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46)
246화 칠대선, 수신호위 (1)
이강은 유성아를 들고 있었다.
본디 황궁에서는 검을 패용하고 다닐 수 없지만, 계영왕은 자신의 입김을 통해서 이강에게 검을 돌려주었다.
이미 손에 완벽하게 익어 버린 묵직함이 느껴졌다.
처음 유성아를 들었을 때 그 무게에 당황했던 것을 떠올리면 장족의 발전이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이강은 검을 앞으로 쭉 빼 들고 있다.
몸의 무게중심을 앞발에 거의 전부 싣고 팔을 곧게 편 자세.
근력이 부족한 자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뻗은 팔이 부들부들 떨릴 것이다.
하지만 이강은 완벽하게 부동(不動)을 이루었다.
손목까지 최대한 뻗은 지금 이 자세는 몸이 일직선으로 신전(伸展)된 상태이다.
즉, 몸을 뒤로 빼지 않는 이상 움직이려고 해도 움직일 수 없다. 검을 한계까지 찔러 냈기 때문이었다.
이강의 눈꺼풀이 살짝 떨리고. 늘어진 호흡마저 일순 멈추었다.
투웅!
검이 펄떡 튕겼다.
분명 손을 움직인 것도 아니었는데, 검은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였다.
이것이 이기어검술의 시작인가.
그렇다면 기뻐해야 마땅하겠지만, 이강의 표정은 영 좋지 않았다.
「허공섭물(虛空攝物)에 대해 어찌 생각하시오?」
장삼봉이 진중한 어투로 물었다.
이곳은 영소궁 내에서도 사람의 눈이 없는 곳이었다. 창궁선생의 배려로 이곳 실내를 연무장처럼 쓸 수 있게 되었다.
‘……내공을 이용해서 물체를 끌어당기는 일 아닙니까.’
허공섭물은 마치 염동력과 같은 수법이었다.
고수들이 손을 뻗치면 술잔이 빨려 들어가듯 손에 잡히고, 손을 휙 저었더니 열려 있던 문이 쾅 닫힌다거나 하는 것도 모두 허공섭물에 기초한 것이었다.
「도장은 허공섭물이 가능하오?」
‘……예.’
장삼봉은 이미 몇 번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초절정 고수가 된 뒤, 이강은 허공섭물의 술수를 사용할 수 있었다. 특급 서가에서 무진뇌정경을 끌어당긴 것도 허공섭물이었다.
하지만 장삼봉이 굳이 한 번 더 물어본 데는 다른 이유가 있을 터.
「그래서 그럴 것이오. 도장은 허공섭물과 어검술을 혼동하고 있소.」
“…….”
「도장의 몸에 있는 내공과 진원진기는 곧 정(精).」
이강의 단전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내공.
「그것을 검에 담는 것이 기(氣).」
검기를 피워올리고, 그것을 응축하여 검강을 빚어 내는 것은 기의 작용이다.
허공섭물 또한 마찬가지다. 거리가 떨어진 물건을 움직이는 것은 기의 작용이다.
「도장이 검에 담아야 할 것은 기가 아니라 신(神)이외다. 허허…….」
‘쉽지 않군요.’
「우선 조금 쉬는 게 좋을 것 같소.」
이강은 얌전하게 장삼봉의 말에 따랐다.
검을 내려놓고 벽에 기대어 앉는다. 숨은 어느새 거칠어져 있었다. 몸이 힘들었다기보다는 심력의 소모가 극심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그리 흐트러져 있지 않았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몸에 밴 행동거지였다.
힘들어도 바닥에 드러눕거나, 거칠게 옷을 풀어헤치지 않는 기본적인 품위. 지치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런 이강을 장삼봉은 묘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거참. 이상하단 말이지.」
‘뭐가 말입니까?’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쉬란다고 바로 쉬는가? 조금 더 해 보겠습니다! 하고 말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쉬라고 말씀하신 건 진인이신데 왜 뭐라 그러십니까.’
