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63
EP.63 다시 할 수 있을까 – 2
원래 교황이 이런 일의 흑막인 것은 국룰인 법이라 난 딱히 놀라지 않았지만 클레어나 레벤티아는 눈을 크게 뜨고 날 보았다.
하긴. 얘들로서는 의문일거다. 교황이 뭐가 아쉬워서 마왕을 부활시키고자 하려는지.
“교황님이… 왜?”
“위기는 신을 찾게 하거든.”
마왕이라는 강력한 적이 존재하고, 사람들의 삶을 위협한다. 마왕이라는 존재는 인간의 순수한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존재. 그런만큼 사람들은 마왕을 적대하며 신을 찾게 된다.
하지만 그 마왕이 용사에게 쓰러지고 말았고, 대륙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 평화 속에서 사람들은 교회에 의지하던 삶을 변화시키려고 하고 있었다.
그것이 교황 입장에서는 꽤나 거슬렸을 것이다.
“큰 적은 사람들을 결집시키지. 교황은 그것을 이용해서 교회의 세력을 넓히려고 하는 걸거야.”
“…그 분이 그럴 분은 아닌 것 같았는데…”
교회의 의뢰를 수행하며 교황과 만났었던 기억을 떠올리기라도 하는 것인지, 클레어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하지만 타우가 그리 말했고, 게임에서도 교황이 검은 반역자에 속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으니 딱히 이상할 것은 없었다.
“뭐, 아니면 말고. 그러니까 에반젤린에게 맡기는 거 아냐. 연판장이 없다면 그냥 나와.”
근데 아마 있을거다.
내가 게임에서 봤던 그 비밀공간에.
에반젤린은 붕붕 연신 크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괜찮겠어?”
“가호를 쓰면 되니까… 괜찮아!”
에반젤린은 자신의 손등을 보였다. 용사 파티원으로서 신에게 받은 가호.
은밀한 수호자라는 가호는 가호 부여자에게 강력한 은신스킬을 제공한다. 아무리 교황이라고 하더라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의.
그런만큼 에반젤린이라면 충분히 교황의 처소에서 검은 반역자에 대한 정보를 캐올 수 있으리라.
상대가 교황만 아니었다면 타우 상대할 때처럼 줘 패서 스스로 바치게 하는 건데.
“그럼 현우 너는…?”
레벤티아의 질문에 난 에반젤린의 등을 툭 쳤다.
은밀한 수호자가 강력한 은신스킬이긴 하지만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건 은신일 뿐 형태 자체를 없애는 건 아니니까.
길 자체가 막혀 있다면 그걸 뚫기 위해 물리력이든 마법력이든 써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은신을 들키겠지.
물론 루트를 잘 타면 막혀 있을리는 없겠지만 최악의 경우 에반젤린이 실수해 막힌 곳에서 탈출하다 걸릴 수도 있으니 만약을 대비해서 나도 그 도시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어야 한다.
“저, 저기… 어. 음… 그… 나, 날 위해서?”
에반젤린은 날 간절하게 올려다보며 물었다. 얘는 또 뭔 소리래? 근데 생각해보니 그렇게 들릴 수도 있겠다 싶어서 난 칼같이 차단했다.
“어? 아니.”
“…..”
임무 성공을 위해서니 오해하지 말았으면 하네.
“그… 현우야. 만약 문제가 생기면. 내가 그쪽으로 가도 될까?”
클레어는 품에서 작은 목걸이 하나를 꺼냈다. 예전에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던 도중에 마왕의 부하 중 하나를 처치하고 얻은 목걸이었다. 한쌍의 목걸이는 장착자의 체력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다른 사람에게 신호를 보내준다.
만약의 경우 포탈을 이용해서 지원을 하겠다는 제안에 난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쓸 일은 없지만 저 목걸이가 보너스 스탯도 올려주니 갖고 있으면 도움이 되겠지.
물론 위치 추적 기능이 있는 개목걸이와 같은지라 계속 갖고 있을 생각은 없지만.
“아무튼 일 끝나면 보자고.”
클레어가 열어 준 포탈을 이용해서 교회의 본단에 도착했다. 몇차례 왔던 곳이라 딱히 큰 감흥이 없었다.
“…여기. 오래간만… 이네.”
하지만 에반젤린은 아니었나보다. 그녀는 교회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보니 에반젤린과 둘이 교회에 온 적이 있었지. 뭐, 그건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니 신경 쓸 필요는 없겠다.
“그렇지. 자. 그럼 바로 일 얘기부터 시작해볼까?”
“…응.”
난 에반젤린을 데리고 교회 본부 근처의 여관으로 향했다. 그곳의 가장 안쪽 조용한 방을 빌려 들어가자마자 난 가방에서 종이 하나를 꺼냈다.
새하얀 백지였다.
에반젤린은 고개를 갸웃거리는 사이 나는 자와 깃펜, 잉크를 꺼내 바로 그림을 그렸다.
“어? 어어…?”
