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Vampire went to Murim RAW novel - chapter (21)
21화
당황한 듯 언파풍을 바라보는 언가휘의 얼굴은 붉었다.
“일미에게 다 들었다.”
언가휘는 그 말에 입술을 베어 물었다.
“들어오너라.”
언파풍의 말에 시녀 둘이 안으로 들어왔다.
“정리하거라. 가휘야, 따라오너라.”
언파풍은 언가휘를 데리고 후원으로 향했다.
“못난 놈.”
가벼운 질책.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진한 부정이 담겨 있었다.
“죄송합니다.”
“한심한 놈.”
언파풍은 고개를 떨군 언가휘를 쳐다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뭐가 죄송한 것이냐?”
언파풍은 걸음을 멈추고 언가휘를 향해 몸을 돌렸다.
“그게…….”
언가휘는 이를 악물며 언파풍의 눈을 마주하고 입을 열었다.
“그대로 물러날 것이 아니라.”
“아니라?”
“그 자리에서 저와, 더 나아가 세가의 자존심을 지켰어야 했습니다.”
언가휘의 딱 부러지는 목소리에 언파풍의 표정이 풀렸다.
“내가 괜한 걱정을 한 듯싶구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한 번 실수는 병가지상사라고 했다. 장차 세가를 이끌어 가야 할 너다. 좋은 약이 되었다고 생각하여라.”
언파풍은 그런 언가휘를 향해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
“세가의 무사들을 대동하든, 너 스스로 실타래를 풀든 알아서 하여라. 하지만 명심하여라.”
언파풍의 눈빛이 사나워졌다.
“그 자리에서라면 그저 위가 있음을 알려 주는 정도로도 괜찮았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반드시 그놈의 목숨을 취하여라.”
목소리 또한 살심에 젖어 있었다.
“소자, 그리하려 했습니다.”
* * *
침상 위에서 야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가느다란 호흡이 길게 이어졌다.
툭!
그런 야현 앞으로 검은 그림자가 떨어져 내렸다.
독고결이었다.
“후우―.”
야현은 호흡을 가다듬으며 눈을 떴다.
번쩍!
은은한 정광(晶光)이 야현의 눈에서 반짝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붉은 동공이 빠르게 그 자리를 빼앗았다.
“왜 일을 만든 거요?”
독고결은 불만 어린 눈으로 야현에게 툭 쏘아붙였다.
“뭘?”
야현은 가부좌를 풀고 침상 아래로 내려왔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찻잔이 있는 탁자로 향했다.
“왜 북경으로 온 것인지 잊은 것이오?”
독고결의 목소리에는 격노와 짜증, 초조함이 복합적으로 묻어나왔다.
“앉아.”
야현은 찻물이 우러나는 찻주전자를 은은히 바라보며 말했다.
“정녕 내 복수에 대해 생각은 하고 있는 것 맞소?”
독고결의 거칠어진 목소리에 그제야 야현은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앉아.”
야현은 붉은 동공이 드러난 눈으로 독고결을 쳐다보며 나직하게 다시 말을 건넸다. 그 눈빛에 담긴 힘을 거부할 수 없었던 독고결이 입술을 깨물며 야현 앞에 앉았다.
쪼르르르.
야현은 독고결 앞으로 찻잔을 놓고 차를 따랐다.
“무슨 일을 하건 조급함은 금물이야.”
무슨 말을 하는지 독고결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독고결의 반문에 야현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대로 가면? 복수할 수 있겠나?”
야현의 말에 독고결의 얼굴이 구겨졌다.
안다.
너무 잘 안다.
잘 알아서 괴롭다.
“마냥 내 손만 빌려서 복수를 하려는 건가?”
독고결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복수할 힘 정도는 길러야 하지 않겠는가, 이 말이야 내 말이.”
야현은 차를 들어 조용히 음미했다.
“아오. 나도 아오. 하지만…….”
“나는 그대에게 새로운 힘을 줄 거야. 적응은 해야 하지 않겠나?”
야현은 차를 내려놓으며 독고결을 쳐다보았다.
“새로운 힘?”
독고결의 눈동자가 살짝 커졌다.
“그럼 본인이 그냥 그대를 거두리라 생각했던가? 그리 생각했다면 섭섭해.”
커진 눈동자가 흔들렸다. 다만 조금 전의 불만 어린 흔들림과는 달랐다.
“일단 그리 알고…… 손님이 오는군.”
야현은 두꺼운 천으로 가려져 빛조차 새어 들어오지 않는 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생각보다 빠르군. 무슨 일이 있어도 놀라지 마라. 그리고 오늘 밤을 기대하게. 그대의 새로운 힘과 본인의 유희를…….”
스윽!
야현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독고결의 신형이 사라졌다.
동시에.
콰당!
문이 거칠게 열리며 한 사내가 안으로 들어왔다.
언가휘였다.
활짝 열린 문밖으로 험악한 분위기를 만드는 십여 명의 무인들이 보였다. 하나의 복장으로 통일된 것으로 보아 진주언가의 무인들인 모양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야현은 차를 들며, 다가오는 언가휘를 향해 입을 열었다.
“쥐새끼 같은 놈.”
살심이 가득한 눈빛, 그리고 거침없는 목소리.
언가휘는 애초에 작정하고 온 것이다.
물론 야현도 예상한 바다.
아니, 일부러 그리 만들었다.
그래도 이렇게 대놓고 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정오가 다가오는 한낮에.
‘이런 게 유희의 묘미지.’
야현의 담담한 미소에 언가휘는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판단이 안 되는 모양이군. 오늘 네놈의 가면을 벗겨 주겠다.”
“이 무슨 행패인가요?”
그때 문밖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용란이었다.
