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5)
노인은 일단 시민을 위해 마련된 추모 천막으로 향했다. 그때, 유은호와 유연서가 미술관 밖으로 나왔다. 형제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던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었지만, 주성의 경호팀에 의해 제지당했다.
“저······.”
노인에게 다가간 형제가 조심스레 말을 붙였다. 노인은 형제를 올려다보고 감회가 새로운 듯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랜만입니다.”
이희서의 사망 이후 교류가 끊겼던 사람이라 그런지 노인의 행동은 정중하고, 거리가 느껴졌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냥 조용히 보고 가려고 했는데······.”
“이렇게 뵌 이상 그냥 보내드릴 순 없어서요.”
형제는 조용한 곳으로 노인을 이끌었다.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노인은 누구인지 흘끔흘끔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 많이 컸군요.”
그리고 많이 닮았고. 노인은 형제의 얼굴을 신기한 듯 바라봤다. 특히 유연서의 얼굴에서 오랫동안 시선이 멈춰 있었는데,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것을 보니 유연서의 얼굴을 통해 제 딸의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동안 연락도 없이 이렇게 온 게 미안해서······.”
“저희도 이해합니다.”
눈물을 훔치는 노인을 보며 유연서는 망설이는 듯 입술을 달싹였다.
“할머니.”
그의 호칭을 듣자마자 눈물이 더 쏟아졌다. 노인, 박화윤은 오랜만에 만난 두 손자 앞에서 통곡했다.
재벌가에 시집갔던 딸이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오자, 남편은 심장 마비로 사망했다. 그렇게 그녀는 남편과 딸을 동시에 잃었다.
그것도 딸의 사인이 자살이란다. 원망을 사위인 유건민과 주성 일가에게 쏟아냈고, 그렇게 집안의 연은 끊어졌다. 남겨진 두 손자가 그립긴 했지만, 당시에는 실의에 빠져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머무르실 곳은 있으신가요?”
“아뇨, 괜찮습니다. 그냥, 이렇게 있다 가겠습니다.”
하지만 뒤늦게 딸의 사망과 관련한 진실이 밝혀졌다. 그것도 두 손자 덕분에 밝혀졌다고 한다. 애먼 곳에 원망을 쏟아낸 자신이 미웠다. 그리고 인제 와서 찾아온 자신이 염치없어서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잠시, 아버지는 뵙고 가세요.”
형제가 급히 제 아버지를 찾으러 나갔고, 박화윤은 광장을 채운 수많은 사람을 바라봤다. 다 제 딸을 추모하러 온 것이다. 그녀는 큰 화면 속 제 딸과 바깥에서 제 아버지를 부르는 손자들을 바라봤다.
“앞으로 멀리서 응원하겠습니다.”
그래, 이 정도면 됐다. 박화윤은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어디 가셨지?”
“혹시 여기 계신 분 못 봤어요?”
그리고 그사이 비어버린 공간에 형제는 허탈한 듯 숨을 토해냈다.
***
유연서와 ‘드리밍’에 참여했던 정다희 작가는 요즘 JSTV에서 방영 중인 드라마의 집필 작업을 마치고 지친 얼굴로 회의실의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엇, 정 작가님.”
미리 도착해 자리에 음료를 놔두던 ‘백호함’과 ‘스네이크’의 작가 김대성이 그녀를 알아보고 의자를 빼 주었다. 정다희는 의자에 눕듯이 앉아 밀려오는 졸음을 애써 무시했다.
“김 작가님 되게 일찍 오셨네요? 요즘 바쁘시지 않아요?”
“누구 부탁인데 당연히 와야죠. 그러는 정 작가님도 아직 집필하셔야 할 때 아닌가요?”
“방금 마지막 회 대본 보내고 오는 길이에요.”
“축하드립니다.”
한창 드라마 방영 중인 김대성 작가의 몰골도 말이 아니었다.
“그러면 쉬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연서 씨 부탁인데 와야죠. 잠은 나중에 자면 되니까.”
정다희는 김대성의 말을 되받아쳤다. 다른 사람들이 올 때까지 졸음을 삼키던 그들은 회의실의 문이 열리자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이어서 ‘악귀’의 임예나 작가와 ‘연좌제’의 김예진 작가까지 회의실 안으로 들어섰다.
“김예진 작가님은 처음 뵙네요. 저는······.”
그들은 어색하게 통성명을 했다.
“어머, 벌써 다 모였네?”
“안녕하세요.”
“너무 그렇게 딱딱하게 굴지 말고 그냥 편하게 말해요. 내가 제일 나이 많지?”
이어서 대선배 격인 민주경까지 회의실로 들어서자, 작가들이 깍듯하게 인사했다.
“다들 그때 잘들 들어갔죠?”
“네, 민 작가님은요?”
“어우, 늙었나 봐. 숙취가 생기더라고. 혹시 다들 주성 미술관도 갔었어요?”
다들 서로 잘 아나 보네······ 김예진 작가는 쭈뼛거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를 의식한 정다희 작가가 화제를 돌렸다.
