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141
EP.141 겨울이었다 – 2
희뿌연 눈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은 곳이었다.
이미 주변을 새하얗게 물든 폭신한 눈은 수많은 나무들을 무겁게 장식하고 있었다.
포장된 돌길 위로 소복히 쌓인 눈을 말발굽이 헤집어 놓는다.
그때마다 튀어오르는 새하얀 눈발에 마차에 타고 있던, 눈과 같은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미녀가 방긋 웃었다.
“아하하! 현우야! 이거 봐봐!”
“음?”
마부석에 앉아 말고삐를 흔들던 나는 그녀의 외침에 슬쩍 눈을 돌렸다.
그녀의 손에는 마차에 쌓인 눈으로 만든 듯한 작은 눈사람이 있었다.
그것을 들어 올린 채 헤죽거리는 모습이 웃겨 나도 웃어주었다.
“이제 거의 다 온거지?”
“응.”
“후. 우리가 여길 오긴 오네. 그동안 되게 바빴는데.”
크로노스를 쓰러트리고 난 이후부터 정신이 없었다.
베로니카도 베로니카지만 나도 쉴 틈 따위는 없었다.
계속해서 모험가 생활을 이어가며 결국 S급 승급 시험 준비를 끝냈고 기간이 되자마자 도전하여 S급 모험가를 달성했다.
그 와중에 장사를 하며 돈을 모아 숙련도 훈련을 위한 물품들도 구매. 관련 스킬들을 모조리 올린데다가 유령저택 처리라든가, 낮은 산에서 울먹거리는 저주받은 우물을 정화한다든가 등.
스토리 업적들도 꽤나 따냈다.
그 결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겨울 휴가를 받게 될 줄은 몰랐어. 후. 고마워. 현우야.”
“별 말씀을.”
정말 별 말씀이다. 내가 따야 하는 업적들 중에 베로니카가 처리해야 할 일들도 꽤나 있었으니까.
스토리 업적 중에는 유령을 성불시키는 업적도 있는데다가 악마 추종자들과 싸워야 하는 업적들도 있었으니까.
교회에 거점을 마련한 덕분에 그런 정보들을 베로니카에게 쉽게 얻을 수 있었고, 덕분에 나 역시도 편하게 업적작을 할 수 있었다.
“아냐. 아냐. 너랑 같이 해서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거지. 와. 저번에 악마 추종자들은 진짜…”
베로니카는 질린 듯 투덜거렸다. 그녀의 반응에 난 쓰게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스토리 업적은 최대한 스킵을 해도 길기로 유명한 업적이니까.
대륙 각지에 퍼져 있는 악마 추종자들의 교단을 박멸시키는 업적이다보니 여기저기 바쁘게 다녀야 했다.
진짜 순간이동 없었으면 어쩔 뻔 했어.
“추기경님의 이름을 빌린 덕분에 나도 쉬웠지.”
“아하핫~! 그렇게 말해주면 고맙네. 아예 우리 계속 이렇게 추종자들 머리 부수면서 다닐래?”
참 청초한 웃음인데 내용이 좀 살벌하다.
난 그냥 웃는 것으로 대꾸했고 베로니카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래서? 여긴 어딘데?”
“여기가 어디냐고 물어보신다면 대답해드리는 것이 인지상정이지요!!”
“…앗. 이 목소리는?!”
아름다운 풍경에 아름답지 않은 것이 튀어나왔다.
회색 털이 인상적인 늑대인간 주술사 소년.
윌커스였다.
그를 보자마자 베로니카는 골치아프다는 듯 이마를 감싸쥐었고 윌커스는 히죽거리며 양 팔을 벌렸다.
“어서 오세요! 수인족들의 나라에!!”
“그런데 수인족은 나라가 없지 않나?”
“…어서 오세요! 수인족들의 땅에!! 이제 곧 트레버 마을입니다!!”
바로 말을 바꾼 윌커스는 싱글벙글 웃다가 훌쩍 뛰어올라 마차의 마부석에 앉았다.
“트레버 마을까지 가시는거죠? 지금 시기에 여기에 오신 건…”
“어. 거기 겨울축제 참가하려고.”
예전에 에반젤린과 함께 갔던 겨울축제.
이것도 두번 제패 업적을 달성해야 하는지라 휴가를 받은 베로니카와 함께 가고 있었다.
그나마 여름 축제보다 나은 건 수도의 축제보다 가게의 수가 적어서 깨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는 점이겠지.
