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72)
472화 계속, 앞으로
사람의 주먹이 낸 소리라고는 믿기지 않는 굉음.
그것이 뒤편에서 들렸다.
하준이 망혼에게 내지른 주먹이었다.
본단 안쪽으로 달려가는 이강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앞으로 달려 들어가는 것에 온 신경을 쏟고 있었다.
다만 표정은 평온하지 않았다.
이강이 짓고 있는 표정은 ‘무시무시하다’라고 표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눈은 부릅떴고 입은 굳게 다물었다.
미간은 일그러져 있고 턱의 교근(咬筋)에 힘이 들어가 있다.
몹시 극심한 위통을 겪는 것처럼 괴로운 얼굴이다.
수많은 사람들을 등 뒤에 남겨 두고 나아가고 있다.
이번에는 동생을 남겨 두었다.
하준은 자신보다 훨씬 강하고 위험한 상대를 마주했다.
허나 이강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하준을 놔두고 떠났다.
그래, 마음 같아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래야 할 일이 아니었다면.
“가장 중요한 것은 봉신함과 그 곁에 있을 참사교주이다.”
유정신은 당부하듯 그리 말했다.
달마와 장삼봉, 천마, 검제.
그들은 참사교주와 봉신함의 현 상태에 대해 이야기했다.
참사교주는 사람의 형태가 아닌 고기 조각의 형태라고 했다.
그것이 대체 어떤 상태인지, 고기 조각의 모습으로 어떻게 위험할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확실한 것은 저 호교사령들을 부리는 교주가 위험하지 않을 리 없다는 것이다.
결사대의 목표는 그런 교주를 죽이고 봉신함을 부수는 것이라 하였다.
거기서 이강은 지목받았다.
“네가 대적자라 하였다. 호교사령 역시 그리 보았다고 했지.”
“예, 서장에서 망혼이 제게 그리 말하였습니다. 달뢰라마도.”
망각하지 않는 환생자야말로 운명을 바꿀 대적자라고.
“이해가 되는 일이다. 전생을 잊지 않는 환생자야말로 인과율에 생겨난 매듭과도 같은 것. 그렇기에 운명에도 저항할 수 있는 거겠지.”
이강은 문득 깨달은 것이 있었다.
그는 이전에도 빙의가 가능했다.
보통 사람이라면 인과율의 역풍을 맞아 죽었을 텐데도, 이강은 조금 앓고 말았다.
특이체질이겠거니 했건만 그런 단순한 게 아니었다.
애초에 전생의 기억을 지니고 환생한 것부터 인과율에 어긋나는 일.
그렇기에 마찬가지로 인과율에 어긋난 사자(死者)의 빙의에도 무사했던 것이다.
그러니 이강에게 주어진 임무는…….
“나머지 모두가 죽더라도 너는 끝까지 가야 한다. 그것이 네 의무다.”
어떻게든 끝까지 갈 것.
끝까지 살아남아 참사교주를 베고, 모두를 구할 것.
이강은 결사대 중 가장 강한 사람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희생을 짊어지고 나아갈 역할을 맡았다.
심지어 동생마저도 버리고 가야 할 의무를 졌다.
“오래 못 버티겠군.”
그리 중얼거린 것은 천마였다.
이강은 장삼봉, 그리고 천마와 동행하고 있었다.
달리던 도중 갑자기 천마가 그리 말한 것이다.
“무슨 말입니까.”
“그놈은 마기공을 활짝 열어 놓았다.”
마지막으로 본 하준의 대처에 대해 말한 것이다.
망혼은 권역 내 다른 이들의 기를 흡수했다.
그것은 마기공을 통해 무한한 마기를 보충받는 하준이기에 상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왜 천마는 하준이 오래 버티지 못하리라 말하는 것인가.
“마기공이 마기를 무한하게 공급해 준다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을 사용하는 인간의 몸은 그만큼 강인하지 못하지.”
마기를 대양의 물 푸듯 사용할 수 있어도, 그 마기를 받아들이는 몸은 견디지 못하리라는 이야기였다.
“통제를 잃으면 마기공은 점점 커질 터. 그것이 어느 이상 커지게 되면 저놈은 스스로 마기의 유출을 제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면 마기에 휩쓸려 죽겠지.”
싸늘한 침묵이 맴돌았다.
그것을 먼저 깬 것은 다름 아닌 장삼봉이었다.
“어허!”
장삼봉은 천마에게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분위기 못 읽는 것은 예전부터 알았지만 끝까지 눈치 없이 구는구려. 입 좀 다물고 있으시게!”
