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191)
“*한국인이십니까?”
대리인으로 보이는 사람이 먼저 말을 걸었다. 유연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마침 우리 일행도 그쪽과 대화를 하고 싶다고 어필했다. 상대방도 기분 좋은 듯 화답했다.
“뭐라고 하시니?”
“우리랑 합석하고 싶다는데요? 어떡하실래요?”
사실 이미 허락했지만. 두 사람의 표정을 보니 거절할 것 같지는 않아 보였거든.
“우리야 좋은데······ 네가 피곤하지 않겠어?”
박승환과 김재호 감독은 유연서의 눈치를 봤다. 안 그래도 영화제에서의 세심한 서포트 덕분에 편안했는데, 통역까지 부탁하는 게 본인들이 생각해도 양심이 없어 보였다.
“별로 안 힘든 데요? 뭐 이런 거 가지고······.”
어차피 저쪽 사람들과 인연을 맺으면 나에게도 이득인데. 그래도 두 사람이 불편해하는 거 같으니······ 그는 허공에 손짓해 차윤호를 불러 두 사람의 통역을 맡으라고 지시했다. 박승환과 김재호 감독의 표정이 더없이 밝아졌다. 귀국하면 유연서에 관한 얘기를 신나게 떠벌릴 것이다.
넉살 좋은 성격의 차윤호는 분위기를 띄우면서 두 사람의 말을 전달하고, 프라이스 감독의 말을 옮겼다. 유연서는 제 맞은편에 앉은 사람에 웃으며 인사했다.
“*벤자민이 아니라 실망했습니까?”
“*그럴 리가요.”
프라이스 감독과 같이 다니는 사람이라면 이 사람도 범상치 않을 거라는 직감이 있었다. 게다가 어차피 다른 곳에서도 눈도장을 찍을 일은 많다. 미국의 자선 행사에 몇 번 참여해 보니, 그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영향력이 그쪽에서도 만만치 않은 것을 느꼈으니까.
“*유연서입니다.”
“*크리스토퍼 마틴입니다. 편하게 크리스라고 불러 주시죠.”
김재호 감독이 신나서 말하는 동안, 유연서와 크리스는 정중하게 악수하고 통성명을 했다.
“*실례지만, 영화제는 어떤 일로 왔나요?”
“*제가 참여한 영화가 후보로 올라서요.”
“*오······ 마침 오늘은 해외 영화를 볼 생각이었는데, 어떤 영화입니까?”
유연서는 ‘비속 살해’와 ‘바람의 향기’를 간략하게 설명했다. 그런데, 상대방의 눈빛이 조금 이상했다. 질문하고 싶은데 막힌 느낌이 들었다.
“*혹시 제게 뭐 물어보실 거라도 있습니까?”
그가 조심스레 묻자, 크리스는 화색을 띠며 자신의 핸드폰 화면을 내밀었다.
“*이분을 아십니까?”
크리스가 내민 화면에는 이희서의 영화 데뷔작, ‘행복한 작별’의 포스터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에 잠시 표정 관리를 잊었다. 갑자기 굳은 그의 표정을 보고 크리스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 제가 실수한 거라도?”
“*아, 아뇨. 갑작스러워서요. 이분은 저를 낳아주신 분입니다만······.”
“*역시! 어쩐지 닮았다 싶더라니!”
크리스는 신나서 말을 이어갔다. 알고 보니 이 합석을 주도한 게 크리스였다. 이희서와 비슷한 유연서를 보고 흥미가 돋아 일행에게 양해를 구했다고 한다.
“*제 어머니를 아십니까?”
“*그분의 작품을 알지요. ‘행복한 작별’은 이곳에서도 상영한 적 있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비행기 안에서 얼핏 본 거 같다. 연기 데뷔작으로 칸 영화제 레드 카펫을 밟았다고 화제였는데, 아쉽게 수상하지 못한 것을 실패라 포장하던 시대였다.
“*사실 저는 ‘행복한 작별’을 리부트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습니다. 진지하게요.”
