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473)
473화 장삼봉, 천마, 흑암 (1)
천마가 전심전력으로 흑암과 맞부딪쳤을 때.
아직, 장삼봉은 이강 곁에 있을 때.
이강은 다시 한번 검을 들고 말했다.
-저도 가세하겠습니다.
허장성세는 아니었다.
이강은 전신의 피부로 위기를 느끼고 있었다.
저 앞에 있는 흑암은 이강이 만난 어떤 적보다 명백히 위험한 상대였다.
-벨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강은 자신이 흑암에게 아무 피해도 주지 못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 역시 얻은 것이 있었다.
초극절기로 벼락을 뿜어도 흑암은 끄떡하지 않을 듯했지만, 저 단단한 몸을 벨 수 있을 것 같았다.
이강이 제천대성의 몸을 벤 것처럼.
검강도 두르지 않은 평범한 검격으로 신체(神體)를 훼손한 것처럼.
그것은 이강이 새로 얻은 힘이었다.
얻었달까. 스스로의 안에서 발견한 가능성이었지만.
엄연히 초극절기는 아니었다. 이강 자신도 그 검격의 비밀을 알지는 못했다.
-아껴 두시게.
하지만 장삼봉의 말처럼.
그러한 검격을 여러 번 사용할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장삼봉은 이강에게 가세를 요구하는 대신, 다른 것을 말했다.
-틈이 생기면 저자를 우회하여 돌파하시게나.
이번에도 이강에게 부과된 의무는 그런 것이었다.
다른 이들이 시간을 벌면 그사이 더 나아가라.
결국 마지막까지 가야 할 것은 이강이니.
이강 또한 이성적으로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번에야말로 항변하고 싶었다.
-이번엔…….
하지만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놀랍게도 천마는 흑암에게 밀렸고, 장삼봉은 지체하지 않고 가세했다.
이강은 어쩔 수 없이 장삼봉의 뒷모습만 보았다.
천마와 흑암의 무공이 패도를 걷는다면 장삼봉의 것은 궤를 달리했다.
어떤 것도 포용하며, 또한 흘려넘길 수 있는 극한의 유공(柔功).
장삼봉은 과연 흑암의 흑운대천장을 흘려내는 데에 성공했다.
그 장력은 위력이 반감되어 천장을 타격했다.
물론 반감된 위력으로도 천장에 금이 가서 돌덩이가 떨어질 정도였다.
자칫했다가는 골통을 부숴 버릴 크기의 돌덩이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어느 정도 이상의 고수에게는 그런 극한의 환경이 오히려 이용할 대상이 되었다.
장삼봉은 허공에 뛰어올라 양팔을 휘저었다.
부드러운 소매가 돌덩이를 스칠 때마다 그것이 살아 있는 듯 움직였다.
흑암을 향해.
콰콰콰콰쾅!
돌덩이들이 흑암의 전신을 두들겼다.
어찌나 그 힘이 강한지 돌은 충돌과 함께 산산조각 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흑암의 육신에는 타격이 없는 듯했다.
그는 밀려나지도 않고 꼿꼿하게 서 있었다.
비산하고 튀는 돌조각들 앞에서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큼지막한 돌조각이 흑암의 시야를 잠깐 가렸다.
그것이 지나가고 나자, 코앞에 나타난 것은 천마의 얼굴이었다.
살의와 투지로 일그러진 미소.
천마가 자신의 주먹으로 흑암의 턱을 올려쳤다.
단순한 권장이 아니다.
어지간한 물리력으로는 흑암의 몸을 손상시킬 수 없다는 것을 천마 역시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좀처럼 사용하지 않았던 무공을 사용했다.
격산타우(隔山打牛)라는 말이 있다.
산을 격하고 그 너머에 있는 소를 때린다는 뜻이다.
속에 있는 것이 무엇이든 으깨 버릴 만큼 강한 암경이 흑암의 몸통을 분쇄하려 했다.
하지만 결과는 그렇지 못했다.
흑암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으나 그것이 전부였다.
흑암은 눈으로 따라잡을 수도 없는 속도로 입을 벌려서 천마의 팔을 깨물었다.
와작!
대나무가 쪼개지는 듯한 소리가 났다.
흑암은 그 치악력(齒握力)마저 인간을 초월했는지, 천마의 팔뚝이 뜯겨 나갔다.
푸슈우-
이빨 모양대로 뜯겨 나간 팔뚝에서 피 분수가 뿜어져 나왔다.
그런 상처를 얻었으니 오른팔을 쓰는 것은 이제 불가능할 터.
천마는 피투성이인 제 팔을 마치 남의 팔인 것처럼 담담히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웃음을 터뜨렸다.
“이 괴물 같은 놈!”
천마 역시 괴물 같은 짓을 했다.
덜렁거리는 팔로 흑암의 안면을 후려친 것이다.
스스로의 몸을 돌보지 않는 태도다.
