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38)
38화 대호 (1)
위호작창
爲虎作倀
호랑이를 위해 창귀(倀鬼)가 되다.
장자열(張自烈)이 그의 저서 《정자통(正字通)》에서 이르기를. 호랑이에게 잡아먹힌 자는 혼이 성불하지 못하고 호랑이의 노예인 창귀가 된다고 한다.
창귀는 인간을 꾀어 호랑이에게 데려간다. 제 주인에게 먹이를 공급하기 위함이다.
여기까지가 민간에 퍼져 있는 내용이다. 경험 많은 엽사들이라면 창귀에 대한 전설을 들어 본 적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리연은 창귀에 대해서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一. 호랑이 중 오래 살아남아 영력을 쌓은 녀석들이 창귀를 만든다.
二.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창귀가 되면. 주로 자신의 가족에게 달라붙는다.
三. 창귀는 제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호랑이에게 데려간다. 다른 놈을 바쳐서 호랑이에게 풀려나려는 것이다.
四. 창귀는 신 것과 소라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진리연은 창귀가 그리 대단한 요괴가 아니라고 했다. 그럴 법했다. 그저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양민이 변한 요괴이니.
그래서 이강은 조금 평범한 외견을 상상했다.
하지만.
“크아아아악!”
온몸의 피부가 쪼글쪼글하게 변하고, 푸른 털이 성성하게 돋아난 여인의 모습. 길게 찢어진 입에서는 뾰족한 이빨이 잔뜩 돋아났다.
흉악하고 공포스럽기 그지없었다.
바닥에 엎어져 있던 젊은 엽사가 비명을 지르는 것도 이해됐다.
“아아아아악! 씨이팔!”
그는 저 여인과 정이 통하는 사이 같은데, 순식간에 애인이 괴물로 변한 것이다.
이강이 힘내라고 했지만 들리지 않는 듯했다.
창귀가 진리연에게 손톱을 휘둘렀다.
까가강-
하지만 진리연은 검으로 그 손톱을 쳐 냈다. 그녀의 연검은 비단 끈처럼 허공에서 나풀거렸다.
검광이 몇 번 번쩍이고, 털이 숭숭 돋은 손가락 몇 개가 하늘로 비산했다. 푸른 피가 촤악 솟았다.
“안 돼! 죽이면……!”
엽사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저 상태에서도 자신의 애인을 걱정하다니, 참사랑 아닌가. 이강은 그렇게 생각했다.
“본디 목을 베어야 하지만.”
진리연은 핏방울이 얼굴에 튀었음에도 차분히 말했다. 기세가 흉악했던 창귀도 힘의 차이를 깨달았으리라. 잘린 손가락을 지혈할 생각도 못 한 채 굳어 있었다.
그리고 진리연이 방울을 제 손에 칭칭 감았다.
“……불쌍한 양민을 죽일 수도 없으니.”
그렇게 자비로운 말을 하면서 주먹을 들었다.
뛰어난 검사는 권각법에도 뛰어난 법이다. 창귀 같은 하급의 요괴는 일류에 올라 정점을 바라보는 진리연의 권을 피할 수 없었다.
퍼억!
‘쳤다’는 말보다 ‘찔렀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듯한 주먹이었다.
가느다란 팔다리에서 어찌 그런 힘이 나오는지. 창귀의 배가 뚫리지 않았을까 걱정될 정도다.
“커억!”
그리고 불룩 튀어나온 창귀의 등에서 푸르스름한 연기 같은 것이 튀어나왔다.
연기는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인간과 호랑이를 제멋대로 뒤섞어 놓은 듯한 안면이었다.
그것은 도망치듯 진리연에게 벗어나면서 이강이 있는 곳. 정확하게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엽사에게 날아왔다.
아무래도 이강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은 아닌 듯했다. 엽사가 비명을 지르고 진리연이 신호했기 때문이다.
“흐아아악!”
“지금!”
이강이 검을 뽑아 들었다. 능지평이 준 검이 아니라, 운철검 유성아였다.
창귀의 옆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진리연은 이강에게 부탁을 했다. 창귀가 궁지에 몰리면 곁의 다른 양민에게 깃들려고 시도할 거라며.
그것을 이강에게 막아 달라고.
설마 여인의 몸에서 빠져나온 창귀가 이렇게 끔찍하게 생겼을 줄은 몰랐지만.