선과 선, 면과 면이 만나며 지도가 그려진다. 에반젤린의 눈은 점점 커졌고, 축 처져 있던 귀가 흥분으로 솟구친다.
그리고 그럴 수록 내 그림은 점점 완성되어가고 있었다.
“이건…?”
“교회 본관의 지도야. 네가 잠입해야 할 루트는…”
“너… 이걸 다 외우고 있었어?”
“어? 이정도야 기본이지.”
“…역시… 넌… 대단하네.”
마왕처치 여정때도 쓸 수는 있었지만 이런 미로 돌 때는 대부분 내가 같이 움직였다.
그러니 보여 줄 기회가 없었을 뿐.
하지만 에반젤린은 연신 감탄하며 반짝거리는 눈으로 날 쳐다보기 시작했다. 거 되게 부담스럽네.
“은밀한 수호자의 스킬이 아무리 은신 계열에서 최상급이라지만… 아예 막혀 있는 길을 뚫기는 어려울거야. 그리고 교황의 처소는 지하 3층에 있으니까 바깥에서 잠입하기도 힘들고.”
그러니 교대 시간, 혹은 교인들만이 이동하는 루트를 이용해야 한다. 난 붉은색 잉크로 그녀가 지나가야 하는 길을 말해주었다.
“여기는 청소를 위한 수녀가 이동하는 길이야. 대걸레가 놓여져 있거나, 혹은 빨래 수거용 트레이가 있으면 문이 열린다는거니까. 네가 자물쇠 따기 스킬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건 할 줄 모르잖아?”
“…응. 그런 건. 대부분 너와 함께 하면서 네가 했으니까.”
“그러니까 좀 배워둘 것이지.”
자물쇠 따기가 꼭 도둑만의 전용스킬은 아니다. 궁수나 사냥꾼들도 덫 설치와 병행해서 쓸 수 있는거라 예전에 에반젤린에게 배워두라고 했었지만 그녀는 그저 콧방귀만 꼈었다.
아까운 일이다. 은밀한 수호자라는 은신 스킬을 제대로 활용하기에 딱 맞는게 그건데.
“미, 미안해. 미안…”
이제와서 그런 얘기해봤자 무슨 의미가 있나. 중요한 것은 지금이다.
“그리고 여기 계단은 성법에 의한 함정이 있어. 은밀한 수호자라고 하더라도 함정 회피가 무조건 성공하지 않는다는 정도는 알지?”
끄덕. 에반젤린은 내 목소리를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이건 훌륭하군.
“그리고 여기는…”
난 지도에 표시하며 그녀에게 루트를 설명했다. 그렇게 몇시간이 지났을까. 교황의 처소까지 가는 모든 방법에 대한 설명을 마친 나는 에반젤린을 보았다.
“외웠어?”
“…응.”
“말해봐.”
난 지도를 치우고 새로운 종이를 깔았다. 확실히 엘프가 머리가 좋다는 것은 사실이었다. 어설프긴 하지만 그녀는 제대로 지도를 그려가며 내가 가르쳐 준 루트를 정확하게 파악했으니까.
이정도면 됐다.
“그럼 오늘 밤 잠입하도록 하자.”
“…응. 그, 그런데. 시간이… 좀 남네…”
“남지.”
“뭐… 할거야?”
“나?”
난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보 수집.”
“…같이 가도… 될까?”
에반젤린은 버림받는다 생각한 강아지마냥 날 올려다보며 간절히 요청했다. 그 모습에 옛날 일이 떠올랐다.
– 하! 뭐야? 이런 거 혼자 못해? 역시 못 쓰겠네~ 좋아. 이 훌륭한 엘프 에반젤린님께서 인간님의 간절한 청을 받아서 같이 가주…. 울 줄 알았지? 흥. 내가 거길 왜 가? 제발 가주길 원한다면 무릎이라도 꿇고 부탁해보지 그래? 아니, 애초에 인간의 부탁 따위를 이 고귀한 엘프님이 말 몇마디로 들어준다는게 이상하지 않아? 좀 더 간절하게 부탁해보라고~!
에반젤린의 은밀한 수호자를 써야 쉽게 업적을 달성할 수 있을 때, 그녀에게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 그때마다 에반젤린은 날 무시하고 놀리면서 갖고 놀다가 결국에는 안가준 적도 있었다.
그때는 마음의 벽이 있을 때라 딱히 상처받지는 않았고, 날 괴롭히면서 에반젤린은 꽤나 기뻐하며 스트레스를 풀었었다.
서로에게 참 좋은 일이었다.
“옛날 일 생각나네.”
“히끅! 그, 그… 그, 그때는. 저기. 미. 미아안… 잘못… 히익… 했어어…”
그러더니 단검을 꺼내 귀에 가져가려 한다. 기껏 회복된 긴 귀를 잘라내려는 자해를 하려하자 난 그녀의 팔목을 잡았다.
좀 있으면 일해야 하는데 사서 부상을 입으려는 건 뭐하는 짓이냐?
