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144)
144화 아귀선충 (2)
오행총의 설계자는 입장한 자들이 굶주리기를 원했을 것이다.
아귀선충이라는 수천 마리의 벌레들은 냄새로 세상을 본다. 죽은 고기, 피의 향을 결코 놓치지 않는다.
놈들의 표적이 되지 않으려면 건량을 버리고 서둘러 달리는 것이 중요했다.
괜히 아귀선충을 베어 죽였다가는 놈의 체액이 뿜는 썩은 내가 주변의 동족들을 끌어들인다.
몰려드는 놈들을 잡다가 생채기가 나서 피라도 흘리면 더 큰 일이다. 아귀선충은 육포의 고린내보다 비릿한 혈향을 더 좋아하기 때문이다.
이강 일행은 훌륭하게 건량을 지켜 냈지만 모두가 그러지는 못했다.
오히려 재빨리 건량을 버린 남궁신의 조 같은 경우에는 상황 판단이 빨랐다고 할 수 있었다.
그들은 꽁무니에 불이 붙은 것처럼 달려서 토(土) 자가 쓰여 있는 방으로 들어왔다. 남궁신이 먼저 입장한 그 통로였다.
그러나 모두가 만족하지는 못했다.
“남궁 소협!”
진령도방의 양구전이라고 했나. 시골 작은 문파 출신의 후기지수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덩치가 큰 자가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분노하니 제법 위압감이 있었다.
검에 묻은 아귀선충의 피를 닦던 남궁신이 고개를 들었다.
“왜 그랬소!”
“뭐가 말이오.”
분노한 양구전과 달리, 남궁신의 표정은 건조하기 그지없었다.
그것이 양구전의 속을 더 뒤집어 놨다.
“왜 말을 안 해 주었냐는 말이오!”
“말?”
“저 벌레들이 노리던 것이 우리의 건량이라는 것을!”
“나도 몰랐던 일이오. 보다 보니 알아낸 거지.”
“알아냈을 때 언질이라도 해 주면 되지 않았냐는 말이오.”
남궁신은 주저하지 않고 제 건량을 전부 버렸다. 냄새가 짙은 육포는 물론이고 찐 쌀까지 주저 없이.
그리고는 아귀선충들을 지나쳐서 홀로 걸어 나갔다.
양구전이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그의 얼굴에는 피가 튀어 있었다.
그 자신의 피는 아니었다.
“한마디 말만 해 줬으면 그 친구는 죽지 않았을 텐데!”
첫 번째 희생자가 나왔다.
운이 나쁘게 아귀선충의 앞다리에 발목이 찢어진 자였다. 자신이 벤 벌레의 체액을 흠뻑 뒤집어쓴 그는 순식간에 벌레들에게 뒤덮였다.
양구전은 하필 그 옆에 있었다.
벌레들의 틈 속에서 버둥거리던 팔과 확 튄 피의 뜨거움이 뇌리에 새겨졌다.
아무리 죽음에 익숙할 무인이라도 상상하지 못한, 끔찍한 죽음이었다.
“조금만 미리 알려 줬으면!”
“오행총에 들어오기 전에도 말했지만…….”
남궁신은 선량한 얼굴에서 나왔다고는 믿기 어려울 만큼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나는 그대들을 이끌어 주지 않을 거요. 목숨은 스스로 간수해야 하는 것이니.”
“으윽…….”
“내게 책임을 요구하지 말고 각자도생(各自圖生)하시오. 게다가 죽은 그를 도울 수 있던 건 당신 아니었소?”
“이 잔인한 놈!”
양구전이 참지 못하고 도병을 움켜쥐고, 남궁신의 눈빛이 번쩍했다.
피를 보지 않은 것은 매화난만 화소소가 개입했기 때문이었다.
“그만들 하시죠.”
검을 잡고 있는 매화검수를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신풍검 옥자청까지 나서서 분위기를 식혔다.
“남궁 소협이 건량을 버리는 방법을 알아냈기에 우리가 무사히 지나온 겁니다.”
“맞아요. 양 소협도 남궁 소협 덕택에 빠져나올 수 있었잖아요.”
양구전은 입을 다물었다.
확실히, 상황을 타개한 것은 남궁신의 방법을 모방한 덕택이었다.
다만 심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뿐.
씩씩거리면서도 그는 제자리로 돌아갔다.
남궁신은 검의 체액을 완전히 닦아 낸 뒤,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는 통로의 안쪽으로 먼저 나아가기 시작했다. 쉬고 있던 사람들은 당황해서 일어났다.
화소소는 한숨을 쉬며 그런 남궁신을 따라갔다.
“양 소협의 말이 아예 틀린 것은 아니에요. 함께하는 이상 언질을 주면 좋겠군요. 이렇게 갑자기 출발할 때도.”
