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65)
465화 돌아온 이들
“그런 것이 가능할 리가.”
누군가 그리 중얼거렸다.
아마 도화제자나 영화제자 중 한 명일 것이다.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온 것은 아니지만, 장내에 있는 이들은 내심 그 말에 동의하는 듯했다.
‘장삼봉과 천마, 달마를 이곳에 강림시켜 주겠다. 그들이 청림과 함께 싸울 수 있도록.’
손오공은 그리 말했다.
허나, 강림(降臨)이라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차력을 쓰는 이들에게도, 청림의 영화제자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참사교를 돕던 탁탑천왕의 일만 떠올려 봐도 그렇다.
인간의 몸에 빙의하여 움직이는 강신(降神)만 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 부담으로 술자가 죽어 버릴 정도로 위험한.
강림은 무척이나 큰 준비가 필요한 일이고, 그렇기에 지금과 같이 중요한 상황에서도 청림은 강림을 시도하지 못했다.
의지가 아니라 현실적인 어려움 탓이다.
그런데 손오공은 저리 자신만만하다.
제천대성 손오공처럼 강림해 지상에서 활동하는 것은 몹시 독특한 경우였다.
그건 손오공이 살아 있는 몸으로 하늘에 오른 유일무이한 존재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안 될 게 무엇인가. 천지에서 가장 술법에 뛰어난 본인에게 불가능한 일은 없으니!”
그러나 손오공은 여의주를 치켜들며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이강이 그런 손오공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손오공의 장담에 가장 놀란 것은 이강이었다.
그와 함께했던 혼령들.
그들이 현실에 강림하여 이강을 돕겠다는 것이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그게 어찌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하지만, 강림의 매개가 될 육신이나 준비도 없지 않습니까. 그게 가능할지는…….”
유정신이 당황해서 손오공에게 그런 것들을 물었다.
그 말대로였다. 지금 강림을 시도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매개가 필요하다.
마치, 천마를 부활시키려던 칠대선이 새로운 육신을 준비해 뒀던 것처럼.
“보아라!”
하지만 손오공은 오히려 그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 씨익 웃을 뿐이었다.
「저놈 설마…….」
나타가 뭔가 알아챘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
손오공은 서서히 제 머리로 손을 올렸다.
그가 손댄 것은 바로 머리에 쓴 긴고아였다.
삼장법사가 그 제천대성을 통제하는 데 쓴 황금 고리.
세상에서 가장 작은 감옥인 그 긴고아를, 손오공은 너무도 쉽게 슥 벗었다.
“……뭐 그리 뚫어지게 쳐다보는가?”
“아니, 절대 못 벗는 것이 긴고아라고 들었는데 쉽게 벗으시길래.”
“서천행을 마치고 나서 나는 투전승불이 되었는데, 당연히 그때 벗었지. 지금은 그냥…… 그냥 쓰고 있네.”
손오공의 목소리가 묘하게 소심했다.
이강의 날카로운 눈썰미는 그 순간의 특이사항을 잡아챘다.
얼마나 오래 긴고아를 쓰고 있었는지, 그 긴고아가 위치했던 털의 색이 묘하게 달랐다.
아니, 애초에 미간을 따라 세로로 색이 다른 털들이 자라 있었다.
유독 황금빛이 선명한 털이 미간 부분에 뭉쳐 자랐고, 그 중앙에 명백한 흔적이 남아 있었다.
분홍빛 속살이 드러난 둥근 부분이…….
“……땜빵?”
“갈(喝)!”
손오공의 호통에 거센 일진광풍이 불었다.
그 앞에 있던 삼대제자들 몇몇이 바닥을 뒹굴었다.
그는 혀를 차고 조심스럽게 땜빵 주변의 황금빛 털 네 가닥을 뽑았다.
“이건 다시 자라지도 않는……. 하여튼 내 분신이다.”
손오공은 그리 말하고 그 털들에 후 입김을 불었다.
털들은 산들바람 앞의 민들레 홀씨처럼 흩날렸다.
황금빛 분신이 네 구 생성되었다.
아니, 그것을 분신(分身)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전에 본 손오공의 분신은 그와 똑 닮은 형태였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매끈매끈해서 이목구비도, 여타 할 특징도 없는 모습.
「저놈도 작정했군.」
나타는 그것을 알아본 듯했다.
이강이 나타를 흘긋 돌아보니, 그가 분신들에 대해 말해 주었다.
「손오공 저놈의 신격 자체를 뽑아 만든 분신이다. 네 개의 분신이라면 저 원숭이 놈 자신도 감당하기 힘들걸.」
저 매끈해 보이는 분신은 단순히 술법의 산물이 아니었다.
손오공이 가지고 있는 신격의 일부를 쪼개 만든 진정한 분신(分神)인 것이다.
