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hird generation of tycoons became a genius actor RAW novel - Chapter (95)
촬영장 밖으로 나온 유연서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차 키는 이태겸에게 있으니 밴 안으로는 들어갈 수 없다.
“욱······.”
하필 촬영 장소 주변이 풀밖에 없는 폐허라서 몸을 숨기기에 적당하지 않았다. 그는 욱신거리는 몸을 이끌고 최대한 촬영장에서 멀리 떨어졌는데, 그것도 치밀어오르는 핏물 때문에 도중에 멈춰서 고개를 푹 숙였다.
“쿨럭!”
임승현과 이태겸은 누군가 구역질하는 소리에 본능적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 있다!”
“도련님?”
갈대밭 사이 몸을 들썩이던 유연서가 고개를 홱 들었다.
“뭐야, 왜 왔어?”
“피, 피!”
아 이태겸 쓸데없이 관찰력은 좋아서. 여긴 조명도 없는데 어떻게 본 거야? 유연서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소매로 쓱 닦아보니, 입가 주변이 피범벅이었다.
임승현은 근처를 살피며 더 오는 사람이 없는지 경계했고, 이태겸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유연서에게 내밀었다.
“내가 오지 말라고 했을 텐데?”
감히 내 말을 무시해? 갑자기 화가 치밀어 올랐다.
“도련님, 누구도 오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맞아.”
“저희가 확인하러 안 왔으면 이 자리에는 서하준씨나 홍민아씨, 혹은 감독님이 왔을 수도 있고요.”
“너도 네가 수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냐? 그렇게 가 버리면······ 다들 걱정돼서 따라온다고.”
그리고 이걸 확인하는 건 매니저와 수행비서가 할 일이다. 유연서는 어느새 죽이 잘 맞는 두 사람을 보고 입을 다물었다.
“일단 나중에.”
“······언제?”
“이 작품 끝나고.”
이태겸은 어떻게 제칠 수 있지만, 임승현의 기세가 만만치 않았다.
아니 고용주는 난데 왜 내가 쩔쩔매야 하지? 유연서는 울컥해서 뭐라 말하려다가 입을 꾹 다물었다. 이렇게 오락가락하는 감정도 아마 환영 때문일 것이다.
‘이미 들킨 거 어쩔 수 없지.’
그는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쓸었다.
“너 진짜 병원 가야 하는 거 아냐? 괜찮겠어?”
“그럼 저렇게 세팅 다 해 놨는데 나 때문에 접어? 됐어, 괜찮으니까.”
그건 맞는데······ 이태겸은 앞장서서 걸어가는 유연서의 뒷모습을 보면서 불안한 듯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쟤 갑자기 뛰쳐나갈 때마다 이런 거면······.”
“······설마.”
“아니겠죠?”
유연서가 촬영장으로 다시 복귀하자, 다들 안 보는 척하면서도 유연서를 신경 쓰는 것을 느꼈다. 그는 자리에 앉아 대본을 폈다. 어차피 수습하는 건 매니저 몫이다.
“연서 씨는 어때?”
“괜찮습니다.”
“그래요? 촬영은 할 수 있대요?”
이태겸은 유연서를 흘끔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임승현은 유연서의 뒤에서 묵묵히 팔짱을 꼈다.
‘뒤통수 뚫어지겠네.’
이래서 저 둘에게 들키기 싫었다. 별거 아닌데 과하게 걱정하니까. 아니, 별거 아닌 게 아닌가?
‘하긴, 누구라도 걱정하겠지.’
유연서야 제 몸이 괜찮다는 것을 알지만, 저 두 명은 모른다. 그리고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나면 가장 가까운 사람이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어지러운 시야가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신경 쓸 게 많네······.’
환영의 영향이 꽤 심각하다. 예전 본체의 모습이 나도 모르게 나오는데······ 욱하는 성격이야 어떻게 잘 통제 가능할 것 같지만, 연기에 지장을 주니까 문제였다.
“형 어디 아파요?”
“화장실이 급해서.”
“······그렇게 안 보였는데요.”
“내가 그런 거면 그런 줄 알아.”
서하준의 말에 대충 대답한 유연서가 고개를 뒤로 젖혔다.
‘아, 짜증나.’
속이 타는 건 유연서도 마찬가지였다. 대체 이 빌어먹을 환영은 언제쯤이 되어야 익숙해질는지. 그는 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머리를 어지럽히는 이명을 없애려 했다. 물론 이런다고 사라지진 않겠지만.
“촬영 재개하죠!”
그 말에 일단 몸을 일으킨 유연서가 심호흡을 했다. 지금은 다른 생각을 할 시간이 없다.
***
흑야교가 예전에 쓰던 제단을 발견한 세 사람은 끔찍한 광경에 말문이 막힌다. 김레오는 뒤돌아서 헛구역질을 하기까지 한다.
