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238)
“몸은 좀 어떠세요?”
“똑같죠.”
가볍게 대답하던 유연서는 지그시 바라보는 윤호영의 시선에 항복하듯 두 손을 들었다.
“가끔 숨 막히고 몸이 좀 떨리고 답답하고.”
“······아직도 그런가요?”
“그래도 조금 나아지긴 했어요. 전보다는 자주 그러진 않거든요.”
“그건 다행입니다.”
윤호영은 유연서가 입은 환자복을 흘끔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내렸다. 정신은 꽤 나아 보여도 몸은 그렇지 못한 것 같은데······ 첫 대상을 받은 유연서가 은밀히 주성 병원에 입원한 사실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었다.
그가 임승현의 등에 업혀 왔을 때, 응급실에 있던 사람들은 ‘또 유연서가 왔군.’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다급하게 움직였다.
“요즘은 어때요? 특별하게 환경이 바뀔 일이 있나요?”
“슬슬 차기작 촬영에 들어가죠.”
“진수호 씨와 같이 나오는 ‘아이덴티티’ 말이죠? 저도 기사로 소식 들었습니다.”
내담자에 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요즘 유연서가 연기하는 작품에 빠져들어 개인적인 팬심도 조금 있었지만.
“혹시 앞으로 하실 작품에 대해서 살짝만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뻔해요. 세상 물정 모르는 금수저가 자기 멋대로 행동하다가 나락에 빠지는 이야기. 제가 드디어 알맞은 옷을 입었죠.”
겸손인가? 이제 유연서가 과거 소문처럼 행동하지 않는 걸 안다. 게다가 그 소문 중에는 부풀려진 것도 있었고. 윤호영은 자신이 쓴 안경을 치켜올렸다.
“연기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다중 인격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고 싶은데.”
“글쎄요······ 미디어에서는 자주 등장하는데, 사실 그렇게 흔한 질병은 아닙니다. 해리성 정체감 장애라고 인정받기도 힘들고요.”
“조현병이랑 헷갈리는 경우도 종종 있죠?”
“그렇죠. 조사 좀 하셨네요?”
유연서는 감독이 보낸 시놉시스를 읽다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어서 포털 사이트에 검색해 봤다. 그리고 검색만 하면 나오는 정보를 감독이 모를 리가 없다.
“이런 질병도 어릴 때의 트라우마가 원인이 되나요?”
나처럼. 유연서는 그 말을 뱉어내진 않았다.
“네, 보통 어린 시절에 겪은 심각한 트라우마로 인해 발병하는 유형이 대다수입니다.”
“이런 거로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나요?”
“실제 범죄자도 있긴 하지만, 보통 다른 인격이 벌인 일이라며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는데······ 진단 과정에서 거짓말인 게 들통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역시······.”
유연서가 작게 혼잣말했다. 윤호영은 그 말을 못 들은 척 한 귀로 흘렸다. 그렇게 오랜 시간 상담을 마친 유연서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가 봐야겠네요.”
“아, 가실 때 이거 가져가세요.”
“뭡니까?”
“대상도 받으셨는데, 축하의 의미로 드리는 겁니다.”
어쩐지 화병에 안 꽂아놨다 싶더라니, 내 거였나. 유연서는 묘한 표정으로 꽃다발을 보다가 가볍게 휘둘렀다.
“감사합니다.”
“이제 다신 보지 말자고 하고 싶은데······ 오늘도 똑같네요.”
“다음에 보자고요?”
“네. 다음에 뵙겠습니다.”
언제쯤 이런 인사를 안 할 수 있을까. 윤호영은 유연서가 나간 문을 바라보며 작게 한숨을 쉬었다.
“야, 일단 스케쥴 조절해 봤는데······ 뭐야.”
이태겸은 환자복을 벗고 사복으로 갈아입은 유연서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집으로 가자.”
“벌써 퇴원하게?”
“검사 결과상 문제없다며. 가야지.”
“후우, 그래. 가자.”
어차피 말려봤자 듣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 이태겸은 체념하고 유연서의 짐가방을 들었다. 그가 밖으로 나오자, 시선이 달라붙었다. 유연서는 대상 축하한다는 누군가의 목소리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차에 올라탔다.
“그럼 집으로 간다?”
“아니, 잠깐. 마음이 바뀌었어.”
“뭐, 연습실 가자고? 야······ 너 방금 퇴원했다.”
“내가 가란다면 가야지, 왜 이렇게 말이 많아.”
“에이씨.”