쉬이이이잇-
음산한 바람 소리를 내며 날아오는 푸르스름한 창귀.
하지만 이강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화톳불에 뛰어드는 불나방 같구나.」
불사신검이 그렇게 평하고, 이강의 목에 걸린 비휴의 목걸이가 반짝 빛났다.
이강을 무시하고 날아들던 창귀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보랏빛 광채에서 자신과 비교도 되지 않는 격의 존재감을 느낀 것이다.
바람같이 빠르던 창귀의 움직임이 우뚝 굳었다.
그리고 거무튀튀한 유성아가 긴 호를 그렸다.
빠르거나 날카롭지는 못했지만, 그럼에도 얼어붙은 창귀를 베기에는 충분했다.
서걱-
베는 감촉이 확실히 있었다. 얼음으로 직조한 천을 찢는 듯 차가운 손맛이다.
「키야아아악!」
파사현정(破邪顯正)의 성질을 담은 운철검.
그리고 태음경을 수련해, 이제는 귀신에도 닿을 수 있는 이강 스스로의 힘.
그 덕에 창귀는 비명과 함께 먼지로 흩어졌다.
그 뒤에는 진리연이 연검을 빼든 채 서 있었다.
“어…….”
그녀는 이강이 창귀를 단번에 베어서 죽일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나서서 마무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강의 가벼운 휘두름 한 번에 창귀는 소멸하고 말았다.
“어떻게?”
“예?”
진리연이 당황하자 이강이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어떻게 벤 거야?”
“베라면서요.”
“아니, 그런다고 소멸시킬 수 있는 건 아닌데.”
이강은 문득 자신의 검을 내려다보았다. 녹슬었다고 해도 운철검이다. 그렇기에 더 비범한 효과가 있을지도 몰랐다.
“제 검이 좀 오래된 건데. 물건이 오래되면 영험한 기운이 깃든다고 하잖아요?”
“음…… 하긴.”
이강의 변명을 믿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진리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강이 비범하다는 것은 진리연 역시 눈치챈 이후였다. 게다가 비휴의 목걸이까지 걸고 있지 않은가.
“재능이 있네.”
그저 그렇게 평가할 수밖에.
그런 사이에 이강은 땅바닥을 살폈다. 혹시나 하는 마음이었는데, 정말 있었다.
“아, 이거!”
푸른 빛의 손톱만 한 돌조각이 떨어져 있었다.
“이게 내단이에요?”
“내단 같은 거지…… 먹으면 안 돼!”
이강이 그것을 얼굴에 가져다 대자 진리연이 기겁하며 외쳤다.
물론 아무리 이강이 영약에 진심이라고 해도 그런 수상한 것을 먹을 리는 없었다.
“안 먹어요.”
“…….”
이강은 그저 냄새를 맡아 보았을 뿐이다. 매캐한 탄내 같은 것이 났다.
진리연이 머쓱한지 손가락을 꾸물거렸다.
“사문으로 돌아가서 정화해야 약재로 쓸 수 있어. 돌아가면 너 줄게.”
“저를요?”
“네가 잡은 거니까.”
이강은 진리연이 다 잡아 놓은 것을 검을 휘둘러서 베었을 뿐이다.
그런 이강에게 내단을 받을 권리가 있을까.
“아이참. 감사히 받겠습니다.”
물론 준다는 것을 거절할 이강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것이 몸에 좋은 물건일 경우에는.
“무슨 일이야!”
“어어, 상칠아!”
그리고 엽사들과 마을 사람들이 나타났다.
상칠이라는 엽사가 그렇게 비명을 질렀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지금도 그는 쓰러져 있는 여인을 붙잡고 통곡하는 중이었다.
“이년아! 왜 귀신이 들려 가지고! 눈 좀 떠 봐!”
“아이고, 란아! 괜찮냐! 흐억! 손가락이!”
마을 사람들도 달려들어서 호들갑을 떨었다.
다행히, 그녀는 숨을 쉬고 있었다. 손가락 세 개가 잘려 나갔지만 상처는 아물어 있었다.
창귀에 쓰였던 것을 감안하면 천만다행이었다. 진리연과 이강이 위험을 무릅쓴 덕에 목숨을 건진 것이다.
하지만 진리연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나 때문에 손가락을…….”