“*그게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을까요? 각색이 많이 들어가야겠지만.”
‘행복한 작별’은 그 시대만의 감성이 있어서 가능했지, 지금 시대상하고 맞지는 않는다. 그런데, 이 정도로 이희서의 팬일 줄은 몰랐는데······ 유연서는 신나서 얘기를 꺼내는 크리스의 말을 대충 맞장구 쳐줬다.
“*그런데 판권을 사려고 해도 살 수가 없더군요.”
“*아아, 그렇군요.”
“*그분은 연기 복귀 안 하신답니까?”
유연서는 물을 마시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이 사람은 모르나? 영화에서 나온 배우의 연기 자체에 매료된 것뿐이지, 배우의 개인사까지는 알지 못하는가 보다.
‘그럴 수도 있지.’
GV에서 관련 질문을 받은 적도 있어서 조금 자만했나. 한국에서는 그의 가정사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어쩌다 그런 주제로 대화가 이어지면, 그와 친한 사람이 은근슬쩍 다른 말로 돌리기도 했고. 그 배려가 갑자기 생각나 유연서는 피식 웃으며 대화 주제를 부드럽게 돌렸다.
“*즐거웠습니다. 혹시 영화제 끝나고 모임에 참여하시나요?”
“*조만간 뵙겠군요.”
식사 자리가 끝날 때쯤, 두 사람은 명함을 교환했다. 유연서는 크리스의 명함에 찍힌 회사의 이름을 보고 눈을 반짝 빛냈다.
‘역시 느낌이 좋더라니.’
미국의 주요 영화 투자배급사 중 하나였다. 아무리 제작사와 배우가 난다긴다하더라도 돈 대는 사람과 틀어주는 사람이 갑이다. 게다가 직급도 꽤 높았다. 여기 오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명함을 품 안에 넣었다.
‘저것만 없으면 완벽한데 말이야.’
그는 눈앞에 아른거리는 하얀 형체를 보고 작게 한숨을 쉬었다.
벤자민 프라이스와 크리스토퍼 마틴은 방금 헤어진 유연서 일행에 관한 대화를 하며 거리를 걸었다.
“*그래서, 대화는 즐거웠나?”
“*즐거웠지. 내 팬을 만나는 건 항상 재밌어. 자네는? 그 잘생긴 친구랑 대화가 좀 통했나 보지?”
벤자민은 제 친구를 의외라는 듯 쳐다봤다. 자신과 흥미가 맞지 않으면 칼같이 끊어내는 사람이었는데, 유연서와는 제법 즐거운 듯 대화했으니까.
크리스는 유연서가 내민 JSENM의 명함을 매만졌다. 그도 들어본 적 있는 회사였다. 한국의 미디어 재벌이라지? 좋은 인연이다. 요즘 들어 한국 컨텐츠가 유행이니. 게다가 그가 감명 깊게 봤던 영화 주연의 아들이라 희한한 우연이기도 하고.
“*오늘은 어디부터 가지?”
“*저 사람들의 영화를 보러 가는 거 어때?”
“*좋아.”
그때만 해도 크리스는 유연서를 단순 제작사 대표로 온 사람인 줄만 알고 있었다. ‘비속 살해’의 상영이 시작되기 전 포스터에서 그의 이름을 발견하기 전까지.
“*오, 아까 잘생긴 친구도 이 영화에 나오나 본데?”
“*그래?”
‘비속 살해’의 포스터는 쭉 뻗은 길을 홀로 걸어가는 황민재를 점처럼 담아서, 어느 배우가 나오는지는 밑에 작은 글씨로 쓰여 있어서 유심히 봐야 알았다. 크리스는 이참에 유연서를 검색해 보았다.
‘주성 그룹······ 아니, 잠깐. 이 사람의 손자라고?’
박금주는 미국에서도 영향력 있는 미술계 거물이었다. 그러고 보니 박금주에게 배우 손자가 있다는 건 듣긴 했었다. 그게 유연서일 줄은 몰랐다. 이번 자선 행사에 그는 일정상 참여하지 못했으니까.
