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47)
247화 칠대선, 수신호위 (2)
환천궁.
똑- 똑- 똑-
분홍빛 액체가 사기그릇에 천천히 떨어진다.
사기 그릇 아래에는 작은 촛불이 켜져 있다.
조금씩 모이는 시약은 데워지면서 달큰한 향을 풍겼다.
그 향을 조금 맡았을 뿐인데, 머리가 아찔해졌다.
‘삼매초에서 추출한 미약의 효과가 괜찮군.’
칠대선의 수장, 이룡은 창문을 열어 환기를 했다.
그러곤 진기를 휘돌려서 몸에 들어온 미약의 독기를 뽑아냈다.
“후우우…….”
그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그것도 당연할 것이, 이룡은 무려 초절정의 고수였다. 칠대선의 나머지 방사들도 대부분 절정 이상의 고수였다.
방사(方士)인 동시에 무공의 고수라는 것은 흔하지 않은 일이다.
전 강호를 뒤져봐도 청림이나 마교 정도밖에 없을 것이다.
그랬다. 이룡은 마교의 방사였다.
그것도 진마궁(眞魔宮) 계파의 방사.
칠대선을 직접 강호로 보낸 것은 진마궁주였다.
부담감이 양어깨를 무겁게 짓눌렀지만, 이룡을 포함한 칠대선들은 사명감을 지니고 있었다.
‘돌아오실 천마를 위해…….’
마교는 크게 세 가지 계파로 나뉘어 있다.
천마의 부활을 믿지 않는 고령궁파.
부활을 믿긴 하지만, 소극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는 교주파.
부활을 믿고, 그것을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믿는 진마궁파.
칠대선은 그런 진마궁의 첨병이었다.
대업을 맡고 중원으로 나선 천마의 전사들.
그 예전 천마의 곁에서 그를 수호하던 천마백랑대의 마인들처럼…….
“대형.”
“……적웅.”
적웅이 이룡의 방에 들어오면서, 상념이 깨졌다.
“준비를 하고 계셨습니까?”
“그래, 이것이라면 환천궁 바깥에서도 황제를 다룰 수 있을 것이다.”
적웅의 얼굴에 감격의 빛이 떠올랐다.
이룡은 칠대선의 대형(大兄)으로서 부족함 없는 사내였다.
그는 강철같은 책임감과 의지를 발휘해서 칠대선 모두를 이끌었다.
강자존의 마교에서 칠대선이 이런 대업을 맡게 된 것은 모두 이룡이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가자.”
이룡은 저 먼 서역에서 가져온 시계(時計)를 살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으로 시간을 보는 방법조차 모를 만큼 복잡한 것이었다.
‘시간이 별로 없군.’
오늘은 황제가 계영왕을 부른 날이다.
황명을 거역할 일은 없으니, 조금 지나면 계영왕이 입궁할 것이다. 그의 자식인 세자와 상예현주를 데리고.
이룡이 들어선 방에는 칠대선 전원이 모여 있었다.
피는 나누지 않았지만 사명감으로 묶인 끈끈한 인연들이다.
이곳은 환천궁의 내원,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칠대선의 거처였다.
내관도 없고 궁녀도 없다.
심지어는 수신호위도 지켜보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룡은 평소에 꺼내지 않는 말을 입으로 뱉었다.
“곧, 마도천하가 열릴 것이다.”
모두가 이룡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기대감이 잔뜩 올라온 듯 흥분한 얼굴이다.
이룡은 형제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보았다.
이들이 천마를 부활시키려는 이유는, 부활한 천마가 마교를 일통하고 중원을 정복하기를 바람이다.
어쩌면 지금 시대에는 진부한 발상일지도 모른다.
마도천하라는 단어는 마교에서도 구태의연(舊態依然)한, 의미가 바랜 말처럼 사용한다.
하지만 적어도 이들만큼은 진심이었다.
“흑석계.”
이룡이 흑석계의 얼굴을 보았다.
“예, 대형.”
“너를 버린 곤륜은 무너질 것이다.”
