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2)
32화 청림으로 (1)
청림은 호남성의 산중에 있다.
중원이 드넓음을 생각하면 서안에서 아주 먼 거리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여정에 한 달은 잡아야 했다. 잘 정비된 관도만 지나갈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말 두 마리가 끄는 이두 마차가 한계였다.
출발을 서두른 것은 이강이었다. 그에게는 하루빨리 몸을 치료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까.
이강이 진리연과 함께 세가의 문을 나서는 날. 배웅을 나온 사람은 조촐했다. 가주와는 어젯밤 인사를 나눴고, 세가의 다른 가신들은 나오지 않았다. 백하준을 제외하고는 모두 외부인이었다. 모용진과 팽무아까지 총 셋.
“잘 다녀와요!”
이강은 인사를 건넨 모용진에게 웃으며 말했다.
“하준이랑 싸우지 말고. 친하게 지내라.”
“네…….”
“되도록 금방 돌아올 생각이지만 그때는 이미 네가 없겠군.”
모용진이 입을 꾹 다물었다. 어쩐지 감정이 북받친 듯한 모습이었다.
“나중에, 볼 수 있겠죠.”
“그래.”
이강의 시선이 뒤로 옮겨졌다.
그 뒤에는 팔짱을 끼고 고개를 돌린 팽무아가 서 있었다. 입을 꾹 앙다물고 있는 것이 어지간히 삐진 듯하다.
팽무아는 온몸으로 자신이 섭섭하다는 말을 하는 듯했지만, 애초에 이강이 정말 미웠다면 여기까지 나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강은 참을성을 가지고 팽무아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것은 그렇게 많은 인내가 필요한 일이 아니었다.
“약속해. 나중에 칠성지회가 열리면 와.”
팽무아는 결국 이강을 돌아보았다.
“나는 칠성지회 소속이 아닌데? 하준이가 대신 가겠지.”
“그래도! 놀러 오면 되지.”
칠성지회 소속의 후기지수들은 정기적으로 무림맹에서 회합을 가진다. 찾아가려면 못 찾아갈 것도 아니겠지만, 만약 칠성지회 소속도 아니고 무공도 약한 이강이 찾아간다면 어떻게 될지 뻔하다.
“으음.”
분명 푸대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이강은 팽무아에게 약속했다.
“그래, 약속할게.”
“진짜지?”
“응.”
팽무아는 이강의 약속을 받아 내고 나서야 마음을 풀었다. 그녀는 진리연에게 다가가 포옹을 하기도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그리고 이강은 마지막으로 하준에게 갔다.
하준 역시 복잡한 표정이었다.
“잘…… 다녀와.”
“너야 늘 성실할 테니 걱정할 것은 없지만.”
이강은 하준의 귀에 입을 가져다 댔다.
“시킨 것은 잊지 말고.”
이강은 미리 동생에게 그가 떠나 있는 동안 해야 할 일을 일러두었다.
“금화와 정구가 일을 제대로 하는지 보고. 중요한 것들은 적어 두어라. 네가 하오문도를 부리고 있다는 사실을 세가 사람들이 모르도록 하고.”
“응…….”
이강은 오늘 떠나기 전, 하오문에 들러 대목방과 몇몇 정보들을 조사시켰다.
하준에게 그들의 관리를 맡겼으니, 아마 다녀온다면 어느 정도 수확이 있으리라.
“이제 타시지요. 갈 길이 멉니다. 공자님.”
마부를 자처한 능지평이 이강을 재촉했다.
“예.”
이강은 곧바로 마차에 올랐다. 어차피 다시 돌아올 가문. 굳이 작별에 부산을 떠는 것은 취향에 안 맞았다.
“이랴!”
능지평이 말을 출발시키자 마차가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연대 무사 둘이 말을 타고 호위하듯 따라붙었다.
마차는 백씨세가의 위명에 맞게 아주 고급이었다. 안에는 푹신한 의자가 깔려 있었고 흔들림이 적었다.
앞으로 갈 길이 멀다. 이강은 무심코 비휴의 목걸이를 매만졌다. 보라색 보석 옆에는 이전까지 없던 반지가 걸려 있었다. 소화의 편지에 동봉되어 있던 반지다.
“성문을 벗어난 뒤로는 길이 조금 거칠어집니다. 아직 이른 아침이니 조금 쉬고 있으시지요.”
마부석에 앉아 있던 능지평이 그렇게 말했다.
이강은 감사를 표했지만 눈을 붙이지는 않았다.
부스럭-
그의 품속에서 나온 것은 소화의 서찰이었다. 벌써 몇 번 읽었지만, 이강은 또 한 번 서찰을 읽기 시작했다.