얘는 걱정해줘도 지랄. 이라는 말을 삼킨 이태겸이 핸들을 돌렸다. 그들이 도착한 장소는 창고, 팬 미팅 무대와 똑같은 크기로 만들었던 연습 장소였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딱 두 시간만 하자.”
“알았어.”
“아니다, 한 시간만 하자. 너 그 정도면 분석 다 끝났을 거 아니야.”
“알았다고. 끝나고 데리러 오든가.”
이태겸은 그제야 안심한 듯 문을 닫고 나갔다. 쟤는 내 부모님도 아니고 왜 이렇게 잔소리가 심해졌어? 아버지와 연락하더니 별의별 것에도 참견이 심해졌다.
“민성철만 안 잡았으면 당장 해고했을 텐데······.”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유연서는 느릿하게 걸어갔다. 한쪽 벽에는 거울이 설치돼 있어 자신의 연습을 지켜보면서 할 수 있었다.
“쯧······.”
입안에서 느껴지는 비릿한 내음에 유연서가 인상을 찌푸렸다.
두 번째 방법의 후유증이 상상 이상이었다. 주성 병원의 의사들은 검사 결과에는 아무 이상도 없는데 왜 더 심각해진 거냐며 머리를 쥐어짰다.
가족들도 마찬가지였다. 제발 조금 쉬라고 그를 말렸지만, 이런 반응도 1년만 지나면 없어질 것이다. 약간의 죄책감이 드는 건 내가 감내해야지.
“조금 움직여 볼까······.”
20%가 얼마나 되는지 알아볼 겸. 유연서는 가볍게 몸을 움직이며 자신의 신체 능력을 확인했다. 그리고 연기 연습을 위해 몸을 이완했다.
‘아이덴티티’는 언론에 풀린 홍보 문구만 봐도 시원하고 통쾌한 액션 복수 영화였다. 예술적이라기보다는 상업에 가까운 오락 영화였다.
진수호가 연기할 현수오라는 배역은 권선징악의 대리인으로, 유연서가 연기할 류민제는 작품의 최종 보스로서 마지막에 현수오와 대치하다가 패배하고 처절하게 몰락한다.
‘류민제의 인격은 총 일곱 개.’
원래 인격인 류민제, 그리고 남은 여섯 개.
‘인격별로 어떻게 캐릭터를 잡을까······.’
입원해 있느라 본격적인 연습을 할 수 없었다. 리딩은 당장 내일이고.
유연서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웃음이 터졌다. 어떻게 보면 지금 유연서의 상황과도 묘하게 닮아있었다. 그는 유연서이면서 강진후의 기억을 공유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나도 류민제와 똑같은 거 아니야?’
가볍게 자리에서 튀어 오른 유연서가 피식 웃었다. 그렇다고 이중인격이라 보긴 애매했다. 그냥 유연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고, 강진후는 전생과도 같은 개념이었다.
쾅!
그리고, 단순 이중인격이면 이런 신체 능력은 발휘하지도 못하겠지. 그는 제 주먹으로 푹 패인 벽면을 보며 만족스러운 듯 웃었다.
‘작품과 나의 공통점이 있네.’
인격의 공존, 참 공교롭다. 하지만 유연서는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았다.
‘류민제는 진짜 다중 인격이 맞을까?’
그가 감독에게서 처음 받았던 캐릭터 시놉시스에는 이런 문구가 있었다.
[류민제는 남부럽지 않게 살아온 재벌가 막내였다. 후계 서열에도 밀려난 늦둥이라 가족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유복하고 분위기가 좋은 가정환경에서 자라왔다는 문구에 집중했다. 감독은 왜 이런 문구를 집어넣었을까?
‘이런 복잡한 질병이 그냥 생겨날 수 없어. 분명 원인이 있다.’
허공에 뜬 친모의 시신을 보고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는 나처럼. 이렇게 복잡한 정신적 질병에 아무런 원인이 없다고? 당장 포털 사이트 검색만 하더라도 수두룩하게 나오는데. 유연서는 류민제의 과거를 상상했다.
[저는 시놉시스대로 ‘애매하게’ 연기하면 되겠습니까?]감독과 만나 그를 떠보고, 오늘 윤호영의 자문으로 확신했다. 류민제는 해리성 정체감 장애가 발생할 원인이 없다. 그렇다면, 다중 인격이 아닐 수도 있다는 소리다.
‘그렇다면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은 속마음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는 등장인물로서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극의 전체적인 흐름이 어떻게 되지?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걸까? 왜?
