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63)
463화 응룡 (1)
구공산 앞.
그곳에 손오공이 위풍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다.
용왕으로부터 강탈하다시피 한 갑주며 투구였지만 그 화려함이 보통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살아 있는 원숭이신 아닌가.
천계를 휘저었다던 제천대성의 강림이다.
그 휘황찬란한 자태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 청림의 문도들은 없었다.
“투전승불이 우리를 돕겠다니…….”
“엄청나게 강해 보여, 털이 마치 불꽃 같아.”
문도들의 감탄에는 과장된 부분이 없었다.
팔짱을 낀 저 제천대성이 청림을 돕기로 했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희망적이었다.
물론 손오공이 저렇게 잘 보이도록 바위 위에 서 있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하하핫! 이 투전승불이 너희와 함께할 테니, 패배는 없을 것이다!”
“와아아아!”
손오공은 그리 말하며 두 손을 번쩍 들었다.
아직 젊은 삼대제자들이 박수를 치며 갈채를 보냈다.
“오랜만이구나. 인간들의 찬양을 받는 것도.”
몹시 상쾌한 얼굴로 갈채 받기를 즐기는 손오공.
나타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불만스러운 표정을 하고 있었다.
손오공이 힐끗, 그에게 시선을 돌렸다.
“나와 달리 몸도 없는 너는 아무도 보지 않는구나. 섭섭하기라도 하신가?”
「원숭이 소리.」
나타는 육신이 없다.
혼백의 형태를 갖추고 있는 정도가 한계였다.
손오공이 킬킬 웃자, 그는 짜증 난다는 듯 자리를 비켰다.
그가 향한 곳은 담현이 있는 곳이었다.
미우나 고우나 나타가 차력을 가르치고 있는 대상은 담현이었다.
「어떻게 그놈을 가르쳐서 강신이라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강신을 시도하려면 지금 당장에라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어지간한 준비가 되지 않고서야, 지금 담현에게 억지로 강신을 한다면 결과는 뻔하다.
담현은 그 부담으로 죽을 것이다.
나타는 이강과 그 주변인을 해치지 않기로 언약했다. 강신으로 인해 담현이 죽는다면 언약의 위배였다.
그런 복잡한 마음을 가지고 담현을 찾으니.
그는 문도들과 외따로 떨어져 있었다.
아니, 아예 홀로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담현은 청호와 독대 중이었다. 무척이나 심각한 얼굴로.
“너 정말 내 말 안 들을 거냐?”
담현의 그리 진중한 얼굴은, 어느덧 그와 꽤 오래 붙어 지낸 나타도 처음 보는 것이었다.
조금의 웃음기도 없는 얼굴.
밤의 우물처럼 어두운 눈빛.
반론은 용서치 않겠다는 굳은 입매.
“이곳에 남아라. 거역하면 나는 다시는 너를 보지 않을 거야.”
담현의 앞에는 청호가 앉아 있었다.
꼬리를 살랑거리면서 조용히 담현을 응시한다.
조용한 눈싸움.
앞으로 청림도들이 갈 길은 피의 진창이었다.
아직 어린 청호는 이곳에 남는 것이 좋으리라.
그런 담현의 마음을 청호가 이해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청호는 담현을 무시하고 이강이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야 인마!”
담현이 그런 청호를 질질 끌어서 다시 원래 자리로 돌려놨다.
“너, 내 말 알아듣고 대답도 할 수 있잖아. 왜 못 알아듣는 척을 하는 거야.”
말을 깨친 적이 꽤 되었는데, 청호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여우마냥 귀만 쫑긋댔다.
“남아라, 여기 밀림에서 기다리고 있어. 나랑 이강이 가서 다 쓸어버리고 돌아올게.”
이번에는 청호도 비로소 의사 표현을 했다.
고개를 도리도리 저은 것이다.
“제발 내 말 좀 들어어!”
담현은 몸을 숙인 채로 그렇게 울부짖었다.
새끼 여우에게 그렇게 구는 모습을 옆에서 보니, 꼭 미친놈 같았다.
「하아.」
나타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담현을 보고 있으면 점점 더 기분이 착잡해질 것 같았다.
그래서 그는 이강이 있는 곳으로 갔다.
공구산의 동굴 앞, 응룡의 거처 앞으로.
이강과 유정신이 그곳에 있었다.
유정신은 침중한 표정이었다.
“기록상으로 응룡은 분명 정의로운 존재지만…… 사실 워낙 전설과 같은 이야기라서 확신할 수는 없다.”
“몸조심하거라.”
유정신을 비롯한 청림도들 역시 응룡의 동굴로 들어가 보고자 했다.
하지만 역시 응룡이 허락한 것은 이강뿐이었다. 결계는 이강 외에는 아무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잠시 의견 대립이 있었지만, 결국 이강이 홀로 응룡의 거처로 들어가 보기로 결정되었다.
