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118)
118화
쿠오오…….
굉음처럼 일어나던 검강의 공명음이 사라졌다.
“……!”
남궁기의 눈이 부릅 떠졌다.
야현이 날아오는 남궁기의 검을 향해 야월을 내려찍었다.
투둑! 투두둑!
야현의 팔에서 피부가 터지며 썩은 검은 핏물이 튀었다. 그럼에도 남궁기의 검을 내려찍는 야현의 야월의 힘은 죽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강한 힘을 드러냈다.
서걱!
사방을 초토화할 엄청난 충격과 폭음이 터질 거라는 예상과 달리 아주 미세한 소리만이 희미하게 만들어졌을 뿐이었다.
남궁기는 눈을 부릅뜬 채 야현을 쳐다보고 있었고, 야현은 야월을 내려 그은 후 낮은 자세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짧은 시간이 흘렀다.
“푸학!”
야현이 검은 핏물을 토해냈다.
쿵!
그리고 한쪽 무릎이 바닥을 찍었다.
“크흐, 흐으으!”
야현이 신음과 함께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바르르 떨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들어 남궁기를 쳐다보았다.
히죽!
하얀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
눈을 부릅뜬 남궁기의 몸이 뻣뻣한 수수깡처럼 뒤로 넘어갔다.
“끄으.”
야현은 부들부들 떨리는 무릎에 힘을 줘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힘겹게 남궁기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힘이 다했는지 그 앞에 털썩 무릎을 꿇듯 주저앉았다.
“크크크크.”
미동조차 하지 못하는 남궁기를 내려다보며 야현은 웃음을 삼켰다.
“크하하하하!”
웃음은 대소가 되어 장원을 쩌렁쩌렁 울렸다.
한바탕 웃음 뒤 야현은 남궁기의 목을 물었다. 그리고 피를 빨았다.
* * *
늦은 밤.
남궁문결은 홀로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껏 술을 즐기지 않았던 남궁문결이었지만 소가주이자 장남이었던 남궁강을 보내고 이처럼 늦은 밤 홀로 술을 마시는 경우가 많아졌다.
“또 술이시오?”
가주 침실 문이 열리고 남궁무결이 술병 하나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
“적적해서 그렇다.”
적적함이 무엇 때문인지 남궁무결은 잘 알기에 씁쓸한 웃음을 감추며 그의 빈 잔을 채워주었다.
“혁이에 대한 걱정이라면 안 해도 된다.”
남궁문결은 남궁무결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형님. 그게 무슨 말이시오?”
남궁무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그 속에는 분노가 담겨 있었다.
“혁이는 형님 아들이오. 세상이 그리 알고 형님도, 나도 그리 알고 있소.”
남궁문결에게는 아들 둘과 딸 하나가 있었다.
첫째가 죽은 남궁강이었고, 이제 소가주가 된 둘째 아들 남궁혁, 그리고 막내 여식 남궁세연이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모르는 비밀이 있었으니 둘째 남궁혁은 남궁문결의 핏줄이 아닌 남궁무결의 핏줄이었다.
남궁무결은 결혼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문을 위해 결혼을 하지 않겠다 다짐했고, 그 다짐을 지켜왔다. 하지만 그에게도 훈훈한 춘풍이 분 젊은 날이 있었고, 그로 인해 뜻하지 않게 자식을 얻게 되었다.
남궁무결은 핏덩이만 안고 와 남궁문결의 품에 덩그러니 남겨 놓고 폐관 수련에 들어가 버렸다. 그 후 아이의 엄마가 누구인지, 살아는 있는지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남궁혁은 남궁문결의 아들이 되어 자라났다.
“혁이도 내 아들이다. 다만, 보낸 아이의 빈자리 때문이야.”
남궁문결이 술잔을 비운 후 남궁무결에게 내밀었다.
“받아라.”
남궁문결은 남궁무결이 받아든 술잔을 채웠다.
그렇게 말없이 몇 순배가 돌 즈음이었다.
쿵!
바위라도 내려앉은 듯 무거운 기운이 몸을 짓눌렀다.
“아버지?”
남궁무결은 어마어마한 기운에 놀란 눈으로 고개를 돌렸다.
쿵!
이어진 또 하나의 기운.
남궁무결의 낯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제껏 느껴보지 못했던 기운이다.
동시에 사기가 짙다.
쿵!
그 두 기운이 부딪혔다.
“아버지께 무슨 전갈이라도 들은 게 있소?”
“없다.”
남궁문결과 남궁무결은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연이어 터지는 기파는 거친 데다 살기를 담고 있었다.
단순한 비무가 아니다.
심상치 않았다.
그렇기에 둘은 가주실 문이 부서져도 상관없다는 듯 거칠게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남궁기의 거처로 몸을 날렸다.
한차례 태풍이라도 온 것처럼 두 기운의 충돌은 상상이 안 갈 정도로 거세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
그런 충돌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태풍의 중심에 들어선 것인지, 아니면 태풍이 모든 것을 부순 후 사라진 것인지 알 수 없다.
남궁무결은 서서히 거리가 벌어지는 남궁문결을 쳐다보았다. 비록 말을 전하지는 않았지만 먼저 가라는 남궁문결의 눈빛에 남궁무결은 이를 악물고 땅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얼마 후 남궁기의 연무장을 둘러싼 담벼락을 밟고 안으로 들어섰다.
한 인물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고, 또 하나의 인물이 어둠 속에서 양팔을 들고 서 있었다.
“크하앗!”
그리고 터진 흉성.
챙!
남궁무결은 검을 뽑으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인물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 순간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동공을 보았다.
쐐애애액!
그리고 그를 베는 순간, 붉은 안광도 사라졌다.
남궁무결은 빠르게 주위를 살피며 쓰러져 있는 이를 쳐다보았다.
