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erminally Ill Young Master of the Baek Clan RAW novel - chapter (85)
85화 삼원성화 (4)
당연한 일이었지만, 경신법 시험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이강이었다.
상급에 속하는 영초는 중급의 영초보다 배점이 대략 열 배가량 높다.
그리고 삼원성화의 경우에는 상급 영초의 평균 배점보다 또 열 배가 더 높았다.
이강은 압도적인 점수로 수석을 차지했다.
차석을 차지한 유수린과도 점수의 차이가 컸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돼. 아직 비무도 남았고, 그다음 시험도 있으니.”
진리연이 해 준 조언에 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경신법 시험 내에서는 점수 차를 크게 냈지만, 그래 봤자 차석인 유수린보다 살짝 유리해진 것이다.
“하하하, 그래도 설마 이번에도 수석을 차지할 줄이야. 정말 생각도 못 했어.”
진무도 호탕하게 웃었다. 진무 본인이 이강을 초화당에 데려가 주었을 때만 해도 이강이 삼원성화를 발견할 줄은 몰랐다.
“운이 좋았습니다.”
“운도 실력이지.”
“그저 여우를 따라갔을 뿐인데요, 뭐.”
이강은 이들에게 푸른 여우에 대해서 설명했다.
숨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영천골에서 여우에게 기습당한 문도가 한둘이 아니었으니.
다만 이강이 모든 것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에게는 푸른 여우의 모습이 보였고, 쫓아갔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푸른 여우는 어느 순간 사라졌는데 그곳에 삼원성화가 자라고 있었다고도 말했다.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왜곡과 생략이 섞여 있었다.
청림의 사람들은 이강의 진술을 곧이곧대로 믿었다. 이강이 되려 당황할 정도였다.
“그래…… 여우, 말이지.”
푸른 여우라는 말에도 놀라지 않았다. 특히 진무와 진리연은 아는 바가 있는 것 같았다.
평소에 감정 표현이 덜한 진리연은 안색이 어두워졌고, 늘 여유롭던 진무도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혹시…… 그 여우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까?”
이강이 그렇게 질문했다.
이대 제자들은 그 질문에 움찔했다. 진무도, 진리연도, 엽수남도,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볼 뿐이었다.
진무가 고개를 끄덕이자 진리연이 입을 열었다.
어쩐지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대서고주님에게는…….”
대서고주라고 하면 유정신을 말하는 것이다. 자신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 갑자기 나오자, 이강이 귀를 기울였다.
“원래 제자가 있었지.”
“영화제자 말입니까?”
이강이 목표로 하는 것은 무화제자도 도화제자도 아닌 영화제자였다.
옷소매에 보랏빛 꽃을 수놓을 수 있는 극소수의 문도들.
“그래…… 영화제자였어.”
진리연의 말끝이 조금 흐려졌다. 비록 지금은 무화제자라고 하지만, 그녀는 한때 영화제자를 지망했다고 한다.
“담현 사형은 어렸을 때부터 특출났지. 성격은 조금 특이하지만…… 재능이 있었어. 나이가 어린데도 대사형에 이어서 두 번째로 도호를 받을 뻔했어.”
도호를 받으면 받는 것이지 받을 뻔한 것은 뭘까.
이강은 곧 짐작이 갔다. 대서고주에는 원래 유정신 혼자만 있던 것이 아니라고 했다.
한 명의 영화제자가 더 있었는데, 죄를 짓고 참회동에 갇혔다고 했나.
“참회동에 갇힌 지 벌써 2년이 넘었네.”
“어쩌다가 참회동에…….”
그 죄목이 무엇인지, 진리연은 곧 말해 주었다.
“여우에 홀려서 스승을 찔렀거든.”
이강의 눈이 크게 떠졌다. 사부를 죽이려던 제자라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그깟 짐승에게 홀려서 그랬다는 것은 더욱 놀라웠다.
“그 여우가 설마…….”
“이번에 등장한 요괴와 관련이 있을지는 몰라. 하지만 확인은 해 봐야 할 것 같네.”
평범한 여우가 아니라, 이강이 보았던 요괴라면 가능할지도 모를 이야기였다.
그렇다고 해도 제 스승을 찔렀다니.
엽수남이 이를 갈며 빈정거렸다.
“기사멸조(欺師滅祖), 아니, 그 정도 수준이 아니지. 다른 문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면…….”
불살(不殺)을 추구하는 소림이라도, 사부를 죽이려던 제자를 가만두지는 않을 것이다. 적어도 단전을 폐하고 근맥을 자른 채 가둘 일이다.
“대서고주님의 강력한 주장 탓에 그 정도로 끝난 일이지, 아니었으면 죽었어.”
