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40)
“형, 여기.”
유연서는 저 멀리서 어기적어기적 걸어오는 박승환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누가 봐도 ‘나 어제 과음했어요’ 같은 얼굴을 한 그는 피곤한 구석 없이 늘 잘생긴 유연서를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야, 너는 숙취도 없냐?”
“별로 안 마셨어요.”
“별로 안 마시긴 뭐가 안 마셔.”
잔이 비었다고 누군가가 계속 따라주긴 했다. 그걸 족족 마시긴 했는데 그를 제외하고 다들 매니저에게 질질 끌려가다시피 귀가했다.
‘아마 혼의 영향이겠지.’
남들보다 훨씬 근력이 세지고 오감이 발달한 대신, 취하고 싶어도 취할 수가 없다는 건 조금 아쉽다. 하지만 새벽에 그 난리를 쳤던 지인들의 모습을 생각하자니, 차라리 안 취하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들어가자.”
박승환을 따라서 가게 안으로 들어가려던 유연서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진짜 미팅 장소가 여기예요?”
“해장에는 국밥이지. 여기가 겉보기엔 이래 보여도 맛집이야.”
그렇게 들어간 박승환은 이미 뚝배기에 고개를 처박고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 한 사람 앞에 앉았다. 국물을 크게 들이켠 상대방이 개운한 소리를 내며 말했다.
“크허, 어제 많이 마셨어?”
“어, 완전.”
“그런 거 같더라. 너 포차에서 꽐라된 거 기사로 나왔어.”
“뭐?”
박승환이 황급히 핸드폰을 들었고 유연서는 고개를 틀어 그 화면을 흘끔 바라봤다.
부국제서 다시 만난 ‘게.하’ 멤버들
[★SNS] 최준영, SNS서 게.하 멤버들과 여전한 우정 과시 “이준아 보고싶다”└어우 사진에서 술냄새난다.
└아 아저씨들 술냄새나요ㅋㅋㅋ
└이와중에 유연서 혼자만 멀쩡해보이는거 뭐냐 젊어서그런가ㅋㅋ
└아직도 친목하네 신기하다ㅋ 진짜 친한가봄
└게하 시즌2 ㅅㅊ
└뭐 유연서가 콘서트 게스트 약속했다고? 그럼 노래부름?
└└아 안그래도 콘서트 예매 박터지는데..
“뭐 이런 거로 기사가 나냐. 다 너 때문이야.”
“제가 좀 사진을 안 찍을 수 없긴 하죠. 안녕하세요. 감독님.”
“아, 유연서 씨. 반가워요.”
자신을 탓하는 박승환을 무시하고 그는 감독을 향해 웃으며 인사했다. 감독은 허벅지에 손을 쓱쓱 닦더니 그를 향해 정중하게 손을 내밀었다. 유연서도 마찬가지로 공손히 악수했다.
‘김재호 감독이라고 말을 하지.’
박승환의 트리플 천만 달성작 중 김재호 감독의 영화도 한 작품 있었다. 그만큼 흥행도 챙기면서 연출도 준수한 감독이다. 그 감독의 미공개 시놉을 잡았다니, 생각지도 못한 수확이 넝쿨 째 들어왔다. 역시 인맥은 많을수록 좋다.
“우선 밥부터 먹고 얘기합니다.”
“네.”
음식이 나오자마자 박승환은 말없이 흡입했고, 유연서는 해장이 그렇게 필요하진 않아서 김재호에게 말을 걸었다.
“저 감독님 시놉 몇 개 본 적 있는데, ‘비속 살해’는 처음 봐요.”
보통 이런 시나리오를 돌릴 때는 특정 배우 몇몇 사람에게 돌리는 게 아니라 전국에 있는 소속사 전체에 돌린다. 우리나라에 배우 소속사는 얼마 없다. 배우를 겸하는 가수 소속사 포함해도 그렇다.
“사실 승환이, 쟤한테만 보여줬는데 쟤가 자기 꼭 한다고 아무한테도 공개하지 말라고 했죠. 그게 1년 전이에요.”
“아, 그래요?”
“난 처음에 쟤가 나한테 갑질하는 줄 알았지. 왜, 그런 일 종종 있잖아요.”
이정훈이 당한 제작사 갑질 외에 배우의 갑질도 있었다.
예를 들어 투자자가 많이 붙은 배우나 박승환 같은 영화배우 중 탑스타에게 시나리오를 돌렸는데, 그 배우가 검토해 본다고 하고 몇 년간 답을 안 준다.
그렇다고 시나리오를 묵힐 순 없어서 다른 배우에게 건네고, 그 배우가 하겠다고 했을 때도 문제가 된다.
