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593)
제593화
#593. 당신 무슨 속셈인 거지?
강무혁이 던진 폭탄 발언은 잠시간 정적을 가져왔다.
그러다 하나둘 충격에서 벗어나자 수군거림이 점차 커졌다. 종국에는 도떼기시장을 방불케 하는 소음으로 번졌다.
회의장의 소란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각 길드 관계자들은 함께 온 수행원 혹은 가까이 지내는 타 길드 사람들과 의견을 나누느라 바빴다.
정우수는 위원장으로서 이를 진정시켜야 했으나 강무혁이 미국이라는 거인을 언급한 시점부터는 생각이 복잡해진 탓에 나설 타이밍을 놓쳤다.
강무혁은 이 혼란 속에서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리는 법 없이 질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시 질문을 주기 전까지 제법 시간이 걸릴 듯했다. 그러자 최도유가 손을 들었다. 사람들이 주목했다. 그의 손짓에 삽시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침묵은 전염병처럼 번져 회의장 전체로 퍼졌다.
강무혁은 등 뒤에서 동심원 그리듯 이어지는 고요함을 느끼고 뒤돌아봤다.
최도유가 말했다.
“안전항로기구가 그럴 힘이 있습니까? 혹시 블러핑 아닙니까?”
핵심을 찌르는 질문이었다.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강무혁의 입을 주목했다.
“현재 안전항로기구 구성원은 전성기의 10분의 1 수준입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10분의 9는 어디로 갔을까요?”
그 말과 동시에 강무혁은 가슴에서 USB 저장장치를 꺼냈다.
“이 안엔 전직 안전항로기구 인원의 현재 소속이 담겨 있습니다. 정우수 위원장님 이 자료를 정면 스크린에 띄워도 되겠습니까?”
“예. 허가하겠습니다.”
회의를 보조하기 위해 파견 나온 정우수의 비서관이 강무혁에게서 자료를 받아 노트북에 끼웠다. 곧이어 대형 스크린에 UN 조직도와 리스트가 떴다.
강무혁은 리모컨을 받아 한 장씩 화면을 넘기며 설명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기구에서 나간 인원들은 극소수를 제외하고 UN 각 기관에 들어가 있습니다. 행여 나간 사람들이 무슨 관계냐고 물으실 수도 있는데, 안전항로기구의 조직력은 OB를 가리지 않습니다. 이 부분은 길드에서 조금만 힘을 쓰면 알 수 있으니 넘어가도록 하고. 일단 중요한 건 이 사람들은 단순히 UN 안에서만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들이 아니라는 겁니다.”
리스트가 끝난 뒤 나온 건 백악관과 상원, 하원에 포진한 미국 정계 인사 목록이었다.
정확한 인간관계와 이름은 적혀 있지 않았으나 대략적으로 인맥이 어떻게 이어져 있는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강무혁은 드레이븐 국장이 공개해도 별 상관없는 수준의 정보와 오랫동안 백악관과 워싱턴 정계에서 활약한 해밀턴의 이중 체크를 통해서 대략적인 인맥 지도를 만든 것이었다.
“미국 정치계는 한국 이상으로 복잡한 인맥 사회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에 더해서 정치 후원금, 기업, 언론, 군대 등 다양한 관계가 얽혀 있죠. 이 관계에 윤활유를 칠하는 게 로비스트들의 역할이고요. 미국에서 로비는 불법이 아닌 아주 유효한 수단으로 인정받아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참고로 현재 안전항로기구는 알렉산더 해밀턴과 마크 리빙스턴이라는 능력 좋은 로비스트들을 고용해 이미 이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강무혁은 그 두 로비스트가 미국에서 손에 꼽는 실적을 내는 로비스트라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곤 해밀턴이 전 백악관 헌터정책부서 실장이라는 말을 슬쩍 흘렸다.
회의장은 다시 어수선해졌다. 이 자료를 참석자 전원에게 공개하겠다는 말에 더욱 시끄러워졌다. 자료의 신빙성을 자신한다는 뜻이니까.
최도유는 이 과정을 지켜보곤 웃음을 참느라 곤욕스러워했다.
‘참 뻔뻔하게 진실 속에 거짓을 숨기는군.’
