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477)
제477화
#477. 영광으로 여겨라.
“뭐야? 이봐, 괜찮아?”
미스터 조가 쓰러진 토마스를 살폈다. 주변에 있던 헌터들이 몰려들었다.
“비켜요.”
강무혁은 사람들 틈바구니를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의 머릿속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아드레날린 덕인지 울렁거리던 속이 단번에 잡혔다.
이내 눈에 들어온 모습은 백발만큼이나 핏기가 사라진 토마스의 얼굴이었다. 입술마저 파랗게 질려 산 사람이라고는 보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단장!”
토마스를 맥을 짚고 있는 미스터 조가 강무혁을 쳐다봤다. 불안감이 깃든 눈이었다.
그녀는 토마스가 S랭크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 강한 헌터가 이리 쉽게 쓰러질 리가 없다는 건 상식. 아니, 생각해 보지도 못한 종류의 사고였다.
미스터 조의 표정을 본 강무혁은 되레 차분해졌다. 별일 아니라는 듯 침착하게, 얼굴 위로 가면을 썼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가가 토마스의 아머 코트를 옆으로 젖혔다. 그리곤 허리에 찬 앰플킷을 뒤져 다른 포션과는 달리 주사기형 약물을 꺼냈다.
“팔?”
미스터 조가 주사기임을 눈치채고 토마스의 아머 코트를 벗기려 했다.
강무혁은 고개를 저으며 코트만 살짝 젖힌 채 토마스의 가슴 부위를 쓰다듬더니 그대로 주사기를 꽂아버렸다.
“!!”
토마스가 발작한 것처럼 몸을 튕겼다.
강무혁이 곁눈질로 신호했다.
“잡아요.”
“어? 어!”
미스터 조는 몸을 부르르 떠는 토마스의 양쪽 어깨를 꽉 움켜쥐어 내리눌렀다. 다리까지 위아래로 요동치자 그녀는 그대로 옆으로 누워 양다리로 옭아매 토마스를 구속했다.
헌터 몇몇이 거들기 위해 붙으려 하자 강무혁이 제지했다.
“괜찮습니다.”
강무혁은 용병대 헌터들에게 토마스를 맡길 수 없었다. 그의 상태가 어떤지 조금이라도 알려지길 원치 않았다.
‘토마스 헌터가 거인을 막는 걸 보고 용병대 헌터들이 그를 보는 눈길이 달라졌다. S랭크라는 걸 의심하고 있는 게 분명해. 혹여 바디 스캔 스킬이 있는 헌터가 체크하려 할 수도 있어.’
보통 바디 스캔은 의료용 스킬로 알려져 있으나 때론 헌터의 수준을 파악하는 수준으로 쓰이기도 했다.
직접 접촉해야 한다는 점과 스킬 시전자보다 상위 랭크 헌터를 스캔할 땐 당사자가 받아들이지 않는 한 스캔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었으나 지금처럼 의식을 잃은 상태라면 S랭크라도 무방비로 허용할 수밖에 없었다.
강무혁은 토마스가 S랭크임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의심과 확신은 다르니까.
이미 연맹의 알렉스와 호크가 알곤 있었으나 비밀을 아는 이가 많아질수록 비밀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게 된다.
그걸 알기에 알렉스와 호크도 연맹 헌터들에게 함구하고 있었다. 비밀을 모르는 건 레이븐도 마찬가지였다.
‘토마스 헌터가 S랭크라는 건 최대한 늦게, 그리고 최소의 인원이 알고 있는 게 좋다. 그래야 조커로 쓸 수 있어.’
그래서 강무혁은 토마스가 졸도한 상황을 이용하기로 했다.
A+랭크 마법사가 무리해서 거인을 막다가 쓰러진 것으로.
정보에 혼선을 주려는 것이었다.
“역시 거인을 막느라 무리한 것 같군요. A+랭크가 너무 무리한다 싶더니만…….”
미스터 조는 두 눈을 끔뻑이며 강무혁을 쳐다봤다.
‘지금 랭크 내려치기?’
보통 헌터들은 사냥터에서 시비가 붙었을 때 랭크 ‘올려치기’를 했다. 자기 랭크보다 높게 불러 자존심을 세우는 것이다. 금방 들킬 거짓말이더라도 당장 눈앞의 사냥감을 다른 헌터들에게 뺏기지 않으려는, 일종의 허세였다.
반대로 랭크 ‘내려치기’는 현장에서 사기꾼들이 많이 하는 짓이었다. 자기 랭크를 약하게 보여 상대의 방심을 끌어내는 게 핵심. 완전히 방심했을 때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욕심은 많고 힘은 어설프게 가진 헌터들이 다른 헌터들 등골을 빼먹을 때 쓰는 수법이었다.
그걸 무려 S랭크를 두 명이나 둔 아이언윌 길드의 단장이 하고 있으니 미스터 조는 기가 막혀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보아하니 S랭크 아니라고 우길 셈인 것 같은데.’