이강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자, 장삼봉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꾸짖는 것이 아닐세. 다만 신기해서 그러는 것이지.」
‘신기하다뇨?’
「도장은 이상한 사람이야.」
이강은 눈을 찡그렸다.
이상하다니, 장삼봉에게 들을 말은 아니었다.
‘저같이 상식 있고 평범한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다고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상식……? 평범? 으허허허.」
‘진심인데요.’
「……정말 그렇게 생각한다니 안타깝기 그지없구려.」
이강은 피식 웃었다.
장삼봉에게서 불사신검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도장은 무학에 대해 어찌 생각하오?」
‘무슨 말씀이십니까.’
「검을 사랑하오? 무학을 익힐 때 행복하더이까?」
이강은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아니요.’
그는 무공광이 아니었다. 검을 수련하는 것이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나, 검을 사랑한다고 느낀 적은 없었다.
어쩐지 씁쓸한 표정으로 장삼봉이 말했다.
「그대의 조상이 도장에게 천재라고 말씀하셨다지.」
‘그러셨……죠.’
「이해가 되는군. 도장은 틀림없이 그러한 재능을 가지고 있소이다.」
영 칭찬 같지만은 않은 말이었다.
이어진 이야기를 통해 왜 그런 기분이 들었는지 알 수 있었다.
「도장이 검과 무공을 배우는 이유는 무엇이오?」
‘살아남기 위해서요. 몸을 고치고, 위협이 되는 자들을 상대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은 명확히 아시는군. 그래, 그것은 무(武)를 수단으로 여긴다는 뜻이지.」
‘…….’
「그래서는 대성을 이루지 못하오. 그저 적당한 수준을 벗어날 수 없지.」
이강에게 무공은 수단이다.
생존을 위한 것이고, 가까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한 도구다.
사실 그리 특이한 일은 아니었다.
강호의 무인 중 대부분이 무공을 수단으로 쓴다.
생존을 위해서, 혹은 입신양명을 위해서 무공을 익히는 것이다.
「진정 무의 극한을 쫓는 자만이. 그것이 삶의 본질인 자들만이 끝에 다가갈 수 있소이다.」
하지만 장삼봉은 그리 말했다.
검제처럼, 불사신검처럼, 무공이 수단이 아닌 목적이어야만 진정한 고수가 될 수 있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린 나이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으니 천재라는 단어 말고는 무어라 표현할까.」
허나, 이강은 증명했다.
겨우 20대 초반에 초절정의 경지에 올랐다.
후에 천하십대고수에 들 것은 분명하고, 능히 천하제일인을 노릴 만한 속도였다.
「다만, 이 이후로는 다를 것이오.」
‘절대지경을 말씀하십니까.’
「절대지경이라 함은, 인간의 몸으로 무의 화신이 되고자 하는 과정이외다.」
그리 과장되진 않은 말이었다.
「아무리 도장이라도 그런 물렁한 마음가짐으로는 절대지경으로 오를 수 없소. 내 확신하지.」
‘…….’
「실망스럽소이까?」
이강은 조용히 침묵하더니 미소 지었다.
‘이제 초절정에 오른 지 얼마나 되었다고 절대지경을 운운하겠습니까.’
「그런 태도가 문제인데……. 거기서는 그럴 것이 아니라 ‘내가 절대지경에 오르는지 못 오르는지 한번 확인해 봐라!’ 하고 호승심을 불태워야 할 때가 아닌가.」
이강은 대답하는 대신 옷을 털며 일어섰다.
‘다시 해 보겠습니다.’
그러곤 검을 치켜들었다.
숨을 조금 골랐으니, 다시 이기어검술의 연습을 하기 위함이었다.
장삼봉은 쓴웃음을 지었다.
이강은 분명 검을 수단으로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가 어찌 이토록 진심인 얼굴을 할 수 있을까.
이강에게는 분명 가능성의 씨앗이 있었다. 장삼봉은 그것 역시 확신했다.
