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Time-Limited Leader Makes the Raid a Success RAW novel - Chapter (99)
제99화
99. 누가 제안한 겁니까?
최근 노선을 좀 바꿔 타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노송린은 이중 스파이 신분이었다.
물론 강무혁이 협박해서 반강제적으로 하는 짓이었으나 뜻밖에도 재미가 있었다.
단순히 재미만이 아니라 소질도 있었다. 김명준을 상대하는 것은 여전히 무서웠지만, 연기하면서 주눅이 들 정도는 아니었다. 그 부분은 본인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이 짓거리도 계속되다 보니 이젠 강무혁 편이라는 게 당연하게 된 건가? 참나, 이거 당황스럽네.’
노송린은 자신이 ‘쩌리’로 이번 러시아행에 선택됐다고 여겼지만, 강무혁의 생각은 달랐다.
‘장득구 헌터는 적 앞에 누구보다 잔인한 사람이긴 하지만, 이번 일처럼 편법, 불법을 가리지 말아야 할 임무엔 어울리지 않아. 아무래도 나쁜 짓 하기엔 노송린 헌터만 한 인재가 없어.’
강무혁은 이번 사건에서 거친 일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노송린은 같은 헌터를 상대할 때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적합한 인물이었다.
“저 사람이 코즐로프인가 보군요.”
알렉스에게 미리 전달받은 현지 안내인 사진과 일치하는 얼굴이 입국장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유리 코즐로프 씨?”
“강무혁 단장님이시군요. 이쪽 분은…….”
“노송린이오.”
“반갑습니다. 일단 움직이면서 얘기하실까요? 차량을 준비해뒀습니다.”
코즐로프는 두 사람과 악수를 하자마자 갈 길을 재촉했다.
“아직 곳곳에 티런 길드의 눈들이 있습니다. 폭군도 블라디보스토크 어딘가에 머무는 것 같고요.”
“그 정보는 어디서 얻으셨습니까?”
“차르 길드와 연계하고 있습니다. 이 도시에서 그들보다 뛰어난 정보력을 가진 곳은 없습니다.”
“그런데 기습을 당했죠? 사전에 아무런 경고도 받지 못하고.”
“그 부분은 할 말이 없군요. 하지만 상대가 폭군이라면 납득이 가기는 합니다. 이러니저러니 말이 많아도 어쨌든 S랭크니까요. 그의 길드 또한 모스크바 굴지의 티어 길드이니 이런 전격적인 기습을 알아차리지 못한 것도 전혀 이해 못 할 결과는 아니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차르 길드가 모르는 일은 신도 모른다던데. 의외로군요.”
“차르 길드가 신은 아니지 않습니까. 사람이니 실수할 때가 있기 마련이죠.”
코즐로프는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차르 길드를 대신해 변명했다.
‘어쩔 수 없다면서 차르 길드를 감싸는군. 조율자라서 분란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는 걸까, 아니면 러시아 태생이기에 조심하는 걸까?’
코즐로프는 연맹 소속이라곤 해도 대부분 러시아 현지에서 활동하는 붙박이 연락관이었다. 러시아 길드 세력 다툼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강무혁은 그의 사정을 헤아리며 질문했다.
“딱히 폭군의 기습을 미리 알아차리지 못한 걸 따지려고 한 말은 아니었습니다. 지금 중요한 건 폭군이 어딨느냐는 겁니다. 혹시 숨어 있을 만한 장소는 특정하셨습니까?”
“안타깝게도 아직 거기까진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차르 길드의 정보팀에서도 전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만, 워낙 교란 정보가 많아서 골라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답니다.”
“그럼, 그 정보가 나오는 곳부터 시작해야겠군요.”
“정보팀을요? 거기서 뭘 시작하신다는 건지…….”
코즐로프가 묻자 강무혁은 별일 아니라는 듯 말했다.
“이고르 두드닉에게 염수형 팀장의 정보를 판 자. 일하려면 스파이를 먼저 색출해야죠.”
“!!”
코즐로프의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
스파이가 있다는 것은 해당 길드와 연맹에서도 이미 의심하고 있었지만, 당장 블라디보스토크에 발을 들인 이고르 때문에 거기까진 손도 대지 못하고 있었다.