당장 해밀턴부터가 블러핑이었다. 그가 전직 백악관 출신인 건 분명했지만, 끈 떨어진 연 신세인 건 언급하지 않았다. 마크 리빙스턴은 해밀턴이 아이언윌에 입단함과 동시에 틀어지면서 안전항로기구와도 계약이 파기됐다.
아마 길드 관계자들이 따로 두 사람에 대해 알아보더라도 그들의 경력과 안전항로기구와 일한다는 정보가 전부일 게 분명했다.
로비스트들은 파기되거나 실패한 계약에 관해 입에 담는 걸 금기시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경력이 성공인지 실패인지는 추후 결과로 짐작할 뿐이었다. 물론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안전항로기구의 일은 사람들 사이에 소문이 퍼질 틈이 없었다.
돌아가는 상황을 대강 들어 알고 있던 최도유는 다시 한번 감탄했다.
‘진짜라고 주장하지 않고 그냥 증거를 보여주는군. 알아서 판단하라면서 말이야.’
문제는 대부분 사람이 자신의 판단이 믿는다는 점이었다. 더해서 충분한 정보가 주어진다면,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진다.
강무혁은 모두에게 공개된 정보, 대형 길드라면 누구나 알아볼 수 있는 정보, 공신력 있는 기관과 유명 인사가 언급된 정보를 서슴없이 공유했다.
게다가 정보 자체에는 거짓이 없었다.
‘하지만 정작 정보를 다루는 주요 축들은 모두 한통속이지.’
강무혁, 해밀턴, 안전항로기구.
그들이 서로 입을 맞추고 정보를 편집하면 그것이 바로 진실이 되었다.
‘그렇게 사람들 머릿속엔 안전항로기구가 기업과 백악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남아버리지.’
그것 역시 거짓말이 아니었다. 안전항로기구의 모든 인맥과 영향력을 총동원하면 어느 정도 성과가 나올 방법이었다.
하지만 안전항로기구 역시 여기저기 신세를 져야 하는 리스크가 있었다.
앞으로 카리브해 프로젝트까지 진행하려면 벌써부터 이 카드를 쓸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강무혁은 말 그대로 ‘할 수도 있는’ 척을 연기하는 것이었다.
‘협박은 안전항로기구가 아니라 강 단장님이 하고 있군.’
끝내 최도유는 남몰래 실소를 흘렸다.
강무혁은 천천히 자료의 마지막 장까지 넘긴 뒤에 설명을 마무리했다.
“물론, 이건 말뿐인 협박이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헌터 물자의 무역 제재 수단을 언급했다는 것 자체가 안전항로기구가 이번 일에 얼마나 진심인지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명운이 걸린 일이기에 그들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겁니다. 그 증거로 기구는 중국의 지지까지 얻기 위해 과거 동남아 충돌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 발표까지 고려하고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헌터 업계 관계자라면 중국과 안전항로기구의 동남아 충돌 사건을 모를 수가 없었다.
중국은 한국과 지척에 붙어있는 헌터 강국이었기에 그들의 동향에 더욱 민감했다.
그래서 안전항로기구의 양보는 더욱 크게 가슴에 와닿았다.
재차 회의장이 떠들썩해졌다.
처음 강무혁이 한국 헌터계의 대표 자격으로 드레이븐 국장과 만났다는 식으로 몰고 가 압박하려 했던 정치권과 길드계의 속셈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있었다.
정우수는 열을 식힐 시간이 필요하다고 여겼다. 그동안 길드와 의원들의 의견도 들어볼 생각이었다.
“강무혁 단장님은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잠시 쉬었다 가도록 하죠. 20분 휴식 후에 다시 회의를 속행하겠습니다.”
그는 휴회를 선언하며 강무혁을 증인석에서 내려보냈다. 아니, 내려보내려 했다.
이때 강무혁은 자리에 버티고 서서 약간 화난 목소리로 마이크를 잡았다.
“모두 당황하시는 것 같은데. 솔직히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지금 이런 상황을 만든 건 여기 계신 분들이니까요.”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좌석에서 일어서려던 정우수는 그대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며 물었다.
강무혁은 마이크를 든 채 뒤를 돌아 길드 관계자들 면면을 살피며 말을 이었다.
