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24)
아직 제대로 된 기획안도 나오지 않았는데 배우부터 섭외한 건 특이한 유형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이 주제의 광고가 탄생하게 된 계기가 유연서에게 있었다.
올해 공익 광고 프로젝트는 4개의 주제를 선정했었다. 운전자 예절, 학교폭력과 사이버 폭력, 마약과 도박, 환경과 동물보호였다.
그리고 작년, 이희서가 스토킹 범죄의 피해자로 밝혀지면서 도촬과 스토킹 범죄에 관한 주제가 새로 만들어져 총 5개의 주제로 결정됐다.
“그러니까······ 출연자를 다 모아서 단편 드라마 형식 만들자고요?”
“네. 주제를 나뉘어서 찍지 말고, 아예 다 합쳐서 주제에 맞게 잘라 쓰는 거죠.”
유연서는 그 제안을 듣고 바로 수락했다. 어차피 차기작도 정하지 않았고, ‘연좌제’의 연장 느낌으로 좋은 이미지를 끌어 올릴 수도 있었다.
마침 광고의 제작과 기획을 JSENM 산하 광고 계열사에서 맡아서 제안하기 쉬웠다. 초반 계획은 지면 광고와 15초짜리 영상 광고였는데, 유연서는 단편 드라마 형식으로 동영상 플랫폼과 TV에 송출하지 않겠냐고 역제안했다.
“와······ 진짜 스케일이 커지는데요.”
책임자는 유연서의 말을 듣고 입을 벌렸다. 광고 출연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연예인들이 다 내로라하는 톱스타 반열에 든 사람들이었다.
“그게 예산 안에 될까요?”
“돈 걱정은 하지 마시고.”
유연서는 출연료를 받지 않을 생각이었다. 진수호나 신예원을 비롯한 몇몇 배우들은 출연료를 받지 않고 재능 기부를 하겠다고 얘기했다고 하던데······ 촬영 시간을 내는 게 문제라서 아마 출연진이 달라질 수는 있겠다.
“주제도 다섯 개라 규모가 큰데 고작 15초짜리면 설득력이 없죠.”
“저희로서는 환영입니다만······ 이게 통과가 될까요? 워낙 스케일이 커서······.”
“당연히 되겠죠.”
내 돈 들여 크기를 키우겠다는데 그쪽에서 거절할 리가. 오히려 쌍수를 들면 들었겠지.
“왜 이렇게까지 하시는지······.”
“재밌잖아요. 돈 많은 사람의 취미 생활이라고 해 두죠.”
인지도 높은 연예인을 한데 모아서 드라마를 찍는 일이다. 각자 스케쥴도 다르고 취향이 달라서 작품에서 마주친 적 없는 배우도 있었다.
“그러면 드라마 제작사와도 협의해 봐야겠군요.”
이때 아니면 언제 모여서 단편 드라마를 찍어보겠나. 유연서는 가볍게 말했다. 하지만 책임자는 다르게 받아들였다. 아마 이희서와 관련한 일이라서 더욱 적극적으로 된 게 아닐까? 하지만 책임자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럼 말씀해주신 방향으로 저희가 해 보겠습니다.”
“이참에 광고상까지 노려보시죠?”
“좋죠. 저희도 그걸 바라고 있습니다.”
안 그래도 위에서 실적 압박이 들어오는데, 로열이 나서서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하니 책임자는 입가에 웃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원래 배우가 저런 것까지 다 하나?”
“보통은 안 하죠. 쟤가 일 중독이라니까요.”
지켜보던 임승현과 이태겸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유연서의 상담의, 윤호영은 뒤따라 들어오는 제작팀을 신기한 듯 바라보았다.
“어제 말씀드렸죠? 상담을 촬영하겠다고.”
“네. 저야 상관없는데······ 연서 씨는 괜찮으시겠어요?”
유연서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상담 영상은 오로지 이재학 피디만 확인한다. 그리고 편집도 이재학 혼자서 할 예정이었다.
윤호영은 카메라를 설치하고 나가는 제작진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문이 닫히고, 목을 큼큼 가다듬은 그가 이미 제 안방인 듯 편히 앉은 유연서를 향해 입을 열었다.
“카메라가 찍는다니 어색하네요. 요즘은 좀 어떠세요?”
“똑같죠.”
“혹시 그 증상도······?”