한때 곤륜파의 제자였던 흑석계. 그는 자신을 죽이려던 사문에서 도망쳐 마교로 투신했다.
“추영호.”
“예에.”
“네 얼굴을 망가뜨린 자들도 죗값을 치를 것이다.”
본디 잘생겼던 추영호는, 지부대인의 딸과 정분이 났다가 얼굴에 뜨거운 물을 붓는 고문을 당했다.
흉하게 일그러진 얼굴, 믿었던 정인에게도 배신당한 그는 마교에 투신했다.
“적웅.”
“예!”
“너는…….”
이룡은 하나하나 눈을 마주 보고 대화를 나누었다.
이것은 의식(儀式)이었다.
마음속의 불꽃에 장작을 넣는 의식.
늘 그렇게 투지를 다져 왔다.
이들은 모두 세상에서 버림받았고, 그것에 절망하기보다는 복수하기를 바라는 자들이었다.
이룡 역시 마찬가지로…….
“소림 또한…….”
이룡이 머리카락으로 가려진 앞머리를 쓸어올리자. 흉측한 흉터가 나타났다.
한때 소림승의 상징인 계인이 찍혀 있었던 곳이고.
인두로 지져 남긴 파계(破契)의 흔적이었다.
“……다시 한번 불탈 것이다.”
그때까지 어떤 고난이 있을지는 모른다.
분명 칠대선 중 한둘쯤은 죽을 가능성이 크고, 어쩌면 천마를 부활시킨다고 해도 칠대선만은 황군에게 찢겨 죽을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결의를 다졌다.
“신마강림(神魔降臨).”
이룡이 선창하자.
칠대선의 나머지가 나지막이 후창했다.
“개세천하(蓋世天下)!”
차마 목소리를 키울 수는 없어서 아주 작게 읊조렸다.
그러나 언젠가 쩌렁쩌렁 외칠 수 있는 날이 오리라. 폐 속의 공기를 다 토해 낼 기세로.
“가자, 곧 계영왕과 그 자식들이 온다.”
이룡이 앞장섰다.
그들이 향한 곳은 황제의 침소였다.
살이 뒤룩뒤룩 찐 황제는 이곳 환천궁 내부에서도 걸어 다니기를 싫어했다.
원래도 게으르고 포악한 인간이었지만 이 정도로 망가진 데에는 칠대선의 탓이 크리라.
칠대선이 낸 인기척에 황제가 돌아보았다.
“어, 이룡!”
“폐하.”
누워 있다시피 기대어 있던 황제는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리다가 포기했다.
그런 황제에게 이룡과 위미현이 다가갔다.
“조심하소서, 옥체가 상할까 저어됩니다.”
“히히, 나는 괜찮아.”
우둔한 황제의 몸에서는 달큰한 비린내가 났다.
매일같이 향유로 몸을 닦고 미약을 먹어 대니 당연한 일이다.
이룡은 황제를 부축하는 척하다가 그의 몸 상태를 살폈다.
황제에게 마귀각화증이 도진 것은 예상외의 일이었다.
다만 돋아나려던 뿔을 깎고 목덜미의 각질을 벗겨 내고 나니 겉보기에는 멀쩡해 보였다.
황제가 눈을 찌푸리더니 푸둥푸둥 찐 팔뚝을 들어 보였다.
“자고 일어났더니 여기 팔뚝이 아프더라고.”
그 팔뚝에는 이룡이 직접 감았던 붕대가 매여 있었다.
“하하, 방중술에 너무 매진하셨나 봅니다. 옥체에 생채기가 난 것을 치료해 두었습니다.”
“흐, 어제 술을 너무 많이 마시기는 했지. 흐흐.”
팔뚝의 상처는 피를 뽑을 때 생긴 일이었다.
이룡은 저도 모르게 천장을 슬쩍 올려다보았다.
수신호위는 여전히 나타나지 않았다.
황제를 지키는 가장 가까운 검.
칠대선이 가장 경계했던 것은 원래 수신호위의 존재였다.