“수남아, 진정해라.”
진무가 낮게 말했다. 엽수남은 불퉁한 표정으로 입을 다물었다.
“어쨌든 네가 여우 요괴를 봤다고 하니 한번 조사가 이루어질 거야.”
“예, 감사합니다.”
“너도 영화제자가 된다면 대서고에 들어갈 테니……. 말해 준 거고.”
그렇기에 진리연은 이강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 주었을 것이다.
「청림도 자알 돌아가는구나. 꼴이 아주 잘 돌아가.」
불사신검이 그렇게 빈정거렸다.
‘저희 집안보다는 낫지요.’
「……크흠.」
물론 백씨세가 출신으로서, 이강은 담현이라는 자의 죄에 크게 놀라지는 않았다. 그저 그런가 보다 할 뿐.
진리연이 걱정스럽다는 듯 말했다.
“담현 사형은 예전에…….”
“그 싹수 누런 놈 이야기는 그만하거라.”
누군가가 진리연의 말을 끊으면서 등장했다.
나타난 것은 초화당주 도영이었다. 그는 이대 제자들을 못마땅한 눈으로 노려봤다.
초화당주의 성격을 아는 그들은 고개를 조아리며 눈을 피했다.
“뭐 좋은 일이라고, 아직 정식으로 입문도 안 한 아이에게 늘어놓느냐.”
“죄송합니다, 당주님.”
혀를 찬 초화당주는 이번엔 이강을 돌아보았다.
초화당주의 이야기는 엽수남에게 진작 들었다. 정기적으로 영초를 잔뜩 가져가게 된 이강을 눈엣가시로 여긴다나.
과연, 초화당주의 눈은 부리부리해서 압박감이 있었다.
그는 이강을 노려보더니 슬쩍 입을 열었다.
“보배…….”
“예……?”
초화당주의 엄한 표정이 순식간에 풀어졌다.
“이 보배 같은 녀석을 앞에 두고 말이야. 으하하!”
그는 활짝 웃으면서 이강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초화당주가 이강을 마음에 안 들어 했다고 해도 그건 과거의 일이었다.
삼원성화를 초화당주에게 가져다준 순간부터 이강은 그의 애정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하하…….”
이강의 표정은 반쯤 썩어 있었지만 최대한 미소를 지었다. 앞으로 영초를 공급해 줄 초화당주에게 잘 보여서 나쁠 것은 없으니.
“으음, 표정이 영 불편해 보이는구나. 수남아, 가서 의자 하나 가져와라.”
“예? 제가요?”
“그럼 너지. 얼른 가져와!”
졸지에 이강은 엽수남이 가져온 화려한 의자에 앉게 되었다. 아무래도 초화당주의 의자 같다.
삼원성화가 귀한 것은 알았지만 이 정도의 호의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초화당주가 흐뭇하게 말을 꺼낸 것이다.
“이번에 얻은 삼원성화는 황실에 진상할 것이다.”
“황실 말입니까!”
이대 제자들이 감탄했다. 황실의 이름은 그만큼 무거웠다.
“그래, 예전부터 황실이 몇 번이나 삼원성화를 요청했거든. 다 네 녀석 덕분이다.”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이강 역시 납득했다. 삼원성화는 황실이 간절히 원할 정도로 귀했던 것이다.
「구근을 챙기지 못했다면 아까울 뻔했구나.」
‘홀라당 넘겨줄 뻔했네요.’
이강은 가슴 한켠이 따듯해졌다. 그의 침소에는 삼원성화의 구근이 숨겨져 있었다. 꽃과 줄기는 어쩔 수 없이 청림에 주었지만 구근까지 넘길 마음은 없었다.
그 구근 역시 영초임은 틀림없었다. 그것을 복용할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고였다.
“그래서, 네가 채집한 삼원성화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고?”
“예, 그렇습니다.”
초화당주의 질문에 이강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이곳 초화당에 온 것은 삼원성화에 대해 더 자세히 알기 위해서였다.
“삼원성화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영초이지. 이곳 영천골이나 저 북방 지역에서만 극히 드물게 발견되는 것이니…….”
영초에 대한 정보 자체도 보통 귀한 것이 아니었다. 특히 삼원성화 같은 것은 초화당주 정도가 아니고서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복용법과 효험…… 같은 것을 알고 싶습니다. 어울리는 약재 같은 것도요.”
“으응? 뭐 그야…… 알려 줄 수는 있지만.”
도영은 이강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굳이 황실에 진상할 영초에 대해서 복용법을 물을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아하, 녀석……. 언젠가 또 삼원성화를 찾을 기회가 있으리라고 생각하나 보구나.’
