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03)
203화 상천동 입구 (2)
사연 없는 악당은 없다고 한다.
천하의 악인에게도 까고 보면 동정할 여지가 있는, 구구절절한 사연이 있는 법이다.
담현처럼 어릴 적, 가족이 눈앞에서 마적단에게 살해당하거나.
불사신검처럼 실수로 아들을 칼로 찔러 죽였다든가.
혹은 누군가처럼 자신 때문에 일가족이 독초를 먹고 죽었거나.
그런 기구한 속사정 말이다.
그러나 청혜에게까지 그런 기막힌 사연이 있지는 않았다.
애초에 그는 천하의 악인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겉보기에는 성실하고 순해 보이지만, 속은 약간 비뚤어져 있고 욕심이 많으며, 조금 멍청할 뿐이었다.
물론 그가 그렇게 자란 데에도 이유는 있을 것이다.
호북성에서 제법 위세가 있는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배다른 형이 능력은 더 뛰어나다든가.
이곳 무당파에 입문한 것이 사실 후계 구도에 밀려나서라든가.
고수가 되고자 했는데 사실 무공에도 재능이 없었다든가.
내심 비천한 출신이라고 무시하던 사형이 훨씬 뛰어나다는 문제.
혹은 그래도 정을 주고 돌봤던 검제가 전인을 자신이 아니라 외부인으로 골랐던 일에 대한 배신감.
그것 외에도 청혜 나름대로는 억울할 만한 속사정이 있었지만…….
모두 상세히 언급할 만한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참으로 재미없고 시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치 청혜라는 인간처럼 말이다.
그딴 것을 궁금해할 사람은 오직 한 명.
믿고 있던 사제에게 마혈을 짚일 뻔했던 청수 정도나 그럴 터였다.
청수는 수면에 반사된 모습을 보고 얼른 몸을 비틀 수 있었다.
덕분에 청혜의 손가락은 뒷목의 천주혈을 찌르는 대신 조금 빗나갔다.
퍼벅-
다행히 온몸이 마비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내공이 담긴 점혈은 그 자체로 위력이 있다.
청수는 온몸이 짜릿해지는 통증을 참고 손발을 휘둘렀다.
몸에 익은 태극권의 투로가 펼쳐졌다.
양손으로 청혜를 밀어내는 것은 양가합수(兩加合手)의 초식이었다.
청혜는 대경실색해서 양팔을 교차해 막았다.
터엉-!
물보라를 일으키며 청혜가 밀려났다.
청수가 악을 질렀다.
“뭐, 뭐 하는 거냐!”
“…….”
“이 자식아! 대답 안 해!”
청수는 어마어마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청혜는 얼굴을 시뻘겋게 붉히며 부끄러워했다. 기습을 하긴 했지만 수치는 아는 듯했다.
“설마…… 너 혼자 가려고 그랬냐?”
청수의 추측이 아마 맞을 것이다.
“날 두고 가서, 네가 신공을 전수받으려고…….”
“……예! 그래요!”
청혜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사형은 배알도 없으니까 괜찮겠지만. 난 도저히 못 견디겠단 말이에요!”
“뭘 못 견뎌!”
“태사조가 어떻게 우리한테 그럴 수 있어요!”
청혜가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청수도 처음 보는 일이었다. 이토록 속에 단단한 응어리를 품고 있었단 말인가.
사제의 반란에 청수는 분노와 당혹을 동시에 느꼈다.
“태사조가 뭘 어쩌셨길래 지랄이냐! 우리에게 무공을 가르쳐 주시잖아!”
“알맹이만 쏙 빼 놨잖습니까. 허구한 날 구궁연환검이니, 소청검법이니!”
“우리가 아직 태극혜검을 배울 때가 안 된 것이겠지!”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요. 조사의 신공은요? 삼봉진인의 무공은 안 알려 주는 걸 보면 모르겠어요? 애초에 처음부터 그 불사신룡한테 주려 마음먹은 거라고요!”
청수는 그제야 청혜의 마음을 완전히 깨달았다.
사제는 태사조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있었다.
“벌써 몇 년이나, 노망난 태사조를 우리가 돌봤어요. 몸을 씻어 주고, 오줌싼 요를 빨아 주고. 얻어맞아 가면서.”
“그건…….”
“나는 팔다리가 부러진 적도 있었다고요. 그때 죽을 뻔한 거 알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나를 이렇게 헌신짝처럼…….”
이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순간은 지나갔다.
청수는 자신이 착각을 했어도 크게 했음을 깨달았다.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던 사제도 평범한 인간이었다.
동시에 속이 울컥 끓어올랐다.
“그래서 나를 기습했냐?”
“…….”
동시에 헛웃음도 나왔다.
모든 면에서 자신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했던 사제는, 사실 속 좁고 추한 인간이었다.
“이 새끼야, 너만 얻어맞았어?”