“안전항로기구가 동북아 나가 사태에 끼어든 건 얼마 전 선박이 공격당해서가 아니란 뜻입니다. 그 사건은 그저 좋은 핑곗거리를 제공했을 뿐이죠. 그게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그들이 개입했을 겁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강무혁 단장님?”
최도유는 다음에 무슨 말이 나올지 짐짓 모르는 척 판을 깔아줬다.
강무혁의 눈이 매서워졌다.
“나가 전쟁이 코앞입니다. 그런데 지금 준비된 게 무엇입니까? 보급, 전략, 세부 전술, 헌팅 참가 인원, 명령체계 정리 등등 작전 진행률이 10%에도 채 미치지 못합니다. 모두 이런저런 핑계 대면서 나서길 꺼리고 있죠. 나가 사태가 세계 무역에 혼란을 불러올 위기라고요? 네, 맞습니다. 이번 작전은 실패할 테니까요. 안전항로기구가 개입할 명분을 알아서들 생산하고 계십니다. 여기 있는 분들이 다 같이.”
강무혁은 아예 손가락질로 길드 관계자들을 하나하나 가리켰다.
어투는 정중하고 부드러웠으나 내용엔 신랄한 비판이 가득했다. 눈에는 한심하다는 기색이 역력했고, 입가엔 조소마저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누구도 그에게 화를 내지 못했다. 회의장 안 사람들은 정곡을 찔려 주춤했다. 최후의 양심이었다.
물론 그 양심도 이내 자존심에 짓눌려 반발이 일어났다.
어디서든 강무혁에 대한 불만과 성토가 이어질 수 있는 분위기였다.
누군가 그 물꼬를 트기 전에 최도유가 ‘짝’하며 손뼉을 쳤다.
“우리 그것 합시다, 그것.”
그것?
“그것 있지 않습니까? 통합 공격대. 예전엔 잘만 쓰더니 이번엔 왜 안 쓰는 겁니까?”
최도유의 물음에 대한 답은 이미 나와 있었다. 길드 관계자들이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당신 때문이야.’
동북방어전 때 부활한 국가 통합 공격대.
당시 공격대장은 성선제가 맡았었다. 성선제는 한국 길드계 공통의 적이라는 슬레이어에서도 독특한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라이벌이지만, 함께 일할 만한 헌터.
그의 능력과 인망은 슬레이어를 적대하는 길드에서조차 인정할 정도였다.
그런 자가 통합 공격대를 이끌 때는 반발이 없었다.
하지만 성선제가 없는 상황에서 통합 공격대가 발족하게 된다면, 현재 힘의 무게추를 따질 경우 자연스럽게 그 지휘권이 최도유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컸다.
최도유 역시 이들의 걱정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바로 선언했다.
“만약 통합 공격대가 다시 구성된다면, 전 공격대장 후보에 슬레이어 원정대장 소상엽 헌터를 추천하도록 하죠. 물론 다른 길드에서도 훌륭한 헌터들을 후보에 올리셔도 됩니다.”
최도유의 한마디에 회의장 분위기가 일변했다.
길드 관계자들은 소상엽이라는 인물에 대해 점검했다.
‘소상엽이라면 성선제 라인이잖아?’
‘최도유와 같은 슬레이어 소속이라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소상엽은 뚝심 있는 남자지. 사문혁 길마한테도 할 말은 다 하는 사람이니까.’
‘최도유과 소상엽은 물과 기름이야. 태생부터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다.’
‘슬레이어 원정대장은 능력도 출중하지. 성선제 부재 시엔 대리를 할 정도였으니까. 게다가 헌터 치고 권력욕이나 돈 욕심이 없다는 점에서 인성도 훌륭하고.’
그들은 소상엽이 최도유에게 휘둘릴 사람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통합 공격대 결성에 대한 여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강무혁은 이 흐름을 보면서 마음이 편치 않았다.
‘현 통합 공격대는 전쟁급 미션에선 적용하기가 힘들어. 보스 레이드나 전쟁 중 특수 목적을 가진 특공대라면 몰라도.’
그 맹점을 경험 많은 최도유가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나한테도 이 부분은 미리 언질을 주지 않았지.’
강무혁은 최도유를 쳐다봤다.
‘최도유. 당신 무슨 속셈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