군.”
“저부터 말해 보겠습니다.”
조명휘 스스로가 가장 말하고 싶은 기색이었다.
“오행총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저는 협명을 떨치고 싶습니다.”
협명(俠名)을 떨친단다.
조명휘에게는 미안한 이야기겠지만 그렇게 진부할 수가 없었다.
「정파 애들은 꼭 저러더라. 안 부끄럽나 봐.」
‘그럴 수도 있지. 젊으니까.’
「꼭 노인네처럼 말하긴.」
조금 전 이강이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는 청안광마.
하지만 구인남과 소운의 반응은 달랐다.
“음, 호협이라면 응당 협명을 떨치기를 바라야지.”
“머, 멋지세요!”
조명휘는 뿌듯하게 미소지었다.
구인남이 질세라 입을 열었다.
“나는 진정한 사내가 되기 위해 이곳에 왔지.”
조명휘의 말보다 더 두루뭉술한 말이다.
몰개성하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저런 말을 입에서 꺼내는 사람이 드물기에 특별했다.
“진정한 사내 말입니까?”
“그래, 뜨거운 피를 지닌 사내, 혹은 대협.”
뜨거운 피라는 말은 팽구인의 진심이었다.
열혈단철이라는 가훈에 따라 용맹정진하는 것이 팽가의 정신이었으니.
“저 근데…….”
하지만 여기서 유약해 보이는 소운이 질문을 던질 줄은 몰랐다.
“진정한 사내라는 게 뭔가요?”
“엉……?”
“대협이라든가, 열혈이라든가. 그게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서요…….”
무척이나 진지한 태도였다.
픽 웃으며 대답을 하려던 팽구인은, 문득 말문이 막혔다.
원래라면 팽가의 정신이 어쩌고 하면서 대답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신분을 숨기고 있다.
그의 신념에서 팽가를 제외하니 의외로 할 말이 없었다.
“……사내다워야 사내지.”
“정확히 어떻게 해야 사내다운 거죠?”
“그야…….”
기골이 장대하고 수염이 덥수룩하며, 팔다리에는 근육이 꿈틀대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곤란해진 팽구인을 도와준 것은 다름 아닌 이강이었다.
“사내다운 건 뭐…… 그렇다 쳐도. 피가 뜨겁다는 건 그런 것 아닐까.”
“어떤 거요?”
“다른 사람의 강압에 굴하지 않는 것. 그리고 뜻을 관철하는 것.”
“그래, 그거지!”
팽구인이 손바닥을 탁 치며 말했다.
이강이 갑자기 끼어들어서 설명해 줄 줄은 몰랐다.
「왜 갑자기 참견이래?」
‘그냥.’
자기도 그리 살고 싶다고, 이강은 말할 수가 없었다.
“나 구인남은 그런 사나이가 되기 위해 왔다.”
“와, 대단하세요!”
소운이 감탄했다.
팽구인은 미소지으며 되물었다.
“소운이라고 했지. 너는 어떻냐?”
“사실, 아버지가 제게 말씀하셨거든요. 제대로 된 사내가 되어서 돌아오라고.”
“음…….”
“근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팽구인은 내심 혀를 찼다. 하는 꼴을 보아서는 열혈의 사나이가 되기는 어려워 보였다.
마지막은 이강의 차례였다.
그는 시선이 쏠리자 나지막이 답했다.
“시험에 통과해 오행총에 들어가 보려고 합니다.”
깔끔하고도 삭막한 답이었다.
굳이 안에서 무얼 찾고, 내단을 받아서 허약한 몸을 회복하고 싶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건 포부라기보다는 이유인데, 킁.”
팽구인이 코를 훔치며 말했다.
‘역시, 마음에 안 드는 놈이다.’하고 생각하면서.
분위기가 묘하게 어색해졌다.
다행히도 때마침 소란이 일었다.
“잡아라!”
무림맹의 감찰대원들이 한 사내에게 몰려갔다.
사내는 손발을 휘저으며 대응했지만 감찰대원들의 무공이 더 뛰어났다.
누군가 사내의 오금을 후려쳐서 무릎을 꿇었다.
“어억, 무, 무슨 짓이오!”
“마혈을 짚어라, 끌고 간다.”
마혈을 점혈당한 탓에 꼼짝도 못 한다.
하지만 입은 여전히 살아 있어서, 사내는 악을 지르며 반항했다.
“아무리 무림맹이라고 해도 이런 패악을 부릴 수 있소?”
“입 다물어라!”
“내 사문인 조걸당이 작다고 무시하는 거요?”
감찰대원 중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조걸당은 무슨, 네놈이 도패산장의 문도라는 것을 우리가 몰라볼 줄 알았나.”
“……!”
사내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조걸당이라는 문파는 몰라도 도패산장은 흑도의 이름 있는 문파였다.
산동 지방의 노산 어귀에 있는 문파로, 해당 지역에서 잔인한 손속으로 악명이 자자했다.
“너는 집법당에서 심문을 당할 것이다. 사도련의 간자가 아닌지 살펴야지.”
“간자라니. 오해요! 나는 도패산장이랑 전혀 관련이 없소!”
사내가 발뺌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누군가 나타나서 쉰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그 왼손 손날에만 굳은살이 배긴 것은 도패산장의 흑당수를 수련했기 때문이겠지. 걸을 때마다 오른발 발자국의 새끼 부분만 깊이 파이는 것은 경산보를 수련했기 때문이고.”
나타난 노인은 몹시 기괴하게 생긴 자였다.
키가 소인증에 걸린 것처럼 작은데, 뒤통수가 불룩하고 솟아 있었다. 길게 기른 염소수염이 배꼽까지 늘어져 있는 게, 한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외모였다.