게다가 JSENM 차기 회장의 아들, 잠깐. 차기 회장? 이희서는 그러면 뭐지? 그는 유연서의 위키 페이지에서 따로 링크가 걸린 페이지를 눌렀다.
‘아까 표정이 이상했던 이유가 있었구먼······.’
내가 실수를 했군······ 나중에 사과해야겠어.
그렇게 생각한 크리스는 핸드폰을 품속에 넣고 영화를 감상했다. 그리고 갈수록 눈빛에서 흥미가 일어가는 게 보였다.
‘이거 참······ 뮤즈를 찾은 듯한 눈빛이군.’
벤자민 프라이스는 그런 크리스를 흘끔 바라보며 작게 웃었다. 하지만 그도 화면 속 두 조손의 연기에 푹 빠져 있었다.
박승환이 노인 분장이라는 걸 모를 정도로 그 연령층의 몸짓과 벼랑 끝에 몰린 삶을 잘 표현했고, 유연서도 위태로운 소년에서 점점 홀로서기를 하는 모습에서 다양한 매력이 보였다.
“*이거······ 수상할 것 같나?”
영화의 메인 OST와 함께 스태프 롤이 올라온다. 상영관을 나가는 관객 반응도 좋았다.
프라이스 감독은 심사위원도 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크리스의 질문에 제 턱을 쓸어내렸다. 적어도 감독상이나 배우상 둘 중 하나는 가져갈 것 같았다. 하지만 지금은 심사위원이 아니니 단언할 순 없었다.
“*글쎄, 궁금해지는군. 한 번 물어볼까?”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어, 자네. 바쁜가?”
***
“연서 씨!”
“오랜만이네요.”
‘바람의 향기’의 포토콜 행사, 유연서는 제작사 대표로 참여했다. 그는 이런 자리가 처음인 듯 보이는 두 주연 배우를 보고 웃음을 삼켰다. 특히 이민준의 어깨가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아 잠깐만요, 연서 씨는 천 감독님 옆으로 가세요.”
“왜요?”
“옆에 서면 비교된단 말이에요.”
그는 군말 없이 천 감독의 옆에 섰다. 그러자, 천 감독도 질색했다.
“먼 타국에서 이러기에요?”
“자네가 옆에 있으면 내가 오징어가 되잖아.”
“그건 또 어디서 보셨어요?”
유연서가 헛웃음을 지었다. 시상식에도 나가지 않던 그가 교통사고 이후로 꾸준히 나오게 되고, 제작 발표회라던가 홍보 활동도 적극적으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은 그에게 한 가지 주특기가 있다며 별명을 붙였다. 바로 ‘옆 사람 오징어 만들기’다.
다시 홍민아의 옆으로 온 유연서는 카메라를 향해 웃었다. 홍민아는 샐쭉한 표정이었지만, 이게 다 장난이라는 것을 유연서도 안다.
“그래서, 마음에 드는 드레스는 맞췄어요?”
“그럼요. 깜짝 놀라실걸요? 에스코트해 주실래요?”
“민준 씨 있잖아요. 그리고 저도 ‘비속 살해’ 팀으로 가야지.”
“에이, 아쉽다. 아예 두 팀이 같이 입장하는 건 어때요?”
“그것도 좋네요.”
다들 영화제 참석에 의의를 두는 것 같았다. 물론 천 감독이야 이번에도 유력한 수상 후보로 떠오르고 있으니 예외로 치고.
“배우는 난데 어째 연서 씨한테 더 집중되지?”
“누나, 다 아는 질문을 굳이 말하지 마.”
“에이······.”
시무룩한 홍민아를 이민준이 위로했다.
이어서 ‘비속 살해’ 팀과 포토콜 행사를 진행한 유연서는 자신을 향해 사인지를 내미는 팬들을 여유롭게 맞이했다.