“선생님, 그냥 평소처럼 하셔도 돼요. 편집 들어가니까.”
카메라를 의식해 애써 말끝을 흐리는 모습에 유연서는 피식 웃었다.
“아무튼, 똑같아요. 여전히 하얀 천 쪼가리 보면 심장 벌렁거리고.”
“잠은 어떠신가요?”
“잘 잘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고 그래요.”
윤호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약물 치료는 아직 생각 없으신 거죠?”
“아무래도 아직 원인도 알지 못하는 문제가 있어서.”
“그렇죠.”
유연서는 손을 들어 입안의 무언가를 게워내는 시늉을 했다. 그 가벼운 행동마저 애써 괜찮은 척하는 것 같았다. 윤호영도 주성 병원 소속이라서 유연서가 가진 신체적 문제를 다 알고 있었다. 윤호영은 심각한 표정을 애써 숨겼다.
“이 상담을 촬영하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나요? 방송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알 텐데······.”
“숨길 이유가 없다고 생각해서요.”
윤호영은 손을 깍지끼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경청의 자세였다.
“어차피 정신 질환은 다른 동료 연예인들도 종종 겪는 일이잖아요.”
“네, 많이들 찾아오시죠.”
“그런 거 보면 저도 숨길 필요는 없죠.”
그렇다고 상담 과정을 아예 공개해 버리는 건 다른 이야기였다. 윤호영은 재촉하지 않고 유연서의 뒷말을 기다렸다.
“어릴 때 말이에요.”
말을 할까 말까 망설이던 유연서는 작게 한숨을 토해내고 아예 소파에 누워버렸다. 윤호영은 그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 공간은 유연서의 상담을 위해 꾸며진 방이었다.
“그 사건을 목격한 뒤로 몸이 제어가 안 됐거든요. 아시죠?”
“네.”
윤호영은 유연서의 주치의가 되기 전, 이미 예전 내용까지 다 정독했었다. 하지만 유연서 본인의 얘기를 들을수록 맞지 않는 내용이 발견됐었다.
‘의사로서 못 할 짓을 했지.’
주성에서 주는 지원금에 눈이 돌아가 일부러 다른 소견을 썼을 때는 같은 의료인으로서 이래도 되는가 분노했으나, 나중에 찾아보니 이미 주성에서 손을 썼다고 했을 때는 소름이 돋았었다. 그 의사는 의사 자격도 박탈되고 행방불명돼서 어디서 뭘 하는지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아무튼, 어린 애가 그렇게 뒤집히니 어른들도 식겁하고. 집안 분위기가 좀 좋진 않았어요.”
“······.”
“온 신경이 나한테 쏠리니까 형 눈치도 보이고요. 형도 나랑 똑같이 엄마를 잃었고, 어렸었잖아요?”
유연서는 멍하니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생각을 짊어지고 있었다.
윤호영은 일어나서 물을 끓였다. 이태겸을 통해 유연서의 커피 취향까지 이미 다 조사해놓았다.
“아버지는 엄마가 자살할 리 없다고 일도 때려치우고 몰두하고, 할아버지는 그 모습에 역정 내지, 내가 자지러질 때마다 다들 신경이 곤두서 있지. 그래서 내 나름대로 생각한 게 ‘아무것도 말하지 말고 숨기자’였어요.”
“······.”
“내가 그걸 보는 것도, 그 새끼 때문에 엄마가 죽은 것도 나 혼자만 알았고. 그런데 토해낼 데가 없으니 어쩌겠어요. 나를 때렸지.”
나 때문이라고 자책하며 땅굴을 팠다. 동기화가 온전히 되지 않았을 시절에는 감정에 시달리는 과거의 나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래서 증상이 심해진 것일 수도 있죠, 아무튼.”
윤호영이 테이블에 커피를 내려놓자, 유연서는 몸을 일으켰다.
“그게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너무 늦게 깨달았죠.”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전한 유연서는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근데 정신 질환에 걸린 것도 내 잘못은 아니죠. 그냥, 감기처럼 병에 걸린 것뿐이고 치료를 하면 되는 거고요.”
“그럼요.”
“그럼 숨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고요.”
가벼운 미소를 띠며 말하고 있었지만, 목소리는 더없이 진지했다.