처음으로 흑암의 고개가 뒤로 밀려났다.
타격은 있었다.
허나, 흑암의 양팔은 그 와중에도 움직여 천마의 몸을 잡아채려 했다.
잡히면 끝이다.
천마는 몸을 빼지 않았고, 그 대신 대응한 것은 장삼봉이었다.
장삼봉이 흑암의 양팔을 여러 번 두드렸다.
투둑, 툭!
유능제강이라 하였다.
흑암의 두 팔은 천마를 움켜잡은 대신 허공에서 서로 꼬였다.
그 자신의 시야가 두 팔에 가려졌으리라.
이기어검술의 대가인 장삼봉은 그 순간을 노렸다.
빛살처럼 날아든 검 한 자루가 흑암의 관자놀이를 향했다.
찬란한 검강까지 깃들어 있었다.
그 위력적인 검이 흑암의 급소를 꿰뚫으려던 순간, 또 한 번 불가해한 일이 일어났다.
흑암의 고갯짓은 마치 시간을 건너뛴 듯했다.
콱, 하고 그는 장삼봉의 검을 입으로 물었다.
그리고 검강을 두른 검이, 놀랍게도 치악력에 의해 박살 났다.
콰창!
강기를 듬뿍 머금은 칼 조각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 자체가 폭탄이나 다름없었다.
비산하는 칼 조각에, 장삼봉은 허겁지겁 양팔을 휘저었다.
무위백일몽을 사용하고 나서야 칼 조각은 후두둑 바닥에 떨어졌다.
“터무니없군…….”
상대가 괴물이라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지만 정도를 넘어섰다.
그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것은 뒤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이강 역시 마찬가지였다.
천마와 장삼봉이 흑암과 겨루는 동안, 이강의 전신 근육은 팽팽히 긴장해 있었다.
몇 번이고 난입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흑암의 주의가 이강에게도 쏠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우회해서 돌파하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천마와 장삼봉은 이 대 일의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승기를 잡지 못했다.
그것은 이강이 그들을 내버려 두고 돌입해야 할 당위성을 더 부여했다.
‘사흉…… 인가.’
망혼과 귀령의 정체가 사실 사흉(四凶)이라는 것을 알게 된 뒤다.
망혼은 도철이었고 귀령은 궁기였단다.
모두 옛 설화에 나오는 괴물들의 이름이었다.
흑암의 정체 역시 그 사흉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추정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도올, 그리고 혼돈이었던가…….’
이강은 사흉에 대한 전승을 떠올려보았다.
도올은 호랑이 같은 몸을 지녔고 사람의 얼굴을 했으며 멧돼지의 이빨을 가진 괴물이다.
혼돈은 거대한 늑대와 같은, 무엇이든 단 한 번에 삼키고 식탐이 강한 괴물이다.
‘아니, 의미 없는 전승.’
망혼 같은 경우는 그런 사흉의 전승과 조금도 같은 게 없었다.
전승에 의하면 도철은 양과 비슷한 모습이어야 했는데, 그런 부분은 터럭도 닮지 않았다.
전승을 참고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그러면 참사교주도.’
가장 감춰진 것은 참사교주였다. 이강은 그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그를 보았다는 자를 만나 보지도 못했다.
호교사령까지 합치면 넷이니 그 얼핏 구색이 맞아 보인다.
어찌 되었든, 지금 그것을 안다고 상황에 도움이 되지는 않을 듯했다.
그때, 흑암이 포효했다.
“으-아-아-아-!”
이강은 자칫 뒤로 밀려날 뻔했다.
밀폐된 공동 안에서 흑암의 포효는 소리의 속도로 난반사되었다.
귀가 멍해지면서 균형감각이 아찔해졌다.
하지만 이강은 억지로 정신을 부여잡았다.
장삼봉과 천마 역시 버텨 낸 것은 마찬가지였다.
흑암의 전신이 어두운 흑운강기로 감싸졌다.
무언가 한 수를 던지려는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들도 방비해야 할 터.
“조광.”
그리 앙숙이었던 주제에 합은 잘 맞는다.
천마는 성치 않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고, 장삼봉은 그 뒤편을 점했다.
흑암은, 묵묵히 양팔을 펴더니.
마치 합장하듯 손뼉을 쳤다.
파앙-!
그 두 손이 맞부딪칠 때 분명 빛이 번쩍였다.
기의 폭풍이 장삼봉과 천마를 삼켰다.
흙먼지가 치솟고 강풍이 휘몰아쳤다.
이강이 움직인 것도 그때였다.
아무리 공동이 넓다 해도 벽면과 천장이 있다.
거대한 힘의 충돌은 이강이 돌파하기에 충분한 혼란을 만들어 주었다.
이강은 사람이 몸을 가누기 힘들 정도의 강풍을 돌파했다.
천뢰령은 이강에게 충분한 가속력을 주었다.
