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89)
공포 장르는 한 철 장사다. 하물며 대박 작가의 복귀 드라마에 ‘악귀’는 편성에서 밀렸다. 말만 하반기 기대작이라 포장되고 있었지 진행 속도는 더뎠는데, 유연서의 캐스팅 소식에 벌써 협찬과 광고 문의가 쏟아지고 있었다.
“전에 고사했던 민유나가 다시 한다고 연락 왔는데요?”
“너무 속 보이는 거 아냐? 걔 요즘 유연서 번호 캐고 다닌다며?”
업계가 좁다 보니 소문도 빨랐다. 캐스팅을 담당하는 제작사 직원은 민유나의 이름에 선을 죽죽 그었다.
“어차피 유연서로 게임 끝났으니까 남은 주연은 신인이나 아이돌 위주로 끼자.”
유연서의 화제성으로 홍보는 아예 안 해도 될 수준이었다. 그들은 제작비를 아끼기 위해 몸값이 싼 배우를 물색했다.
“얘는 어때요? 서하준.”
“엔비······ 아 얘네. 이름은 들어 봤는데.”
“국내 팬덤은 약한데, 해외 팬이 장난 아니죠.”
해외 팬이 많다는 소리는 판권 파는데 수월하다는 소리다.
솔직히 유연서가 출연 결정하기 전에도 ‘악귀’의 제작 상황은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캐스팅할 배우는 차고 넘치게 많았고, 제작사도 드라마 쪽에서는 나름 비결이 있는 회사였다.
“역시 유연서 하나 들어오니까 일이 일사천리네.”
하지만 유연서가 있고 없고에 따라 체감되는 차이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들은 활력 속에서 캐스팅할 배우를 물색했다.
‘악귀’ 소식으로 유연서의 이름이 인터넷에 오르내릴 때, 그는 최유진을 만나 투자자 모임에 참석했다.
“오늘 뵙는 분들은 누구예요?”
“나랑 친한 투자회사 사장님들 혹은 개인 투자자분들이야.”
대한민국에서 가장 큰 제작사, 투자 배급사를 운영하는 최유진은 아들 자랑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얼굴에 웃음기가 가득했다.
“마침 너보고 싶다고 한 번 데려오라고 했었거든.”
“그랬어요? 진작 올 걸 그랬네.”
이 모임의 중심은 단연 최유진이다. 이미 그녀 자체로 하나의 투자 세력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런 이점을 활용하지 않았다니.’
투자자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배우는 많았다. 하지만 유연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이미 갖춰져 있으니까. 그냥 이런 자리에 얼굴 몇 번 비추면 끝이다.
이런 세력과 알고 지내면 이점이 많다는 것은 돈 불리는 감각이 있는 본체도 알고 있었을 텐데······ 아무리 본체가 최유진을 엄마로 인정 안 했다고 쳐도 대단한 고집이다.
“들어가자.”
주차장에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레스토랑을 전체 대관한 듯싶었다. 유연서는 최유진의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저희가 늦었나요?”
“아뇨, 저도 막 왔어요. 오랜만이에요 부회장님.”
이미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착석하고 있었다. 그들은 최유진의 뒤로 들어오는 유연서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최유진은 흐뭇하게 웃으며 유연서의 등을 살짝 밀었다.
“여기는 제 둘째 아들, 다들 아시죠?”
“안녕하세요.”
유연서가 부드럽게 웃으며 고개를 숙이자, 다들 눈에 이채가 서렸다.
“드디어 오셨네요. 팬입니다.”
귀부인 수식어가 어울릴 것 같은 중년 여성이 우아하게 말했다.
“권미희라고 해요. 강남에서 작게 부동산업을 하고 있어요.”
“유연서 입니다.”
유연서는 권미희가 내민 손에 악수했다. 그는 이미 임승현을 통해 이 모임의 대략적인 신상 정보를 알고 있었다.
권미희, 강남 부동산계의 큰손이자 현금 부자였다. 그 밖에도 자리에 앉고 있는 사람들이 다들 거물이었다. 중견 투자 회사를 운영하고 있는 회장, 제작사를 몇 개 운영 중인 사장, 지역 유지 등 업계에서 큰손이라 불리는 이름값 높은 투자자들이었다.
‘오길 잘했군.’
투자자와 친목하고 싶은 배우들이 연줄을 대고 싶어 안달하는 사람들. 흘러나오는 정보의 질도 높을 것이다.
“이번에 그 영화 보셨어요?”
“연출이 세련됐더군요. 최 부회장님 쪽에서 제작했죠?”
