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64)
464화 응룡 (2)
싸늘하게 감도는 침묵.
이강은 아무 말도 안 하고, 청호도 가만히 앉아서 귀만 쫑긋거렸다.
움직인 것은 응룡이었다.
그녀는 청호의 앞에 가만히 쪼그려 앉았다.
“이름이 청호로구나.”
응룡은 천천히 손을 뻗었다. 청호는 잠시 움찔했지만 얌전히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신비한 일이었다.
담현이나 이강 정도가 아닌 이상 청호는 사람을 경계한다.
“네 어미가 너를 보고 싶어 한다.”
구미의 이야기가 나왔다.
청호는 물끄러미 응룡의 눈을 바라보았다.
응룡이 사람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그 내용물이 사람이 아닌 것은 눈만 보아도 알 수 있었다.
응룡은 청호의 본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이 아이를 내가 맡아 주마. 둔갑술과 몇 가지 술법을 가르쳐 주지.”
응룡이 나지막이 그리 말했다.
이강이 답했다.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부탁드립니다.”
“그리하겠다.”
이강은 잠시 침묵하다가 물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할지도 알고 계셨던 겁니까?”
“그래, 하지만 점을 쳐서 안 것은 아니다. 모든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선택할 수 없는 미래만을 알 수 있는 것이니.”
“그러면요.”
“네가 그리 선택하리라 추론했다.”
이강은 응룡의 여의주를 가져갈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가 심장이 찔려 죽으리라는 예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실제로 이강은 그러했다.
“정말 참사교가 악신을 깨우면 이 세상의 사람들이 모두 죽습니까?”
“글쎄,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 죽음과 같다면. 그리고 그 신을 악신이라고 본다면 그것이 옳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죽는다면, 그것을 막고 심장이 찔려 죽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그러면 어쩔 수 없군요.”
심지어 소화마저 인정해 줄 것이다.
이강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고.
“청호를 잘 부탁드립니다.”
이강이 여의주에 손을 뻗쳤다.
보면 볼수록, 아름다운 빛을 뿜는 물건이다.
이강의 손끝이 그것에 닿기 직전이었다.
응룡이 나지막이 경고했다.
“정신을 똑바로 붙잡고 있는 게 좋을 것이다.”
손끝이 톡 닿은 순간.
의식이 아찔하게 흐려졌다.
그래, 그것은 분명 암흑이다.
아니 암흑이라고 생각했건만, 그저 비어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다.
온갖 형이상학적인 것들이 둥둥 부유하며 서로 뒤섞여 있다.
해도 없고 달도 없으며 별도 없다.
그러나 그 천체들의 재료가 될 기체와 고체들이 분명 존재하고 있다.
빛이 없으니 볼 수도 없고 몸이 없으니 느낄 수도 없지만.
이강은 분명히 그 혼돈(混沌)을 보고 있었다.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그런 것이었다.
이강은 세상의 태초를 관측 중이었다.
시간으로 따지자면 대략 지금으로부터 4만 년이 조금 넘는 시간 전이었다.
관측 중에 그러한 지식은 이강의 머릿속에 이미 들어 있었다.
혼돈은 사실 공허가 아닌 꽉 차 있는 상태.
그것이 마치 거대한 알과 같았다.
그 혼돈의 알 속에 잠자고 있는 신이 있었으니, 그 이름이 반고(盤古)이다.
반고는 일만팔천 년 동안 혼돈 속에서 잠을 잤다.
어느 날, 눈을 번쩍 뜨더니 자신을 감싸고 있는 혼돈의 알을 도끼로 쪼개 버렸다.
그러자 세상의 푸른 기운은 하늘로, 누런 기운은 땅으로 가라앉으며 혼돈이 질서를 가지게 되었다.
곧 반고는 그 몇 번의 과감한 도끼질로 미래와 과거를 만들어 냈고 또 우주를 창세(創世)한 것이다.
‘그럴 리가. 우주가 탄생한 것은 백억 년도 전에 거대한 폭발이 시작 아니었던가. 겨우 사만 년에 무슨 거인 한 명이…….’
남아 있는 이강의 자아가 상식을 떠올렸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눈앞의 장엄한 광경에 가볍게도 흩어졌다.
반고가 하늘을 받치고 땅 위에 두 발로 섰다.
하늘과 땅이 분리되었다고 하나 그 사이는 아직 좁았으니, 반고는 자신의 키를 조금씩 늘리기 시작했다.
원래도 거대한 거인이었던 반고는 하루에 조금씩 키를 늘려 갔다.
