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266)
266화 신마재림 (4)
그 시각, 숭산(嵩山).
향화객들로 늘 붐비던 소림사였지만 요즘은 그러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정도무림은 사도련과의 대립, 마교의 침공 예고 때문에 홍역을 앓고 있었다.
강호의 태산북두라는 소림이 가만히 있을 리는 없었다.
백팔나한(百八羅漢)이 하산했다.
그 뒤로 산문을 나설 만큼의 실력을 인정받은 제자 수백이 추가로 나섰다.
누군가는 사대 금강은 나서지 않았다거나, 현자배 고수들이 여전히 소림에 남았다며 소림의 진정성을 의심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림이 내보낸 전력은 다른 대문파들의 전력을 상회했다.
누가 뭐래도 마교의 숙적은 소림이었다.
장경각이 불탄 경험이 있는 소림은 마교의 발호에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모두 그리 믿었다.
지객당주는 영 불편한 기색이었다.
소림사 경내는 원칙적으로 금녀(禁女)의 구역이다.
그 오래되고 낡아빠진 규칙은 유명무실해졌지만 이곳은 특별한 구역 아닌가.
조사동(祖師洞)은 본디 외부인이 입장하지 않는다.
만약 상대가 무림맹의 급한 사절이 아니었다면, 또한 신승 무명대사가 조사동에서 머물고 있지 않았다면.
지객당주도 소희검(昭熙劍) 남궁여상을 이곳까지 데려오진 않았을 것이다.
“맹주님.”
“커흠.”
남궁세가는 멸문하다시피 했지만 모든 남궁무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당장 지난번 용봉지회에 참가했던 남궁신과 그의 누이 남궁여상은 무림맹에 소속되어 대단한 활약을 하고 있었다.
“돌아오셔야지요. 맹이 맹주님의 귀환을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놈의 맹주님 소리 좀 그만해라.”
“맹주님을 맹주님이라 부르지 어떻게 부르겠습니까.”
“차라리 스님이라 부르는 게 어떻겠는고? 혹은 그냥 땡중이라고 불러도 좋겠군. 클클.”
지객당주가 신승의 말에 헛기침을 했다.
하지만 천하의 무명대사가 그런 것에 신경을 쓸 리 없었다.
“제가 어찌 그런 말을 하겠습니까.”
남궁여상은 당황했지만 애써 침착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가문이 강제 봉문당한 뒤로도 절치부심 활약해 왔다.
그렇기에 맹에서도 신승을 설득하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소림을 찾아온 것이다.
철혈무정 백류산이 부맹주가 된 뒤, 신승은 점차 일선에서 물러났다.
원래도 무림맹의 정원이나 가꾸며 은자처럼 살았는데 이제는 아예 소림으로 돌아간 것이다.
“맹주 노릇도 너무 오래 했다. 내 오랜 친구는 신선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는데 나도 부처가 되어야 하지 않겠느냐?”
“커흐흐흐흠!”
지객당주가 헛기침이라고 하기도 민망할 만큼 거세게 눈치를 주었다.
소림방장과 같은 배분의 무명이 하기에는 너무도 경박한 발언 아닌가.
“그런데 도저히 부처는 못 될 것 같으니, 이제 맹주직을 백류산에게 넘겨주고자 한다.”
“……!”
남궁여상이 경악했다.
지객당주가 가만히 있는 것을 보면 아무래도 소림에는 진작 이야기를 해 둔 것 같았다.
“그런…….”
“돌아가서 그리 전하거라.”
맹주직에 관해서는 남궁여상이 뭐라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다만, 그녀는 무림맹 군사에게 한 가지 질문을 하도록 명받았다.
“세상이 흉흉합니다.”
“생이 고단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사도련이 준동하고 마교가 발호할 겁니다. 대사께서 매진하시고 있는 일이…… 그것보다 중요한 것입니까?”
신승은 소림 경내 깊숙한 곳에 은거했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유유자적 여생을 보내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었다. 다만, 그것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밝히지 않았다.
“……그래, 전혀 관계없는 일이지만 엇비슷하게 중요한 일이구나.”