“하하. 추기경님. 너무 그렇게 보지 마세요. 제가 두 분의 오붓한 여행을 망치려고 이렇게 끼어든게 아니라… 아! 오붓한 여행하니까 생각난 건데 예전에 제가 트레버 마을의 의뢰를 받고 마을 서쪽에 있는…”
“…..”
베로니카는 더 골치가 아팠나보다. 그의 수다에 눈을 감아버린 그녀를 향해 난 웃어주며 고삐를 윌커스에게 넘겼다.
“너도 트레버 마을로 가는거지?”
“하하. 예. 저희 마을이 트레버 마을 근처에 있거든요. 저희 가족들이 트레버 마을 축제에 물품을 공급하는데 저희 엄마가 만든 비프스튜가 겨울 축제때 그렇게 찾는 사람이 많아서. 아. 비프스튜 하니까 혹시 로벨론 시의 크림 비프스튜 드셔보셨나요? 그게 진짜 맛있던데. 특히 올가의 여관에서 파는…”
“마차 좀 몰아줘.”
난 그에게 말고삐를 맡기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홀로 남은 윌커스는 마부석에서 우리가 듣든 말든 신경쓰지 않고 열심히 떠들었고,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조용한 여행은 글렀네.”
“어차피 트레버 마을도 얼마 안남았어.”
“트레버 마을?”
“수인족의 영역에서 꽤 큰 마을이야. 서쪽에는 좋은 온천이 있고 ,북쪽에는 겨울에만 마실 수 있는 아이스 와인 공장이 있지.”
“아. 아이스 와인. 나도 마셔봤어. 되게 달던데.”
“응. 아마 교회에 납품되는 것도 여기에서 만든 거겠지.”
“와…”
“이왕 휴가 받은 거 제대로 쉬는게 좋지 않겠어? 물론 레이드닌에 가도 되겠지만… 너 나랑 같이 휴가쓰고 싶다면서.”
“응!!”
“그러니까 여길 골랐지. 쟤가 말한 것처럼 여기서 축제가 열리거든. 아. 혹시 싫다면…”
“있을리 있나~. 어? 그런데 현우야. 너 지금 겨울 축제 파트너로 날 고른거야?”
눈을 깜빡깜빡거리며 베로니카는 장난스럽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왔다.
좋은 향기가 코를 간지럽힌다.
“하하. 트레버 마을의 겨울축제에는 파트너가 필요 없… 아야!”
“…그럴 때는 농담이라도 그렇다고 하는거야. 어휴. 진짜.”
새초롬하게 휙 고개를 돌려버린 베로니카는 창 밖을 보고 또다시 감탄했다.
멀리.
완전히 얼어버린 호수가 보인다.
“저기야? 저기야? 와. 진짜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데?”
베로니카가 감탄할만했다.
트레버 마을의 겨울축제는 게임 스크린샷 찍기에도 좋은 곳이었으니까.
그렇게 슬슬 관도를 벗어나 마을 쪽으로 진입하기 때문일까? 마차가 조금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잉? 인간들 아냐?”
활과 화살을 든 개 수인 사냥꾼이 우리 쪽에게 다가와서 말을 걸었다. 그는 마차를 이리저리 살펴보더니 히죽거렸다.
“이거 돈 많으신 분인가보군!! 돈 많은 사람은 언제든지 환영일세! 하하하!!”
“되게 세속적이시네요.”
“원래 축제때 한탕 해야하지 않겠는가! 으허허허! 그럼 잘 놀고… 아. 혹시 숙박할 곳 없으면 여기로 가보게나!”
그는 품에서 작은 나뭇조각을 꺼내 내밀었다.
“어디보자… 발로인의 오두막. 마굿간 제공. 안내 제공. 숙식 가능….”
베로니카는 그 나뭇조각을 받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를 향해 히죽거리며 웃은 개 수인이 떠나가고 잠시 후.
“오잉? 인간들 아냐?”
“잘 곳 없으면 우리 집에서 자게!”
“여관은 트레버 할루 여관!”
“여관 앞에서 칼시론을 찾으세요!! 조식 무료!”
우연을 가장하며 접근하던 수인들이 대놓고 호객행위를 시작한다.
그것을 보며 베로니카는 식은 땀을 흘렸고, 난 웃으며 말했다.
“숙소는 이미 정해놨으니까 걱정마.”
“어딘데?”
난 창 밖을 가리켰다. 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은.
호숫가에 가장 가깝고, 가장 큰 건물.
트레버 마을의 자랑이며 조인족 중에서도 명망높은 귀족가문, 엔드 가문이 운영하는 여관.
‘피닉스’ 였다.
피닉스에 도착하자 윌커스는 자기 가족들 보러 간다고 가버렸다. 진짜 바람같이 나타났다가 바람같이 사라지는구나.