“두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아요?”
“많이 봤습니다.”
“나도.”
아프리카 분쟁 지역을 다녔던 박수아와 라파엘 신부는 혹시 모를 단서가 있을까 제단 근처를 살핀다.
“이대로 놔두면 안 되겠어요.”
역겹고도 끔찍한 현장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세 사람은 흑야교 진짜 본거지를 찾기 위해 혈안이 된다.
장면이 전환되면서 음산한 제단 앞, 마치 왕좌처럼 꾸민 의자에 앉아있는 한 남자의 뒷모습을 점점 훑는다. 얼굴 한쪽이 녹아내린 남자, 흑야교의 교주의 팔에서 뼈가 으스러지는 섬뜩한 소리가 들린다.
“쯧······ 반쪽짜리군.”
그가 빙의한 몸도 온전하지 않은 상태. 교주는 제사장이 내민 자료를 넘기며 흥미로운 듯 으스러진 팔을 이리저리 끼워 맞춘다.
2호선 노상역에 나타난 미남 신부 사진 SNS 화제
기사 사진에 나온 라파엘 신부의 모습. 교주는 몸의 주인이 데리고 있던 아이의 사진을 보며 씨익 웃는다.
“산 채로 데려와라.”
혈육의 몸이라면 옮겨타는 게 쉽겠지. 그게 신부의 몸이라 조금 골치 아프겠지만, 마음의 틈만 만들면 언제든 파고들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라파엘 신부도 어렴풋이 눈치챈다.
“교주는 아마도······ 제 친아버지 같습니다.”
“네?”
“뭐라고요?”
라파엘 신부는 폐허에서 발견한 악마 숭배 의식의 피해자 자료를 가져와 그들에게 펼쳤다.
“이 사람입니다.”
“아니, 신부님 저 이해 못 했어요.”
박수아가 눈살을 찌푸리면서 질문하자, 라파엘 신부는 어릴 적에 있었던 일을 담담히 전한다.
“그때 레오 신부님을 데리고 도망쳐서 온 게 베드로 성당이었습니다.”
“허······.”
김레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마른 세수를 한다. 그가 숨을 크게 몰아쉬듯 말한다.
“나 엄마가 있었어요?”
“그럼 당연히 있지 왜 없겠······.”
박수아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김레오가 고등학교 때 탈선한 이유는 부모 없는 고아라는 손가락질 때문이라는 것을 그녀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베드로 신부가 아버지가 되어줬다고는 하나, 화목한 부모 아래 자란 아이의 모습을 내심 동경하고 있었다.
라파엘 신부도 그 심정을 모르지 않아서 말없이 서류를 펼쳐 친모의 사진을 보여준다.
“이 분입니다.”
“······.”
자신을 버린 줄 알았던 어머니가 사실은 자신을 지키려다가 악마 숭배 의식에 희생된 것을 알게 된 김레오, 그리고 장면이 전환된다.
결국 흑야교의 진짜 본거지를 찾아낸 세 사람은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진짜 본거지 안으로 들어간다. 박수아는 핸드폰 사진으로 흑야교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참상을 취재했고, 두 신부는 교주를 구마하기 위해 앞으로 달려간다.
“수아야, 뒤!”
“뭐? 아악!”
그러다 세 사람이 방심한 틈을 타 박수아의 옆구리에 칼이 꽂힌다.
“박수아!”
김레오가 박수아를 찌른 교인을 발차기로 밀어내고, 라파엘은 쓰러진 박수아의 옆구리를 일단 지혈한다.
“안 되겠습니다.박수아씨 데리고 일단 빠져나가세요.”
“신부님은요?”
“······구마해야죠.”
결연한 눈빛의 라파엘 신부를 빤히 쳐다본 김레오는 이내 고개를 끄덕인다.
“금방 올게요!”
김레오가 박수아를 업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늘 김레오의 주장에 설득돼 원칙을 깨 버린 라파엘 신부의 진짜 모습이 드러난다. 그는 흑야교의 교인을 차례차례 때려눕히고 교주가 있는 제단으로 향한다.
“아들, 아빠 안 보고 싶었어?”
“······.”
화상으로 인해 반쯤 일그러진 얼굴이 흉측했다. 라파엘은 이미 교주가 온전히 빙의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빠가 너 키우느라 고생 많이 했는데.”
“당신은 내 아버지가 아닙니다.”
대답을 이끌어내면서 마음의 틈을 만들려는 게 교주의 목적이었다.
“뭐, 그래. 이럴 줄 알았어.”
“······.”
“질문 하나 하지. 내가 여기 와서 한 일이 뭔지 아나?”
라파엘 신부가 입을 꾸욱 다물었다. 말려들면 끝이다. 그는 조심스럽게 가방에서 성수를 꺼냈다.
“아무것도 없었어.”