“……!”
남궁여상은 입술을 깨물었다.
도대체 전 무림을 뒤흔들고 있는 문제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천기서생은 이럴 경우의 대답도 준비해 주었다.
“알겠습니다. 다만…… 군사가 제게 말씀하시길.”
“…….”
고개를 들어 신승을 본 남궁여상은 흠칫 놀랐다.
신승의 표정이 잔뜩 굳어 있었다.
늘 허허로이 웃던 그가 이렇게 정색하는 것은 처음 보는 일이었다.
그는 벌떡 일어나더니 장지문을 활짝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는 아직 밝은 하늘을 바라보았다.
“천살성(天殺星)이…….”
남궁여상이 당황해서 밖으로 따라 나와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당연히 맑은 하늘 말고는 보이는 게 없었다.
“돌아가거라.”
“……예?”
“지객당주.”
신승의 부름에 지객당주 법성이 답했다.
“예.”
“맹의 손님을 바깥으로 모시게.”
“그리하겠습니다.”
지객당주가 남궁여상을 바라보았다.
“따라오시게나.”
결코 반문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엄정한 태도.
남궁여상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떠났다.
그때까지, 신승은 계속 하늘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달뢰라마께 서한을 보내야겠군…….”
빛을 잃었던 천살성이 다시 깜빡이기 시작했다고.
* * *
그리고 정확히 같은 시간, 다른 위치
망혼이 있는 곳의 하늘은 어슴푸레했다.
“……어라?”
때문에 그가 이변을 느끼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을 때, 하늘에는 명확히 보였다.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별빛들 사이로 유독 반짝이는 붉은 별, 천살성(天殺星)이.
그의 얼굴에 달려 있는 은제 고리들이 쩔렁거렸다.
비틀린 입술이 만들고 있는 것은 분명 미소였다.
“귀령 그년이 기어코 일을 저질렀나.”
이 드넓은 중원의 절대자들이라면 분명 망혼처럼 이변을 느꼈을 것이다.
빛을 잃었던 천살성이 다시 기운을 얻었으니.
그러나, 그 천살성이 수백 년 전처럼 세상을 붉게 물들일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증거로 지금의 천살성은 희미하게 깜빡이고만 있었다.
“흑암 그놈도 느꼈겠지.”
망혼은 흑암이 어찌 나설지 궁금했다.
영혼의 적수를 찾아다니는 흑암.
이번에 검제를 놓치고 우울해하는 것 같아서 무척이나 보기 좋았었다.
과거의 괴물이 다시 등장했으니, 과연 그를 찾아갈지 궁금해졌다.
제법 재미있는 꼴이 될 텐데.
“귀령 그년 때문에 구경도 못 하고.”
망혼은 고리들을 짤랑대며 신경질을 냈다.
* * *
그리고 여러 절대자들이 천살성의 등장을 눈치챘다.
하나같이 초월에 가까운 자들이었다.
포달랍궁에서 환생을 반복하며 살아 있는 부처라 불리는 달뢰라마(達賴喇嘛)는 게송(偈頌)을 멈추고 침묵을 시작했다.
북해의 빙궁주는 혹한의 대지 위에서 늑대들과 함께 검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저 남만의 밀림에 사는 괴물 또한 수풀 속에 몸을 숨긴 채 비릿한 한숨을 내쉬었다.
그 외의 절대자들도 모두, 천마의 재림을 느꼈다.
* * *
그러나 그 누구보다 천마의 재림을 실감한 것은 바로 이강이었다.
그의 눈앞에 천마가 있었다.
칠대선의 막내, 지금은 목이 잘린 이룡이 예송이라 부르던 자였다.
원래는 조금 마른 체구의 평범한 청년이었다.
하지만, 바닥에서 몸을 세운 청년은 이제 결코 평범하게 보이지 않았다.
시작은 머리카락이 자라난 것이었다.
조금은 색소가 옅었던 머리카락이 칠흑색으로 물들었다.
뚝, 뚝-
머리카락에서는 검은 석유(石油) 같은 게 맺혀서 바닥에 흘렀다.