“어서오십시오!!”
아름다운 날개를 지닌 조인족 점원이 나와서 우리를 반긴다.
마차에 있는 짐들과 말을 챙긴 그는 싱글벙글 웃었다.
“인간분들이 피닉스에 예약하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데… 참 대단하시네요.”
“어? 그래?”
“아무래도. 여기서 묵고 싶어하는 수인족들은 많거든. 어쨋든 이 마을에서 가장 좋은 여관이 여기니까.”
“맞습니다! 하하! 손님께서 보시는 눈이 있으시군요!! 시설도, 역사도, 서비스도! 심지어 요리도 모든 종족이 만족할 수 있는 훌륭한 쉐프가 항시 대기하고 있습죠! 또한 저희 피닉스의 고객님들만 쓰실 수 있는 노천 온천들도 무려 일곱 곳!! 정말 현명하신 선택입니다!”
“와. 신경 많이 썼네~?”
툭툭.
내 옆구리를 치며 베로니카가 웃기 시작한다.
물론 저 점원이 말하는 것 외에도 여기에서 머무는 이유가 있지만 그건 굳이 말해 줄 필요 없겠지.
“으아아~ 피곤하다~.”
“온천 가자! 온천!”
“술부터 가져와!!”
“그런 건 나중에 하고 일단 식사부터 하고 싶군요.”
그때 여관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이 있었다.
꽤나 익숙한 목소리에 나와 베로니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야?”
예상 외의 사람들이 있었다.
술을 찾는 것은 드워븐 시티의 시장인 마락스.
그리고 그를 나무라는 것은 하얀색 털모자로 푸른 머리를 가리고 비싸보이는 털코트를 입고 있는 공왕 세실.
언제나 입는 세련된 검은색 집사복 차림의 카린.
마지막으로 수인족 족장 레오까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들이 있었다.
“댁들이 왜 여기 있어?”
“그거야… 아니 우리가 묻고 싶은 말인데?”
“내가 먼저 물어봤거든?”
“수인족들이 가진 뼈를 좀 확인하고, 또 거래 차.. 왔다가. 여기 축제한다고 해서 구경왔지.”
마락스는 대놓고 놀러왔다고 말했고, 카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드워븐 시티, 그리고 수인족들과 거래를 위해 왔다가 전하께서 늘 연구만 하셔서… 휴식을 취하러 왔지.”
“흐음… 이거 본의아니게 미안하게 됐구만. 괜히 둘만의 여행을 방해하는 것 같아서.”
수인족의 왕, 레오는 뒤에서 쓰게 웃으며 미안한 듯 연신 베로니카에게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하아. 뭐. 어쩔 수 없죠.”
“그래. 어쩔 수 없지. 그럼 각자 알아서 잘 놀다 해산하도록 하자고.”
“엇? 여기서 만난 것도 인연인데 같이 다니지 않는 건가?!”
마락스가 외치자 난 웃었다.
“그러기에는 일이 많아서요. 다음에 또 봅시다.”
난 기다리고 있는 직원에게 안내를 부탁했다.
그렇게 조인족이 만든 엘레베이터 비스무리한 것을 타고 최상층에 올라가자.
“와…”
아무나 쓸 수 없는 스위트룸을 빌릴 수 있었다.
하루 숙박비만 천골드가 훌쩍 넘는 방을 보자마자 베로니카는 연신 감탄성을 토해냈다.
“식사는 방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면 식당에서 드시겠습니까?”
“식당으로 가지.”
“알겠습니다. 필요하신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지 저 종을 쳐주시기…”
“트레버 마을 산 최고급 아이스 와인 두병이랑, 클레먼 치즈도 갖다 주겠어? 그 외에 안줏거리도…”
내가 보석을 내밀자 직원은 내가 요구한 것들의 비용을 생각하더니 날 말없이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뿐.
공손하게 웃으며 고개 숙여 인사한 그가 나간다.
그렇게 베로니카가 방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 노크소리가 들리고 직원이 들어온다.
그가 끌고 온 트레이에는 아까 내가 주문한 것들이 모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방 구경에 여념이 없는 베로니카가 다가오기 전, 난 와인잔 밑에 있던 쪽지를 꺼내 내용을 확인했다.
– 삶과 죽음에 대해 논의하고 싶으십니까?
업적창의 남은 빈칸 중 하나.
‘첫번째 사망’을 위한 준비작업이 시작되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김포고촌치킨님 후원 정말정말 감사합니다!
양손수화님 후원 정말정말 감사드려요!!
그럼 이따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