그만큼 폭군의 존재는 블라디보스토크 최고의 길드조차 패닉 상태에 빠지게 할 만큼 강렬했다.
그런데 이 와중에 외부인이 나서서 스파이를 잡겠다?
어느 길드가 허락하겠는가.
잡히면 잡히는 대로 문제였다. 체면도 구기고, 콩가루 길드라고 광고하는 꼴이니까.
마초로 가득한 러시아에서 길드원은 형제와 마찬가지였다. 그런 형제를 팔아 버린 배신자가 나온 것도 모자라서 외부인에게 잡히면 이는 무릎 꿇는 것 이상의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상부에서 강무혁과 만나면 정신 바짝 차리라는 말을 듣긴 했지만…. 이거 어째 각오했던 것보다 더 험난할 것 같군.’
* * *
차르 길드의 마스터 안톤 이바노프는 자신에게 독대를 청한 이방인을 어이없다는 듯 쳐다봤다.
평소 안면이 있었던 세계헌터연맹의 연락관인 코즐로프의 부탁으로 자릴 마련하긴 했으나 입에서 뱉어내는 말이 하나같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탁자를 가운데 두고 멀찍이 떨어진 소파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홧김에 머리통을 부쉈을지도 몰랐다.
‘이놈은 목숨이 열 개라도 되는 건가? 헌터도 아닌 놈이 무슨 말하는 꼴이 자살지망생 같지 않은가.’
단장이라는 러시아에선 듣지도 보지도 못한 직함을 가진 걸 보면, 헌터를 바라보는 시각이 한국과 러시아가 많이 다른가 싶다가도.
헌터라는 족속들이 결국 국경과 나이, 성별을 초월한 개자식들이라는 걸 떠올리면, 그쪽이나 이쪽이나 굴러가는 꼴은 별반 다르지 않을 듯싶었다.
한마디로 지금 눈앞에 있는 한국인의 행동은 양국 어느 국가의 기준에서도 도를 넘어선 것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쪽 말은 스파이를 먼저 잡자는 건데. 그걸 직접 잡겠다고? 그것도 한 시간 안에?”
“확신하는 건 아닙니다. 가장 가능성 높은 몇 개 라인만 배제하자는 겁니다. 되면 잡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죠.”
“이봐, 드미트리. 내가 바보인 거야, 저자가 외계어를 하는 거야?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군.”
안톤은 부길마 드미트리를 향해 어깨를 으쓱이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리곤 바로 정색하며 말했다.
“이봐요, 강무혁 단장. 우선 전제를 달겠소. 우린 한국인을 그리 싫어하지 않소. 오히려 좋은 사업 파트너로 보지. 저 믿지 못할 열도 놈들보다 훨씬 나은. 일단 그렇게 오해하지 않도록 양해를 구하겠소.”
“…….”
“그리고 내 본심을 말하자면…. 어이, 한국인. 어디서 되먹지도 않은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연맹을 등에 업었다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건가? 머리통에 구멍 나고 싶지 않으면 썩 꺼져.”
안톤의 살기에 강무혁 옆에 있던 노송린은 호주머니 겉면을 만지작거렸다. 카람빗칼의 곡선형 칼날이 만져졌다.
‘이거 강 단장 쫓아다니다간 내가 먼저 심장마비로 죽겠어.’
차르 길드가 러시아에서나 지방 도시 길드이지, 한국 길드에 비교하면 티어와 A급 사이에 자리한 규모라 할 수 있었다. 헌터의 동원력으로 따지자면, 한국의 티어 길드도 한 수 접어 줘야 했다.
그런 길드를 상대로 건드려선 안 되는 금기에 굳이 손대면서까지 죽으려고 발악하는 건 뭐람?
강무혁은 하도 많은 위협을 당해서 이젠 익숙해져 버린 살기를 견뎌내며 입을 열었다.
“러시아 길드는 소속 단원을 가족이자 형제로 받아들인다죠?”
“겨우 그런 이유로 내가 스파이를 내버려 뒀다고 생각하는 건가?”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길드원을 식구라고 부르죠. 같이 살면서 함께 밥 먹는 사이라는 뜻입니다.”
“하? 무슨 소릴 하는가 했더니. 식구를 구해 달라? 이젠 동정심을 사겠다는 건가?”