“만박자!”
“만박자가 왜 여기에……!”
만박자(万博子) 염교천.
드넓은 강호에서도 손에 꼽히는 기인이사다.
무공이 강하지도 않은데 명성을 떨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만박자는 그 별호답게 모르는 것이 없는 걸로 유명하다. 무공은 일류 수준인 데 비해 강호의 수많은 문파와 무공에 해박했다.
진법, 기관진식, 경문과 학식까지 빼어나서 한번 보는 것만으로도 대상을 통찰해 버린다고 한다.
정파인도 사파인도 아닌 그가 무림맹 감찰대원들과 등장하자, 도패산장의 문도도 마음이 꺾인 듯했다.
“나, 나는 그저 오행총이 궁금해서 왔을 뿐이오. 사도련의 간자는 절대 아닙니다!”
“그건 심문을 해 보면 알겠지. 끌고 가라!”
사내는 축 늘어진 채 감찰대원들에 의해 끌려갔다.
장내가 술렁였다. 이강 일행도 마찬가지였다.
“만박자가 천기서생에게 기용되었다는 게 정말이었군…….”
“무, 무섭게 생긴 사람이네요…….”
“혹시나 있을 사도련의 간자를 잡아내려고 왔나, 이번 선발시험도 직접 주관했다는데.”
조명휘의 말에 반응한 것은 팽구인이었다.
“만박자가? 왜?”
“오행총에는 아무래도 기문진식과 기관장치들이 많이 설치되어 있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후기지수를 뽑을 때도 단순 무공 이외에 다른 것들을 본답니다.”
그것은 팽구인이 상정하지 못한 일이었다. 계획이 어긋나는 것일까.
소운이 갑자기 끼어들었다.
“저, 저 사람. 저희를 보고 있어요.”
“뭐?”
돌아보니, 감찰대원들 사이에 서 있는 만박자가 이강 일행을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속내를 들키기 싫어하는 법이다. 그런데 한번 보는 것으로 모든 것을 통찰한다는 만박자가 저리 쳐다보니, 팽구인을 비롯한 일행은 슬쩍 시선을 피했다.
오직 이강만이 만박자를 마주 쳐다봤다.
「뭘 꼬라봐, 저 못생긴 할배는.」
‘네가 보이나?’
「그건 아니야.」
청안광마가 달려가서 여차여차 우스꽝스러운 몸짓을 하는데도 만박자는 보지 못했다.
곧, 그가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다시 감찰대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그제야 팽구인이 짜증스럽게 한마디 했다.
“저자가 낸 시험이라면 무척 짜증 나겠구만.”
조명휘가 하하 웃으며 답했다.
“그래도 일차 시험은 예전에 공지된 그대로라니. 구 형은 쉽게 통과하시겠군요?”
“그래? 으하하하. 그렇지! 나 같은 사내라면!”
듣던 중 반가운 소식이었다.
팽구인은 자신의 팔 근육을 쓰다듬으며 기뻐했다.
그러곤 이강을 슬쩍 보았다.
‘이 시험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면. 무아에게 미움받더라도 네놈과 떨어뜨려 놓겠다.’
일차 시험은 이강에게 불리한 것이다.
다름 아닌 육신의 강인함을 검증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백이십일 조! 이리 오시오!”
시험관이 이강 일행을 부른 곳은 거대한 바윗덩이 앞이었다.
족히 이백 근은 나갈 바위는 손으로 잡기 어렵도록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었다.
이것은 매 용봉지회나 칠성지회에 활용되는 무림맹의 명물이었다.
“우선 완력을 보겠소. 어떤 방식으로든 이 바위를 들어 저 외나무다리 건너편으로 가져다 놓으면 되겠소.”
무거운 바위를 들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은 보통 어려운 게 아니었다.
이강의 저 마른 팔을 보라. 들고 걷기는커녕 제자리에서 들어 올리지도 못할 듯했다.
“시간이 없으니 빨리 나오시오. 거기부터.”
게다가 가장 먼저 지목받은 것이 하필 이강이었다.
팽구인은 기대되는 얼굴로 이강을 바라봤다.
이강은 손에 모래를 묻히더니 탈탈 털어 냈다.
어디서 본 것은 있는듯한 모습이었다.
그리고 허리를 굽혀 바위를 단단히 잡는다.
“흡.”
그래, 솔직히 들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기에는 허약해 보여도 어찌 무공을 배운 듯은 했으니. 일차 시험을 간신히 통과할 것까지도 상정해 두었다.
하지만 팽구인은 이강이 설마 저리도 쉽게 바위를 들어 올릴 줄은 몰랐다.
그것도 허리춤까지가 아니라 번쩍, 머리 위로.
「태음경, 이거는 무공이 맞긴 한 거냐?」
‘신력의 묘리라는 거지.’
불사신검이 일평생을 바쳐서 만든 태음경.
그 세 번째 경지인 신력(身力)의 묘리를 이강이 진작 깨우쳤을 줄은 몰랐을 테니.
“오오…… 대단해.”
“말라 보이는데…….”
이강을 향해 감탄이 터져 나왔다.
시험관도 눈을 크게 뜨고 이강이 외나무다리를 건너기를 기다렸다.
아무도 거기서 이강이 바위를 휙 던져 버릴 줄은 몰랐다.
바위는 외나무다리를 가로질러 그대로 건너편의 모래밭에 떨어졌다.
콰아앙!
어찌나 무거웠는지, 굉음과 함께 모래가 확 솟아올랐다.
이번에는 감탄조차 터져 나오지 않았다.
“하, 합격!”
시험관만이 그렇게 말하며 깃발을 들어 올렸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