“후후, 나타 너 같은 샌님이 낭만에 대해서 무엇을 알겠나.”
「미친놈.」
손오공은 조금 전보다 지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의 행동에는 거침이 없었다.
“응룡의 여의주라면 마땅한 제물이 되겠지!”
응룡의 여의주가 천천히 흩어졌다.
빛무리로 흩어져 가는 여의주는 네 줄기로 갈라졌다.
이지를 갖추지 못한, 아직은 인형에 불과한 네 개의 분신에 흡수되는 여의주의 힘.
그리고 곧, 강림이 시작되었다.
우선, 천천히 불던 산들바람이 멈추었다.
찌륵대며 울던 벌레들도, 지저귀던 산새들도 일제히 침묵했다.
아무런 소음이 없는 완전한 정적.
비로소 세상이 얼마나 많은 소리로 차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쿵, 쿵, 쿵, 쿵.
연속적으로 그 분신들이 고개를 들었다.
어느새인가, 그들의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뿐만일까. 의복 역시 갖춰 입고 있다.
가장 앞에 서 있는 이는 청수한 도복을 입은 사내.
수염이 거친 장년의 도사이자, 마치 소처럼 순한 눈을 지닌 무당의 대종사.
“……도장.”
장삼봉이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내.
검은 머리카락에, 짙은 눈썹.
고귀한 태생이라는 것이 느껴지는 이목구비며 멀쑥한 체구.
허나, 어딘가 일그러진 듯 어두운 눈빛.
“생각보다 금방 다시 보게 되었군.”
그 옛날, 전 중원을 공포에 떨게 만든 천마다.
또 그 옆에 있는 사내는.
“인과 연이 이어져 과를 만드니…….”
도저히 중원에서 보기 힘든 인물이다.
유독 길쭉한 팔을 벌리고 있는 그는, 한때 향지국의 왕자로 태어났더랬다.
모든 것을 버리고 불법에 귀의한 그는 오로지 중생구제를 위해 중원을 찾았다가 이무기가 되었다.
“서장에서 헤어져 이곳 남만에서 만나는구나.”
용이 되어 승천한 달마가 청년의 모습이 되어 서 있었다.
그들이.
그저 혼백의 상태로 부유하던 그들이 몸을 얻어 돌아왔다.
이강은 가슴이 터질 것처럼 벅찼다.
그의 머릿속을 스치는 것이 있었다.
손오공이 만든 분신은 분명 네 구였다.
하나의 혼백이 이강을 위해 더 찾아온 것이다.
장삼봉, 천마, 달마가 이미 강림했다.
그렇다면 나머지 한 명은 분명.
분명…….
“설마.”
불사신검밖에 없으리라.
마지막으로 강림한 검수(劍手).
그 노검객이 고개를 들어 이강을 바라봤다.
“할아버…….”
이강은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눈앞에 있는 자는 불사신검이 아니었다.
“검, 검제님.”
“크흠, 오랜만이구나.”
천하제일검으로 불리던 무당의 검제 장경.
살아서 우화등선했다는 그가 이곳에 나타나 있었다.
분명 이강이 할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친밀한 관계는 아니었기에, 묘한 어색함이 잠시 맴돌았다.
“내 흑암이라는 자와 겨뤄 본 적이 있다. 그들이 세상과 무당을 무너뜨렸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찾아왔다.”
장삼봉도, 검제도 무당의 영웅과 같았다.
살아남은 무당의 무인들, 구궁검수가 그들 앞에서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대종사와 태사조를 뵙습니다!”
그들의 외침이 우렁우렁했다.
네 영령과 손오공이 함께 서 있으니, 두려울 것이 없어 보였다.
“좋아 좋아. 이제 시작이겠군.”
손오공이 씨익 웃었다.
“도장의 조상님 말이오?”
장삼봉은 이강의 바로 옆에 있었다.
오랜 시간 함께해 온 장삼봉이었지만, 살아 있는 육신을 가지고 옆에 있으니 이상한 기분이었다.
“만나 보았소.”
장삼봉이 씨익 웃었다.
이강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았다.
“정말입니까!”
“그래, 과연 도장의 말대로 대단한 인물이더군.”
우선 천계의 눈을 피해 숨겠다 했던 장삼봉과 천마였다.
이강은 그들이 어찌 제천대성의 도움을 받고 나타나게 됐는지 궁금해서 사정을 물어보았다.
거기서 불사신검의 이야기를 듣게 될 줄은 몰랐다.
“아쉽게도 그는 이곳으로 오지 못했소이다. 도장을 위해 다른 것들을 준비하느라 바쁘다더군.”
“무슨 일을요?”
“나에게도 말해 주지 않아서 정확히는 모르오.”
불사신검은 분명 한참 전 청림에서 성불했다.