하지만 그 수신호위는 예상과는 전혀 다른 존재였다. 미리 어느 정도 정보를 들었음에도 놀랍기 그지없었다.
시선을 내린 이룡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전음을 보냈다.
-시선을 내려라. 위미현.
위미현 역시 저도 모르게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내렸다.
수신호위는 특수한 경우가 아니면 나타나지 않는다. 이룡도 여태 단 두 번만 마주쳤을 뿐이다.
첫 번째로는, 황제에게 살기(殺氣)를 드러내거나 황제의 목숨을 앗아 갈 만한 공격을 시도할 경우. 즉시 나타난다.
그러곤 문답무용으로 공격자를 처단한다.
그 속도나 무자비함은 초절정고수인 이룡조차 반응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황제를 지키는 임무에 충실한 등장 조건이었다.
우스운 것은, 황제를 죽이려 들지 않는다면 괜찮다는 것이다. 심지어 팔뚝을 베어 피를 채혈할 때도 수신호위는 가만히 있었다.
두 번째 경우는 수신호위의 위치를 먼저 찾아내는 것이다.
그가 숨어 있는 곳을 오래 응시한다거나 찾으려 하면 수신호위가 나타난다.
어둠 속의 칼날이라는 자신의 사명을 다하기 위함일까.
다만 황제를 해하려 할 때와는 달리, 먼저 공격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가만히 반응하지 않으면 곧 다시 자취를 감춘다.
‘분명 그것 말고도 수신호위가 개입하는 여러 조건이 있겠지.’
수신호위를 불러 낼 조건.
황제가 명령할 경우에도 수신호위는 등장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칠대선이 자칫 어떠한 선을 넘을 경우, 그는 더 이상 방관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지어야 했다.
그때였다.
평소에는 내원에 들어오지 못하는 금의위가 찾아왔다.
“폐하- 계영왕 전하가 당도하셨나이다.”
외부에서의 방문자가 왔기 때문이었다.
“들라 해라!”
대답은 황제 대신 이룡이 했다.
금의위 위사는 불쾌한 듯했지만 감히 내색하지 않고 돌아갔다.
그사이 이룡이 형제들에게 전음을 했다.
계영왕과 그 자식들을 상대로 어찌해야 할지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리고 마침내 계영왕이 당도했다.
“폐하! 저 영식입니다!”
품위도 잊었는지 스스로를 아명으로 자칭한 계영왕. 그는 놀랍게도 등장하자마자 만세를 올렸다.
“폐하의 용안을 오랜만에 보니 너무도 감격스럽나이다. 만세, 만세, 만만세!”
누군가가 황제에 대해 만세를 선창하면 주변의 사람들도 다 같이 만세를 후창해야 했다.
칠대선 역시 떨떠름한 태도로 만세를 후창했다.
“폐-하-!”
그리고 계영왕은 황제보다는 덜해도 뚱뚱하긴 한 몸으로 달려왔다.
그가 팔을 쫙 펴고 달려오자 황제도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오오! 영식!”
“그리웠나이다!”
그 뒤로 이루어진 것은 감격스러운 포옹이었다.
황제의 옥체에는 감히 손을 대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 둘은 달랐다.
계영왕이 격하게 기쁨을 표현했다.
어리숙한 황제는 내심 당황해하면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아 보였다.
“제가 만수절에 폐하께 진상할 선물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었사옵니다만.”
“선물? 내 영식의 선물은 누구보다 기다리고 있지. 여기 가져왔어?”
“허허, 선물은 만수절의 즐거움이지요. 오늘은 그저 부름을 받고 왔습니다.”
계영왕은 웃고 있었지만 눈빛은 차분했다.
저 태도 역시 꾸며 낸 것임을 이룡은 눈치챘다.
“아, 그래. 내가…… 내가 부른 거지.”
황제는 힐끔힐끔 이룡을 훔쳐봤다.
계영왕을 부르라고 간언한 것이 칠대선이었으니.
“앗, 이게 중요한 게 아니라. 폐하, 제 자식놈들입니다. 많이 컸지요?”
“아아. 그래. 예쁘장한 아이들이야.”