거사를 앞두어 약간의 도움이라도 귀한 상황이다.
응룡을 만나 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나타가 결계에 들어가려던 이강을 불렀다.
이강이 그런 나타를 뒤돌아봤다.
「걱정 마라, 응룡이 천계에서 내려와 은둔한 지가 수천 년이 지났어. 위험한 자는 아니다.」
나타는 천천히 동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는 이강을 응시했다.
그때, 뒤에서 소란이 있었다.
“청호야! 멈춰!”
조금 전까지 그 작은 여우를 앉혀 놓고 훈계를 하더니, 마침내 여우가 도망을 친 것일까.
나타의 발치로 푸른 청호가 쐐액 지나갔다.
담현이 헐레벌떡 쫓아왔지만, 청호를 따라잡기에는 택도 없었다.
“사부! 왜 안 잡아요!”
청호는 유정신이나 나타가 대응하기도 전에 그 사이를 지나쳐 동굴 안쪽으로 들어갔다.
담현이 얼른 안으로 쫓아갔다.
하지만 그 안에 청호는 보이지 않았다.
결계가 담현의 진입을 막았다.
“들어갔구나!”
이강 말고는 아무것도 안 들여보내던 결계.
하지만 청호가 들어갈 수 있는지는 시험해 보지 않았다.
이강과 함께 있을 테니 안전하려나.
그리 걱정하며 담현은 결계 앞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조금 전, 결계는 이강이 접근하자 저절로 길을 열어 주었다.
잠시 멈칫한 이강이 들어가자 결계는 다시 강고하게 닫혔다.
결계 내부로 진입한 이강이 다시 나가려고 시도하자, 결계는 별문제 없이 다시 길을 열었다.
‘날 가둬 죽이려는 것은 아니군.’
그것을 확인한 이강은 동굴 안으로 나아갔다.
분명 홀로라고 생각했는데.
도도도도-
작은 발소리가 들려서 고개를 돌렸다.
청호가 뛰어들길래 품으로 받아 안았다.
“너 어떻게 들어왔냐.”
청호는 이강의 품에 안긴 채로 대답하지 않았다.
“사춘기로군.”
말문이 트였던 청호였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말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금은 사이도 별로 안 좋았다.
이강 역시 담현과 같은 의견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둔갑술도 못 배운 네가 가서 뭘 하려고 하냐. 넌 아직 어려. 적어도 네 형제자매들처럼 자라야지.”
청호는 아직 어리다.
비록 일시적으로 몸을 키울 수 있다고 해도 그뿐이었다.
이렇게 말도 안 듣고 배나 발라당 까고 있는 것만 해도 그것은 확실했다.
이전에 청호가 싸움을 도운 적도 있다고 하나, 지금 앞둔 전투에 비하면 소꿉장난 같은 일이다.
“남아 있어라. 데려가지 않을 것이다.”
청호가 마음에 안 든다는 듯 으르렁댔다.
하지만 담현과 이강 간에는 다른 점이 있었으니, 결국 청호에게 쩔쩔매는 담현과 달리 이강은 엄하다는 것이다.
청호는 결국 매달리듯 몸에 힘을 쭉 뺐다.
그렇게 대롱거리는 것이 지금 청호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반항이었다.
청호가 축 늘어지자 이강은 청호를 목도리처럼 어깨에 걸쳤다.
그리고 계속 걸었다.
동굴 내부는 조용했다.
거대한 짐승의 숨소리도, 파충류의 비린내도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아무도 살지 않는 평범한 동굴인 것 같았다.
저벅.
곧 이강의 발이 멈췄다.
청호가 귀를 쫑긋했다.
이강의 앞에는 사람이 있었다.
그렇다. 분명 사람의 형상이었다.
검은 머리가 무척이나 긴 여인이 동굴 한가운데 서 있었다.
옷이 독특하다.
현시대의 사람이 아닌 것 같다. 고대의 옷처럼 보인다.
이목구비는 젊어 보이는데 오랜 세월을 겪어 온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초연함이 보였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는 것이 사람이라기보다는 꼭 식물 같다.
수천 년을 살아온 원시적인 수종의 나무처럼.
“……응룡?”
용이 있으리라고 기대했지만, 나타난 것은 웬 여인이었다.
하지만 평범한 사람이 이런 곳에 있을 리 없다.
이강의 추측은 맞았다.
“그래, 내가 응룡이다.”
여인의 목소리는 평범했다.
오히려 무심하기까지 했다.
“넌 그 인간이군. 그리고 구미호의 막내딸.”
청호가 흠칫 놀랐다.
마치 두려운 듯 귀를 축 늘어뜨린다.
“청호를 아십니까?”
“그래, 구미 그 아이가 새 자식을 얻었다는 것도 직접 들었지.”