뇌공강림을 사용할 수 있게 된 이래로, 더욱 뇌기의 활용이 익숙해졌다.
그의 전신에서 푸른 불똥이 튀었다.
마치 시간이 가속한 것 같은 기분이다.
이강은 전력을 다해 뛰었다.
천마나 장삼봉의 속도에 비교해도 느리지 않았다.
격돌의 범위를 우회하고 흑암을 지나쳐 통로 너머로 가는 것도 쉬워 보였다.
한 걸음 내딛고.
또 한 걸음 내디뎠다.
흑암의 손뼉은 강기의 폭풍을 일으켰다.
그 범위에 삼켜진 장삼봉과 천마가 어찌 대응하는지 몹시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강은 인내심을 발휘했다.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시선 한 번 주지 않는다.
타인의 희생을 밟고 나아가기로 결심했다면, 목표에서 눈을 돌리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
이강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계속 그리 갈 결심이었다.
그러나 그때 귓가에 들려왔다.
무력한 비명.
마치 단말마처럼 들리는 그 목소리는 분명 천마의 것이었다.
천마가 죽는 순간에도 낼 것 같지 않은 소리였으니.
고개를 살짝 돌려 뒤를 본 것은 불가항력에 가까웠다.
이강의 동공이 크게 확장되었다.
장삼봉의 몸은 부웅 떠서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그는 오히려 괜찮아 보였다. 문제는 제자리를 지키고 있는 천마였다.
천마의 가슴 한복판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주먹만 한 구멍 너머로 그 뒤편이 보일 정도였다.
원래는 마기공이 뚫려 있었어야 할 그 자리.
그 구멍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마기가 아닌 핏물뿐이었다.
흑암은 장삼봉을 튕겨 내고 천마에게 치명상을 안긴 것이다.
압도적인 무력.
흑암이 승리의 기쁨을 누리고 있는가 하면 그렇지 않았다.
‘사라졌다!’
이강의 시선이 갈 곳을 잃었다.
분명 조금 전까지 천마의 코앞에 있었던 흑암이 없다.
이강이 천마의 부상을 확인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정말 찰나였다.
눈 한번 깜빡이기에도 부족한 시간. 사람이 그사이에 어디로 갈 수는 없다.
그러나 이강은 본능적으로 흑암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강은 뒤로 돌렸던 고개를 다시 앞으로 돌리고 정면을 봤다.
그곳에 있었다.
흑암은 마치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다는 듯이 통로를 막고 있었다.
그의 손바닥이 확 커지는 듯했다.
다가오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이강이 검을 휘둘렀다.
제천대성에게 통한 그 검격은 흑암에게도 통했다.
이강은 흑암의 검지와 중지를 두 번째 마디부터 잘라 냈으나, 그 강기를 전부 쳐내지는 못했다.
이강은 투석기로 쏘아진 돌처럼 튕겨 나갔다.
바닥에 두 번 정도 충돌하고 나서야 균형을 잡았으며, 그럼에도 바닥에 긴 흔적을 남기며 주욱 밀려났다.
몸을 세우려던 이강이 피를 왈칵 게워냈다.
단 한 번의 충돌이었지만 내상을 입었다.
고개를 드니, 흑암은 멀쩡하게 서 있었다.
손가락 두 개를 잘라 냈지만 그게 무슨 상관인가.
이강은 ‘그 검격’을 다시 쓸 수 없었고 천마와 장삼봉의 합공은 더 이상 이뤄질 수 없었다.
“놀랍군.”
흑암이 그리 내뱉었다.
“너희들의 무력은 능히 무수한 왕들을 뛰어넘었다.”
그것은 흑암 나름의 찬사였다.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듯 그가 탄식했다.
“내 시대에, 그런 형편없는 육신이 아닌 제대로 된 인간으로 태어났다면. 능히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웅을 겨룰 수 있었을 터.”
그는 천천히 다가왔다.
“내가 없었다면 능히 황제에게도 그 검이 닿았을 텐데.”
동정인가? 아니, 진심으로 안타깝다는 말투다.
그것이 이강의 속을 활활 불태웠다.
“처단하기 전에 예우를 다해야겠지. 내 이름은…….”
이강은 아직 그들이 흑암의 정체를 듣지 않았음을 기억했다.
흑암이 입을 열었다.
“내 이름은 치우. 이곳에서 너희들의 목숨을 거두겠다.”
사흉(四凶)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격 높은 신의 이름이 나왔다.
치우(蚩尤)는 옛 천자(天子)이다.
그는 짐승의 육신으로 사람의 말을 했고 머리는 구리로, 이마는 철로 이루어졌다.
온갖 제후들이 치우에게 와서 복종하였니, 그는 가장 포악하며 어느 누구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산해경(山海經)에서 이르길, 황제 헌원씨는 응룡에게 명하여 치우를 죽이도록 하였다.
탁록 들판에서 황제는 치우와 세 번 접전하여 결국 그를 잡아 죽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