* * *
[ ……여하튼 그랬어. 글쎄 깜짝 놀랐지 뭐니. 나는 꼼짝없이 도련님이 일어나신 건 줄 알았거든. 그때가 아직 동이 트지도 않았는데. 어디서 고소한 냄새가 난다 했는데 도련님이 방에서 떡을 굽고 있었어. 식탐이 그렇게 많은 분도 아닌데 말이야.내가 그래서 조용히 물어봤거든? 시장하시냐구. 뭐라도 해 드릴까요? 하고 말이야.
도련님이 분명 대답하셨어. 조금 말투가 멍하긴 했지만. 괜찮다. 너도 앉아서 먹어라. 하고.
나야 뭐, 소류 너도 알고 있겠지만 야참 먹는 거 좋아하잖아. 도련님이 떡은 정말 기가 막히게 구우시거든. 장씨 할아버지가 숨겨 둔 꿀에 떡을 찍어 먹으니까 참 맛있었어.
그리고 졸려서 다시 잤는데, 다음날 도련님께 말씀드렸지. 어제 새벽에 떡 맛있었다구. 그런데 도련님이 뭐라시는 줄 알아?
‘갑자기 무슨 헛소리냐. 꿈이라도 꿨니?’ ]
이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소화가 이강의 말투를 흉내 낼 때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시, 표정이 굳었다.
그런데 아니더라고 딱 정색을 하면서 그런 기억 없다고 하시더라.
나는 내가 정말 꿈을 꿨나 생각했거든?
근데 아니었어.
세상에, 도련님에게 몽유병이 있었을 줄은. ]
몽유병. 이강은 몽유병을 앓고 있었다.
전생에서도 앓았기 때문일까. 허약하게 태어난 이번 생에 몽유병이 더 심하게 온 것 같았다.
「이해가 안 되는구나. 몽유병? 차라리 귀신이 들렸다는 게 더 납득이 되겠어.」
이강과 함께 편지를 읽던 불사신검이 말했다.
‘뭐가 그렇게 납득이 안 되십니까.’
「몽유병이라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자면서 걸어 다니는 증상 아니더냐. 그것은 이해한다 쳐도. 떡을 굽고 대화를 나눈다고?」
‘실제로 그런 경우들이 있습니다.’
이강 역시 겪어 보지 않았다면 이해하지 못했으리라. 하지만 실제로 몽유병이 심한 경우에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
눈을 뜨고 걸어 다니며, 말을 하기도 한다. 전생에서는 몽유병에 걸려 운전하거나 사람을 죽이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저도 그런 적이 있고요.’
무엇보다도 이강이 스스로 겪은 경험이 있었다.
어느 날 아침이었다. 습관적으로 일어나자마자 세수를 하는데 물이 너무 차가웠다. 원래 늘 온수가 준비되어 있었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대충 눈가의 물을 닦고 나왔을 때, 그는 크게 놀랐다.
캄캄한 한밤중이었다.
새벽에 몽유병으로 일어난 그가, 잠든 상태에서 얼굴을 씻다가 찬물에 각성한 것이었다.
「그, 그것참 무서운 일이구만.」
이강이 본 편지에는 그런 일화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서찰이 아니었다. 이강은 다른 서찰을 하나 더 펼쳐 읽었다. 몽유병 일화 이전에 보낸 것이었다. 그러니까, 소화가 이강에게 몽유병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
[……이 반지, 엄청 오래된 물건 같은데 그치? 그런데 또 도련님 취향은 아니란 말이야. 어디서 구하신 걸까? 분명 낮잠 주무시러 가셨던 도련님이 그 반지를 가져왔을 때는 깜짝 놀랐어.나는 나한테 선물로 주시려고 몰래 숨겨 놨던 건 줄 알았는데 너무 커서 그런 것도 아닌 것 같아. 자세히 물어봐도 멍하니 딴소리만 하시고.
필요 없으면 버리라고 하시는데 그럴 필요까지는 없지? 그냥 소류 너한테 보낼게. 용돈 떨어지면 시장에 가져가서 맛있는 거라도 사 먹어.
다시 편지 보낼게.
너를 사랑하는 소화가. ]
이강은 문득 마음이 찡해졌다. 시비로 살면서 무사로 잘 지내고 있을 소류를 걱정하는 소화의 따뜻한 마음씨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궁금증이 들었다.
‘저는 분명 이런 반지를 본 기억조차 없어요.’