이강이 천마의 발치를 보았다. 검은 그림자가 유독 짙었다.
아니, 저것은 그림자가 아니었다.
「유형화된 마기(魔氣)일세.」
모든 마인들의 조종(祖宗).
수많은 마공의 대종사이자 능히 고금제일마(古今第一魔)라고 칭할 수 있는 사내.
천마가 고개를 들었다.
“……여긴?”
목소리에 쇳소리가 섞였다.
“황궁이다.”
“……그렇군. 지금은 언제냐.”
곧 목소리가 제대로 돌아왔다. 젊은 몸을 빌려서일까 의외로 평범한 말투였다.
“300년이 조금 안 지났지. 당신이 죽은 후로.”
“그런가…….”
천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제 머리 색처럼 칠흑 같은 눈동자가 마치 흑요석처럼 빛났다.
그도 대강 모든 것을 파악했으리라.
“일렀군, 너무 일렀어.”
이르다니, 부활이 일렀다는 말인가?
이강은 가만히 침묵했다.
천마는 의외로 적대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일어나자마자 광소를 터뜨리며 주변을 쳐부수고 마교로 돌아갈 줄 알았건만…….
하지만 장삼봉은 여전히 경계를 풀지 않았다.
“네놈.”
천마가 이강을 돌아보며 말했다.
“눈이 무엄하다. 내게 적의를 드러내는 것이냐?”
“…….”
이강은 온몸을 긴장시킨 상태였다.
검수답게, 마음속에 한 자루의 칼날을 세웠다고도 할 수 있었다.
“나는 내게 검을 들이댄 자를 살려 둔 적이 없었다.”
“…….”
“허나, 오늘은 다시 돌아온 날이니.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라. 숨을 죽이고 있지 않은 것처럼 굴면 용서하겠다.”
이강은 그 말에 비틀린 웃음을 지었다.
저것은 협박이 아니었다.
천마는 말 그대로 불쾌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은 그의 말대로 몸을 돌리고 고개를 숙일 수 없었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라 가능함의 문제였다.
검수로서 단련된 이강은 천마 앞에서 등을 보일 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거대한 대호(大虎)가 달려드는데 몸을 돌리라는 말과 다름없었다.
“그래, 벌주를 받고 싶나 보군.”
천마가 한 발자국 앞으로 다가왔다.
발소리 하나 나지 않은 가벼운 한 걸음이었다.
그러나 그다음 걸음을 뗀 순간.
이강은 발을 딛고 있는 땅바닥이 무너지는 듯한 위기감을 느꼈다.
「천마군림보! 어서 무위백일몽을!」
과감하게도, 손에서 운철검을 내팽개쳤다.
검 뒤에 몸을 숨긴다고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여태까지 천마의 일격을 막아 내기 위해 장삼봉에게 배운 절기를 빌린다.
이강의 손이 기묘한 원을 만듦과,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충격파가 터져 나오는 것은 동시였다.
* * *
수황전의 주변에는 이상현상(異常現像)이 생겼다.
하늘의 색이 변했던 것까지는 그저 불길한 정도였다.
하지만 그다음에 일어난 일은 주변의 사람들도 쉽게 넘길 수 없었다.
검게 물든 수황전이 시커먼 어둠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은 어둠이라는 단어 말고는 표현할 수 있는 게 없는 것이었다.
안개도, 연기도 아닌 것이 바닥에 깔렸다.
바닥에 깔린 정도였다면 괜찮았다. 종래에는 주변을 검게 물들여 시야를 가렸다.
보이는 것은 겨우 서너 걸음 앞 정도.
그 주변에 있던 금의위며 동창 무사들은 당황했다.
도독 부영후나 제독태감 후경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들은 참으로 한심한 선택을 했다.
“우선…… 물러가지.”
겁많은 후경이 먼저 그리했다.
“교위들은 위사들을 모아 집결하라!”
부영후도 그리 말하고 슬그머니 발을 뺐다.
새카만 어둠이 무서워서는 아니었다.
어둠이 그들의 권력을 가릴까 무서워서였다.