“자꾸 한 말을 반복하게 되는군.”
남궁신은 고개를 돌려 화소소를 응시했다.
“나는 혼자서 들어가도 상관없소. 따라오는 것은 그대들의 자유지만 그 이상은…….”
그는 화산파의 후기지수에게도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화소소는 눈을 찌푸렸지만 더 이상 말을 얹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오행총에 들어갈 때만 해도 모두 들떠 있었다.
같은 나이대의 정파 후기지수들이 모여 있으니 분위기도 좋을 것 같았다.
오행신존이란 전설적인 무인의 유산을 찾을 생각에 화소소마저 기대했다.
하지만 현실은 이리도 잔혹한 법이다.
후기지수들은 거무죽죽한 표정으로 걸었다.
전화위복이라고 해야 할까. 그들의 욕망에 불을 붙이는 일이 일어났다.
좁았던 통로가 확 넓어졌다.
“저, 저건……!”
누군가가 외쳤다.
천장에 야명주가 박힌 곳이었다.
좌측 전방에 석제 단상이 세워져 있었다.
그 위에는 척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죽편(竹片) 뭉치와 금덩이 하나가 놓여 있었다. 야명주의 빛을 받아 상서로워 보이는 금덩이였다.
금괴가 아무리 귀하다곤 하나 후기지수들의 관심은 금이 아니었다.
“설마, 오행신존의 무공……!”
누군가가 그리 외쳤다.
저 볼품없어 보이는 죽편의 정체가 무엇일까.
후기지수들은 서둘러 석제 단상의 앞으로 다가갔다.
하지만 일정 거리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은 없었다.
서로가 서로를 경계한 것도 있었지만, 그 앞에 있는 문구가 그들을 멈췄다.
아귀선충이 출현하기 전에도 저런 문구를 읽었다.
그릇이 작은 자들은 토쇄지에 만족하고 돌아가라.
토쇄지(土碎指).
아무리 오행신존이 오래전에 활약한 고수라곤 하지만, 오행총에 들어온 자들은 전부 오행신존의 기록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이곳에서 그 무공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없었다.
토쇄지는 지법(指法)이다. 세상에 절세의 지법이 많다곤 하나, 그것은 아주 독특한 무공이었다.
오행신존의 손가락에 걸린 것들은 아주 독특하고 잔인하게 파괴되었다.
후기지수들은 금괴에 남은 흔적을 보고 경악했다.
“토쇄지가 맞아……!”
금괴의 가운데 부분이 딱 손가락 두께만큼 파여 있었다.
강한 충격으로 금괴를 꿰뚫는 것은 지법의 고수라면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저렇게 두부를 파내듯 매끄러운 흔적은 낼 수 없다. 힘으로 낸 흔적이 아니다.
“금을 가루처럼…….”
더군다나 그 흔적에 남아 있는 금가루들은 분명 토쇄지의 흔적이다.
토쇄지가 할퀴고 지나간 상처는 저렇게 모래처럼 가루가 되어 남는다. 금이 아니라 사람의 육신을 지나가도 마찬가지다.
후기지수들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충격을 받아 안색이 어두웠던 양구전 역시 마찬가지였다.
“손대지 마세요!”
화소소가 그리 외쳤다.
모두의 주목을 받은 그녀는 손가락을 들어 다른 쪽을 가리켰다.
그쪽에는 다른 방으로 이어지는 통로가 뚫려 있었다.
“저 문구.”
문제는 그 위에도 문구가 적혀 있었다는 것.
더 나아가고자 하는 자는 들어오라.
토쇄지를 취한다면 들어올 수 없다. 들어온다면 토쇄지는 취할 수 없다.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내용이었다.
“기관이 설치된 것이 분명하군.”
신풍검 옥자청이 말했다.
후기지수들은 그제야 볼 수 있었다.
죽편이 놓인 단상의 위쪽에 기관의 흔적이 있었다. 통로 역시 마찬가지였다.
“죽편을 건드리면 내부로 들어갈 통로가 닫히고, 내부로 들어가면 토쇄지를 갖지 못하는 것인가.”
악취미적인 설계자의 의도가 드러났다.
이곳은 단순히 세상에 미련이 남았던 고수가 제 무공을 남기고 간 곳이 아니다.
후에 들어올 사람들을 시험하거나 괴롭힐 속셈이 훤했다.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는 게 문제였지만.
화소소가 입을 뗐다.
“설마, 지법 하나에 모든 것을 포기할 사람은 없겠지요.”
침묵이 가라앉았다.
오행신존의 무공은 어느 것 하나 탐나지 않을 것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의 궁극적 목표는 지법이 아니었다.