계영왕이 손짓하자 세자와 상예현주가 황제에게 절을 올렸다.
황제도 웃으며 절을 받았다.
“한번 보고 싶었거든. 영식의 아이들이.”
“후후후, 아직 부족하기만 한 아이들입니다.”
“그런데…… 저 젊은이는 누군가?”
황제의 시선은 상예현주 옆에서 부복하고 있는 이강을 향했다.
그가 환천궁으로 부른 것은 계영왕과 그의 자식들뿐이었다.
헌데 예고도 없이 이강이 동행한 상황.
황제가 불쾌할 수도 있는 순간이었지만, 계영왕이 시의적절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이번에 제 자식들을 가르치게 한 세자사입니다. 요즘 보기 드문 헌앙한 청년이기에 늘 함께 다니지요.”
“하하, 그래?”
“예에. 눈빛이 살아 있지 않습니까?”
분위기는 여전히 따뜻했다.
이강을 바라보는 황제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아주…….”
환천궁에 드나드는 것이 미녀뿐만이 아니라 잘생긴 남자들 또한 있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잘생겼네.”
그 순간, 이강의 주먹에 힘이 들어갔음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계영왕이 가볍게 툭 말했다.
“물러가라 할까요?”
“아니, 괜찮아. 나는 자네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부른 거긴 한데.”
“예에, 어떤 말씀을…….”
“이쪽으로 와서 같이 앉지.”
황제는 계영왕의 손을 잡고 당겼다.
이룡이 시기적절하게 끼어들었다.
“폐하, 나머지 분들은 어찌할지요.”
“흐음, 이곳을 안내해 주고 있어.”
“그리하겠나이다.”
칠대선이 각기 이강 일행에게 나누어 붙었다.
이강은 순식간에 상황을 판단했다.
‘흐음…….’
일행이 뿔뿔이 나눠질 순간이었다.
이강은 곧바로 행동에 나섰다.
우선 계영왕에게 전음을 보냈다.
-황제 폐하의 관자놀이와 목 뒤를 유심히 관찰하십시오. 손톱 뿌리의 색이 어떻게 변했는지도 살피셔야 합니다.
우선 황제의 마귀각화증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파악해야 했다.
“세자저하와 현주마마는 이쪽으로 오시지요.”
세자와 상예현주에게는 칠대선 중 두 명이 붙었다.
이강은 세자에게 전음을 보냈다.
-만일 위험한 상황이 생기시거든 언제든지 창룡파마후로 저를 불러주십시오.
세자와 상예현주는 대업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 하지만 세자 역시 내색하지 않고 얌전히 들었다.
그리고 이강의 경우.
“요명사라고 합니다.”
“세자사 백이강이라고 하오.”
칠대선 중 요명사라는 자가 붙었다.
요명사(窅冥蛇), 이름에 뱀이라는 글자가 붙은 만큼 음유한 기운이 풍기는 자였다.
그녀는 기묘한 도호를 외우며 허리를 숙였다.
이강 역시 도호로 답했다.
「도장.」
‘예.’
장삼봉이 경고하기도 전에 이강은 이미 무언가 불쾌한 기운을 느꼈다.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요명사가 다시 고개를 든 순간이었다.
길게 째진 눈에, 술법의 빛이 깃들어 있었다.
이강은 곧바로 손을 내밀어 요명사의 눈을 가렸다.
“……무슨.”
“눈에 먼지가 들어가셨군요.”
여전히 요명사의 눈을 손으로 덮은 채 그리 말했다.
“예에?”
황당해서 굳어 있던 그녀는 얼른 이강에게 떨어져서 눈을 비빈다.
“제,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녀의 눈에 뭉쳤던 술법의 기운은 흩어져 있었다.
「휴우…….」
‘당분간 존재감을 숨기십시오.’
「그래야겠네.」
장삼봉은 곧바로 모습을 감추었다.
요명사가 쓰려던 것은 분명 통찰안의 술수였다.
“따, 따라오시지요.”
그녀는 경계하는 눈빛으로 이강을 안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