“아아… 미안…해애…”
“같이 간다라… 흠…”
에반젤린을 데리고 갔을 때의 장점과 단점을 생각해 본 후 고개를 끄덕였다.
“안돼. 여기 얌전히 있어.”
엘프가 끼어 있다는 것만으로 다른 종족은 꺼려하는 경우가 많거든.
그건 정보를 얻을 때 꽤나 큰 리스크다.
난 로브를 벗어 걸쳐둔 후 갑옷만 입은 채 문 쪽으로 향했다.
“먹고 싶은 것 있으면 시켜서 먹고, 어디 나가지 마라.”
끄덕. 에반젤린은 아쉬워하며 날 보다가 걸어 놓은 로브를 힐끔거렸다. 내가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한 것일까? 조금이나마 그녀의 표정이 풀어졌지만 지금 그녀를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여관에서 나온 나는 게임의 기억을 떠올렸다. 교황이 검은 반역자와 속하게 될 경우 여기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은 단 한 곳 뿐이었다.
그곳이 바로 내가 지금 가야하는 곳.
바로 마법사 길드였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빵집이 있는 건물의 3층. 옥상에 위치한 작은 건물에 들어가자 검은색 로브를 입은 노인 한명과…
“어?”
“어라?”
검은색 수녀복을 입은 은발의 미녀. 베로니카가 서 있었다. 쟤는 왜 또 여기 와 있는거지?
“넌 왜 여기 있어?”
“나? 나야… 아니, 그보다 너는?”
베로니카는 이야기하던 검은 로브의 마법사에게 인사한 후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하는 듯 눈을 감고 있다가 도톰한 입술을 벌렸다.
“교회 내부의 분위기가 좀 이상해서. 음… 전에 클레어가 마인을 잡으려고 했었잖아?”
“어. 그렇지?”
“나도 좀 알아봤는데… 클레어 외에도 마인 처치 의뢰들이 꽤 있었어.”
“흠.”
“교황님 말고 다른 추기경이나 사제들의 의뢰들이 많길래 이상해서 좀 찾아봤거든? 근데 그건 대부분 교황님의 파벌 사제들이 내놓은 의뢰더라고.”
“그 말은…”
“어쩌면, 그 의뢰들을 모두 교황님께서 의뢰한 것일지도 몰라.”
“오호. 그래서?”
베로니카는 망설였다. 아무리 그래도 추기경이 교황을 의심하는 듯한 발언을 하기는 힘든가보다.
하지만 그녀는 무거운 한숨을 내쉰 후 자신이 조사한 것을 설명했다.
“그… 교회의 아주 오래된 기록 중에 대륙에 있는 마인들의 생명은 거대한 악을 부르는 트리거가 될 수 있다는 내용과 더불어 수많은 생명을 이용하면 악을 부활시킬 수 있다는 내용이 있어.”
“그래서?”
“워낙 희귀한 기록이라 아는 사람이 극히 드문 정보거든. 또 교회에서도 접근권한이 상당히 높은 기록이라… 추기경 이상이 아니면 알 수 있는 정보도 아니고.”
베로니카는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그래서 혹시나 싶어서 마법사 길드에 조사하러 왔거든.”
그리고, 그 결과 그것이 진실임을 알게 되었단다.
거기에 한가지 더.
“나 말고 최근에 그것에 대한 조사를 하러 온 사람이 있다더라. 그게 누구냐면…”
게임의 이벤트와 비슷하게 흘러가는군. 교황이 검은 반역자에 속해 있을 때 분명 그 이름이었지.
“엘카 초트란?”
“역시 너답네. 모르는게 없구나?”
엘카 초트란.
그건, 교황이 몰래 바깥에 나갔을 때 쓰는 가짜 신분.
교회의 특급 기밀이었다.
“그 기록은 어지간한 사제들이나 역사학자도 잘 알지 못하는거야. 마법사 길드에서도 거의 폐기되다시피한 과거의 기록이라 전승을 전공으로 하는 마법사 중에서도 몇명만 아는 내용이고.”
그런 희귀한 정보를 교황이 직접 마법사 길드에 자문까지 청하러 온 것이 의문이었다.
검은 반역자.
마왕 부활.
이 두가지 키워드와 겹치니 더욱 의심이 간다.
아직 확실한 것은 하나도 없기에 뭐라 할 수 없지만, 베로니카는 이단심문관 특유의 감을 이용해 조사를 하고 있었단다.
감 좋네.
“그런데 넌 그런 기록은 왜 찾았냐?”
역사 기록 사관도 아니고 이단심문관이 그런 기록 찾을 일은 없지 않나?
마치 뭔가 다른 걸 찾다가 얻어걸린 것 같단 말이지.
내 질문에 베로니카는 딴청을 피우며 휘파람을 불었다.
“그, 그러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오늘 하루도 빠르게 흘러갔네요 왜 휴일은 이리 빠른지…
후.
그럼 내일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