평소라면 마주 으르렁댔을 천마였지만 이번엔 입을 꾹 다물었다.
“도장, 걱정 마시오. 어서 일을 마치고 나가서 도장의 동생을 도우면 될 것이니. 그렇지 않아도 제천대성이 곧 돌아올 것이고 검제도 남아 있소이다!”
“예, 그렇지요.”
마음이 놓이지는 않았지만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서 몸을 돌릴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래, 그럴 것이지.”
천마도 입을 다물고 달렸다.
곧, 사체 몇 구가 발견되었다.
참사교도들의 것이었다.
조금 전 척골도인과 일대제자들이 내부로 진입했다.
그들이 처치한 것이 틀림없었다.
잠시 멈췄던 일행을 이강이 다시 출발시켰다.
절벽의 틈으로 들어가자 오히려 주변이 조용했다.
화살 비가 쏟아지지도 않았고, 기묘한 기관장치들이 작동된 것도 아니었다.
별다른 방해물이 없으니 오히려 불안할 정도였다.
‘아니, 그럴 만도 한가.’
이강이 내심 생각했다.
사실, 그들이 뚫고 들어온 방비가 결코 약한 것은 아니었다.
과감한 작전과 소수정예라는 특징 탓에 돌파가 가능했던 것이다.
정예 군사 십만이 들이닥쳤어도 참사교 본단의 방비는 뚫지 못했을 것이다.
“저 안이군.”
마침내, 참사교 본단의 사원이 나타났다.
거대한 거인이 하늘을 받치고 있는 듯한 부조가 사원의 전면에 있었다.
들어가는 문은 그 다리 사이에 있었다.
보초를 섰던 것으로 추정되는 참사교도들의 시신이 널브러져 있다.
“들어가지요.”
그들은 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
어쩐지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인간을 초월한 장삼봉과 천마라고 해도 그런 기분은 마찬가지인 듯했다.
이강은 천천히 걸었다.
실내는 놀랍도록 어두웠다. 탄내와 기름 냄새가 나는 것을 보면 불이 밝혀져 있었다가 꺼진 듯했다.
일행 중에서 조금 어둡다고 나아가지 못할 이는 없었다.
어둠 속에서는 피 냄새가 났다.
“……청림도들이 보이지 않는구려.”
척골도인을 비롯해 도강, 도선이 먼저 진입했다.
길을 가다 보면 그들과 합류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들은 보이지 않았다.
기묘하게도 내부는 고요했다.
적들도 거의 만나지 못했고, 통로는 생각보다 길었다.
달리는 것을 멈추고 걷고 있었기 때문일까.
이강은 벽면에 손을 대 보았다.
울퉁불퉁하다, 자연적인 흔적이 있었다.
바닥은 평평한데 벽면이며 천장이 울퉁불퉁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원래 있던 동굴을 가공한 것이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계속 나아가다 보니, 동굴의 천장이 높아지고 좌우의 폭도 넓어졌다.
통로라기보다는 광장에 가까운 수준이 되었으니 끝이 다가오는 것일까.
과연, 저 앞에는 빛이 있었다.
앞에서 일행의 것이 아닌 발자국 소리가 났다.
스스로의 존재를 숨기지 않는 당당한 발걸음이다.
그것이 과연 참사교 측의 인물인지, 혹은 먼저 진입한 청림의 동문인지.
이강은 확인하기 위해 한 발자국 걸어 나갔다.
그런데, 장삼봉과 천마가 동시에 이강의 전진을 막았다.
이강은 자신의 몸을 막는 그들의 팔을 보곤 고개를 들어서 다시 그들의 얼굴을 보았다.
역광이 지는 환경이기에 표정은 알 수 없었다.
이강은 입을 다물고 가만히 있었다.
대신, 저 앞에서 다가오는 누군가를 살폈다.
거리가 있었고 상대는 여전히 어둠 속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다.
그는 분명 빛이 있는 곳으로 다가오고 있다.
어둠 속에서 불쑥 떠오른 것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강퍅한 표정, 좀처럼 웃지 않고 찡그린 얼굴이기에 얼굴에 깊게 파인 고랑.
고집스러운 성격과 마찬가지로 고집스러운 검으로 유명했던 지검각주.
한때 청림제일검이라고 불렸던 도강이었다.
그는 눈을 부릅뜬 채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강은 도저히 그 사백에게 반가이 인사를 건넬 수 없었다.
도강은 이미 시체였다.
죽은 도강은 한 사람의 손에 모가지를 잡힌 채 나타난 것이다.
흑암.
‘참사교의 검’은 더 이상 사람의 형상이 아니었다.