“그게 아니라…….”
강무혁은 긴히 할 말이 있다는 듯 맞은편에 앉아 있는 안톤에게로 상체를 기울였다.
안톤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자못 궁금하다며 귀를 쫑긋 세웠다.
“내 식구 구하는데 나도 이판사판이야.”
“!!”
“그런 뜻으로 알아주십시오.”
정중하게 마무리한 강무혁이 다시 허리를 펴며 소파에 등을 기댔다.
“이 새끼가아!”
“으아아, 안톤 길마님! 참아요, 참아! 강 단장을 죽이면, 일이 커집니다!”
“이거 놔, 코즐로프! 저놈이 지금 나한테 협박하잖아? 헌터도 아닌 놈이 감히 날 갖고 놀아?!”
“진정하십시오, 길마님! 아직 우푸망바우 건도 있습니다. 성질대로 했다간 블라디보스토크가 날아가요.”
코즐로프와 드미트리의 만류로 안톤은 겨우 진정했다.
본능적으로 카람빗칼을 손에 쥐었던 노송린은 한숨 돌리며 강무혁의 귀에 소곤거렸다.
“미쳤어요, 단장?”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저쪽에서 말했다시피 우푸망바우가 있는 한 우리에게 해코지할 수 없을 겁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노송린은 세상 끝 간데 모르는 사람처럼 협상하는 강무혁에게 한마디 하려다가 포기했다.
겉보기엔 아슬아슬해도 항상 상황을 주도하고 성공해왔으니 뭐라 할 말이 없었던 것이다.
강무혁은 흥분을 가라앉히려 심호흡으로 숨을 고르고 있는 안톤에게 한마디 더 했다.
“그러니까 지금 저희 단원들 납치된 걸 이용해서 작업하시는 일. 그거 그만두시죠.”
“또 뜬금없이 뭘 말하는 거야?”
“차르 길드가 블라디보스토크에 폭군이 오는 걸 몰랐다? 게다가 그자가 우리 단원을 습격할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그것도 모자라서 어디 숨었는지도 알 수가 없다니. 그걸 나보고 믿으라는 겁니까?”
“흥! S랭크가 어디 카드 게임으로 딴 랭크인 줄 아는가 보군. 우리라도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렇죠. 폭군은 S랭크죠. 어디 가서 숨죽이고 있을 랭크가 아닙니다. 그의 성격도 숨는 것과는 거리가 멀고요.”
“이고르 성깔 더러운 게 뭐?”
“이제 그만 인정하시죠.”
“도대체 지금 뭐 하자는…….”
“폭군에게 우리 정보 흘린 스파이. 차르 길드. 본인들 아닙니까?!”
사람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뒤늦게 경악한 코즐로프가 안톤을 노려보며 소리쳤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안톤 길마님? 강무혁 단장의 말이 사실입니까?”
“하하하하!”
안톤이 박장대소했다. 코즐로프는 눈살을 찌푸렸다. 강무혁은 정색한 표정을 풀지 못했다. 분위기가 냉랭해지자 안톤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미안 미안. 너무 황당한 누명을 씌우니 안 웃을 수가 있나? 이봐요, 강 단장. 우리가 왜 우릴 노리고 있는 이고르에게 정보를 흘립니까? 소설도 앞뒤가 맞아야 봐주지. 이건 너무 막 썼다고. 그래서야 어디 밥이나 빌어먹겠어요?”
강무혁은 검지를 펴며 말했다.
“첫째, 폭군에게 우푸망바우를 해결할 방법을 찾은 걸 알린다. 둘째, 폭군이 아이언윌의 단원들을 습격하도록 유도한다.”
“어이, 전제부터가 잘못됐잖아. 백번 양보해서 습격하도록 유도했다고 칩시다. 그런데 우린 우푸망바우를 해결해야 한다고. 자칫 습격 때 아이언윌 헌터들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런 불확실한 계획을 누가 세워?”
안톤이 강무혁을 말을 끊었다. 강무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물음에 대해 대답했다.