「몽유병이 도진 것이라는 말이냐?」
‘정말 귀신들렸던 것이 아니라면 그거겠지요. 이런 구닥다리 반지를 어디서 주웠는지는 모르겠지만.’
이강이 반지를 매만지며 말했다.
「크흠, 뭐 구닥다리라니…… 그게 나름 또 귀한 황옥을 박아 넣은 은가락지인데.」
‘줘도 안 끼고 다닐 정도로 구린데요.’
「마, 말이 좀 심하지 않느냐. 내 때는 그게 유행이었다.」
반지는 다름 아닌 불사신검의 것이었다.
‘저번에 저한테 꾸미는 감각이 부족하다느니 했죠. 그런 말은 다시 하지 마십쇼.’
불사신검이 끙끙댔다. 그가 보기에도 과거 자신이 끼고 다니던 반지는 너무 촌스러웠다.
‘어쨌든, 그냥 평범한 반지라는 거죠.’
「내가 알기로는 그렇다. 으음, 영력이 느껴지긴 하는데. 원래 옥이라는 보석에는 그런 기운이 자연스레 깃들어 있느니라.」
숙부 백진태가 혹시 장원에서 오래된 보석이나 장신구를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그렇기에 소류에게 반지를 받았을 때는 잔뜩 긴장했다.
하지만 내막은 평범했다. 황옥석 반지는 그저 불사신검이 과거에 끼고 다녔던 평범한 반지라고 했다. 진리연에게 보여 줬지만 그녀 역시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백진태가 찾는 것이 이런 낡은 반지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영 찜찜하다면 청림 림주에게 보여 주어라.」
‘그러면 되겠고. 그보다 소류가 이 반지를 제게 몰래 주었다는 건.’
소류는 적룡단원이다. 단주인 숙부가 찾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강에게 이 반지를 건넨 의미는…….
「역시 그 진태라는 놈이 뭔가 의심스러운 것이겠지.」
‘음.’
숙부가 이강을 해할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무언가 석연찮은 것도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고민하는 이강을 바라보는 사람이 있었다.
“괜찮아?”
진리연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예?”
이강은 편지를 보며 웃다가 심각해지고, 또 반지를 보며 한숨을 내쉬는 것을 반복했다.
다행히 불사신검과 소리 내서 대화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겉보기에 분명 이상해 보였을 것이다.
“세가를 떠나는 게 많이 무섭나 보구나.”
“아니요, 아뇨. 괜찮은데요.”
“그러면 몸 상태가 조금 안 좋다거나 하지는 않고?”
이강이 손사래를 치며 진리연을 안심시켰다.
아무래도 청림으로 가는 동안은 행동거지를 조심히 해야 할 듯했다.
괜찮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하고 나서야 진리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은 그녀가 말을 잘 알아들었으리라고 생각하고 등을 벽에 기댔다. 그리고 자는 척 눈을 감았다.
“저, 능 대주님.”
하지만 진리연은 창을 열고 능지평을 불렀다.
“아, 예. 진 소저.”
“이강이가 마음이 많이 심란한 듯합니다. 몸 상태도 그렇게 좋지 않은 것 같고요.”
걱정스러운 진리연의 말에 능지평도 심각한 얼굴을 했다.
“하긴, 이렇게 먼 길을 떠나는 것은 공자님도 처음이실 테니.”
이강 스스로는 요즘 자각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는 엄연히 태음절맥을 앓고 있는 병자다.
능지평과 진리연은 그런 이강을 깨지기 쉬운 유리 조각쯤으로 생각했다.
“앞으로의 여정이 걱정이군요.”
“……그렇네요.”
그들은 서로 염려 깊은 눈빛을 교환했다.
* * *
중원은 드넓다.
서안은 큰 도시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벽 너머로는 민가보다 숲과 평야가 더 많다. 그보다 더 나아가면 좀처럼 민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때문에 먼 길을 떠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노숙을 해야 한다.
“아침 일찍 서둘렀으니 내일이면 남전현에 도착하겠지만. 하룻밤은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공자.”
“예, 뭐.”
“공자님은 마차 안에서 주무시지요. 의자를 빼고 두툼한 솜이불을 깔아 두겠습니다.”
“예? 아니,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요.”
이강이 능지평을 바라보았다. 능지평은 엄한 사람이다. 이렇게까지 배려해 줄 줄은 몰랐다.
이강은 애써 웃으며 비연대원이 끓인 차를 한 잔 마셨다. 하지만 능지평의 시선이 부담스러운 탓인지, 그만 사레가 들렸다.
“콜록, 콜록!”
“이런, 역시 날이 춥지.”
진리연이 이불을 이강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그냥 사레들린 건데…….”