‘눈치껏. 알죠?’
강무혁은 그녀에게 말을 맞추라며 턱짓으로 신호했다.
‘참나, 이 와중에도 사기 쳐?’
미스터 조는 황당해하면서도 안도했다.
강무혁이 상황을 이용할 속셈이라는 건 토마스가 그리 위험한 상태까지는 아니라는 뜻이었다.
그 증거로 토마스의 안색이 편해지고 있었다. 입가에 눌어붙은 피와 입술 색이 비슷해지고 나서야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토마스 헌터, 괜찮습니까?”
“단장님? 제가 기절했었나 보군요.”
“그러게 A+ 헌터가 왜 그렇게 무리를 해서는…….”
“??”
“그 거인이 동아프리카를 쑥대밭으로 만든 전설의 거인 쿠브와인 걸 몰랐습니까?”
순간 의문이 들었다.
‘단장이 넘어트리라고 하지 않았나?’
옆에서 미스터 조가 눈치를 주며 무음으로 구시렁거렸다.
토마스는 단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그러게요. 제가 왜 그랬을까요? A+따리가 건방지게 전설의 거인한테 덤비고.”
“다음부터는 절대 무리하지 마십시오, 토마스 헌터.”
할 말은 많았지만, 어쨌든 무사하니까 해피 엔딩.
토마스는 오늘 일을 잊지 않기로 했다.
“명심하겠습니다.”
* * *
동아프리카의 재앙이라 부렸던 거인 ‘쿠브와’가 나타났을 때만 해도 게리 디는 ‘과연 메두사의 머리’라며 감탄하기만 했다.
여기서 죽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틈을 이용해 빠져나갈까 눈치를 보기도 했으나 위급한 와중에도 현정건이 눈을 부라리고 있으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거인의 발이 머리 위로 떨어지는 순간엔 텔레포트가 막혔다는 사실을 일루전에게 전하지 못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들기도 했다.
차라리 여기 있는 놈들과 모두 죽으면 그 비법이 함께 묻히려나, 기대도 됐다.
하지만.
‘맙소사……. 이걸 막는다고?’
스케어크로우를 무너트린 마법사.
그가 쿠브와를 막고 있었다.
대단한 마법사라는 건 이미 알고 있었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특출난 특성에 기댄 덕이라고 추측하고 있던 참이었다.
그런데 쿠브와의 공격을 막는 걸 보고 다른 헌터들처럼 S랭크 마법사라는 새로운 가능성이 떠올랐다.
‘만약 진짜 S랭크라면?’
게리 디는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난 미끼다.’
자신이 불러들인 미라주의 헌터들은 또다른 사냥감에 불과하다는 걸.
S랭크 마법사의 존재에 경악하는 와중에도 그는 실책을 어떻게든 만회하려 궁리했다.
그때 토마스가 쓰러졌다.
직접 볼 순 없었으나 용병들의 수군거림으로 상황을 알 수 있었다.
‘거인을 막느라 무리했다고? 완전히 혼절했다고?’
순간 안도했다.
‘그러면 그렇지. S랭크가 이렇게 쉽게 나올 리가 없지. 특히 마법사는 더더욱.’
마법은 헌터의 스킬 중에서도 특히 얻기 힘든 중류의 힘이었다.
신체 능력도 헌터 평균을 갉아먹는 포지션이다 보니 일선 전투에서도 항상 후방에 위치했다.
헌터는 위험을 감수할수록 빠른 랭크업을 꾀할 수 있었다. 이런 점에서 마법사는 아무래도 패널티가 걸려 있다 할 수 있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직접 눈으로 확인해야 해.’
게리 디는 불안을 털어내고 싶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을 가능성을 없애고 싶었다. S랭크에게 조직원들을 가져다 바친 머저리가 되고 싶지 않았다.
일종의 자기합리화였다.
마침 기회를 노리던 참에 몸을 일으킨 토마스가 보였다.
핼쑥하고 초췌한 얼굴.
레드 게이트에서 격전을 치르며 수개월은 구른 듯 흐리멍덩한 눈동자까지.
다행이었다.
‘진짜 무리했나 보군.’
A+랭크라도 특출난 구석이 있다면, 소전쟁기의 네임드 거인이라도 한 번쯤 쓰러트릴 수 있겠지.
‘결과적으로 쿠브와가 죽은 것도 아니고, 말 그대로 넘어진 것에 불과하니까.’
그렇게 위안 삼으며 게리 디는 애써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곱씹었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 둔 불안감을 지우지 못했다.
* * *
물 밖으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압바스는 미세한 혈향을 맡았다.
그를 따라온 근위대 헌터들도 이를 눈치채곤 눈살을 찌푸렸다.
압바스는 개의치 않고 물 밖으로 나왔다.
사방이 막힌 공동은 동굴답지 않게 밝았다. 충분히 밝진 않아도 사람이 지내기엔 나쁘지 않은 밝기였다.
