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44
EP.44 광기의 매드 알케미스트 – 2
[약학 마스터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으으으으…”
난 신음하는 이들을 내려다보았다. 얼마 전 까지만해도 멀쩡하던 이들이 테스트의 여파로 반쯤 죽어가고 있었다.
독, 정신분열제, 안정제, 회복제, 버프 및 디버프용 약들을 계속 복용하여 이렇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이런 작업은 마왕의 부하들이나 마왕과 동조했던.
혹은 산적이나 도적 같은 놈들에게만 했던 자들.
혹은 연금술사 길드를 통한 자원자들에게만해서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이 업적도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쁜 일이다.
이걸로 복귀의 길이 더 가까워진 것이니까.
“음… 저기. 현자.”
“응?”
“지금 하는 테스트는… 역병과 관련된 약이 아닌 것 같은데.”
날 지원하기 위해 개인 실험실로 찾아온 로텔로가 떨떠름하게 물었고, 난 고개를 끄덕였다. 연금술이나 약학에 대해 모른다면 속여넘기겠지만 그도 좀 아니까.
그리고 딱히 숨길 생각도 없다.
이미 업적은 땄는데 뭐.
“맞아. 지금 테스트 한 건 정신분열 치료제야.”
“그걸 왜?”
“문제라도 있나?”
“아니… 역병 치료에 집중해야 하는 것 아냐?”
“너무 역병 치료제만 만들다보면 나도 힘들다고. 가끔씩은 내 나름대로의 리프레시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걸 엘프에게 실험을 해?”
“뭐 어때. 죽은 것도 아니고 저들이 약의 부작용으로 맛이 간 것도 아니잖아.”
물론 중간과정은 꽤나 고통스러웠고, 적어도 몇달 정도는 푹 쉬어야겠지만.
그래도 그정도는 엘프들도 이해해줘야 하지 않을까?
“으으음… 나중에 문제가 생길지도 모르겠군.”
“이걸 문제삼아 날 공격하겠다고? 에이~ 설마. 양심이 있으면 그러진 않겠지.”
물론 문제삼아도 상관없다.
싸우면 그만이니까.
치료제를 개발하는 와중에도 역병은 꾸준히 엘프의 숲을 잠식하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엘프들의 세력과 힘이 약해지고 있는데다가 엘프의 숲이 통제되며 다른 종족들의 힘이 강해지고 있었다.
또한 역병이 완전히 치료된다고 하더라도 당분간 엘프들이 과거처럼 대륙에 강력한 힘을 보이는 일은 없을거다.
그 후유증, 그리고 역병으로 인해 잃은 것들을 되돌리느라 바쁠거다.
그리고 그게 끝날 때 쯤이면 나도 모든 업적을 달성하거나, 거의 마지막 단계일 것이다.
내가 생각없이 이 짓을 한게 아니란 말이지.
그때까진 열심히 쌓아 둔 내 인간관계가 엘프들을 견제해줄거다.
“으음…”
“자. 이정도면 성력을 보유한 엘프들도 치료할 수 있을거야.”
테스트를 하는 와중에도 틈틈히 정리한 조합식을 내밀었다. 그걸 받은 로텔로는 내용을 읽어 본 후 나갔고, 잠시 후 들어 온 베로니카는 실험 대상자가 된 엘프들을 둘러보았다.
“현자. 엘프들 중에 또 널 공격하려는 엘프들을 잡아냈어.”
“오. 그래?”
“응. 이번에는 격리소에 있는 엘프들을 선동한 자들이더라고. 전통주의자들이야.”
인간인 내가 치료제를 만들어서 엘프들에게 투약하고, 그들이 치료되는 모습은 분명 보여줬다.
이 과정에서 역병에 시달리던 대다수의 엘프들은 환영했지만 전통주의자들은 연금술사의. 특히 인간과 엘프, 거기에 가끔씩 드워프까지 포함된 연금술사들이 만든 약을 거절했었다.
물론 그들의 동의 따위는 필요 없어서 강제로 투약하긴 했지만 그게 꽤나 거슬렸던 모양이다.
그 결과 치료를 주도하는 나와 연구자들을 모함하는 이들은 날이 갈 수록 늘어만 갔다.
물론 덕분에 ‘타의적 자원자’를 얻는 일이 꽤나 쉬워졌다.
참 감사한 일이지.
“은혜도 모르는 자들 같으니라고.”
베로니카는 짧게 혀를 차며 중얼거렸다.
그녀는 얼마 전에 내 면전에서 날 욕했던 엘프 중년인 하나를 내려다보았다.
다중 정신 분열 및 불안증과 신체마비제를 만드는데 큰 도움을 줬고, 지금은 해독 후 휴식기에 있느라 정신을 못차리고 있는 엘프다.
눈을 가늘게 뜨던 베로니카는 허리에 있는 메이스로 손을 가져갔다. 당장이라도 그의 머리를 부숴버리고 싶은 듯 손가락을 까딱거리는 그녀를 난 가볍게 막아냈다.