사람의 몇 배는 되는 덩치에, 털이 북슬북슬 팔다리, 또한 발굽.
구리로 된 뿔이 달려 있는 머리.
요괴라고 할 수도 없고, 천신이라고는 결코 할 수 없다.
그것은 차라리 마왕(魔王)에 가까웠다.
목이 꺾인 채 흑암의 손에 들려 있는 도강은 가엾기 그지없었다.
그 강인했던 무인이 마치 허수아비처럼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몸이 힘없게 흔들린다.
흑암이 발을 멈춤으로써, 도강도 그 무력한 진자운동을 멈췄다.
이강이 저도 모르게 그리 내뱉었다.
흑암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손에 들린 도강을 내팽개쳤다.
사람이 아니라 물건을 대하는 듯한 태도다.
도강 역시 한낱 짐짝처럼 굴러서 벽 쪽으로 처박혔다.
이강은 그곳에 나뒹굴고 있던 사체 한 구를 더 보았다.
도강과 매번 다투던 명일각주 도선, 그 도화제자들의 수장이 그 옆에 쓰러져 있었다.
먼저 들어왔던 셋은 이미 죽은 것이다.
진입한 시간차가 그리 크지 않았을 텐데, 그야말로 순식간에 당한 것이다.
“너희 둘은 아깝군.”
흑암은 이강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는 듯했다.
그는 정확히 장삼봉과 천마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이곳에서 쉬이 죽기에는 아까운 이들이야. 다른 쭉정이들과는 달리…….”
흑암이 한숨을 내뱉자, 허연 김이 후욱 퍼졌다.
전투의 시작이 다가오리라는 것은 명확했다.
전신 솜털이 곤두서는 듯한 감각이 그것을 확신시켰다.
이강이 유성아를 움켜잡은 순간이었다.
장삼봉이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이강의 가슴팍을 밀었다.
별다른 움직임은 아니었고, 말 그대로 부드럽게 밀었을 뿐이었다.
허나 그 가벼운 손짓에 이강은 몇 발자국 뒤로 물러섰다.
왠지 모를 무력감이 이강을 감쌌다.
장삼봉이 이강을 뒤로 물리는 동안 천마는 오히려 앞으로 전진했다.
천마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올라 있었다.
모순적이게도 포악함과 분노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미소였다.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으니 굉음이 울렸고.
그 속도도 느리지 않았으니, 두 번째 발디딤으로 이미 흑암의 턱밑까지 다가갔다.
천마는 극도로 실전적인 무공을 쌓아 왔다.
그에게 방심은 전혀 없었고 단숨에 최적최강의 한 수를 발휘했다.
천마군림보가 폐쇄된 동굴을 진동시켰다.
내부가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강한 진동이다.
지면에 두 다리를 딛고 있는 것만으로도 내상을 입을 터. 흑암은 가볍게 몸을 띄웠다.
양발이 땅에 지지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회피에 한계가 생긴다.
천마는 그런 흑암에게 주먹을 내질렀다.
공기가 터져 나가며, 검은 마기가 주먹에 선명하게 깃들었다.
파천쇄일권(破天碎日拳).
하늘을 깨뜨리고 태양을 부수겠다는 광오한 무공이 흑암을 향해 쇄도했다.
그것에 대한 흑암의 대처법은 참으로 정직했다.
한 손을 펼쳐서 천마의 주먹에 맞서는 것이다.
흑암의 손이 일순간 크게 부푸는 듯했다.
흑운대천장(黑雲大天掌).
무당에서도 절대고수인 검제를 압도했던 그 장법은, 이제는 마치 검고 거센 파도 같았다.
그 무력의 강함으로 천하를 논할 이들이 서로 맞부딪쳤다.
패도를 걷는 이들이 정면승부를 하게 되었으니 필히 승패는 가려져야 한다.
그리고, 자존심 넘치고 오만하던 사내의 얼굴에 금이 갔다.
천마의 강기가 흑암의 강기에 잡아먹혔다.
새 몸을 얻고, 그에 따라 마기공을 잃은 상태라고 하나.
분명 천마가 밀리고 있었다.
흑암은 피식 비웃고 손에 힘을 더했다.
그리고 빛이 번쩍였다.
어느샌가 날아온 검이 흑암의 손목을 치고 지나간 것이다.
천마의 옆에 장삼봉이 다가와 있었다.
장삼봉은 비틀거리고 있는 천마에게 혀를 찼다.
“얼빠진 표정 그만두고 집중하시오.”
“큭! 닥쳐라!”
질책을 들은 천마가 발끈하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