자연 속, 아니 게이트의 편린이라는 이상 징후 지역이었지만, 문명의 혜택이 동굴 안쪽까지 전해진 탓이었다.
“전력 시설은 문제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근위대 헌터 하나가 바깥에서 끌어온 전력선을 확인하곤 보고했다.
태양광 발전과 게이트 공학 기술을 이용한 반영구적인 발전 설비가 동굴을 밝히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반영구적이라는 표현은 어불성설이라 할 수 있었다. 이 발전 장치는 마나석을 매개로 하는 기술이기 때문이었다.
효율이 좋지 않아 대규모 발전소엔 쓰이지 못했으나 메두사의 머리와 같은 특수 지역에선 유용했다.
“전력이 유지된다는 건 확실히 외부 침입은 아니라는 뜻이겠군.”
“근위대가 밖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죠.”
“그렇다면 내부인 소행이라는 건데…….”
이곳에 있던 헌터라고 해봐야 무함마드 왕자가 유일했다.
‘왕자인가?’
피 냄새가 더욱 짙어졌다.
“오랜만입니다, 압바스 대장.”
불빛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로부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어둑한 구석에서 그림자가 머뭇거리는 게 느껴졌다.
압바스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제가 이해가 안 되는데….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 겁니까, 왕자님?”
“이해할 필요 없습니다. 언제는 제가 이해를 구하고 일을 했었습니까?”
“제멋대로이긴 해도 이해가 안 되진 않았습니다.”
“이해는 약자가 강자에게 바라는 구걸일 뿐. 당신은 힘으로든 권력으로든 항상 나보다 약자였으니 당연히 날 이해하려고 노력했겠죠. 안 그런가?”
“글쎄요. 그 차이가 그리 크진 않을 것 같습니다만.”
“아니, 힘의 차이는 더욱 벌어졌을 거야. 나는 이미 남에게 이해를 구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다.”
물씬 풍기는 위압감에 헌터들의 다리가 휘청였다.
근위대 헌터 중 하나가 비틀거리는 와중에 화색을 띠며 물었다.
“왕자님! 혹시 S랭크가 되신 겁니까?!”
“S랭크?”
“예. 지금 방금. 확실히 그런 느낌을…….”
“겨우 S랭크라는 범주 안에 날 가두지 마라. 난 그보다도 위대한 존재다.”
“오오! 드디어…….”
근위대원들은 감탄했다. 그들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을 목도하고 있었다.
위대한 모로코, 아프리카의 제국을 꿈꾸는 모로코의 숙원을 이루려면 무함마드의 S랭크 등극은 필수였다.
그 꿈이 막 이루어지려는 찰나이니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압바스만은 기쁨을 내색하지 못했다.
‘수상하다. 너무 수상해.’
S랭크가 되는 게 쉽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아는 상식이었다. 왕자가 S랭크가 될 재목이라곤 하지만, 성공보다 실패로 끝날 확률이 높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왕자 본인조차도 불가능에 도전한다며 이곳에 폐관한 지 수년째였다.
이곳에서 발견한 힘을 이용해도 될지 안 될지 모를 희박한 확률.
수개월 전 최종 보고서에서도 S랭크가 되는 길이 요원하다며 알 라시드 국왕에게 편지를 썼더랬다.
‘그런데 갑자기 S랭크가 됐다고?’
근위대원들은 왕자의 S랭크 선언에 흥분해 이 기이한 상황을 전혀 인지하지 못하는 듯 너무나 쉽게 믿고 있었다. 압바스는 이런 분위기조차 의심했다.
그가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자 무함마드가 손을 뻗으며 말했다.
“이리 오라. 내가 위대한 존재가 됐음을 증명하마.”
근위대원들이 뭔가에 홀린 듯 앞으로 나아갔다.
압바스는 급히 곁에 있던 대원의 옷깃을 잡으며 외쳤다.
“모두 멈춰!”
그의 명령은 손길이 닿은 헌터를 저지하는 데서 그쳤다. 나머지 대원들은 그대로 앞으로 나아갔다.
제일 먼저 다가온 헌터에게 무함마드가 말했다.
“네게 제일 먼저 위대한 존재를 알현할 영광을 주마.”
“가, 감사…….”
퍼걱!
가슴을 뚫고 등판으로 튀어나온 손.
손에는 인간의 심장이 쥐여 있었다.
“무슨 짓이냐?!”
압바스가 고함을 질렀다.
손은 다시 등 쪽으로 들어가 사라졌다. 심장을 잃은 대원은 그대로 허물어졌다.
어둠 속에 실루엣이 입에 심장을 가져가 우걱우걱 씹었다.
핏물이 그림자처럼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어둠이 그러데이션을 준 것처럼 피를 회색빛으로 물들였다.
무함마드가 마지막 심장 조각을 삼키곤 말했다.
“너흰 지금 내가 위대해지는 순간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 영광으로 여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