어쩔 수 없이 손가락을 자른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그런 그녀를 이강이 멀뚱히 바라봤다. 진리연도 그 시선을 느꼈다.
“……왜?”
“배부른 소리를 하시네요.”
“무슨 말이야.”
“손가락 몇 개 잘리고 살 수 있다면. 누구든 그러기를 바랄 겁니다.”
진리연은 이강의 말에 할 말을 잊었다.
이강은 진리연의 입장이 아니라 손가락이 잘린 여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있었다.
“만약 진 소저를 원망한다면. 그건 자기가 멍청한 거겠죠.”
“…….”
그런 걸까. 워낙 확고한 말투여서 진리연은 왠지 이강의 말이 납득되었다.
그리고 엽사 상칠이 무사한 것을 확인한 호살패 엽사들이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하나같이 나이가 많은 자들이었다.
그중에서도 연장자로 보이는 엽사가 대표로 나섰다. 호살패주는 아니었지만 지위가 있어 보였다.
“우리 막내를 창귀로부터 구해 주셨다고요.”
상황을 조금 다르게 이해한 듯했지만 맞는 말이었다.
“범상찮은 분들인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런 요괴를 알아보시다니.”
“창귀에 대해서 알고 있었나요?”
“저도 범 사냥을 제법 오래 해서. 예전에는 한 번 본 적도 있습니다.”
늙은 엽사의 얼굴에는 흉측한 흉터가 있었다. 어쩌면 호랑이 발톱에 얼굴이 찢겼을지도 모른다.
“감사드립니다.”
그가 깊게 예를 표했다. 그 뒤의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낮에는 그들의 눈에 적대와 공포만이 담겨 있었지만, 이번에는 진심으로 감사하는 듯했다.
“혹시 언제 떠나시는지요.”
“내일 바로 떠납니다.”
대답은 이강이 했다. 내일 아침 자령환상초 한 뿌리를 더 달여 먹고 떠날 생각이었다.
“상칠이를 구해 주신 분들이니……. 저희도 이 말씀은 꼭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말한 늙은 엽사는 잠시 말을 골랐다.
궁금증이 든 이강은 조용히 엽사의 말을 기다렸다.
이윽고 그가 전한 말은 확실히 도움이 되는 이야기였다.
“호랑이가 한 마리가 아니라고요?”
“예, 대호(大虎) 하나가 몇 마리를 함께 이끌고 있습니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데요.”
“……저희도 얼마 전에 알아차린 일이라.”
호랑이가 여럿 몰려다닌다는 것은 놀라운 이야기였다.
자칫 한 마리만 대비하다가는 큰일을 치를 뻔했다.
“감사합니다. 몰랐으면 당황할 뻔했군요.”
이강과 진리연은 감사를 표했다.
늙은 엽사는 고개를 깊이 숙이며 말했다.
“산양현으로 내려가신다면, 그놈들은 아마 반대쪽에 있으니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예.”
이강이 빙긋 웃었다.
창귀를 잡음으로써, 내단뿐만 아니라 좋은 정보까지 들었다.
* * *
한정된 수명, 종종 각혈을 동반한 발작 등의 심각한 증상 말고도, 태음절맥의 폐해는 여러 가지가 있다.
무엇보다 아무것도 안 한 날에도 피로감이 극심하다는 게 문제였다.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온종일 방에 누워 있어야 할지도 모른다.
이강이 그런 것을 내색하지 않고 돌아다니며 수련을 하는 것은 사실 초인적인 인내에 가까웠다.
그는 열심히 먹고, 열심히 수련을 했다. 하지만 좋은 보양식을 먹고 씨암탉을 고아 먹어도 차가운 몸은 데워지지 않는다.
살찌기는커녕 오히려 먹어도 마르는 몸이다. 이강이 허약해 보이는 이유였다.
그래도 영약을 먹으면 당분간은 몸이 상쾌해졌다. 벌써 두 뿌리나 달여 먹은 자령환상초는 효과가 특히 좋았다. 양기를 잔뜩 섭취해서 그런지 몸도 따스했다.
마차 안, 이강의 맞은편에 앉은 진리연이 중얼거렸다.
“마지막 한 뿌리는 산양현에서 먹어야겠네.”
“아무래도 호랑이는 좀 위험하니까요.”
이강은 자령환상초 냄새를 풀풀 피우면서 길을 떠날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면 호랑이가 냄새를 맡고 찾아올지도 모르니.