그것을 또다시 일만팔천 년 동안 지속했다.
그야말로 장엄하다는 표현이 부족하지 않은 위업이었다.
반고가 헐떡인 숨은 하늘로 올라가 구름이 되고, 고통스러워서 흘린 눈물이며 땀은 내려가 바다가 되었다.
정신이 아찔하여 눈빛을 번쩍이면 그것이 번개가 되어 내리쳤고.
악 하는 비명을 질렀으니 그게 천둥이 되어 아직도 지상에 메아리쳤다.
마침내 일만팔천 년이 지나고 하늘도 충분히 높아졌다.
그제야 반고의 소임도 다하였다.
반고는 자신이 만들어 낸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언제 이렇게 아찔하게 높아졌던가. 지상은 아득하여 보이지도 않았다.
반고가 그렇게 쓰러졌다.
그 거대한 몸이 내려앉자 세상에 다시 없을 대지진이 일어난 것은 당연하다.
죽은 반고의 사체가 세상을 이루었다.
‘무슨…….’
옛날이야기, 그리고 신화란 이토록 터무니없고 또 신비로운 것이리라.
죽은 반고가 흘린 피는 강물이 되었다.
그의 뼈는 광물과 보석이 되었고, 몸은 땅과 산맥이 되었다.
그의 거대한 머리는 대양에 빠져서 수많은 섬으로 조각났다.
‘……이게 세상의 시작.’
세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반고가 만들어 낸 세상에 처음 나타난 것은 신들이었다.
자연스럽게 탄생한 대신들이 가장 먼저였다.
삼황과 같은 대신격들. 거대한 뱀처럼 보이는 태호복희가 하늘을 날아다녔고. 황소 머리를 한 신농이 땅을 뒤엎었다.
태호복희의 남매인 여와 또한 있었다.
여와, 그녀는 이 드넓은 세상이 너무 적막하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아직 반고의 피가 진하게 섞여 있는 강가로 갔다.
반고의 살이었던 따듯한 진흙을 뭉쳐서 살아 있는 것들을 만들었다.
그것이 초창기의 신이었다.
응룡 또한, 그때 여와에게 탄생했다.
‘응룡.’
이 역사는 응룡이 이강에게 보여 주는 것일까.
이강은 여와가 만드는 것들을 더 보았다.
온갖 괴물이며 요괴 같은 것을 만들던 여와는 비로소 반고와 닮은 것을 만들어 냈다.
두 다리를 딛고 서 있는 사람.
만족스레 웃은 여와는 그와 비슷한 것들을 여럿 만들었다.
오제(五帝)가 그에 포함되었다.
사실 오제를 만든 것은 삼황 중 여와였던 것인가.
그녀는 그리 신과 같은 인간들을 만들었지만 영 속도가 붙지 않았다.
그러자 여와는 강가에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녀가 땅을 내디딜 때마다 진흙이 튀었다.
사방으로 튄 진흙 방울이 각기 사람이 되고 남녀가 되었다.
남녀는 번성하여 아이를 낳고 인간이 세상을 뒤덮었다.
이 세상에 인간(人間)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여와였다.
‘인간의 시대.’
그 이후로 인간의 시대가 열렸다.
탄생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인간들은 크고 강대했다. 아름답고, 또 지성적이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는 처음에 탄생했던 신적인 인간들이었다.
‘어…….’
인간은 번성하고 무리를 이루었으며 왕국을 만들었다.
동굴에서 살던 이들이 움막을 지었고.
움막은 번듯한 건물이, 마침내 성을 이루었다.
‘저건.’
그때까지만 해도 인간은 신들과 함께 살았더랬다.
작은 신들과 큰 신들.
그리고 사람을 만든 여와를 비롯해 대신격들까지.
사람들이 움직이는 것이 몹시 빨라 눈으로 따라잡기도 어렵다.
가속된 시간 속에서 명확히 보이는 것이 딱 하나 있었으니.
그것은 하늘을 날고 있던 여와가 추락하는 것이었다.
그 거대한 신의 몸에 붙어 있는 작은 벌레 같은 것들은, 분명 그녀가 창조한 인간들이었다.
‘삼황 중 여와가 죽은 것인가.’
추락한 여와.
그리고 한낱 피조물이 창조주를 살해했기 때문일까.
그리하여 세상이 분노했던 것일까.
태양이 꺼졌다.
달은 붉어져서 지상이 검붉게 물들었다.
그리고, 아마도 세상이 멸망했을 것이다.