“아, 김예진 작가님은 그때 안 오셨었죠? 저희는 연서 씨 모임에서 뵌 적이 있어서.”
“다음에 꼭 함께해요.”
“굳이 연서 씨가 모임을 열 때까지 기다릴 필요 있나요? 지금 친해지면 되죠.”
“맞아. ‘연좌제’ 잘 봤어요. 신인 같지 않던데?”
다들 초면인 김예진을 배려해 ‘연좌제’에 관한 칭찬과 감상을 늘려놓았다. 김예진은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도 유연서 라인에 들어가는 건가?’
유연서는 의도치 않았겠지만, 그의 지인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은 알음알음 ‘유연서 라인’으로 퍼졌다.
유연서로 인해 데뷔한 작가와 감독들이 다른 히트작을 만들어 내면서 점점 몸집이 커졌었고, 이미 톱배우 반열에 든 박승환과 신예원 진수호 등 인지도 있는 연예인들까지 있었다.
모임에서 인연이 닿아 서로의 작품과 공연에 우정 출연하는 등 활발하게 교류하는 모습은 자연스레 소문이 퍼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많은 업계 사람들이 ‘유연서 라인’에 들려고 그에게 눈도장을 찍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이사회에 참석하고 바로 회의실의 문을 연 유연서가 등장하자, 작가들이 크게 환호했다.
“연서 씨!”
“와, 수트 빨 장난 아니신데?”
“우와 그렇게 입으시니까 진짜 임원 같아요. 진짜 임원 맞으시지만.”
“오늘은 배우가 아니라 이사님이시네요.”
유연서는 환호하는 작가들을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봤다. 애초에 그가 부른 건 두 명 정도였고, 다른 사람들은 바빠서 올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제가 이렇게 많은 사람을 불렀던가요?”
“누구 부탁인데 당연히 와야죠.”
“그래도 저한테 직접 연락해 주시지. 저도 시간 낼 수 있었거든요?”
오히려 불러주지 않아서 섭섭하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유연서는 상석에 앉으면서 피식 웃었다.
“다들 바쁘신 몸인데 제가 귀찮게 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아무리 바빠도 당신만 할까요? 작가들은 흐뭇하게 웃었지만,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입 밖으로 내뱉진 않았다. 유연서는 괜찮은 회사의 인수전에 뛰어들었고, 자기가 출연하는 작품 외에 다른 작품의 제작에 손을 대면서 바쁘게 보내고 있었다.
“아무튼, 다들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들이 다시금 손뼉 치며 환호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을 부른 건 팬 미팅에 쓸 미니 드라마의 대본을······.”
“와! 드디어 팬 미팅 하시나요?”
“진짜요? 대박!”
유연서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작가들의 호들갑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작가들은 흥분해서 유연서의 팬 미팅에 뭐가 나올지 미리 상상했다. 조용히 상황을 지켜보던 임예나 작가가 넌지시 물었다.
“미니 드라마라면 그동안 연기하셨던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서 진행하는 거죠?”
“네, 사실 팬 서비스용으로 가볍게 진행하려다가 점점 욕심이 생겨서요. 작가인 여러분들 허락이랑 의견도 들어보고 싶고.”
사실 본격적으로 팬 미팅용 드라마 대본을 쓰고 연기를 할 생각은 없었다. 그동안 연기했던 캐릭터가 가볍게 대화하는 형식으로 진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직접 주성 전자에서 확인한 기술력이 완성도가 높았고, 공익 광고에도 단편 드라마로 판을 키웠는데, 팬들을 위한 무대를 대충하기는 또 마음에 걸렸다.
“너무 좋다.”
“팬들 진짜 좋아하겠다. 그쵸?”
작가들은 무엇보다 유연서에게 적잖은 감동을 받았다. 유연서가 참여하는 작품들은 그가 투자와 제작에 관여해서 관련 저작권도 그의 지분이 많았다. 사실 이렇게 허락을 맡지 않아도 유연서가 알아서 진행하면 됐었다.
하지만 이렇게 양해를 구하고 대본을 부탁한다는 건, 유연서가 출연한 작품과 캐릭터에 애정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당연히 고료는 지급해 드릴······.”
“연서 씨. 정 없게 왜 이래? 우리가 이런 거 가지고 돈 받을 사이야? 다들 그렇죠?”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 작가인 민주경이 말해서 따라 하는 게 아니라 정말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유연서 덕분에 데뷔를 한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이 정도의 재능 기부는 당연히 해줄 수 있었다.
눈치만 보던 김예진 작가가 조심스레 손을 들었다.
“고료는 안 받아도 상관없지만, 팬 미팅 티켓은 받고 싶은데요. 안 될까요?”
“김예진 작가님 말 잘하셨네! 나도 티켓 주세요.”
“고료보다 팬 미팅 티켓이 더 비싸지는 거 아니에요? 저도 숟가락 얹겠습니다.”
유연서는 당연히 챙겨준다 약속했다. 그러자, 작가들은 마치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기뻐했다. 유연서의 첫 팬 미팅이었다. 얼마를 줘도 못 구할 귀한 티켓이 되는 건 거의 확정이었다.