원래 시나리오를 받았던 배우가 그 소식을 듣고 ‘검토한다고 했잖아. 그런데 왜 다른 배우한테 넘겨? 나 빈정 상한다?’ 이러면 그 감독은 다음 작품부터 위치가 애매해진다. 당연히 그 배우는 못 쓰고, 투자도 못 받으니까.
이렇게 탑 배우가 좋은 시나리오를 몇 년 동안 묶어 놓고 시국 안 맞으면 버리는 경우, 이것도 이정훈 같은 영세 감독들이 당한다고 한다.
이래서 시나리오를 돌릴 때 소속사 전체에 돌리는 것이다.
‘설마 예전에 내가 묶어 둔 시놉도 있을까?’
빙의 이전에 그는 그 정도 급의 탑 배우는 아니었다. 하지만, 배경이 배경이니만큼 들어오는 시나리오도 많았을 것이다. 나중에 문제 되기 전에 처리해야지.
“감독님이 그런 일 당하실 분은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죠. 근데 쟤는 그러고도 남아요.”
“많이 친하신가 보네요.”
그냥 봐도 절친한 친구 사이라는 걸 알겠다. 그러니 이렇게 마음에 없는 소리로 서로 공격하지.
뜨겁지도 않은지 국물을 벌컥 들이켜던 박승환이 그때는 스케쥴이 애매했다고 작게 항의했다. 유연서는 웃음을 참았다. 첫인상은 댄디한 선배 배우였으나, 어제 회식 이후로 그냥 편한 동네 아저씨가 됐다.
“넌 나를 그렇게 못 믿냐? 아무튼 내가 알아서 다 해준다고 했잖아.”
“알아서 한다는 게 사람 하나 끌어들이기냐?”
“왜? 얘만 붙으면 투자, 제작, 배급 삼박자 다 되는데 맞잖아. 너도 민재 역에 유연서 좋다며. 요즘 연기 좋다고 완전 환영이라며.”
박승환의 역공에 김민재는 헛기침했다. 사실, 그때 몸에 알콜이 들어가다 보니 저거보다 좀 과하긴 했다.
이제는 유연서의 평판이 꽤 좋았다. 투자를 하면 돈만 대 주고 아무 간섭 안 하는 거로 말이다. 게다가 연기력도 나아지는 모습을 보이니, 주연 하나 내주고 투자 잘 받는 거로도 남는 장사였다.
“사실 제가 제작사 보는 눈도 없고, 투자자 끌어오고 이런 걸 못 하거든요.”
그나마 박승환이 옆에서 끌어 줘서 천만 감독의 위치까지 온 거지, 안 그랬으면 영화감독 안 하고 다른 길로 전향했을지 모른다.
“아, 그렇다고 잿밥에만 관심 있는 건 아니고요. 연서 씨 연기도 좋으니까.”
“네. 괜찮아요.”
아무튼, 그의 배경을 보고 접근해도 그리 기분 나쁘지 않았다. 그러라고 최유진이 준 직함도 고맙게 받은 거다. 그만큼 좋은 시놉을 가질 수 있으니까.
영화판에는 한 방을 노리는 영세 회사가 많다고 한다. 그만큼 한 번 터지면 돈을 쓸어 담는다는 소리다. 그리고 유연서는 촉이 좋았다. 그의 기민한 감각이 마치 이 작품은 돈이 된다고 얘기하는 것 같았다.
“시놉 보니까 괜찮더라고요.”
“쟤한테 벌써 끌려다니면 안 돼요. 큰일 나.”
“저 형이니까 괜찮은 거죠.”
“야, 네가 왜 좋아하는지 알겠네.”
김재호가 웃으며 박승환을 바라봤다. 박승환은 유연서의 어깨를 두들기며 웃었다.
“아무튼 나야 연서 씨라면 환영하지. 오히려 과분한데.”
그는 고개를 뒤로 빼고 유연서의 상체를 훑었다. 허름한 국밥집에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화려한 외모, 심지어 걸친 옷마저 고급스러움이 보인다. 그런데 신기하게 공간과 잘 어우러진다.
‘신기하네······.’
그는 민재 역할을 물색하기 위해 연령대가 맞는 모든 배우를 조사했었다. 그중에는 유연서도 있었다. 연령대가 조금 안 맞긴 해도, 스타일링 변화로 충분히 학생 역할을 소화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은 꽤······ 괜찮네?’
하지만 그때는 유연서의 타고난 재벌의 분위기가 있다고 해야 하나? 아니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그가 서 있는 공간과 지금이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아서 ‘비속 살해’ 속 민재와는 비슷한 듯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또 달랐다.
“사실 처음엔 좀 애매했어요. 연서 씨가 워낙······ 민재랑 괴리가 있다 보니까. 그런데 이렇게 보니까 또 다르네요.”