“불확실? 아니죠. 폭군이 굳이 우리 단원들을 죽일 필요는 없으니까. 오히려 죽이면 문제가 될 소지가 있죠. 어쨌든 폭군은 러시아 정부라는 족쇄를 달고 있으니까. 죽이고 보는 건 무정부 국가에서나 가능한 일입니다. 차라리 살려서 협상한다는 게 당연한 선택지겠죠. 이어서 계속해도 될까요?”
안톤은 이어지는 강무혁의 말을 막지 못했다.
“셋째. 여기서부터 중요합니다. 셋째, 블라디보스토크의 언론과 커뮤니티를 이용해 폭군의 만행을 알린다. 이 도시를 뺏기 위해 우푸망바우의 해결책을 납치해 버린 파렴치한 작자로 몬다. 우푸망바우 사태로 불만이 극에 달한 국민이 러시아 연방 정부를 규탄한다. 중앙정부가 폭군을 감싸지 못하게 해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손을 떼게 한다.”
“흥! 그야말로 진짜 소설이군!”
“블라디보스토크에 오기 전.”
“…….”
“연맹에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그들 최고의 정보 수집 자산을 쓰게 해 달라고 말입니다. 천리안이라던가요?”
“천리안!”
코즐로프가 소스라치게 놀라며 입을 틀어막았다. 그 모습에 신경 쓰인 안톤이 물었다.
“천리안? 알고 있는 건가?”
“전 보안 레벨이 낮아서 천리안이 뭔지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그게 연맹의 최고 정보 자산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 그걸 사용하게 하다니…. 연맹에서 강무혁 단장님을 정말 중요하게 여기고 있나 보군요.”
“천리안이 도대체 뭐길래?”
“조건만 제대로 주어진다면, 한 번 알아내기로 한 정보는 반드시 알아내는 첩보 자산이라고 들었습니다.”
“전 두 가지 키워드를 연맹에 건넸습니다.”
안톤의 설명이 끝나자마자 강무혁이 끼어들었다.
“블라디보스토크와 이고르 두드닉. 어디에 숨었는지 확인해 달라고 했습니다. 지금쯤 찾았을지도 모르죠. 그가 도대체 어디에 있길래 차르 길드가 찾지 못하는지 이제 곧 밝혀질 겁니다. 그때 가서 다시 얘길 나누실까요?”
안톤이 갑자기 머리를 헝클었다.
“젠장! 트미트리, 내 이래서 이 짓 안 한다니까!”
“기, 길마님…….”
“그래, 내가 정보를 풀었어. 말 나온 김에 묻는데. 도대체 그건 어떻게 안 거야?”
“그것보다 궁금한 게 있습니다.”
“궁금한 거? 그게 뭔진 몰라도 내가 더 궁금해!”
안톤이 윽박질렀지만, 강무혁은 입을 꾹 다물었다. 안톤은 길게 버티지 않고 항복 선언을 했다.
“뭐가 궁금한데? 말해 봐.”
“이 계획. 누가 제안한 겁니까?”
* * *
아일라는 알렉스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에 관해 물었다.
“알렉스. 강무혁 공이 진짜 천리안을 쓰게 해 달라고 했나요? 그걸 원탁이 허락할 리가 없는데?”
“정확히는 천리안을 쓰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천리안의 존재조차 몰랐는걸요.”
“그런데 어떻게 천리안을…….”
“그는 제게 몇 가지 도움을 달라고만 했습니다.”
“도움을요?”
“그중 하나가 연맹 내 최고 첩보 자산이 무엇인지 알려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얼마큼 강력한 정보력인지, 러시아에 있는 우리 요원이 그 자산의 존재에 대해 아는지 등등. 정보를 요구했죠.”
“겨우 정보만요?”
“예. 어차피 연맹 소속이라면 다들 천리안에 대한 이런저런 소문들은 하나둘쯤은 알고 있으니 진짜 정체만 알려 주지 않으면 딱히 어려울 것 없는 부탁이라 알려 줬습니다.”
“겨우 그걸로 뭘 한다고요?”
“글쎄요. 저도 정확히 듣진 못했습니다만. 얼핏 주워듣기론 협박? 협상? 그런 뜻이었던 것 같은데…. 하여간 무슨 재료로 쓸 것 중에 하나라고 하더군요.”
“재료? 뭐에 쓰려고요?”
“다른 건 몰라도 강무혁 단장은 처음부터 차르 길드를 의심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