처음은 모임에 처음 온 유연서에 대해 관심이 쏠렸지만, 역시 다른 주제로 빠지지 않고 다들 영화에 관련된 얘기를 신 나게 얘기하고 있었다. 유연서도 드문드문 맞장구 쳐주면서 그들의 얘기를 들었다.
“저는 요즘 이한결 씨한테 관심이 많아요.”
“제가 아는 한결이 형인가요?”
“네. ‘백호함’보고 팬이 되어서······.”
투자도 덕질과 비슷하다. 아이돌 출신은 무시하니 마니 이런 소리는 다 옛말이었다. 아이돌은 덕심으로 고정 투자자가 붙는 경우가 많은데, 아이돌이 요즘 선호되는 이유가 이런 이유 때문이다.
그래서 같은 배우들도 아이돌이나 출신 배우들에게는 관대했다. 워낙 판이 좁아서 그렇다.
“원하신다면 소개해 드릴까요?”
“저야 좋죠. 언제 셋이 같이 식사해요.”
이건 이한결에게도 좋은 기회다. 투자자와 친하게 지내서 나쁠 건 없다. 대화를 엿듣고 있던 다른 사람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연서 씨, ‘악귀’도 기대 많이 하고 있습니다.”
“혹시 요즘 다른 작품에는 관심 없나요?”
“영화 쪽은 어때요?”
유연서도 우스갯소리로 배우계 아이돌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니 그가 관심을 두는 작품에 덕심으로 투자하는 사람이 몇몇 있었다.
‘그 사람들은 여기 없네.’
그러니까 그가 투자만 해도 하나의 투자 기업이 되는 셈이다.
“아직요. 요즘 영화 쪽으로 관심이 많긴 한데······ 저보다는 여러분이 더 잘 아시지 않겠어요?”
“연서 씨 보는 눈이라면 믿을 만하죠. 워낙 진흙 속의 진주를 잘 찾으신다고 유명하시잖아요?”
내가 그렇게 유명하던가······ 하긴, 언론사에서도 ‘신인의 희망’이라고 떠드는 마당에 업계에서 직접 소식을 듣는 사람들은 더 하겠지. 유연서는 작게 미소 지었다.
“글쎄요······ 저는 그냥 감이 좋은 거로 생각해요.”
“이쯤 되면 감이 아니라 실력이죠. 제가 요즘 신인 발굴에 재미를 붙였거든요. 그런데 연서 씨만큼의 성과는 안 나오더군요.”
“저야 직접 연기를 하는 입장이다 보니 보는 시각이 달라서 그런가 보네요.”
“그런데 계속 신인 발굴하는 이유가 있나요?”
“그게 더 재밌잖아요. 사실 그전에는 연기력도 받쳐주지 않았고.”
원래는 촬영장에서 왕 노릇 하려고 일부러 신인 작품만 고른 거지만, 적당히 재미로 포장했다. 대놓고 연기력 얘기를 꺼내는 것에 다들 의외라는 듯 그를 쳐다봤다.
‘왜? 맞잖아.’
이것도 달라진 연기력을 보여줬으니 가능한 농담이다. 유연서가 가볍게 넘기자 다들 연기 아주 좋아졌다며 한 마디씩 건넸다. 최유진은 마치 ‘어때? 내 아들 대단하지?’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점점 유건민과 닮아 간다.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지만요.”
“하긴, 이제는 좋은 감독 작품에도 들어가셔야죠.”
“소식 있으면 알려 드릴게요.”
다들 유연서에게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아마 옆에 앉아있는 최유진 덕분이겠지. 이래서 빽이 좋다.
“그런 말씀 하시니 생각나는 게 있는데······ 여러분 그 소식 들었어요?”
그렇게 한참을 영화 관련한 얘기를 하다가 가장 끝자리에 앉은 사람의 말에 시선이 그에게로 몰렸다.
“천 감독, 복귀한대요.”
“천성민 감독이요?”
최유진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다른 사람들도 웅성거렸다.
“그분이요?”
“세상에······.”
그들이 신 나서 떠들었다. 열거하는 작품들은 미래에서도 본 기억이 있던 작품들이었다. 심지어 몇 번을 돌려봤던 작품도 끼어 있었다. 유연서도 흥미로워서 대화에 집중했다.
“칸의 황제가 복귀한다라······ 경쟁 치열하겠네요.”
“워낙 제작사에 데인 게 많아서 아예 은퇴하시는 줄 알았어요.”
“작품 활동은 놓지 않을 거 같더라고요. 그분은 타고난 예술인이잖아요.”
“맞아요.”
“아, 연서 씨는 잘 모를 수도 있겠네요. 당장 그분의 제자만 해도 안오준 감독이랑······.”
진수호가 출연료의 반을 깎아서 들어갔다는 작품의 감독 말인가? 그런 영향력이 있는 사람이 고작 제작사에 데여서 은퇴 얘기가 나온다고?