부아가 치밀었다.
“그때 내가 몸 날려서 안 막았으면 너 죽었어, 새끼야. 고마운 줄도 모르고 내 뒤통수를 쳐? 다쳤어도 내가 너보다 더 많이 다쳤어!”
담현의 말대로 청수는 밑바닥 출신이었다.
무당에 와서부터는 자제해 왔지만, 어릴 적부터 입이 걸었다.
“개호로잡놈, 빌어먹다 창자가 끊어져 뒈질 새끼야.”
평생 이런 욕을 들어 본 적 없는 청혜는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거지새끼들도 같은 거지 뒤통수는 안 친다. 이 씹새야!”
“허, 헉!”
청수가 물보라를 일으키며 달려왔다.
청혜도 기겁해서 양손을 들었지만, 이미 기세부터 밀린 참.
청수가 사형으로서의 위엄을 보일 듯한 순간이었다.
퍼버버벅-
공수가 교환되고 청수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조금 전, 뒷목을 찔린 것이 문제였다.
혈도에 침범한 청혜의 진기가 몸의 움직임을 방해했다. 뒷목에서 등허리까지의 근육이 꽉 수축되어서 몸놀림이 부자연스러웠다.
그래도 공수는 매섭게 이어졌다.
퍼버벅! 빠악!
청혜의 주먹이 청수의 안면을 강타했다. 주륵, 하고 코피가 나왔다.
청혜의 얼굴에 희미한 미소가 떠오르고, 청수는 과감히 박치기를 했다.
뻑-!
“커헉!”
청혜의 얼굴이 홱 젖혀졌다. 그의 코에서도 코피가 흘렀다.
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다행이지, 보통 망신스러운 일이 아니었다.
종래에는 난투극에 가깝게 변했다.
서로 진심을 다해 살수를 쓰려는 것도 아니니, 온몸이 흠뻑 젖고 얼굴에는 멍이 드는 정도였다.
“니 혼자 들어가서, 뭐 어쩌려고 이 멍청아!”
“어쩌긴요! 불사신룡을 추월해서…….”
“퍽이나 되겠다 빙신!”
청수가 번쩍 튀어 올라 청혜의 가슴팍을 걷어찼다.
청혜는 몸을 휙 당기면서 충격을 흘리곤, 청수의 무게중심을 무너뜨렸다.
청수는 물속에 풍덩 빠졌다. 청혜가 그 위로 달려들었다.
“청림의 그 괴팍한 놈하고 거래를 했잖아요!”
“무슨 거래를 해! 푸웁!”
“뻔하지. 사형이 이겨서 장삼봉의 무공을 공유하기로 한 거죠? 그거 단전 폐쇄감이에요!”
“푸엇, 지랄!”
청수와 청혜는 거세게도 첨벙대며 개싸움, 아니, 물싸움을 이어 갔다.
“컥! 내가 너 같은 새끼인 줄 알아!”
담현이 청수에게 준 것은 물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먼 거리를 관측할 수 있는 천리경(千里鏡). 또 하나는 용도를 알 수 없는 작은 금속 통.
금속 통은 청수의 허리춤에 묶여 있었는데, 통에서부터 쭉 삐져나온 붉은 끈에는 당길 수 있도록 고리가 달려 있었다.
사실 이게 천리경보다 훨씬 중요한 물건이었다.
청혜도 그것을 눈치챘다.
“그건 뭐에 쓰는 물건인데요! 쿠억!”
“이건…….”
청수 역시 물건의 정확한 용도를 알지 못했다.
담현은 그저 음험하게 웃으며 말했을 뿐이다.
‘이게 길을 비춰 줄 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네? 무슨…….’
‘분명 무언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없을 때. 무언가 술법적인 것들이 널 막을 때 그 고리를 당겨. 어지간한 술법이나 기문진은 다 깨질 거야. 염무신통이란 걸 본떠 만든 물건인데, 독이 들어 있는 건 당연히 아니고.’
담현은 승부욕이 솟은 듯한 얼굴이었다.
‘이쪽으론 내가 장삼봉보다 나을 수도 있지.’
광오한 말이었지만, 그 표정이 기세등등했다.
청혜는 금속 통의 용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빼앗으려 했다.
“크윽, 놔 이 자식아!”
“으아아아!”
막무가내로 발버둥 치는데, 하필이면 청혜의 손가락이 고리에 툭 걸렸다.
그 중요한 물건을 허리춤에 묶은 것은 분명 청수의 실수였다.
고리에 달린 노끈이 팽팽해지는가 싶더니, 금속 통에서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퓩!
신호탄이기라도 한 듯, 무언가 툭 튀어나왔다.
수면을 뚫고 퐁 튀어 오른 노란색 무언가.
청혜와 청수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돌아갔다.
정체는 명확해 보였다.
“……부적?”