바싹 마른 시신.
“아, 아버지?”
시신은 얼굴상이 달라져 순간 알아볼 수 없었지만 남궁무결은 차츰 그 달라진 얼굴에서 남궁기의 얼굴을 찾아냈다. 그리고 평소 그가 입고 있던 옷까지.
챙그랑.
도저히 이 상황이 믿기지 않는 듯 남궁무결의 눈동자가 마구 요동쳤다. 몸에 힘이 쭉 빠졌는지 검까지 떨구고 말았다.
“아버지! 아버지!”
남궁무결은 남궁기의 시신을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으아아아아!”
어둠 속에서 빛나던 붉은 눈동자.
남궁무결은 핏발이 선 눈으로 고함을 내질렀다.
* * *
톡톡톡톡톡!
나무로 둘러싸인 자그만 암자에서 청아한 목탁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딸랑― 딸랑―
목탁 소리 사이로 영롱한 풍경(風磬) 소리가 운치를 더했다.
“마하반야 바라밀다…….”
허리가 구부정한 노승이 자그만 불상 앞에서 목탁을 치며 불경을 읊조리고 있었다. 승복은 수십 번을 꿰어 밑감이 무엇인지 짐작을 하지 못할 정도였다.
“……아제 아제……!”
불경을 읊조리던 노승이 어느 순간 입을 꾹 닫았다.
마음을 평온하게 만들던 목탁 소리도 끊겼다.
“오호(嗚呼)! 통재(痛哉)라.”
노승의 목소리에는 탄식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 한참을 우두커니 앉아 있던 노승이 착잡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백료야.”
“예, 스승님.”
구석에 정좌하고 있던 젊은 승려가 대답했다.
백료.
소림사의 무승.
소림을 대표하는 절대자 중 일인, 권왕.
그러나 정작 알려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문을 열어보아라.”
노승의 말에 구석에서 조용히 앉아 있던 백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특이하게도 백료의 승복 색은 검은색이었다.
노승은 힘겹게 몸을 틀어 활짝 열린 문밖으로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슬픔이 살짝 담긴 담담한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결국…… 나무아미타불.”
노승은 눈을 감으며 불호를 읊었다.
“경내로 내려가서 장문인 좀 모셔오너라.”
백료의 신형이 그 자리에서 연기처럼 사라졌다.
조금의 시간이 흐르고.
언제 자리를 떴나 싶게, 아니 애초에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것처럼 백료가 구석에 정좌하고 있었고, 잠시 후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소림 방장 원중이었다.
“사숙조,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어서 오시게.”
원중은 노승, 일암에게 반장으로 예를 취한 후 그 앞에 앉았다.
“어쩐 일로 소승을 부르셨는지요?”
“방장.”
일암은 무거운 목소리로 원중을 불렀다.
그의 목소리에 담긴 감정이 심상치 않기에 원중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아무래도 흑림을 열어야 할 듯싶소이다.”
놀란 나머지 원중의 동공이 커졌다. 옆에 석상처럼 숨소리조차 드러내지 않던 흑승, 백료도 놀라기는 마찬가지인 듯 옅은 숨소리가 흘러나왔다.
“사, 사숙조. 지금 흑림을 여신다고 하셨습니까?”
원중은 백료를 흘깃 쳐다본 후 되물었다.
“그리해야 할 듯하오.”
“…….”
원중의 굳게 닫힌 입은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아니, 열리지 못했다.
흑림은 살생의 칼을 손에 쥔 소림의 다른 얼굴이다.
그리고 소림의 진짜 힘이기도 하다.
천하의 무림인들이 무림의 마지막 보루를 소림이라 여긴다면, 그 소림을 이끌어가는 방장을 선두로 한 원로회는 소림사의 마지막 보루를 흑림이라 여긴다.
흑림은 정대하다.
그러나 손속에 자비를 두지 않는다.
또한, 강하다.
그렇기에 흑림은 움직이지 않는다.
흑림이 움직인 일은 천 년 소림 역사상 단 두 번.
초대 천마가 세상에 등장했을 때, 그리고 사파인의 정신적 시조로 불리는 혈황이 천하를 피로 물들였을 때뿐이었다.
“처, 천마이옵니까?”
원중의 머릿속에 현 마교주가 천마의 이름을 이어받았다는 소식이 떠올랐다.
“천기를 제대로 읽었다면 천 교주는 초대 천마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힘을 이어받았을 것이오.”
“그가 초대 천마처럼 중원으로 나오려는 것이옵니까?”
마교의 숙원이 중원 진출임을 모르는 이가 있을까. 물으나 마나다.
“……아미타불.”
머릿속에 앞으로 벌어질 처참한 전장을 떠올렸는지 원중의 안색과 목소리는 어둡고 무거웠다.
일암은 원중을 보며 고개를 저었다.
“그가 중원에 나올 것은 자명한 일이외다. 그러나.”
원중의 얼굴이 굳어졌다. 그러나 곧 일암의 말이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초대 천마의 이름을 잇는 자가 태어났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그를 필두로 마교가 중원에 나온다.
흑림을 연다.
그런데 그 이유가 천마가 아니라고 했다.
“소승이 잘못 들은 것이옵니까?”
“아니요, 방장.”
“그렇다면 어찌…….”
“천하를 어둠으로 집어삼킬 자가 태어났소이다.”
“누구이옵니까?”
“그건 모르겠소. 누구인지.”
일암이 고개를 돌려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마, 마로써 천안을 열었으니 그도 지금쯤 천기를 읽었을 것이외다. 천마는 마의 종주이자 어둠의 종주. 그가 본인보다도 더 어두운 색을 가진 이를 하늘에서 보았으니. 그가 어찌할지…… 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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