어둠이 걷히고 나서는 그 아래 남아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지켜본 이강은 전율을 느꼈다.
지상에 꽃폈던 것은 분명 찬란한 문명이었다.
그것이 한순간에 사라졌다.
남아 있는 것은 폐허뿐, 아니…….
‘살아남은 인간들이 있다.’
사실, 원숭이와 그리 다를 바가 없는 자들이었다.
살아남은 인간들은 하나같이 조금 하등해 보였다.
더 작고, 아름답지 않으며, 포악했다.
그것들이 서로 흘레붙으며 번식하기 시작했다.
개체수가 늘자 무리를 이루고 군집을 형성한다.
다시, 문명이 생겼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강은 이 모든 것이 이뤄지는 장소가 어딘지 알 수 있었다.
‘……중원이다.’
가속했던 시간의 흐름이 느려지고 있다.
저 황금빛의 유리기와 건물은 분명 자금성이다.
고개를 서쪽으로 돌리면…….
서안(西安). 이강의 고향.
그곳에 백씨세가가 있었다.
불타 버린 장원이 아니라 멀쩡한 백씨세가가 있었다.
이강은 귀를 기울였다.
바람결을 따라, 소리가 들린다.
“어머, 왜 아기가 안 울까.”
걱정하는 산파와, 그 옆에 누워 숨을 쌕쌕거리는 여인이 있다.
이제 얼굴조차 희미해진 어머니였다.
그리고 그 옆에 아버지가 한 아기를 안고 있었다.
방금 태어났음에도 울지 않는 아기를 안아 든 백류산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있었다.
“엉덩이를 때려 보시지요, 가주님.”
“이, 이렇게 말인가?”
그래, 백류산은 갓 태어난 이강의 엉덩이를 조심스럽게 때렸다.
예상치 못한 환생에 당황했던 이강은 저도 모르게 울음을 터뜨렸더랬다.
“응애, 응애애!”
“어이고, 이제 우는구만. 울음소리가 아주 우렁찹니다그려.”
“허허, 허허허! 소가주가 났구만.”
유독 젊어 보이는 아버지가 환히 웃었다.
지친 어머니도 눈물을 흘리며 웃고 있었다.
거기까지였다.
이강은 다시 눈을 떴다.
동굴 특유의 습기 찬 공기의 향이 나고, 어두컴컴한 곳에서 손에 들린 여의주의 빛이 눈부셨다.
응룡의 동굴 그대로였다.
식은땀이 관자놀이를 따라 주르륵 흘렀다.
이강은 방금 약 4만 년을 관조했다.
이 세상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다 보았나?”
응룡이 그리 물었다.
이강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여태까지 줄곧 무표정이었던 응룡의 얼굴에 처음으로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그러면 가라.”
“어, 나온다.”
돌아오는 이강을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다름 아닌 담현이었다.
그가 벌떡 일어서자, 눈을 감고 있던 유정신도 따라 일어섰다.
어느덧 날이 어둑어둑해졌다.
이강이 들어간 지가 벌써 네 시진이 지난바, 그가 돌아오지 않아서 마음이 보통 초조한 것이 아니었다.
유정신이 이강을 반겼지만 그의 앞에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은 담현이었다.
“청호가 왜 없어. 같이 들어간 것 아니었냐?”
괜찮냐, 잘됐냐라고 물어볼 것은 기대도 하지 않았기에 이강이 답했다.
“저희가 일을 거행하는 동안 응룡이 청호를 맡아 주기로 했습니다.”
“뭐? 그래서 냉큼 맡겼냐!”
웬 괴한에게 청호를 넘겼다는 소리를 들었어도 이런 반응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을 이해했기에 이강이 설명해 주었다.
“애 엄마랑 친한 사이라더라고요.”
“……구미호랑?”
담현이 잠시 고민했다.
혼란스러운 듯 중얼거린다.
“그러면 어쩔 수 없는 건가. 아니, 잘된 걸지도…….”
이강이 그런 담현을 지나치자, 손오공이 바람처럼 달려왔다.
그는 이강의 손에 들린 여의주를 받아 들고 함박웃음을 지었다.
“정말 이걸 가져올 줄이야!”
“왜 필요했던 겁니까.”
“그래 이제 말해 주지.”
손오공은 마치 연극같이 과장된 자세로 양팔을 쫙 펼쳤다.
“너와 인연이 닿은 이들이 참전하고자 내게 부탁했으니…….”
“장삼봉과 천마, 그리고 달마를 강림시켜 주겠다!”
손오공이 자신만만하게 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