유연서는 배우로서, 그리고 제작사로서 스케쥴을 소화했다. 어차피 천 감독의 ‘바람의 향기’가 좋은 평가를 받고 있으니, ‘비속 살해’는 기대를 내려놓았다.
“허억······!”
주목할 만한 시선 부문의 감독상으로 김재호 감독이 불렸을 때는, 유연서도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워낙 경쟁작이 쟁쟁해서 그도 예상하지 못했었다.
“어, 어떡하죠?”
“그냥 한국어로 말하세요.”
유연서는 박승환과 함께 김재호 감독의 등을 떠밀었다. 울먹거리며 수상 소감을 말하는 김재호 감독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느낌이 좋았다.
***
“*축하합니다.”
유연서는 자신에게 잔을 내미는 크리스를 웃으며 반겼다. ‘비속 살해’는 비경쟁 부문의 주목할만한 시선, 감독상을 받았고. 천 감독의 ‘바람의 향기’는 경쟁 부문 감독상을 받았다. 두 영화 다 유연서가 적극적으로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다음엔 배우로서 상을 타고 싶은데······.’
범인을 잡겠다는 감정에 휘말려 잠시 흐트러졌을 뿐이지, 연기에 관한 열정도 남아 있었다. 이 모든 게 다 끝나면, 이제 진짜로 하고 싶은 걸 하며 살아야지.
“*제가 연서 씨한테 사과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사과요?”
“*연서 씨를 단순 제작사 직원인 줄 알았거든요.”
아하, 그 복잡한 가정사를 이제 봤다는 거군. 유연서는 피식 웃었다.
“*이 얼굴로 단순 제작사 직원 하긴 아깝지 않나요?”
“*하하! 그렇긴 하죠.”
그의 농담에 크리스도 굳은 얼굴을 풀었다. 유연서는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작품 속 이희서를 잘 알지만, 배우 본체에 관한 관심은 없다. 그만큼 작품만 보고 평가하는 사람이다. 이 사람의 평가를 들어보고 싶었다.
“*그래서, 연기는 어땠나요? 제 친모가 당신에게 충격을 줬던 것처럼, 저도 충격을 줬나요?”
“*그 이상입니다.”
크리스는 진지한 얼굴로 ‘비속 살해’ 속 그의 연기를 장황하게 분석했다. 유연서는 그 평가가 신선하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얼굴이 화려하게 생겨서 얼굴에 관해서 많이 집중됐는데, 크리스는 얼굴에 관한 건 전부 배제하고 오로지 연기에 관한 철학을 늘여놓고 있었다.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할 생각은 없나요? 제 자랑은 아니지만, 이쪽 영화계에서 힘 좀 있는데······.”
“*저야 영광이지만, 아직 그럴 생각은 없어서요.”
좋은 시나리오라면 생각해 볼만 하지만, 한국에서도 못해 본 신선한 시나리오가 있을 거다.
“*생각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주세요.”
하지만 크리스의 호의는 즐겁게 받았다. ‘비속 살해’가 제법 그의 마음에 들었나 보다. 나중에 새로운 변화가 필요할 때 철판 깔고 요청해야지.
“*조금 아쉽게 됐군요. 그분이 살아 계셨으면 두 분이 배우로서 레드 카펫에 오를 수도 있었잖아요?”
그의 목소리에 유연서는 씁쓸하게 웃었다. 홍민아처럼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이희서의 손을 잡고 레드 카펫을 올라간다라······ 그가 연기자 활동을 했을 초반에는 그런 상상도 했었던 것 같다.
엄마가 살아있었으면 이런 환영도, 환청에도 시달릴 일 없었을 테지. 가족 분위기는 더없이 화목했으리라. 모자가 동시에 수상 부문에 올라 즐겁게 시상식을 참여하고, 집에서 샴페인을 터뜨리는 그런 것들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상상하는 것도 최유진에게 죄책감이 들어서 그는 그 생각을 빠르게 접었다. 하지만 입을 통해 새어 나오는 아쉬움은 막을 수 없었다.
“······그러게요.”
동시에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 상대를 향한 감정이 더욱 깊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