「내가 돕겠소이다. 다시 한번 해 보지.」
* * *
평화롭고 조용했던 시기는 사실 이강에게만 그랬다.
계영왕과 성역주는 하루하루 머리가 셀 정도로 심력을 썼다.
자금성의 권력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세밀하게 조정하고, 내 편과 내 편이 아닌 자들을 철저하게 분류한다.
칠대선을 베어 죽이고 황제를 구출한다는 계획은 결코 알려져선 안 됐다.
다른 세력이 보기에는 칠대선의 지금 자리를 계영왕과 성역주가 차지하겠다는 것과 다름없어 보일 테니.
그리고 아마, 이강과 장삼봉이 생각하기에는 어느 정도 그것이 맞았다.
「적어도 충심(忠心)이 그 진정한 동기라고는 생각하지 않소만.」
황제를 위한 충성심, 나라를 위한 충성심 때문에 이들이 그런 일을 계획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마 이대로 놔둘 수는 없다는 위기감이 크리라.
‘무슨 상관입니까. 오히려 충성심 운운하는 자들보다는 제 것을 지키려는 사람이 낫지요.’
「그렇긴 하오만…….」
‘이것을 신하의 의무라고 하거나, 황제를 위해서라고 꾸며 말했다면 저는 참여하지 않았을 겁니다. 음흉하기 그지없는 변명일 테니까요.’
자신과 자신의 것들을 지키기 위한 일이기 때문에, 계영왕과 성역주는 적어도 진심일 것이다.
이곳, 계영왕의 대전에 흐르는 묵직한 분위기만 보아도 그렇다.
“내각수보는 준비하신 것을 말하시게.”
늘 사람 좋은 미소를 띠고 있던 계영왕은 심각한 표정이었다. 성역주 역시 그랬다.
“환천궁의 궁녀 둘과 내관 둘을 포섭하여 동태를 파악 중입니다.”
“내관은 셋이 아니었던가.”
“경사방(敬事房) 소속의 내관들을 분류해서 포섭했는데, 그중 하나가 동창 계열의 첩형과 접선 중이었습니다.”
“제독태감의 입김이 닿아 있었군. 잘 처리했소?”
“예, 아예 환천궁에서 배제하였습니다. 또한 포섭한 정보원들은 서로의 신분을 모릅니다.”
“믿음직스럽구려.”
언젠가 검을 들고 날뛰어야 할 것은 이강이지만, 그 판을 깔아 주어야 할 것은 성역주였다.
성역주와 담판을 지은 뒤, 이강은 구체적인 계획을 듣게 되었다.
사직을 능멸하는 칠대선을 쳐 죽이고 황제를 구출할 방법.
그것은 나름 파격적인 방식이었다.
“만수절(萬壽節)이 얼마 남지 않았으니…….”
계영왕이 입에 담은 만수절(萬壽節)은 황제의 생일을 의미한다.
만수절에는 주변국들의 사신이 황제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찾아오는 날이니.
이런 시기라면 아무리 방탕한 경문제라도 환천궁에서 나와야 할 것이다.
당연히 그 준비를 위해서도 자금성이 어수선해질 것이다.
“그때가 기회지.”
계영왕은 경문제와 사이가 각별하다.
그는 매년 황제가 좋아할 만한 선물을 가져다 바쳤고, 경문제는 그런 계영왕과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었다.
만수절이 되기 전, 그 핑계를 삼아서 환천궁에 들어간다.
그리고 칠대선을 일제히 소탕한다는 것이 계획의 골자였다.
위험 요소는 당연히 있지만 나쁘지 않은 계획이었다.
어떻게 이강과 일행을 동반시킬지. 무기는 어떻게 구할지가 문제였지만, 세부 사항은 보완할 수 있었다.
“전하, 다만 일이 틀어질 경우를 대비하여 차선책을 마련해 두어야 합니다.”
성역주가 나지막이 말했다.
계영왕은 군왕(君王)의 신분이지만, 성역주 역시 관료들의 정점이나 다름없었다.
