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1)
31화 소류(小柳), 소화(小花)
무림의 문파가 세력을 불리는 방법은 대개 비슷하다. 문도를 받는 것이다.
어린 아이들을 입문시켜서 문파의 무공을 전수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돈 많은 외부인들을 속가제자로 삼아 무공을 가르치기도 한다.
마교는 교도를 받고, 개방은 거지를 끌어들인다. 소림사는 동자승을 키우니 인력 충원은 보통 외부로부터 한다.
그렇다면 백씨세가를 비롯한 칠대세가는 어떠할까. 당연히 이들은 평범한 문파들과 다르다.
엄연한 가족경영체제. 세가라는 것은 같은 성씨를 가진 가족 구성원들이다. 하지만 세가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백씨들은 백 명을 넘지 못한다.
대신 모두 고강한 무공을 가지고 있다 해도 겨우 그 정도로는 강호에서 위세를 부리지 못한다.
그렇기에 외부에서 빈객(賓客)을 기용한다. 가주나 백씨 무인의 이름 아래 모인 자들이다.
그들의 충성심과 무공 수위에 따라 요직에 앉혀서 부리기도 하는데, 비연대의 대주인 능지평이 그 예다.
그러나 그런 방식만으로는 부족해서 어린아이들을 문하로 받기도 한다.
집안이 넉넉하거나 백씨세가와 연을 맺고 싶어 하는 유복한 자제들. 혹은 반대로 이 세상에 정 붙일 곳이 없는 고아들.
소화와 소류는 고아 출신으로 세가에 들어왔다.
“제 나이가 열여덟. 언니도 동갑이었습니다.”
“어쩌다 소화가 언니가 되었지? 동갑인데.”
“고아였을 때부터 저를 챙겨 주었으니까요.”
고아 중 평범한 아이들은 소화처럼 시비가 되거나 하인 등으로 살아간다. 그리고 그들 중 무재가 있는 자들은 따로 무공을 가르친다.
“적룡단 생활이 쉽지만은 않을 텐데.”
“단주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습니다.”
소류는 그중 특출난 경우였다. 본디 고아 출신 중 무공을 배운다고 해도 하급 무사로서 살아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숙부인 백진태가 소류의 재능을 알아보면서 그녀의 운명이 바뀌었다.
평범한 사제관계는 아니었지만 그는 소류에게 최대한 많은 무공을 가르쳤다. 백씨에게만 허락되는 불사신공은 배우지 못했으면서도, 그녀는 겨우 10대 후반에 적룡단원이 되었다.
듣기를, 백진태는 몇 번이고 아쉬워했다고 한다. 자식인 백영일보다도 소류가 낫다며.
“……그래. 너라면 소화의 유품을 받을 자격이 있지.”
“헤아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 소류가 이강에게 부탁한 건 소화가 남긴 유품의 수습이었다.
소화가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은 많지 않았지만, 유품은 이강이 제 거처에 보관하고 있었다.
이강은 소류와 나란히 걸었다.
그녀는 경신의 묘리를 배운 것도 아닐 텐데 걸으면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졌다.
이강과 소류는 대화를 나누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거처까지의 길이 유독 멀게 느껴졌다.
「내가 다 어색하니 말이라도 해 보거라.」
불사신검까지 어색함을 느낀 듯했다.
‘할 말이 뭐 있겠습니까.’
「무인이라면 무공 이야기가 좋겠지. 어린아이지만 제법 재능이 있어 보이는구나.」
‘무공…….’
이강이 입을 열었다.
“숙부께 어떤 무공을 배웠느냐.”
“소양심법(少陽心法)을 위주로, 호연검(浩然劍)과 월영보(月影步)를 익혔습니다. 호위와 암행에 관련된 무공 위주로 배웠습니다.”
“음?”
적룡단의 임무와는 궤를 달리하는 무공들이었다.
“그건 비연대에서 주로 배우는 것 아니냐.”
“제가 단주님께 청한 것입니다. 소화 언니를 데리고 강호를 유람해 보고 싶었거든요. 언니를 지키기 위해 무공을 배웠습니다.”
“…….”
이강은 할 말을 잃었다.
분위기는 더욱 어색해졌다.
「얼굴의 흉터에 대해 물어보는 건 어떠냐.」
‘장난합니까?’