‘아이덴티티’가 단순 상업 영화라고 의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는 스쳐 지나가는 문구를 무시하지 않았다. 김동운 감독이 거장 감독의 아들이 아니더라도 똑같았을 것이다. 유연서는 지독하게 시나리오를 탐구했다.
이윽고 그는 주저앉아 완성된 대본의 페이지를 빠르게 넘겼다. 넘기는 속도가 빠르지만, 눈은 문장과 단어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읽었다.
대본을 처음부터 다 읽은 유연서가 책을 덮었다. 그리고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악惡의 핑계다.
류민제의 다중 인격은 자신의 범죄를 정당화하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마침 현대 사회에서도 비슷한 사건들이 많았고, 윤호영도 병을 핑계로 자신의 무고를 주장하는 사람을 겪었다고도 했다. 감독은 이걸 꼬집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
‘인격이 총 일곱 개인 것도 노린 건가?’
7대 죄악. 참 상징적이지 않은가. 유연서는 눈을 반짝 빛냈다. 처음에는 처절하게 몰락하는 악역이 되어보고 싶었는데, 이런 속뜻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재밌었다.
일단 ‘다중 인격의 류민제’와 ‘다중 인격을 제멋대로 연기하는 류민제’ 두 가지의 연기를 준비하는 것으로 결론지었다.
‘내 해석이 틀리면 리딩에서 감독이 고쳐 주겠지.’
하지만 자신의 해석이 맞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그는 즐거운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일단······ ‘교만’부터 시작할까.”
컨셉을 잡으니 연습하는 데 수월했다. 유연서는 일단 호흡을 잡고, 걸음걸이를 연습했다.
“또 쓰러진 건 아니겠지.”
유연서가 걱정돼 밖에 앉아있던 이태겸은 혹시나 해서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평소라면 자신이 문을 여는 걸 귀신같이 알아챘을 유연서는 무아지경으로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 집중하는 모습에 이태겸은 조심스레 문을 닫았다.
“······오늘도 일찍 가긴 글렀네.”
그런데, 저렇게 무리해도 되는 거야? 이태겸은 한숨만 푹푹 쉬었다.
***
유연서의 첫 대상이 허무하게 지나가고, 팬들은 축제 분위기를 마음껏 즐기지도 못하고 아쉬움을 삼켰다.
-인별에 글올라왔다ㅠㅠ
-아 수상소감 진짜 아쉽다ㅠㅠㅠㅠ
-근데 트로피 뒷배경 설마 병원은 아니겠지?
-그래도 내배우 대상받았오♥ 샴페인 까야지
유연서도 팬들 못지않게 아쉬워서 SNS에 장문의 수상 소감과 팬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그리고 그는 오늘 자정에 뭔가 올라올 거라는 스포일러를 남겼었다.
-대체 자정넘어서 뭐가 나온다는거지?
-차기작인가?
-근데 차기작 발표를 무슨 새벽에 해 다른거 아냐?
-인별에 링크떴어!
-유연서 오피셜 마이튜브??
지금껏 헤일로 미디어 채널에서 유연서의 팬 굿즈 티저 영상이라던가 짤막한 인터뷰 영상을 올렸었다. 그런데 유연서의 채널이 따로 분리된 것은 처음이었다.
-짭아니고 찐인거같은데? 파란 체크표시있어 미리 인증해놨나봐
-마이튜브 하려나봐 서누처럼
-요즘 배우들 마이튜브로 브이로그같은거 찍더라ㅋㅋ
-아 차기작은 아니네ㅠ 아쉽다
그래도 떡밥은 하나하나 소중하다. 팬들이 구독을 누르고, 점점 올라가는 구독자 수를 스포츠처럼 즐기고 있을 때, 자정이 지났다.
-구독자수 추이 장난 아닌데?
-채널에 뭐 떴어
-앨범 티저???
소식을 들은 팬들이 티저 영상을 클릭했다.
-어?
-??
-뭔데?
마치 아이돌 티저처럼 몽환적인 분위기의 꽃밭, 그사이 누워있던 유연서가 눈을 뜨고 카메라를 응시한다. 그러더니 화면이 바뀌면서 곡의 주 멜로디와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이 아주 짧게 지나간다.
그 모습에 다들 얼떨떨해하고 있을 때, 팬 카페의 공식 공지와 공식 보도 자료가 풀렸다.
[단독] 유연서, 10주년 기념 앨범 발매·팬 미팅 연다유연서, 데뷔 10주년 기념 2만 명 규모 대형 팬 미팅 예고 (공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