“근데 제작사에 데인 게 뭔가요? 무슨 사건이 있었나요?”
“아아······ 지인 부탁에 신생 제작사에서 작품 하나 했다가 자기네 돈으로 예술하지 말라고 한 소리 들으셨다네요?”
“······예술 감독한테 예술하지 말라고 말했다고요?”
“그러니까요. 안타깝죠. 저라면 얼마든 투자할 수 있는데.”
천성민 정도 되는 거장이면 웬만한 제작사의 요구 정도야 적당히 넘길 수 있지 않나? 하지만 그 제작사는 제작비 대주는 회사가 갑이라고 떠들며 감독에게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해야겠나?]당시 얼마나 상처를 받았는지 영화계에 당분간 돌아오지 않겠다며 반 은퇴 선언을 하고 잠적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제작사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 신고를 했다고 한다.
“관심 있니?”
옆에 앉은 최유진이 귓가에 속삭였다.
‘천성민 감독이라······.’
손만 댔다 하면 국제 영화제에 초청되고 빈손으로 돌아오는 법이 없는 감독이라고 한다. 가능하면 배우로 참여하고 싶지만, 감독의 눈에 차지 않으면 투자자로 작품상을 받는 방법도 있지 않은가. 그라면 작품에 간섭도 안 하고 요구하는 투자금을 바로바로 보내줄 수 있다.
“네.”
유연서가 작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
투자자 모임에서 여러 인맥을 다지고 온 유연서는 곧바로 ‘악귀’의 캐릭터 해석에 매진했다.
“······어렵네.”
예상 외의 난관이었다.
‘백호함’의 김우진 중사는 군인이라는 직업이 그의 삶과 맞닿아 있었기에 연기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드리밍’에서도 2207년의 미래, 로봇과 작전 행동을 많이 하기도 해서 연기에 참고할 게 많았다.
‘결핍된 사람들’도 약간 나사가 빠진 주인공과 유연서의 기억을 동기화해 벼랑 끝에 몰린 정신세계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이 연기 선생인 박현정의 말로는 ‘정서 기억법’이라고 하던데, 과거에 경험한 일의 감각을 기억해 두었다가 연기에 참고하는 것이다. 이 연기법을 참고 해서 탄생한 게 ‘메소드 연기법’이었다.
‘일단 라파엘 신부와 나의 공통점을 찾아볼까?’
알렉산더 녹스, 세례명 라파엘 신부
수수께끼의 구마 사제.
사이비 종교에 인생을 바쳤던 미혼부 밑에 자란 남자아이, 모종의 이유로 해외로 입양 갔고 교황청 소속 구마사제가 되었다.
설마 캐릭터 소개가 이게 다야? 유연서는 미간을 찌푸렸다. 작가가 생략을 잘하기로 유명하다던데 이런 함정이 있을 줄이야.
‘일단 해외 입양아라는 점.’
이름도 한국식이 아니라 영미권 이름이다. 아마 한국계도 아니고 아예 인종이 다른 집안에 입양 갔을 확률이 높다.
게다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단어는 미혼부.
‘아마 미혼부의 혼외자 출생 신고가 라파엘이 어렸을 때는 힘들었겠지?’
잠시 검색해본 바로는 2015년에야 출생 신고를 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고 한다.
주민등록 번호도 받을 수 없었던 어린 시절 추가하고. 그렇다면······.
‘여기든 저기든 이방인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겠지.’
여기서 2207년의 미래인인 나와 라파엘 신부의 공통점을 발견했다. 죽은 뒤 과거에 떨어진 강진후, 그리고 입양 가정의 검은 머리 외국인.
그가 1회 대본 맨 첫 장에 자신이 느낀 바를 막힘 없이 써내려갔다.
‘아마 유일한 마음의 안식처가 성당이어서 신부가 된 걸지도 모르지.’
유연서는 상상의 나래를 마음껏 펼쳤다.
어차피 대본 리딩에서 각자 생각하는 캐릭터를 합치는 작업을 해서 해석에 실패해도 감독과 작가의 말을 참고하면 된다.
‘일단 해석은 대충 이 정도로 하고······.’
그는 1,2회의 대본을 펼쳤다. 다른 주연인 김레오 신부가 열혈, 뜨거움을 담당한다면 라파엘 신부는 당연히 차가운 이미지겠지. 이것도 염두에 둬야겠다.
대본을 읽는 그의 표정에 점점 미소가 감돌았다. 아직 1,2회라서 극의 전체적인 흐름을 파악하지 못했지만, 이렇게 캐릭터 해석을 하고 대본을 읽는 과정이 재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