「좀 그렇지?」
불사신검도 민망한 듯 입맛을 다셨다.
그리고 이강을 구해 주려는 듯 아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형!”
그렇게 부르면서 멀리서 달려오는 사람은 다름 아닌 모용진이었다. 옆에는 하준이 함께였다.
“찾아다녔어요.”
이강은 모용진에게 여태 한 번도 보여 준 적 없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음. 뭐니?”
“왜 징그럽게 그렇게 웃고…… 하여튼.”
모용진은 잠시 움찔하더니 말을 이어 갔다.
“이번에 진 소저와 함께 청림에 간다면서요?”
“아 그렇지.”
이강이 청림에 방문하리라는 사실은 모용진과 백하준에게도 알려졌다.
“하준이랑 도깨비 잡기를 하기로 했거든요. 얘가 나는 절대 자기를 못 이긴다고 계속 그래서.”
“너는 나 한 대도 못 때릴걸.”
“훗, 비무하기 전에도 그렇게 건방졌지.”
이맘때의 아이들이 원래 그렇겠지만 모용진과 백하준도 금세 가까워졌다.
특히 모용탁이 모용세가로 돌아간 뒤에는 제법 서로 잘 어울리는 듯했다. 백하준은 여전히 무뚝뚝했지만 모용진이 질척대는 형식이었다.
“뭐? 그건 네 검이 훨씬 좋아서……!”
“그래서 검 필요 없는 도깨비 잡기를 해 보자는 거잖아.”
모용진이 황금제일루의 비무에서 이긴 것이 하준에게는 충격인 듯했다. 그 탓에 하준은 드물게 씨근덕대는 모습을 보였다.
이강이 투닥거리는 둘을 제지했다.
“됐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냐.”
“심판 좀 봐 줘요. 형이. 그리고 이긴 사람이 형이랑 붙는 거로!”
이들은 이강이 떠나기 전에 그것을 부탁하려는 듯했다. 이강 역시 흥미가 당겼다.
하지만 그 순간, 뒤통수에 서늘한 한기가 느껴졌다.
돌아보니 소류가 얌전히 속눈썹을 늘어뜨리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나야 상관없지만 지금은 말고. 내일 하도록 하자.”
“그럼 꼭이에요! 그동안 연습이나 해야겠다.”
모용진과 백하준은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뛰어서 사라졌다.
이강이 미소를 지으며 중얼거렸다.
“기운도 좋구만.”
“즐거워 보이십니다.”
“뭐? 어…… 그렇지.”
소류를 돌아보니 그녀는 여전히 이강의 시선을 피하고 있었다.
이강은 석연찮은 기분을 느끼며 계속 걸었다.
오늘따라 무슨 날이라도 되는 것인지, 이강의 앞에 또 누군가가 나타났다.
“강아!”
이강도 아니고, 강이라는 애칭으로 그를 부르는 사람은 한 명밖에 없었다.
팽무아가 체통도 잊고 담벼락을 훌쩍 뛰어넘어 이강을 가로막았다. 그 뒤로 진리연이 황망히 팽무아를 쫓아 나타났다.
“뭐냐.”
이강이 언짢게 물었지만 팽무아는 성큼성큼 다가와서 이강의 손을 붙잡았다.
“나도 데려가!”
이강은 그만 이마를 탁 짚고 말았다.
그가 진리연과 함께 먼저 청림으로 떠나겠다는 말을 했을 때 팽무아는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녀가 가장 따르는 것이 진리연이고, 가장 집착하는 것은 이강이었다. 그 둘이 한 번에 떠난다고 하니 불만이 많았다.
아쉬워할 줄은 알았지만 설마 따라가겠다고 할 줄이야.
“저번에도 잘 말해 줬잖아. 그건 어려울 것 같다니깐? 너는 차기 칠성지회 일로 우리 세가에 방문한 거지? 그런데 갑자기 네가 떠나면 팽가주께서 얼마나 실망하시겠어.”
이강은 애써 미소지으며 상냥하게 설명했다. 조금 귀찮기는 해도 팽무아는 착한 아이였다. 이강을 좋아해 주기 때문에 이러는 것이고 실제로 귀한 영약을 선물해 주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이강의 노력은 소용없었다.
“싫어! 따라갈 거야!”
“하하.”
이강이 헛웃음을 치고 도망을 준비할 때였다.