하지만 교주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던 라파엘 신부가 한쪽 눈을 가늘게 떴다.
“그저 인간들의 마음속 욕망에 불을 지펴줬을 뿐이지. 아주 살짝.”
“아니, 그럴 리가······.”
그럼 그 끔찍한 상황을 벌인 게 악마가 시킨 게 아니라······.
무심코 대답한 라파엘 신부가 입을 헙, 다물었다.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간 것이다. 교주가 입이 찢어지라 웃었다. 그 자체로도 섬뜩했지만, 아마 추가 CG로 더 기괴하게 만들 것이다.
“나를 봐! 이 몸으로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마치 노래하듯 쩌렁쩌렁한 발성이었다. 불완전한 빙의의 부작용으로 몸이 기괴하게 꺾여 있었다. 극도로 마른 몸에서는 쉽사리 다가갈 수 없는 분위기가 흘러나왔다. 라파엘의 어깨가 작게 떨렸다.
‘압도적이네······.’
교주 역할을 맡은 배우는 극단의 단장을 맡을 정도로 관록 있는 연극배우였다. 하지만 이 기 싸움에서 그가 존재감을 드러낼 수는 없다. 초반부는 라파엘이 밀리는 모양새를 보여야 하니까. 짧은 생각 끝에 중심을 잡은 유연서는 다시 라파엘의 탈을 썼다.
“그들이 이지를 상실했었나?”
라파엘의 눈이 조금 커진다.
[내가 왜 당하고만 살아야 하는데! 내가 뭘 잘못했는데!] [재밌었지······ 제발 살려달라고 무릎 꿇고 비는데······!] [왜? 왜 내가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해? 이렇게 재밌는 일이 많은데?]그가 한국에 와서 구마했던 사람들은 미쳐있을지언정 정신을 놓치는 않았었다. 라파엘의 눈동자가 떨렸다. 악마 앞에서 마음이 약해지면 안 되는데, 무심코 빈틈을 보인다. 그리고 이 틈을 교주는 교묘하게 파고들었다.
소리도 없이 라파엘의 지척에 다가온 교주는 고개 숙인 라파엘의 정수리에 손을 얹었다. 카메라는 이 모습을 멀리서 찍는다. 마치 세례를 받는 모습처럼 보였다. 악마가 신부에게 세례라니, 모순적인 모습이었다.
“여기서 진짜 악귀가 누굴까?”
라파엘이 고개를 들어 친아버지였던 교주를 바라본다.
“나?”
교주가 이죽거리며 라파엘 신부의 얼굴에 제 얼굴을 가까이한다.
“아니면······.”
너희들?
교주가 소리 없이 말한다.
라파엘, 아니 유연서가 눈을 크게 떴다. 교주의 뒤로 보이는 흰 치마와 두 다리가 보였기 때문이다. 몸이 저절로 뻣뻣해지면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만······.’
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아직도 그 형체는 교주의 뒤에 아른거렸다. 유연서의 눈이 저절로 충혈됐다.
“좀 이상한데요.”
지문에서는 ‘이를 악문 채 교주를 바라보는 라파엘’이라고면 쓰여 있었다.
“잠깐. 조용히.”
조연출의 속삭임에 최 감독은 입술에 검지를 대고 모니터 속 유연서를 뚫어지라 바라봤다. 저게 유연서가 해석한 라파엘 신부라면, 일단 방해하지 않고 카메라에 담는 게 우선이었다.
‘이건 내 몸이야.’
유연서는 환영을 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맞섰다. 충혈된 눈에서 눈물 한 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이마저도 편히 누울 수 없는 아버지에 대한 슬픔, 그리고 아버지 몸에 들어간 악마를 노려보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난 너랑 달라.”
유연서가 환영에서 벗어나려는 처절한 몸짓은 오히려 교주와의 심리전에서 벗어나려는 라파엘의 연기와 잘 어우러졌다.
“그 몸에서 꺼져.”
네가 함부로 할 사람이 아니야. 십자가를 꺼낸 라파엘 신부가 교주와 대치한다.
***
“컷,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거의 하루를 꼬박 촬영에 매진한 끝에 ‘악귀’의 마지막 촬영도 무사히 끝냈다. 유연서는 대충 인사를 받아주면서 남몰래 피를 뱉었다. 환영의 여파가 꽤 길다.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었다.
“뭐부터 할까요 형님.”
“병원이죠.”
“들었지?”
마지막 기념 단체 사진을 찍고 자리를 파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어차피 종방연에서 볼 사람들이기 때문에 재빨리 밴에 올라탄 유연서는 이태겸과 임승현의 대화를 듣고 한숨을 쉬었다.
“하아······ 알겠다.”
어차피 검사해봤자 아무것도 안 나올 텐데······ 유연서는 일단 이 둘의 장단에 맞춰주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