오행기를 전부 다뤘던 불가해의 업적. 오행신공(五行神功)이 가장 중요했다.
당연히 여기서 더 나아가는 것이 맞았다.
“매화난만 소저의 말씀이 옳으나…….”
문제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대문파 출신이 아닌 자들에게는 토쇄지 하나만 해도 절세무공이다.
세 명의 군소문파 후기지수들은 단상 앞을 떠나지 못했다.
“토쇄지도 분명 대단한 무공입니다.”
“무슨 생각이에요. 지법을 가져가려고요?”
“당장 그러겠다는 건 아니고…….”
“손 떼세요!”
매화난만이 차갑게 검병에 손을 얹었다.
절강에서 왔다는 후기지수는 얼른 손을 뗐다.
“만지려는 것이 아니라.”
“경고했습니다.”
“지금 우리를 겁박하는 겁니까?”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마찬가지로 단상 앞에 서 있던 양구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둘 다 챙기는 방법이 있을 겁니다. 통로에도 들어가고 죽편을 챙기는 방법이.”
“도박을 할 수는 없어요.”
“……그대들 대문파 출신은 모르겠지만. 우리는 토쇄지만 챙겨도 충분합니다.”
화소소가 눈을 찌푸렸다.
당장이라도, 검을 뽑을 준비는 했다.
“일단, 어떻게든 방법을 궁리하면…….”
무인들이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화소소와 옥자청은 토쇄지에 현혹되지 않았지만, 그들 역시 죽편과 후기지수들을 번갈아 보며 긴장했다.
설계자의 의도대로 후기지수들은 욕망에 빠졌다.
단 한 명만이, 그러한 갈등에서 자유로웠다.
저벅.
남궁신은 토쇄지 쪽으론 시선도 두지 않고 통로로 진입했다.
모두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쏠렸다.
덜컥.
기관 장치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고.
“안 돼애!”
양구전이 비명을 지르며 죽편에 손을 뻗치는 동시에. 천장에서 철벽이 내려앉았다.
꽈아아앙!
토쇄지를 얻을 방법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절세의 지법은 그들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남은 것은 검강으로도 뚫기 어려울 두꺼운 철벽뿐.
양구전은 철벽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분노했다.
“남궁신, 당신은 이번에도!”
그는 통로로 들어가고 있는 남궁신을 쫓았다.
분노한 그가 남궁신의 목덜미를 콱 잡아채려는 순간.
스겅-
검광이 번쩍이고 피가 튀었다.
“어억!”
양구전의 팔이 길게 베였다.
잘리지는 않았기에, 본능적으로 그가 제 도를 뽑아 들려는 순간.
차가운 칼날이 목에 닿았다.
“도를 뽑으면 이번엔 죽을 것이다.”
“어…….”
양구전은 입을 꾹 다물었다.
잘 벼려진 날이 목을 얕게 파고들어 피가 흘러서는 아니었다.
그를 내려다보는 남궁신의 눈빛에 푸른 빛이 번쩍여서도 아니었다.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정말 목숨을 잃게 되리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남궁신은 얼어붙은 양구전을 노려보다가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들어가죠.”
화소소가 그런 양구전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그녀는 통쾌함과 함께, 남궁신에 대한 불만 역시 느꼈다.
“쿨럭, 컥.”
저 앞에 가는 남궁신이 어째선지 격한 기침을 토해냈다.
옥자청이 화소소의 옆에서 한마디 거들었다.
“심지가 굳센 분이군요. 남궁소협은.”
“그러게요.”
“다른 통로로 들어간 후기지수들도 오행신존의 무공을 발견했을까요?”
그들이 신경 쓰이는 것은 그것이었다.
통로는 총 다섯 개. 토(土)의 통로에서는 토쇄지가 발견되었다.
그러면 다른 방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 의문을 해결할 기회는 생각보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찾아왔다.
휴식과 진입을 반복하면서 한 시진쯤 걸었을 때였나.
“잠깐.”
남궁신 대신 탐사조의 조장 역할을 하는 화소소가 손을 들었다.
일행은 일제히 멈춰 섰다.
조용히 걷던 남궁신도 순순히 멈췄다.
“인기척이 느껴집니다.”
남궁신과 화소소, 옥자청을 제외한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소리를 내지 않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다 보니 말소리가 들렸다.
“……대단…….”
“……여기서 기다려 보…….”
틀림없는 사람의 목소리다.
이 통로로 들어선 것은 남궁신 조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렇다면, 길이 합쳐진 것일까?
“……이강 사숙…….”
유수린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화소소는 인기척을 내야 할지, 아니면 조금 더 조용히 다가서야 할지 고민했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변한 것은 이어 나온 유수린의 한마디 때문이었다.
“……우리는 아주 운이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