보다 못한 진리연이 팽무아를 뒤에서 안아 들었다.
진리연은 평균보다 키가 컸고 팽무아는 평균보다 키가 작았으니, 그녀는 꼼짝없이 진리연에게 구속되었다.
“얼른 도망가! 무아야, 가만히 있어!”
“잘 부탁드립니다, 진 소저. 가자, 소류.”
“강이 너!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 있어. 그리구 그 옆에 있는 애는 누구야!”
이강은 소류를 데리고 종종걸음으로 자리를 벗어났다.
“히잉, 나도 데려가라구.”
뒤에서 팽무아가 잉잉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이강은 애써 무시했다.
그리고 드디어, 이강의 거처 앞에 도착했다.
여태까지 조용히 있던 소류가 입을 열었다.
“사랑받으시는군요.”
“사랑까지야. 너도 가문에서 내 처지가 어떤지 알지 않느냐.”
소류는 침묵했다.
그 침묵에서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평범한 어린아이라면 눈치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강은 평범하지 않았다.
이강은 소류를 잠시 보더니 입을 열었다.
“기다려라, 소화의 유품을 가져오겠다.”
“기다리겠습니다.”
이강은 소류를 남겨 두고 방에 들어왔다.
유품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소화는 가지고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에, 이강도 작은 목함 하나에 그 유품들을 수습해 두었다.
이강이 목함을 챙겨 들었을 때였다.
「느낌이 좋지 않은 아이다. 어쩐지 좀 음침하기도 하고.」
‘소류 말입니까.’
「그래. 그리고 네게 말한 것 이외의 다른 무공들을 익히고 있어. 너를 보는 눈길도 곱지 않다.」
이강은 반박하지 않았다.
‘그러면 제가 곱게 보이겠습니까?’
그리고 모를 리가 없었다. 감정을 숨기고 있었지만 이강을 보는 소류의 눈에서는 원망이 느껴졌다.
세상에 의지할 곳은 언니 하나뿐이었으리라.
그런 언니와 생이별해서 무공을 배우고 있었는데, 어느 날 청천벽력같은 소식을 들었겠지.
언니가 시한부에다가 한심하기로 유명한 백이강을 지키다가 처참히 죽었다고.
이강에게 날 선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만 해도 훌륭한 일이었다.
‘소화의 하나뿐인 동생이니. 제가 이해해야지요. 챙겨 줘야 하는 일이고.’
「허허, 자손 앞가림이 더 바쁜데 무슨. 그러면 저 아이가 자손을 계속 원망해도 좋겠느냐?」
‘그래서 저 애 마음이 편하면 상관없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저는 청림으로 떠날 것이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소화의 동생이라면 원망을 받아도 상관없으리라. 한심한 놈이라고 눈총을 받는 일은 익숙했다. 적어도 이강 스스로 당당하기만 하다면 상관없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불사신검은 그런 이강의 말에 조용히 그를 응시했다.
「이강아.」
불사신검은 이강의 이름을 자주 부르지 않았다.
이강은 고개를 들었다.
‘예.’
「네가 틀렸다.」
‘……무슨 말입니까.’
「스스로를 숨기는 것은 좋다.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것도 좋다. 하지만,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친 아이의 뜻을 더럽히면 안 되지.」
‘제가 소화의 뜻을 더럽혔다고요?’
이강의 반문이 무의식적으로 날카로워졌다.
「목숨을 바쳐 지킨 사람이 한심한 놈이라면. 그것만큼 비참한 일이 없겠지. 소류라는 아이는, 당연히 언니가 구한 이강 네가 한심한 놈이라고 알고 있을 테고.」
‘…….’
「그 아이의 하나 남은 동생에게 그렇게 말하려는 것이냐. 네 언니가 살린 나는 그럴 가치가 없는 놈이라고. 하하 호호 웃으며 모든 것을 잊고 사는 속없는 놈이라고 말할 것이냐.」
‘그럴 리가…….’
「네 마음이 편하고자 스스로를 속이지는 말거라.」
불사신검의 눈은 투명했다.
이강은 그렇게 생각하며, 깊게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러고는, 유품이 담긴 상자를 들고 소류에게 돌아갔다.
소류는 여전히 공손하되 딱딱한 태도로 상자를 받아들었다.
“별것은 없다. 소화가 자주 쓰던 빗과 가락지, 그리고 목걸이 하나와 꽃신이다.”