그 옆에 모용휘도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 반대쪽에는 황보혁이 팔짱을 낀 채 문틀에 기대 있었다.
“사사로운 원한이오, 모용 낭자.”
말도 안 되는 주장.
언가휘는 먼저 황보혁을 쳐다보았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슬쩍 들어 올렸다. 끼어들지 않겠다는 의사. 언가휘는 다시 모용란과 모용휘를 쳐다보았다.
“어제의…….”
“사사로운 원한에 끼어들 생각이시오?”
언가휘는 모용란의 말을 자르며 다시 제 뜻을 밝혔다. 모용란이 발끈하려 했지만, 모용휘가 그녀를 말렸다.
“언 형. 사사로운 원한, 맞습니까?”
대신 모용휘가 나섰다.
“맞습니다.”
언가휘는 미소를 보이며 대답했다.
“그런 억지가…….”
다시 입을 열려고 하던 모용란의 어깨를 모용휘가 굳게 잡았다. 그리고 조용히 모용란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저었다.
무림은 약육강식의 세상이다.
강한 자가 정의요, 올바름이다.
말도 안 되는 논리지만 그것만이 진리인 세상이다.
물론 개인적인 원한에 끼어들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책임은 개인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모용란이 여기서 끼어들면 개인적인 일이 세가 대 세가의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럴 가능성이야 낮지만, 혹여나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질 수도 있었다.
“언 형, 좋게 마무리를 했으면 하오.”
“이 언 모는 너그러운 사람이오.”
언가휘는 이를 드러내는 웃음을 보였다.
모용휘는 안타까운 눈으로 야현을 잠시 쳐다보다 몸을 돌려야 했다.
모용란은 그와 달리 쉽게 발을 떼지 못했다.
어찌할 수 없는 자신을 탓하는 눈빛, 그리고 미안함.
야현은 그런 모용란의 눈을 마주하며 미소를 지었다.
“본인은 괜찮습니다.”
그 모습에 언가휘의 눈빛이 더욱 차가워졌다. 모용란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제와 확연히 달랐다.
어제 언파풍과 이야기를 마쳤다.
며칠 내에 모용세가로 매파를 보내기로…….
‘평생을 후회하고 또 후회하게 만들겠다. 내 가랑이 아래에서…… 철저히 유린해 주겠어!’
그녀의 몸뚱이가 상상이 되었던지 언가휘는 혀로 입술을 적셨다. 불같이 일어나는 음욕만큼 살기도 더욱 짙어졌다.
언가휘는 야현을 향해 걸음을 내디뎠다.
“지금이라도 사실을 털어놓으면 내 넓은 아량을 보일 것이다.”
언가휘는 야현 앞에 서서 야현을 내려다보았다.
“본인이 그대 앞에 무릎을 꿇기 전엔 무슨 말을 하든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렇지요?”
“맞아.”
언가휘는 야현의 말에 씨익 웃으며 살기를 뿜어냈다.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야현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불가피하게…….”
언가휘는 한 걸음 더 내디뎌 야현을 압박했다.
“이걸 어쩌죠?”
야현의 입가에 도는 미소가 진해졌다.
“본인도 힘으로 해결하는 것을 매우 좋아합니다.”
미소가 진해지며 서서히 드러나는 날카로운 송곳니, 그리고 활활 타듯 커지는 붉은 동공.
섬뜩한 느낌이 등골을 타고 올라왔다.
야현의 달라진 미소.
뭐라고 해야 하나?
마치…… 마치…… 마귀의 웃음처럼 보였다.
언가휘의 눈에.
“갈!”
언가휘는 저도 모르게 움찔거리며 뒤로 반걸음 물러났다가 야현의 가슴을 향해 내력을 쏟아 부어 일장을 날렸다.
퍼벙!
묵직한 파음과 함께.
쾅!
야현은 뒤로 날아가 벽에 부딪힌 후 침상 위로 떨어졌다.
우당탕탕탕!
침상 위로 떨어진 야현의 몸이 잠시 꿈틀거리다가 이내 물먹은 솜처럼 축 처졌다.
“야, 야 소협.”
누가 말릴 사이도 없이 모용란이 야현에게로 뛰어갔다.
그러고는 야현의 몸을 뒤집었다.
모용란의 눈가가 파르르 떨렸다.
이어 모용휘가 침상 위로 올라섰다.
잠시 머뭇거리던 언가휘도 침상으로 다가섰다.
야현의 가슴이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다. 모용란은 야현의 목으로 손을 가져갔다. 그리고 귀를 코에 가져다 댔다.
맥도 없었고, 호흡도 없었다.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내장이 모두 으깨졌으리라.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상처였다.
모용휘는 죽은 야현을 쳐다보다 언가휘를 향해 시선을 돌리며 눈살을 찌푸렸다.
야현이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그의 몸에서 풍기는 은은한 기세로 알고 있었다. 그리고 무공이 일천하다는 것 또한 느끼고 있었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소?”
모용휘는 눈살을 찌푸리며 언가휘를 책망했다.
언가휘는 죽은 야현을 보며 얼굴을 와락 일그러트렸다.
원한 것은 이게 아니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이렇게 죽이는 것은 아니었다.
‘젠장!’
속으로 욕이 절로 나왔다.
잠시 야현을 노려보던 언가휘는 기분 나쁜 표정으로 몸을 돌렸다.
어찌 되었든 죽였다.
끝이다.
그런데…….
‘뭐지, 이 찜찜함은?’
야현이 보여 준 기묘한 미소.
붉은 동공을 가진 눈동자.
‘그리고 그 이상한 송곳니…… 기분 더럽군.’
그 모든 것들이 언가휘의 머릿속에서 불현듯 떠오르더니 지워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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