“사실 나와 비슷한 증상을 겪는 사람들이 궁금해서 한 번 검색해본 적도 있어요. 그런데 네가 나약해서 그런 거다. 그런 거 하나 못 버티고 이 각박한 사회에서 버틸 수 있냐. 뭐 그런 얘기를 듣는 사람도 있다고 하더라고요?”
“요즘 들어 인식이 개선됐지만, 슬픈 현실이죠.”
윤호영은 안타깝다는 듯 표정을 흐렸다.
“제가 어떻게 불리는지 아세요? 선생님 주변 사람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나요?”
유연서의 의도를 알아차린 윤호영이 웃으며 말했다.
“돈 많은 재벌에 얼굴도 잘생기고 요즘은 능력도 좋으시니, 솔직히 같은 사람으로서 질투가 생깁니다.”
“그런 나도 다른 사람과 다를 바 없어요. 뭐, 좀 재수 없는 건 맞지만.”
윤호영은 전혀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지만, 유연서는 뻔뻔하게 말했다.
“남들 보기엔 그렇게 완벽한 줄 알았던 나도 마음의 상처를 받는 건 다른 사람과 똑같다는 걸 방송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
“그러니 마음이 아프면 바로 의사의 도움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나도 치료받고 있으니까요.”
유연서가 카메라를 향해 말했다. 윤호영은 큰 결정 하셨다며 그를 칭찬했다.
“아마 지금 찍는 예능의 수익금도 저소득층 정신 질환 치료에 기부할까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연서 씨의 마음이 편해질까요?”
“저는 지금도 편한데요.”
그가 생각하기에도 설득력 없는 대답이었다. 아, 너무 이렇게 가 버리면 내 팬이 슬퍼하려나? 유연서는 황급히 말을 덧붙였다.
“심적으로 조금 힘들었지만, 연예인 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있어요.”
“팬들 덕분인가요?”
“네.”
유연서는 짤막하게 팬들에게 위로받았던 일화를 풀었다. 무거웠던 표정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오랜 상담 시간 끝에 유연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 봐야겠네요.”
“내일이 벌써 그 날이군요.”
“선생님도 오시나요?”
윤호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
주성 미술관, 5월 10일부터 20일까지 故 이희서 추모 공간 꾸민다
故 이희서 사망 25주기, 추모 공간 시민 개방
“······사람 많네.”
유연서는 벌써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을 보고 눈을 가늘게 좁혔다.
“우리 엄마가 이렇게 인기가 많았나?”
“너 보러 온 것일 수도 있겠지.”
“아니면 형을 보러 온 것일 수도?”
“나는 왜? 연예인도 아닌데.”
“형 방송에 나오면서 형 팬클럽 가입 많아진 거 몰라?”
아마 유연서와 유은호를 보러 온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건이 종결된 뒤로 유건민은 수집했던 저작권을 풀어 TV와 OTT에 작품을 풀었고, 이희서의 생전 작품들을 보고 뒤늦게 입덕했다는 사람도 있었다.
“요즘 들어 네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할아버지가 좋아하시더라.”
“올해까지만 그렇게 하려고.”
“왜?”
“엄마를 너무······ 우려먹는 것 같잖아.”
유은호는 동생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고인을 이용해 주성의 이미지를 올리려는 거 아니냐는 소수의 반응이 있었지만, 그는 상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연예인 활동하기에는 예전 이미지가 더 나아.”
너무 선한 이미지보다는, ‘유연서가 유연서했다’라던가 ‘유연서가 또’라던가. 무슨 실수를 해도 쟤는 저런 사람이니까라는 이미지가 편하긴 했다.
“또 그러지 마라. 할아버지 진짜 관에 들어가신다고.”
“관에 들어간다는 협박 형한테도 했어?”
유은호는 질린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성 미술관에 마련된 가족 공간에 대기하고 있던 형제는 마침 차에서 내리는 유건민을 바라보았다. 그를 알아본 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렸다.
“아빠는 괜찮아 보이네.”
“그래.”
“어머니는?”
“아마 할머니랑 계실 거다.”
최유진에게는 신세 진 게 많았다. 예능을 통해 더 가까워졌지만, 이런 공간까지 주도적으로 꾸몄다는 것에는 한없이 감사했다.
한참을 밖에 모인 사람들을 쳐다보던 형제는 멀리서부터 걸어오는 추레한 옷차림의 노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형, 저분 설마.”
“네 생각이 맞을 거다.”
형제는 동시에 발을 떼고 바깥으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