대호라는 놈을 잡아 볼까. 그래서 혹시 있을지 모르는 내단을 챙기고 호랑이 가죽을 팔아 볼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이강은 조심성이 있는 성격이었다.
자령환상초를 담은 목함은 촛농을 잘 펴 발라서 밀봉했다. 혹시나 냄새가 퍼져서 산짐승을 끌어당길 일은 없을 것이다.
호살패의 늙은 엽사가 말해 주길, 산양현으로 내려가는 길에 호랑이를 만날 확률은 낮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마차를 타고 장가촌을 떠나는 길에도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늙은 엽사가 틀렸던 것일까.
흐린 날씨 탓에 어두운 숲속에서는 음산한 한기가 맴돌았다.
“공자님.”
“예.”
마차 바깥에서 능지평이 이강에게 주의를 주었다.
귀를 잘 기울이면 아주 낮은 소리가 들렸다.
마치 숲이 떨리는 것과 비슷한 낮은음이었다.
피식자의 오금을 저리게 만드는, 맹수 특유의 저주파다.
“호랑이가 분명합니다.”
가장 먼저 공포를 느낀 것은 말들이었다.
“히히히잉-!”
잘 훈련받은 준마가 아니었다면 벌써 마차를 버리고 도망쳤을 것이다. 능지평이 간신히 말을 진정시켜서 마차를 멈췄다.
그리고 잠시 침묵이 감돌았다.
모두가 주변을 살폈다. 나무가 울창해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두웠다.
이강은 왼쪽의 열린 창문에서, 누런 무언가가 움직이는 것을 알아챘다.
마차 위에 서 있던 능지평 역시 그랬다.
“왼쪽이다!”
수풀이 흔들린다 싶더니, 황갈색의 무언가가 풀쩍 뛰어올랐다.
그것은 거대한 호랑이였다.
“크허어엉!”
대비하고 있었음에도 그 포효는 인간의 몸을 굳게 하는 힘이 있었다. 저 큰 몸이 어찌 저렇게 가볍게 뛰어오를까.
놈은 큼지막한 먹이인 말을 향해 도약했다.
말이 대경실색해서 펄쩍 몸을 세우고.
“어딜-!”
능지평의 검광이 번쩍였다.
흩날리는 붉은 핏방울을 보면서, 이강은 문득 궁금증이 들었다.
‘호피가 그렇게 비싸게 팔린다던데.’
능지평의 검이 호랑이의 눈을 날카롭게 꿰뚫었으니, 저 호피는 분명 상처 하나 없는 최상품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이강과 함께 마차 내부에서 기다리고 있던 진리연이 입을 열었다.
“오른쪽.”
포효하며 달려드는 호랑이 말고도 또 하나가 더 있었다.
오히려 더 덩치가 큰 그놈은 울부짖지도 않고 마차를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500근은 족히 나갈 텐데, 탄력 있는 근육 덕에 소리조차 거의 나지 않았다.
한 놈이 정면으로 나서고 또 한 놈은 은밀하게 마차를 노리는 교활함. 몰랐으면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모른다.
“정말이었군요.”
호랑이가 하나가 아니라는 엽사의 정보는 사실이었다.
그렇기에, 이강과 일행은 이미 대비를 마쳤다.
이강은 간단하게 마차의 오른쪽 창을 닫았다.
달려오던 호랑이는 멈추지 않고 마차를 향해 뛰어올랐다.
그 거대한 놈의 육탄공격이면, 어지간한 마차는 단숨에 벽이 부서질 것이다.
콰아아앙!
귀가 터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마차가 흔들렸다. 하지만 벽이 부서지지도, 마차가 옆으로 쓰러지지도 않았다.
백씨세가가 이강을 걱정해 제작한 마차는 뼈대가 철골로 이루어져 있다.
게다가 마차 안에는 이강과 진리연, 비연대원 한 명이 검을 뽑아 든 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충격의 순간 마차의 우측 창살에 검을 찔렀다.
파파팍!
호랑이는 마차를 부수지 못했으나 검들은 호랑이를 찔렀다.
벽 너머로 놈이 마차의 벽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세 명이 일제히 벽에서 검을 뽑았다. 검에는 모두 피가 묻어 있었다.
“이놈 호피는 못 써먹겠네.”
이강이 그렇게 중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