“감사합니다.”
“내가 미우냐?”
“……네?”
갑작스러운 말에, 소류가 속눈썹을 치켜들었다.
“네 언니를 죽인 것이 나 같아 밉냐는 말이다.”
“그런 말은…….”
“소화의 희생 덕에 살아남은 주제에. 소화는 잊고 즐거이 사는 것 같아서 원망스럽나.”
이강의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하지만 그 내용은 직설적이었고 꾸밈이 없었다.
소류는 대답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내가 미우냐 물었다.”
“……예.”
그리고 소류는 답했다.
그녀의 목소리는 얕게 떨리고 있었다.
“밉습니다.”
이강은 곧바로 대꾸하려다가, 잠깐 숨을 골랐다.
“그러면, 내가 사죄하면서 살기를 바라느냐.”
“…….”
“매일 죽은 소화에게 참회하며, 절맥으로 요절해 죽을 그 날까지. 기껏 그 애가 준, 길어야 6년이라는 시간을 그렇게.”
“그렇지는…… 않습니다.”
“소류야.”
소류가 고개를 들어 이강의 눈을 바라보았다.
“소화는 죽었지만, 나는 잘 먹고 잘살 생각이다.”
“…….”
“그 애가 죽기 전에 약속했다. 포기하지 않기로. 절맥증도 고치고 무공도 배우고. 항주의 동정호도 구경하고 대해의 드넓음도 눈에 직접 담기로. 그리고 소화에게 말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소류의 눈동자에는 이강 자신의 눈이 비쳐 보였다
“그 애를 죽게 만든 놈을 찾아 죽일 생각이다.”
“공자님.”
이강이 고개를 돌렸다.
역시, 마음이 가벼울 수는 없었다.
“그냥, 말해 주고 싶었어. 소화가 구해 낸 내가 그리 한심하기만 한 놈은 아니다.”
어쩌면 소류에게 이렇게 말한 것도 그저 자기만족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런 이강의 등에 대고 소류가 말했다.
“공자님이 원망스러웠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심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구나.”
“거짓말이 아닙니다. 언니는…… 소화 언니는 늘 공자님 얘기밖에 안 했으니까요.”
이강이 소류를 돌아보자 소류는 품속에서 종이뭉치를 꺼내 건넸다.
“그게 무엇이냐.”
“언니가 제게 보낸 서찰 중 일부입니다.”
소화는 세가에서 받은 봉급을 거의 털어서 종이를 사곤 했다. 그리고 이강에게 졸라 글을 배워 서찰을 쓰곤 했다.
“내게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았는데, 네게 보낸 서찰이었구나.”
“언니가 서찰을 자주 보내는 탓에 저도 글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죠.”
소류의 입가에 아주 희미한 미소가 스쳤다.
“나는 이렇게 지낸다며, 늘 공자님과의 이야기를 말해 줬습니다.”
‘세가 사람들은 이강을 오해하고 있다.’
‘공자님은 달리기를 아주 못한다.’
‘나이는 어린데 은근히 어른스럽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하고, 세가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요리 솜씨가 좋다.’
‘마음이 올곧다.’
‘상냥하다.’
“질투 날 정도로 그런 이야기만 들었는데. 제가 어찌 공자님을 한심하다 여기겠어요.”
씁쓸하게 말하는 소류는 정말로 이강을 질투하는 듯했다.
그녀는 망설임을 떨쳐 내려는 듯, 그 서찰 뭉치를 이강에게 건넸다.
“가져가세요.”
“네게 중요한 것 아니더냐.”
“서찰은 그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공자님께서 보셔야 할 내용입니다.”
소화가 남긴 서찰, 편지.
이강은 지금 당장이라도 읽어 보고 싶었다.
봉투를 매만지던 이강은, 문득 그중 하나가 불룩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져 보니 딱딱한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이강은 조심스럽게 봉투를 열어 내용물을 꺼냈다.
“이건.”
호박색 보석이 박힌 반지였다.
이강이 설명을 요구하듯 소류를 바라봤다.
“서찰과 함께 동봉되어 있던 겁니다.”
“대체 왜 이런…… 아니, 됐다.”
서찰을 읽어 보면 되는 일이다.
그리고, 서찰을 읽어 내려가는 이강의 눈동자가 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