천계에서 신선이 되어 활동한 것도 아닌 듯한데, 아직까지 이강을 위해서 움직이고 있단 말인가.
그가 남겼다던 손거울을 받고 나서부터 생각했지만, 가슴 뛰는 일이었다.
“이것 보십쇼.”
이강은 품속에서 손거울을 꺼냈다.
그리고 백도염에게 전해 들은 일을 설명해 주었다.
증조할머니의 꿈에 나타난 불사신검이 이 거울을 전해 달라고 말했다며.
“위급한 상황에 꺼내 비춰 보라고 하셨는데…….”
탁탑천왕과 싸울 때도 꺼내 보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뭔가 특별한 것 같긴 한데 그 별다른 점을 찾을 수 없었다.
이강의 말을 들은 장삼봉은 거울을 바라보고 요모조모 살폈다.
“그랬었나? 위급상황에 비추어 보라니……. 정확히 그 말은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데.”
“들으셨습니까?”
“아니, 나도 흘긋 들었을 뿐이라. ……일단 지니고 있으시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야.”
장삼봉도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이강은 다시 손거울을 바라보고 조용히 그것을 들여다보았다.
그곳에는 창백한 자신의 얼굴만이 반사되어 보일 뿐이었다.
이강은 실망한 채로 그것을 품에 넣었다.
“너무 걱정 마시게. 몸 건강히 살아남으면 언젠가 기회가 오지 않겠는가?”
장삼봉이 인자하게 웃었다.
이강은 마주 웃어 보였다.
응룡이 이강에게 심장이 찔려 죽으리라 예언했음은, 굳이 말하지 않았다.
“진인도 보중하십시오.”
“내 그러지.”
장삼봉을 비롯해 강림한 그들.
한때 인간으로 태어나 죽음을 초월했던 그들이지만, 지금은 죽음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강림한 상태에서 죽는다면 영원히 죽을 것이다.
“허나, 나 스스로도 영멸을 염두에 두어야 비로소 진심을 다할 수 있지 않겠소이까.”
장삼봉은 도인답기보다는 무인다운 말을 했다.
“말했다시피, 그 호교사령 셋은 위험한 놈들이다. 그놈들이 쓸데없이 포교 활동을 하고 교세를 넓힌 것은 전부 인과율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지.”
앞에는 손오공과 유정신이 서 있었다.
“그놈들은 자기 주변으로 권역을 펼쳐 두었을 것이다. 어지간한 차력은 놈들 가까이에 쓰지도 못할 거야. 그리고 이곳.”
손오공이 바닥에 그려 둔 개략적인 지도의 한 부분을 표시했다.
“사실 내 몸을 개미만큼 작게 만들고 정탐을 다녀왔다. 하지만 딱 여기까지야.”
참사교의 본단은 절벽 안쪽에 있다. 손오공이 짚은 지점은 절벽 안으로 들어가는 지점이었다.
“이 안에서는 술법도 못 쓰게 되어 있어. 호교사령 중 한 놈이 직접 강력한 주박을 유지 중인 것 같던데. 천계도 개입하지 못하도록.”
참사교는 청림만이 아니라 천신까지 경계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 방비가 적지 않다.
손오공의 말이 끝나자, 이어받은 것은 유정신이었다.
“삼 개 조로 나눠서 진입한다.”
그들의 목적은 하나뿐이었다.
“참사교주는, 현재 취약한 형태라고 한다.”
‘취약한 형태’라니 그것이 무슨 말인가.
“사람이나 동물의 형상이 아닌, 고깃덩이처럼 으깨어져서 봉신함을 감싸고 있다고 한다.”
그 소름 끼치는 이야기에 문도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허나 분명 사실이었다. 이 이야기를 전해 준 달마가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강기를 쓸 수 있는 자가 그 교주를 죽이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이다.”
그러니, 목표는 곧 침투.
“나타태자와 도선을 비롯한 한 개 조는 절벽 위쪽으로 접근한다.”
담현이 포함된 조였다.
그들은 절벽 위쪽으로 돌아가 추락하듯 아래로 떨어지며 침투를 시도할 것이다.
“나머지 두 개 조는, 정면에서부터 잠입해 절벽의 협곡으로 진입한다.”
전력의 과반이 넘는 대부분은 정면으로 들어간다.
제대로 된 길은 사실 그곳 하나뿐이었으니.
허나, 결국 발각될 것은 명약관화한 터.
그것이 어떻게 침투가 될 수 있겠는가.
“전투가 심화되면, 일 번 조는 목숨을 바쳐서라도 이 번 조의 진입을 돕는다.”
그 이 번 조에는 이강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 번 조는 목숨을 포기해서라도 이 번 조의 침투를 도울 것이다.
“그러면, 출발한다.”
다행히 달도 뜨지 않는 어두운 밤이었다.
청림도들이 어둠 속에 잠겨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