“갈 길이 머니까 조심해야지.”
진리연도 이강을 걱정한다. 아무리 봐도 과보호를 받고 있었다.
「자손이 허약하니, 쓰러지기라도 할까 걱정하나 보지.」
‘그런가요? 너무 그렇게 걱정 받아도 좋지 않은데.’
이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래도 이들이 이렇게 배려해 주니까 한 달 정도 걸릴 여정은 편하게 갈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이강은 그 한 달을 허투루 날릴 생각이 없었다.
‘능 대주한테 검도 배워야 하는데.’
무려 비연대 대주 능지평과 청림의 진리연이 함께하는 여정이다. 이강은 꾸준히 무공 수련을 하면서 이들에게 도움을 얻고 싶었다.
“식사가 조촐하지만. 드시죠, 공자님.”
“아닙니다, 이 정도만 해도 감지덕지죠.”
그들은 바람을 막아 주는 바위 앞에 화톳불을 피워 놓고 있었다. 저녁 식사는 불 위에 걸어 둔 냄비에 담겨 있었다.
능지평은 국자를 들어 사발에 희멀건한 죽을 퍼담아 주었다.
부유하기로 유명한 백씨세가이지만, 노숙하는 동안까지 진수성찬을 차려 먹지는 못했다.
대신 쌀과 물을 넣고, 소금과 참기름, 간단한 산열매 같은 것을 넣어 끓인다. 거기에 육포를 찢어서 뭉근히 끓이면 훌륭한 한 끼 식사가 완성된다. 사실 평범한 여행자들은 누리기 어려울 호사였다.
“음.”
이강은 죽을 한 수저 떠먹었다. 쌀알이 씹히지 않을 정도로 푹 끓인 죽은 간이 적당했다.
“맛있네요.”
물론 고기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이강이 그렇게 말하자, 능지평과 비연대 무사가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이었다.
“내일은 제대로 된 식사를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오늘보다는요.”
비연대 무사가 그렇게 말했다.
“진짜 맛있는데요?”
“아…… 가, 감사합니다. 흐흐.”
직접 죽을 끓였던 비연대 무사가 멋쩍어하며 뒤통수를 긁었다.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미소가 떠오른다. 이강이 죽을 맛있게 먹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한 듯했다.
「평소에 얼마나 깐깐히 굴었으면 저리 반응할꼬.」
불사신검의 말대로, 능지평을 포함한 모두가 이강이 노숙을 견디지 못하리라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럴 만도 했다. 이강은 한창 망나니 노릇을 할 때 별별 것으로 트집을 잡곤 했으니.
반찬 투정이나 잠자리를 가지고 억지를 부리는 것이 가장 쉬웠기에 그만큼 많이 했었다.
물론 그것은 옛날이야기. 이제 와서 함께 여정을 떠날 이들에게 괜히 성격 더럽게 굴 생각은 없었다.
이강은 분위기를 바꿀 겸 말했다.
“이렇게 나오니 제법 운치 있고 좋군요. 그런데 이런 숲속에서 불을 피우면 산적이라도 나타나는 거 아닙니까?”
녹림 산적이 나타난다 해도 감히 백씨세가의 마차 앞에서 칼을 뽑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능지평도 빙긋 웃으며 답했다.
“하하, 서안 지부대인은 치안을 잘 관리하죠. 적어도 당분간은 산적을 만날 일이 없을 겁니다.”
“그런가요? 다행입니다.”
“예, 게다가 백씨세가의 문양이 걸린 마차를 공격할 산적은 없지요. 차라리 나타난다면 산적보다는.”
이런 야밤의 숲이라면.
“산짐승들이겠지요.”
그리고, 짐승의 울음소리가 울렸다.
쿠루룩-
가까운 곳은 아니었지만. 어쩐지 지독한 누린내가 느껴지는 울음소리였다.
능지평이 떨떠름하게 중얼거렸다.
“하하, 동물들이 오히려 조심성은 더 많지요. 이렇게 사람이 여럿이고 불까지 피웠으니, 감히 가까이 오지는 않을 겁니다.”
“예에…….”
능지평이 그렇게 말하기 무섭게.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꿰에에에엑!”
집채만 한 멧돼지가 수풀을 뚫고 나타났다.
“이런 젠장!”
능지평이 작게 욕을 내뱉었다. 그와 비연대원들은 이미 검을 뽑은 채 일어서 있었다.
이강도 자연스럽게 유성아를 들고 섰다. 그리고 그는 생각했다.
‘안 그래도 고기가 먹고 싶었는데.’
고기가 바로 나타나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