둘은 서로 존중하는 관계였다. 계영왕도 성역주의 말을 허투루 듣지 않았다.
“차선책이라 하면?”
“금의위와 동창. 둘 중 하나는 포섭해야 합니다.”
“음…….”
자금성의 세력 구도는 크게 세 개로 나눌 수 있었다.
그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성역주는 확신했다.
만약 나머지 두 세력이 합세해서 공격한다면 상대할 수 없다고.
최소한 한 세력은 합세해 주거나, 적어도 가만히 있어 줘야 한다.
“제독태감도, 부영후 도독도 쉬운 인물은 아니지만, 적어도 하나는 끌어들여야 합니다.”
만약 칠대선을 일거에 소탕하지 못하거나, 환천궁에서의 무력 행사가 발각된다면 금의위와 동창이 동시에 움직일 것이다.
그러면 역모(逆謀)의 죄를 뒤집어쓰고 오히려 당할 수도 있는 일.
“접선해 보시게.”
“그리하겠습니다.”
성역주는 담담하게 답했다.
그때, 누군가가 중요한 점을 지적했다.
“수신호위를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창궁선생이었다.
그 역시 처음부터 이 거사(巨事)에 참가하고 있었던 것이다.
“수신호위가 본디 해야 할 일은 천자의 곁에 머물며 폐하를 지키는 일. 하지만 여전히 칠대선은 당당히 굴고 있지요.”
“그렇지.”
“가능성을 생각해야 합니다. 수신호위가 사태를 그저 방관하고 있거나…… 혹은 의무를 저버리고 내통했다는 가능성을요.”
그 말에 장내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이강은 조용히 생각했다. 만약 수신호위가 황제를 배반했다면, 이강이 그를 상대해야 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강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수신호위의 경지는 어느 정도입니까?”
대답해 준 것은 같은 무인인 창궁선생이었다.
“절대지경에 준한다고 가정해야 합니다.”
절대지경에 준한다. 묘한 어투였다.
절대고수가 아무 데나 있는 것이 아닌 만큼, 강호도 아니고 이곳 황실에 틀어박혀 있는 수신호위가 절대고수일 확률이 높지는 않았다.
다만, 만약 수신호위가 절대지경이고 이강과 청림의 문도들을 적대한다면…….
“백 무사. 대적할 수 있겠는가?”
계영왕이 이강에게 물었고, 이강은 잠시 침묵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장삼봉이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도장이 죽게 두지 않을 것이오.」
“……쉽지는 않으나. 대적할 수 있을 겁니다.”
이강은 장삼봉을 믿고 그리 답했다.
계영왕은 내심 기꺼운 듯 말했다.
“허허, 수신호위를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네. 만일 칠대선이 폐하를 시해하려 했다면 당장 칠대선의 목이 떨어졌겠지. 적어도 그가 내통하지는 않을걸세.”
황제와 가까웠던 계영왕은 수신호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확신하는 듯했다.
하지만 이강은 내심 경계를 풀지 않았다.
어찌 되었든, 수상하기 그지없는 변수다.
“어찌 되었든 그게 계획의 골자였으나…….”
계영왕이 한숨을 푹 내쉬고 이마에 손을 짚었다.
문제가 생겼다.
아직 청림으로부터의 조력자가 오기도 전에 일어난 문제였다.
“……늘 조용히 계시던 분이 갑자기 무슨 생각이신지.”
환천궁에서 계영왕에게 연통이 왔다.
“폐하께서 당장 내일 환천궁으로 들라 하셨다.”
황제로부터, 오랜만에 환담을 나누고 싶으니 궁으로 들라 하며.
“좋은 기회 아니겠습니까?”
이강이 계영왕에게 말했다.
“지피지기면 백전불태라 하였습니다. 제 눈으로 칠대선이 어떤 자들인지 확인해 보겠습니다.”
“……허허, 백 무사의 기상이 믿음직스럽군.”
계영왕이 쓰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