기껏 안죽이며 실험했는데 여기서 저 작자를 죽이면 곤란하지.
“난 괜찮아.”
“하지만.”
“정말 괜찮아.”
내게 필요한 일은 이제 끝났으니까.
남은 것은 완성된 치료제를 양산하여 엘프의 숲 엘프들에게 투여하는 것 뿐이다.
즉, 더 이상 내게 엘프의 숲에서 볼 일은 없다는 얘기다.
“넌 참… 속도 좋다.”
“그게 내 매력이잖아?”
난 한쪽 눈을 깜빡였고, 날 멍하니 보던 베로니카는 피식 웃었다.
“다른 종족들에게서 불만이 솟구치고 있어. 다들 이 기회를 살리고 싶은 것 같아. 그나마 네가 이러니까 다들 참고 있지만… 계속 이런 식이면 조만간 폭발할지도 모르겠네.”
“그래?”
“어제 수인족과 드워프들이 탈출하려는 엘프들과 싸워 서로 부상을 입었다더라.”
덕분에 사제들이 할 일이 생겼다며 말해주는 베로니카와 개인 실험실에서 나왔다.
바깥은 이미 환자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
역병 치료제를 투여받는 엘프들.
부상을 입은 이들을 치료하는 사제들.
서로를 향해 으르렁거리는 다른 종족들까지.
각양각색의 종족들이 모여서 자기들 할 일만 하는 것을 보던 나는 웃었다.
“어차피 역병 문제만 끝나면 종족간 문제는 알아서들 할 일이지. 전쟁을 하든, 아니면 엘프들이 굽히든. 내 생각에 굽힐 것 같다만….”
“다만?”
“싸운다고 하더라도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야.”
“…신기하네. 난 네가 어떻게든 엘프들을 구하려고 할 줄 알았는데.”
“내가? 왜?”
난 베로니카를 바라보았고 그녀는 빙긋 웃었다.
“넌 착한 사람이니까.”
글쎄. 사람 잘못 봤다.
난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니다.
“현우야!”
베로니카와 눈이 마주친 채 잠시 서로를 응시하고 있을 때 클레어의 외침이 들렸다. 꽤나 다급하게 달려 온 그녀는 내 앞에서 작게 숨을 헐떡이다가 말했다.
“성야가 깨어났어!”
“아. 그래? 그럼 가봐야겠네. 베로니카. 뒤는 좀 부탁할게.”
난 베로니카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여주고 몸을 돌렸다.
성야가 깨어났다라. 그럼 이제 역병 치료도 마무리 단계로 접어들겠군.
역병 치료소에 들어가자 익숙한 얼굴이 날 반겼다. 역병이 낫고 난 후 로텔로와 함께 내 조수처럼 움직이던 루드히였다.
그런 그녀의 앞에 서 있는 것은… 응? 에반젤린? 쟤는 왜 저러고 있어?
내가 들어 온 것도 모른 채 꽤나 유사한 생김새를 지닌 두 엘프는 서로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분위기는 확연하게 무거웠다.
어딘지 모르게 자신만만해보이는 루드히, 그리고 그녀 앞에서 주눅든 것처럼 어깨를 늘어트리고 있는 에반젤린.
그들을 보던 나는 가볍게 옆의 벽을 톡 쳤고, 그 소리에 놀란 둘은 내 쪽을 보았다.
“현자님.”
“…현우야.”
“뭐하는거야? 루드히. 성야가 깨어났다고 들었는데. 준비 안해?”
“아. 금방 할게요.”
루드히는 그제서야 움직였다. 그녀가 복도를 타고 가버리자 난 에반젤린에게 눈을 돌렸다. 나를 쳐다보지도 못한 채 에반젤린은 우물쭈물거리다가 살짝 한걸음 나섰다.
“…저, 현, 현우야.”
“왜?”
“…엘프를… 왜 구원해 준거야? 나. 나 때문에 엘프를 싫어하게 되었을텐데… 그리고 루드히를 구해 준 것도…”
“뭔가 오해를 하는 모양인데 그 일과 너는 아무런 관련이 없어.”
“…어?”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고, 그 누군가가 나여야 했을 뿐이니까.”
“아… 넌… 넌 정말 여전하구나…”
에반젤린의 헬쑥한 얼굴에 그림자가 깃들었다. 내 대답이 성에 차지 않은 것일까? 모르겠다.
딱히 알 필요도 없어보이고.
“상태가 좀 안좋아보이는데. 가서 영양제나 좀 먹지 그래? 이번에 내가 레시피를 만든 영양제가 좋으니까 그거 먹어둬. 로텔로에게 말하면 줄거야.”
“…응.”
살짝 고개를 끄덕인 에반젤린은 앞으로 나서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했다.
그저 자리에 우두커니 선 채 날 보기만 할 뿐.