부영후는 동창의 무인들이 어둠을 틈타 자신을 죽일까 걱정했고, 제독태감은 이 어둠 속에서 금의위에게 포위되어 죽기를 두려워했다.
수황전의 지척에는, 그리하여 담현과 진무밖에 남지 않았다.
황제의 생사가 불분명한 지금 그 곁에 가장 가까운 자가 청림의 도인들이라니.
진무는 킬킬 웃는 담현을 나무랄 마음이 들지 않았다.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
수황전은 도무지 부수고 들어갈 수 없었다.
검강을 끌어올려 쾅쾅 두드려 봤지만 ‘결계’는 외부의 침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기다려 봐야지.”
“막내 사제만 믿고 기다리다니. 사형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니냐.”
“대사형만큼 이강 그놈을 애 취급하는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가…….”
진무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 그가 눈을 둥그렇게 떴다.
새카만 수황전의 외벽이 조금 변해 있었다.
불그스름한 기운이 도는 것 같더니, 벽면의 중앙 부분이 주황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진무는 본능적으로 검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점점 빛나기 시작하는 벽면에 한 손을 가져다 댔다.
“뜨거워…….”
“대사형!”
담현이 버럭 소리쳤다.
“물러나요!”
진무는 즉각 몸을 솟구쳤다.
하지만 조금 늦었다.
벽면은 진천뢰라도 폭발한 듯 내부에서부터 터져 나왔다.
콰아아앙!
“끄어억!”
진무는 휘익 튕겨 나갔다.
홀로 남은 담현이 벽에서 튀어나온 것을 바라봤다.
처음에는 시체인 줄 알았다.
하지만 사람이었다. 그것도 담현이 잘 아는.
“……이강?”
좀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사제는 처참한 모습이었다.
쓰러져서 꿈틀거리는 이강의 양팔은 기묘하게 꺾여 있었다. 소매가 터져 나갔고, 손바닥도 너덜너덜 찢겨져 있었다.
살아는 있는지 몸을 꿈틀거리며 경련한다.
그때, 담현의 품속에 있던 청호가 휙 튀어나왔다.
그러곤 이강의 발치 앞에 서서 수황전을 향해 이빨을 드러냈다.
“캬르르르…….”
작은 송곳니를 드러내며 적의를 내뿜는다. 마치 이강을 지키려는 것처럼.
청호의 희고 푸른 털에 파직거리는 푸른 불똥이 튄다.
담현은 그게 무슨 전조인지 알아챘다.
청호는 이강과 떨어진 사이에 두 가지 능력을 얻었다. 그중 하나를 사용하려는 것이다.
부서진 수황전의 벽면에서 걸어 나오는 사내로부터 이강을 지키기 위해.
저벅, 저벅-
담현은 재빨리 청호를 잡아서 품에 안았다. 그리고 훌쩍 물러났다.
청호가 저항하고 반항했지만, 담현은 청호를 놓아주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
청호가 찢겨 죽는 꼴을 볼 생각은 없었다.
담현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이강을 돌아봤다.
이강은 살아 있었다.
“……잘했네.”
어느새 부러지고 갈라진 손으로 새빨간 교룡의 심장을 꺼내 쥐고 있었다.
신비롭게도, 교룡의 심장은 산산이 부서져서 이강의 손바닥 안으로 흡수되었다.
담현은 눈치챘다.
저것은 엄밀하게 말해, 이강이 아니었다.
“내가…….”
맥없이 늘어져 있던 몸이 거짓말처럼 꼿꼿이 세워졌다.
부러진 양팔을 맞추고, 뒤로 꺾여 있던 손가락을 제자리로 돌려놓는다.
양손으로 취한 자세는 분명 태극권(太極拳).
어디 두고 왔는지 알 수 없었던 유성아가 뻥 뚫린 수황전에서 튀어나왔다.
그리고 살아 있는 것처럼 검무를 추며 이강의 몸을 빙글빙글 돈다.
“……그대의 사제를 지켜 주겠소.”
등선했다고 알려진 무당의 무신.
장삼봉(張三峰).
수백 년을 건너뛰어, 비로소 다시 천마를 마주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