“민재가 저랑 살아온 환경이 많이 다르긴 하죠.”
“네. 물론 그거야 연기력으로 보여주실 걸 알지만, 타고난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김재호 감독은 손가락으로 네모난 프레임을 만들어 그 안에 유연서를 가뒀다.
“근데······ 잘 어울릴 거 같네요. 1년 사이에 무슨 심경의 변화라도 있었어요?”
“그럴 리가요.”
사실 그 1년 사이에 많은 것을 겪긴 했다. 기억 동기화가 50%가 넘었고, 여러 사건에 얽혀 있었다. 아마 그것의 영향일까? 유연서는 작게 웃었다.
“그럼 자세한 건 자리 옮기고 얘기할까요? 여기서 할 얘기는 아니네.”
“네.”
드르륵, 의자 끌리는 소리가 들리며 그들이 밖으로 나섰다. 유연서는 어느새 식당 앞에서 대기하고 있는 임승현을 불렀다.
“임승현 씨.”
임승현은 뭐에 홀린 듯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다가 그의 음성에 고개를 홱 돌렸다.
“무슨 문제 있습니까?”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백서준 형한테 연락 온 거 있어요?”
“아뇨, 별거 아니었습니다.”
그는 손에 쥔 핸드폰을 안 주머니에 넣고서는 유연서의 뒤를 따라갔다.
‘무슨 일이 있는 거 같은데······.’
의심스러웠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일이 아니다. 그는 김재호와 박승환을 먼저 보내고, 차윤호에게 전화를 걸었다.
“차 비서님, 계약서 가지고 있나요?”
말이 나온 이상 다른 말 못 하게 바로 계약해 버려야지. 유연서의 뜬금없는 물음에 잠에서 깬 차윤호가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네. 가지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십니까?)
“김재호 감독님 알죠? 그분 차기작 들어갈 거 같은데······ 아마 우리가 제작을 맡아야 할 거 같아서요.”
(기, 김재호 감독님이요? 위치 알려주시면 바로 가겠습니다.)
유연서의 지인 모임에 덩달아 조기 퇴근한 차윤호는 금세 정신을 차렸다. 우리 이사님은 대박을 잘 물어오신단 말이야라고 생각하면서 황급히 옷을 갈아입었다.
“임승현 씨, 소동현은 어떻게 됐어요?”
“곧 퇴사 처리될 것 같습니다. 워낙 뒤가 구린 짓을 많이도 했더군요.”
일 처리는 잘했는데······ 어딘가 멍한 것이 수상하단 말이지. 유연서가 눈을 가늘게 좁히자, 임승현은 멋쩍은 듯 웃었다.
“가시죠, 앞에 기다리고 계신 거 아닙니까?”
“······네. 오래 걸릴 거 같으니까 어디서 쉬고 있어요.”
“네.”
유연서가 두 사람을 따라 카페 안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임승현은 방금 통화했던 것을 곱씹었다.
그는 최남윤의 장례식장에서 봤던 수상한 그림자가 생각나서 백서준에게 CCTV를 볼 수 있냐 요청했었다. 그리고 방금 받은 영상 속에는 그가 의심한 것과 같은 게 있었다.
(CCTV 확인했는데, 의심한 게 맞았어요.)
“······있었나요?”
(영상 보내줄 테니까 확인해 봐요.)
임승현은 곧바로 백서준이 보낸 영상을 재생했다. 그 영상과 소속사 CCTV를 번갈아 보다 보니 특이점을 발견했다. 유연서가 지적했던 그 특유의 걸음걸이. 그 사람이 맞는 거 같다.
잠시 생각에 잠긴 임승현이 다시 전화를 걸었다.
“형사님.”
(네?)
“만약 이 사람이 우리가 도련님 쪽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나올 거 같아요?”
(에이 설마, 우리를 알아봤겠습니까? 거리도 먼데. 게다가 무슨 수로 알아봐요. 일개 경찰이랑 비서인데.)
“만약에 말입니다.”
백서준은 흐음, 말꼬리를 늘리면서 생각에 잠겼다. 그도 취해서 했던 이태겸의 말이 마음에 걸렸었다.
(그렇다면······ 더 눈에 띄려고 하겠죠? 태겸이 말대로 연서, 걔한테 집착하는 게 맞다면.)
“······그렇겠죠.”
(그런데 그건 왜요?)
임승현은 백서준의 궁금증을 채워주지 않았다. 그냥 고맙다고 하고는 통화를 끊었다. 유연서가 응급실에 실려 간 날, 사진에 찍힌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늘었다.
‘나는 팬마저 알아볼 정도로 얼굴이 알려져 있었어.’
그렇다면 그 사람도 알아볼 수 있지 않았을까?
‘설마, 아니겠지.’
그래도 경계는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차 안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