그는 내심 그렇게 단정지었다.
이강의 입장에서는 삼원성화를 그대로 넘겨주는 게 내심 아쉬웠으리라.
“좋다. 내가 자세히 설명해 주마.”
어차피 삼원성화같은 희귀한 영초를 다시 찾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내심 이강을 불쌍히 여기며, 초화당주는 세세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우선 생으로 섭취하는 것보다 다른 약재와 함께 연단하는 것이 좋은데. 보통 솥이 아니라 청동으로 만든 솥이 필요하다. 영초의 복용에 있어 가장 기초가 되는 것은…….”
이강은 눈을 부릅뜨며 초화당주의 설명을 하나하나 외웠다.
* * *
대서고의 깊숙한 곳.
청동 솥에 담긴 액체가 기세 좋게 끓어올랐다.
유정신은 조심스럽게 길쭉한 나무집게를 솥에 넣었다.
“읏차.”
집게로 건져 올린 것은 입구가 밀봉된 주전자 같은 것이었다. 주전자를 내려놓은 그는 수건으로 손잡이를 감싸 쥐고 주전자를 옮겼다.
유정신은 정신을 집중했다. 앞으로 할 일은 이강의 몸을 고치기 위해서 반드시 성공해야 할 중요한 과제였다.
그는 주물 틀에 천천히 주전자의 내용물을 부었다. 주전자에 담겨 있던 것은 새하얀 백랍(白蠟)이었다. 백랍이 주물을 채우자, 유정신은 베를 꼬아 만든 심지를 박아 넣었다.
부채질을 해서 굳힌 뒤, 완성된 것은 다름아닌 초(燭)였다. 원통형으로 되어서 심지에 불을 붙이는 그것 말이다.
대서고주씩이나 된 유정신이 심혈을 기울여 초를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휴우…….”
그의 앞에는 화려한 금빛의 촛대가 놓여 있었다. 총 아홉 개의 초를 놓을 수 있는 천신촉대(天神燭臺)라는 보패였다.
불사신검을 성불시키고, 그 영력을 이용해서 이강의 대맥을 잇는다는 계획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대서고주 유정신, 그리고 천하사대신의인 금침의괴 도견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또 아홉 자루를 더 만들어야 하나.”
밑 준비는 또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 귀한 영약과 보패 다수가 쓰인다.
특히 유정신의 앞에 있는 천신촉대는 보패 중에서도 그 격이 높은 것이다. 림주의 허가 없이는 절대 사용할 수 없는, 금지된 보패.
“보통 일이 아니구만…….”
그 보패에 사용하는 초를 하나 만들어 낸 유정신이 한숨을 내쉬었다. 심력이 보통 사용되는 것이 아니었다. 원래는 조수 한 명이 필요한 일이었기에 더욱 힘들었다.
이럴 때면 자꾸 아쉬운 생각이 난다.
“그 애가 있었다면…….”
지금은 참회동에 갇혀 있는…… 기구한 운명의 제자 말이다.
뜨끔.
유정신은 통증이 느껴지는 가슴을 움켜쥐었다.
그의 가슴팍에는 엄지손가락만 한 흰 흉터가 나 있었다. 제자 담현에게 찔린 상처였다. 아직 선명한 흉터가 종종 쑤셨다.
유정신은 마른기침을 하며 일어섰다.
이미 참회동에 갇힌 옛 제자를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는 않았다.
“이강이는, 꼭 몸을 고쳐 줘야지.”
이제는 새로 받을 제자를 위해 더 노력해야 할 시간이었다.
유정신은 문득 떠올랐다는 듯 몸을 돌렸다.
“그 애가 청동 솥을 빌려달라고 했지.”
청동 솥은 보패를 정결히 하는 데 꼭 필요한 물건이었는데 얼마 전, 이강으로부터 청동 솥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뭐에 쓸 것이냐는 질문에는 표정을 굳히고 말을 돌렸지만, 유정신은 곧 이강의 속셈을 간파했다.
“녀석…… 벌써부터 열심히 시험 준비를 하다니.”
이강에게 미리 고지한 영화제자로서의 남은 시험들. 그중에서 청동 솥을 이용해 영약을 연단(鍊丹)하는 시험이 있다.
유정신은 이강이 그것을 대비한다고 추측하고 질문했다.
‘시험을 준비하려 하는 거구나!’
‘아……. 예, 뭐 그런 거죠.’
속마음이 들킨 것이 당황스러웠는지 말을 더듬던 이강.
지금쯤 이강은 자신의 거처에서 열심히 연단법을 연습 중일 것이다. 유정신은 흐뭇하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