샛노란 괴황지(槐黃紙)에 붉은 경면주사(鏡面朱砂)로 진언을 적어 둔, 손가락만큼 작은 부적 수백 장.
그것이 허공으로 튀어 오르더니, 새하얀 빛을 내며 불타기 시작했다.
치지지지지직!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듯했다.
그 빛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얗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또한, 빛이 몹시도 신묘한 효과를 내었다는 점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츠츠츠-
가장 먼저, 이강이 사라졌던 그 지점에서 변화가 생겼다.
덜컥-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계곡 바닥에 구멍이 뻥 뚫렸다.
그곳이 상천동의 입구임이 틀림없었다.
청혜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밝아졌다.
하지만 청수는 그렇지 못했다.
부적들이 빛을 내면서 세상에 드러낸 다른 것들이 더 있었다.
계곡의 바위 위.
그리고, 바로 뒤에 있던 나무 위.
또한, 어두운 그림자 속.
빛은 그 안에 숨어 있던 것들을 모두 강제로 드러냈다.
회색 두건 같은 것을 몸에 뒤집어쓰고 있는, 눈동자가 새카만 괴인들. 망혼과 흑암의 명을 받고 무당파에 잠입했던 은잠귀(隱潛鬼)들이 그 정체였다.
그들은 검제의 눈까지 속이고 이곳에서 기다리고 있던 것이다.
술법(術法)의 영역에 닿은 은형술이기에 기척을 숨기고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담현의 발명품에 모습이 드러났다.
청수가 얼굴을 굳히고 외쳤다.
“누, 누구냐!”
하지만 목소리에는 충분히 힘이 없었다.
은잠귀 다섯의 모습은 그만큼 공포스러운 것이었다.
팔다리는 길쭉했고 두건의 틈으로 엿보이는 눈동자는 흑요석처럼 검었다.
그들은 서로 시선을 교환하며 전음을 나눴다.
그러곤 일제히 허리춤에서 기묘한 모양의 곡도를 꺼냈다.
스르릉-
두 뼘 길이의 검날은 크게 휘어 있었고, 잿가루를 발랐는지 어두웠다. 좀처럼 드문 이국적인 모양새였는데 용도는 확실해 보였다.
일격필살을 노리는 살수(殺手)의 칼이었다.
“합!”
청수가 요란한 기합과 함께 검을 뽑았다. 청혜도 마찬가지였다.
그에 대비되게 은잠귀들은 조용히 포위망을 좁힐 뿐이었다.
고함을 질렀지만 주변에 사람들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나타날 사람이 있었다면 진작 청혜와 다투던 중에 나타났으리라.
“어떤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감히 무당의 영역을 침범하다니…… 정체를 밝혀라!”
은잠귀들의 우두머리는 청수를 무시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네 명의 은잠귀들이 동시에 달려들었다.
청수의 안색이 새하얘졌다.
“큭…….”
하지만, 곧 표정을 굳히고 검을 움켜잡았다.
그 역시 무당의 제자였다. 검제의 가르침을 받은 검수로서 싸우기도 전에 겁먹을 수는 없었다.
청수는 구궁연환검의 검세를 펼쳤다.
투로를 밟고, 물을 가르며 느릿한 보법을 이어 간다. 등은 사제인 청혜에게 맡겼다.
가장 앞서서 달려오는 은잠귀를 향해 검을 중단세로 질렀다.
저런 곡도보다야 무당의 송문검이 훨씬 길었다.
휘이익-
정직하지만 충분히 날카로운 검이 허공을 가로질렀다.
은잠귀가 곡도를 매섭게 휘둘렀지만, 청수의 검은 적절한 순간에 각도를 바꾸었다.
카각-!
은잠귀의 공격이 막혔다.
하지만 청수는 곧 대경실색했다.
은잠귀가 휘두른 팔꿈치, 그곳에서부터 칼날이 쑤욱 튀어나왔기 때문이다.
청수의 안면이 위아래로 갈라질 뻔한 순간.
누군가가 청수의 목덜미를 홱 잡아챘다.
곡도는 청수의 코앞을 스쳤다. 칼날에 발린 독 비린내를 맡을 수 있을 정도였다.
순간, 청혜가 도운 걸까 생각했지만.
“뭐야 이건.”
청수의 목숨을 구한 것은 어느샌가 나타난 이강이었다.
이강의 검이 은잠귀의 가슴을 꿰뚫었다.
푸욱-
놀랍도록 쾌속한 일격이었다.
“바깥에서 투닥거리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물벼락이 떨어지고.”
이강의 몸은 물에 흠뻑 젖어 있었다.
대체 언제 상천동에서 나온 것일까.
“척 봐도 수상한 놈들이 나타났구나.”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는 것이 무척 짜증스러워 보였지만.
“뭐 해, 빨리 칼 들어라.”
“네, 네에!”
청수의 눈에는 이강이 구세주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