“연서 씨는 생각해둔 게 있나요?”
“모든 캐릭터를 한 세계관에 전부 넣어서 보여줄 수는 없겠고······ 각 작품에 나왔던 세계관 중 몇 개를 정해서 거기에 맞게 캐릭터를 맞춰보고 싶은데요.”
“와, 좋아요. 저는 ‘악귀’ 세계관 추천이요.”
임예나 작가는 뻔뻔하게 자신의 작품을 추천했다. 하지만 그녀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구마사제 얘기니까 오컬트를 믿지 않는 경찰 캐릭터를 등장하기 쉬울 거 같아서요. 사건에 공조하는 느낌으로 가도 되지 않을까 해서요.”
“오······ 좋네요. ‘스네이크’의 한유준과 ‘연좌제’의 강윤성으로.”
“그렇게 생각하면 ‘드리밍’도 괜찮지 않을까요? 유토피아에 빠진 캐릭터를 춘백이가 구하는 거로······.”
창작자 다수가 모여서 얘기하니 아이디어가 툭툭 튀어나왔다. 유연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작가들의 대화를 들었다.
“아니면 ‘백호함’ 세계관은 어때요? 여기에 ‘국새’의 입헌군주제 세계관을 도입해서 괴물에게 빼앗긴 수도를 되찾는 느낌으로······.”
“그건 그거대로 재밌을 거 같긴 한데······ 그래도 원작은 존중해야죠. 현우는 서은이랑 행복하게 사는 거로 합시다.”
“연서 씨. 나 감동 먹으려고 해.”
유연서는 제 가슴을 잡고 옆으로 넘어지는 민주경을 향해 눈을 찡긋했다.
“오로지 연서 씨 캐릭터만 나오는 거죠?”
“네, 여기 오지 않으신 분들의 작품 캐릭터도 미리 허락을 구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속 살해’ 속 민재는 행복해졌으면 좋겠는데요.”
“그건 감독님과 상의를 해 볼게요.”
아무래도 마지막을 추상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고작 팬 미팅에서 황민재의 결말을 정해버릴 수는 없었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을 찾아야 했다. 그래서 아예 원작자들을 불러 이렇게 대화하는 시간을 가졌고.
“혹시 특별 출연까지 포함인가요?”
“그건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
“저 사실 ‘다만’에서 특별 출연하신 캐릭터가 궁금하긴 했는데요. 그 짧은 와중에도 사연이 있었잖아요?”
그 와중에 ‘연좌제’의 김예진 작가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녀는 유연서의 팬클럽까지 가입할 정도로 그의 팬이었다. 팬 미팅에 관해 궁금한 사항이 너무 많았다.
“네, 김예진 작가님.”
“그······ 팬 미팅이요. 미니 드라마로만 꽉 채우실 건 아니죠? 다른 배우분들 팬 미팅 보면 노래도 부르시고 그러던데.”
“그렇죠. 곡 발표도 해야 하고요.”
“곡 발표? 설마 앨범도 내세요?”
“네. 아, 이건 기사 나올 때까지 비밀입니다.”
사실 이들은 검증이 된 사람들이었다. 그는 이재학 피디와 예능 논의를 하고 모였던 자리에서 속 이야기를 털어놓았었고, 그 이야기는 지금까지 다른 곳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김예진도 유연서와 드라마를 한다는 걸 그 어디에도 말하지 않아서 ‘연좌제’ 발표 전까지 아무에게도 이야기가 새어 나오지 않았었다.
“와······ 티켓 달라고 하길 잘했다.”
“노래하는 시간도 적지 않을 텐데, 미니 드라마까지 하면 시간이 될까요?”
“그러게요, 2시간 안에 다 되려나?”
제 팬 미팅 시간까지 고민하는 모습에 유연서는 고개를 기우뚱했다.
“왜 2시간이라고 생각하시죠?”
“네?”
그거야 보통 공연 시간이 2시간이니까······ 작가들이 그렇게 생각했을 때, 유연서가 그들의 의문을 풀었다.
“제 예상대로라면 4시간은 넘을 거 같은데······.”
“진짜요?”
“아니, 체력이 되세요?”
팬 미팅을 4시간 넘게 한다고? 이 순간만큼은 다들 기대에 가득 차서 유연서의 건강 문제는 회의가 끝나서야 떠올릴 정도였다.
“어차피 이렇게 미니 드라마까지 들어가면 막상 제가 공연하는 건 얼마 되지도 않아요. 관객들이야 중간에 쉬는 시간을 주면 될 거 같고. 아, 그러면 5시간이 넘으려나?”
“대박이다.”
다들 유연서의 작품을 썼던 작가이기도 했지만, 그 기회로 유연서의 팬이 된 사람이었다. 조금 전까지 피곤함에 절어 있던 정다희와 김대성이 활발하게 의견을 내뱉었고, 다른 작가들의 눈에도 생기가 돌았다.
“그럼 저희가 재밌게 한 번 써보겠습니다.”
“기대하겠습니다.”
유연서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