난 그녀를 지나쳐 지나가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망부석마냥 선 채 날 보던 에반젤린은 눈이 마주치자 흠칫, 어깨를 떨었다.
“내가 내 할 일을 한 것 처럼, 너도 네 할 일을 해야 되지 않을까?”
“내… 할 일…?”
“그래.”
“난… 뭘 해야하지?”
에반젤린은 힘없이 말했고, 난 그녀에게 현실을 말해주었다.
“그건 이제 네가 찾아야지.”
난 굳어있는 에반젤린을 둔 채 안으로 들어갔다.
안쪽에는 로텔로와 더불어 몇몇 연금술사들이 성야의 상태를 살피고 있었다.
“아. 현자님. 오셨어요?”
“지금 성야님의 상태가 좀…”
“좀 뭐?”
“성력이 꽤나 약해지셨어요. 그리고 체력도. 역병 자체의 영향력은 꽤 줄어들었지만요.”
약을 꾸준히 쓰다보니 저항능력이 줄어들었단다. 뭐, 이건 어쩔 수 없는거지. 그때 들어 온 루드히가 이번에 새로 만든 약을 내밀었고, 난 그것을 투여한 후 상태를 살폈다.
“성녀님. 좀 어떻습니까?”
“으음… 제 안에 있는 죽음의 기운이 조금씩 사라지는 것이 느껴져요.”
역병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죽음의 기운이 사라진다. 그 말은 역병이 치료되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었다.
“성력이 회복될 것 같습니까?”
“잠깐만요…”
디바인마크를 손에 든 채 성야는 기도를 시작했다. 성녀 치고는 꽤나 미약한 성력이 그녀에게 깃들고 얼마 후. 눈을 뜬 그녀는 고개를 주억거렸다.
“하지만 시간이 많이 걸릴 것 같네요.”
변종 역병의 여파로 보유한 성력을 꽤나 잃어버렸다. 확인된 결과 스킬들의 레벨도 꽤나 내려갔다고 한다.
하지만 성야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보였다. 성녀에서 일반 사제 수준의 성력만 지니게 되었는데도 희망을 가진다라…
그건 좀 마음에 드네.
포기하지 않는 거는.
그리고, 붙잡지 않는 거는
“그리고 이렇게 고생하셨는데 거기까지 요구하는 것은… 좀 염치없어서.”
헤죽, 훈훈한 미소를 지은 그녀에게 난 마주 웃었다. 참 엘프답지 않은 여자다.
“이정도 성력이면 성녀로 남지 못하게 될겁니다.”
“그러겠죠. 하지만… 괜찮아요.”
“그렇습니까? 다행이네요.”
성력을 잃은 것에 대한 충격도 없고, 다른 사제들 같은 경우에는 성력을 잃은 것에 절망하는 작자들도 많았는데.
기껏 살려놨더니 자기 성력 어디갔냐고 징징거릴 때는 열받아서 한대 때려주고 싶었다.
물론 그래서 정신 잃을 때까지 줘 패고 개인 실험실로 보내긴 했지만.
“수휘 부족장님께서 이 결과를 보고 화를 내지 않으실까 걱정이네.”
언제 들어왔는지 내 옆으로 온 루드히가 한마디 내뱉었다. 그리고 힐끔 날 보더니 작은 어조로 말을 이었다.
“저도 엘프지만… 엘프들은 물에 빠진 걸 구해놓으면 보따리 내놓으라는 자들이 많네요.”
잠시 말을 멈춘 루드히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뭘 그렇게 보냐?
“…누구씨처럼.”
그 누구씨가 내가 아는 누구씨는 아니겠지? 설마 아까 에반젤린과 분위기가 안좋았던 것이 이것 때문인가?
내가 그녀와 시선을 마주치고 있는 사이 성야는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분이 아니세요.”
“꼭 좀 그랬으면 좋겠네.”
제정신이면 그런 짓은 안하겠지.
아무튼 성야를 치료했는데도 업적이 뜨지 않는다는 것은 남은 이들 모두를 치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난 성야를 좀 더 쉬게 한 후 밖으로 나왔다.
아무튼 이쪽에 볼 일은 다 봤으니 역병 치료 끝나면 떠나야지. 이제 얼마나 남았으려나?
“루드히. 남은 환자들은 얼마나 되냐?”
“글쎄요… 이제 한 오십여명 정도? 역병 환자는 그정도고… 나머지는.”
나머지는 뭐?
그때 바깥 쪽에서 거친 외침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으아악! 내 팔!”
“아아악! 이 빌어먹을 엘프 새끼들!!”
“끄아악!! 건방진 난쟁이가! 아아악!”
또 종족끼리 다투다가 다쳐서 이곳에 실려오는 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힐끔 본 루드히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종족간 다툼으로 인해 생기는 부상자들 뿐이네요.”
“음…”
이건 알아서들 하겠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좋은 밤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