응룡은 계속 이곳에 은둔하고 있었다고 하는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을까.
“너에 대해서도 안다. 어린 용이 말해 주었지.”
“어린 용이요?”
“달마.”
어리다고 하기엔 이미 일천 살이 훌쩍 넘은 달마 아닌가.
생각해 보면 그가 용이 된 지는 얼마 안 되기도 했고, 응룡에게는 어려 보일지도 몰랐다.
“그래 내가 보기에는 어린 용에 불과하지.”
“마음을 읽을 줄 아냐고? 그렇다.”
이강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응룡은 이강의 속내를 꿰뚫어 보는 듯했다.
“왜 이런 곳에 있느냐. 그래, 말하기엔 너무 긴 사정이지만 후회 때문이지.”
“먼 옛날, 나는 세상일에 개입하여 큰 죄를 저질렀다. 그 이후로 은둔하여 모든 인연을 끊었지. 황제와 담판을 지어 그와의 관계도 끊었다. 때문에 나는 이곳을 나갈 수 없어. 당연히 너희들을 도울 수도 없다.”
“내가 정말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그런 척을 하는 게 아닌 것은 이제 믿을 수 있겠나?”
“정말 제 머릿속을 읽을 수 있으시군요.”
그는 정말 응룡이 마음을 읽을 수 있는지 확인해 본 것이다.
“두려운가? 인간들은 내가 속마음을 꿰뚫어 보면 모두 무서워하거든.”
“아닙니다. 숨길 것도 없으니.”
응룡의 무감정한 얼굴에 처음으로 흥미가 떠올랐다.
“과연 그렇군. 달마와 구미 모두 네게 기대를 걸고 있다.”
“어떤 기대 말입니까.”
“네가 인간들을 지키고 구할 수 있으리라고 믿더군.”
“참사교를 해치워서 말입니까?”
“참사교, 그래. 그들의 목적을 저지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강은 어째선지 조금 벅찬 기분이었다.
감동한 것이다.
그와 함께했던 혼령들이 이강을 돕고 있었다.
장삼봉, 천마, 달마, 불사신검, 심지어 구미까지.
그들이 이강을 믿어 주고 있다.
“그들의 설득으로 나는 너를 돕기로 했다.”
“그러면.”
“내 여의주를 주마.”
이강의 눈이 살짝 커졌다.
제천대성이 응룡의 여의주를 노린다고 했을 때, 그걸 강도질이라고 판단한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여의주는 사실상 용의 내단이라고 할 수 있었다.
내단을 가져가겠다는 것은 사람으로 치면 단전을 뽑아가겠다는 것과 다름없는 일 아닌가.
응룡이 자발적으로 여의주를 줄 일은 없었다.
그리 오래 살아온 용이 자신의 전부를 넘길 이유가 무엇인가.
“정말입니까?”
“너는 내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 답답하겠구나. 진심이다.”
그리고 응룡이 손짓했다.
그러자 술법보다도 더 놀라운 현상이 벌어졌다.
동굴의 종유석이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길게 늘어지며 내려왔다.
그리고 그 종유석 틈이 벌어지더니, 눈부신 구슬이 나타났다.
보주(寶珠)라는 표현도 아쉬울 틀림없는 용의 여의주였다.
과거 대막황룡의 여의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진정한 보물이다.
“밖에 있던 원숭이도 이걸 가지고 와 달라고 했나?”
“예. 굳이 제게 전달하고 싶으셨습니까?”
“그래, 네게 넘겨줘야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인연의 끈은 원숭이가 아닌 네게 이어져 있으니.”
이강은 저도 모르게 제 손을 보았다.
그렇다. 그를 믿고 도와주는 혼령들은 모두 이강과 인연이 이어져 있었다.
“가져가도 좋다.”
이강은 곧바로 여의주를 잡아채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점을 물어보았다.
“왜 이 귀한 여의주를 그냥 주십니까.”
“이것으로 네가 모든 인간을 구하면 나쁘지 않겠다 여겼다.”
“제가 그럴 수 있으리라 믿으십니까?”
여의주를 가져가면 참사교를 무찌르고 세상을 원래대로 돌려놓을 수 있다고 믿느냐는 말이다.
응룡은 조금 이상한 답을 했다.
“나는 점을 칠 수 있다.”
“점이요……?”
점(占).
미래를 보는 그것이다.
“너에 대한 점도 쳐 보았지. 내 점은 틀리는 일이 없다. 말해 주랴?”
“말해 주십시오.”
“네게는 선택할 자유가 있다.”
그리고 응룡은 담담하게 말했다.
“내 여의주를 가져간다면, 너는 인간을 구할 것이다.”
다행이었다. 정말 그리될지는 몰라도 적어도 듣기 나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점의 내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너는 심장을 찔려 죽을 것이다.”
응룡은 이강의 죽음을 담담히 예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