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70
EP.70 누구에게 – 1
칼트렌드 영지는 왕국 서부에 위치한 영지로 비옥한 토지에 넓은 포도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영지민 중 대부분은 영주의 소유인 포도밭이나, 그곳에서 나는 포도를 이용해 와인을 만드는 양조장에서 일한다.
칼트렌드 영지의 특산품인 와인 ‘칼트렌드’는 인간종 뿐만 아니라 엘프, 드워프, 수인, 리자드맨, 그 외 다른 종족들에게도 선호되는 고품질의 와인으로 손꼽히기에, 칼트렌드 영지는 왕국의 다른 영지들보다 왕가의 영향력을 적게 받는다.
어쨌든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예산이니까.
그런 칼트렌드 영지에도 마왕의 여파는 당연히 끼쳤었다.
하지만 오랫동안 많은 부를 축적한 곳이기에 용병이나 모험가를 다수 고용할 수 있었고, 그들은 영지를 수호하며 피난민들을 흡수했다.
그리고 지금.
마왕이 쓰러지고 마물이 패배한 이후 칼트렌드 영지는 왕국의 수도에 버금가는 거대한 도시가 되어 있었다.
막대한 부, 그리고 사람.
거기에 그들을 지킬 정도의 무력.
이것들이 모였는데 영지가 어떻게 발전하지 않을 수 있겠나.
마물들로 인해 빼앗겼던 농지를 되찾고, 그곳을 개간하며 일자리를 찾아 오는 이들을 흡수하는 것만으로도 도시는 점점 크기를 불려나가고 있었다.
“확실히 전보다 커졌네.”
메인 스토리 10장의 배경이었던 칼트렌드 영지에 도착한 내 소감은 한마디로 끝낼 수 있었다.
은은한 포도향이 감싸고 있는 도시는 예전에 내가 봤을 때보다 훨씬 커져 있었다. 길은 넓어졌고, 영지민들을 수용하기 위한 주거지대 역시 확장되었으며 외성에 있던 농지 또한 더 넓어졌다.
사람들의 생활기반구역 역시 두배는 더 증가한데다가 영주가 새로운 저택이라도 만들고 있는 모양인지 기존 영주의 저택 옆에 거대한 공사구역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난 영지에서 가장 높은 건물의 지붕에 앉은 채 영지의 전경을 둘러보며 한곳에 집중했다.
영주의 저택 옆에 있는 공사장.
게임에서는 저기에 던전이 있었다.
그곳에 검은 반역자의 본거지가 있으며, 보스는 칼트렌드 영주인 브론즈 칼트렌드였었지.
“흠…”
혼자 가볼까? 아니면 여기 널려 있을 모험가 애들을 꼬셔봐?
클레어와 레벤티아를 수도로 보냈으니, 라클이 생각이 있다면 그들에게 지원을 붙여줬을 거다.
그럼 외부는 백합기사단원들이 맡아 줄 것이고… 클레어 쪽에서 다른 쪽을 해결한다면…?
머리 속으로 빠르게 공략법을 떠올리며 구상하던 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골목 쪽에서 아는 얼굴이 보였다.
“…어? 쟤가 왜 여기 있어.”
여기서 쟤의 얼굴을 보는 것만큼은 나도 놀랄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세실?”
공왕 세실이 왕국에 있었기 때문에.
나름대로 위장을 한 듯 싶지만 날 속일 수는 없었다.
마법사가 아닌 학자 차림으로 호위 몇명과 함께 거리를 걷고 있는 그녀는 호위들에게 무언가 지시하며 이곳저곳에 손짓하고 있었다.
쟤 지금 팔자 좋게 쇼핑하고 있는건가?
물론 칼트렌드 영지가 물류가 모이고 사람이 많아 물건 살 것들이 많긴 하다면 공왕이 뭐가 아쉬워서 직접 와서 쇼핑을 해?
뭔가 있군.
난 바로 뛰어내려 그녀에게 다가갔다.
“어이! 거기!”
“감히 누구에게 접근하는 것이냐!”
내가 말을 걸려 하자 호위, 아니 정확하게 말한다면 공국의 기사로 보이는 여인이 내 팔을 잡아챘다. 하지만 이런 거에 막힐 정도로 내가 약한 건 아니라서.
난 그녀의 손을 풀어낸 후 가볍게 여기사를 밀어냈다. 내 대응 때문일까? 호위로 위장한 다른 기사들은 바로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됐어. 또 내 미모에 반해 접근…”
이런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세실은 안경을 쓱 밀어올리며 귀찮다는 듯 뒤돌아보다가 딱딱히 굳었다. 그야 그렇겠지.
난 변장따위 하지 않았으니까.
“…잠깐 따라와.”
확실히 사람들의 눈이 많으니까. 신분을 숨긴 채 왔다면 여기서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을거다.
세실은 날 데리고 자기가 머물고 있는 듯한 고급 여관으로 데리고 갔다.
역시 돈도 많구만. 비싼데서도 머무네.
“네가 왜 여기 있어?”
“내가 묻고 싶은 말이다. 넌 왜 여기 있냐?”
지금 팔자 좋게 돌아다닐 때가 아닐텐데?
공국에서 자길 죽이려 하는 세력도 있는 판국에 말야.
내가 어이없어하자 세실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언제적 얘기를 하는거야?”
“오… 그걸 벌써 끝냈다고?”
아무리 그래도 공왕의 암살 작전이다. 그걸 조사해서 벌써 뒷정리까지 하고 공국 밖으로 나올 정도라니.
내가 감탄하자 세실은 우쭐해하며 손등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오호호홋! 내 능력을 봤어? 어때? 이정도면 네가 모실만한 주인으로 충분하지 않아?”
“충분하지 않아.”
“이런 씨…”
“애초에 그런 거 잘한다고 내가 뭐 어화둥둥 잘한다 잘한다 해줄 줄 알았으면 오산이지.”
“쯧. 아무튼. 날 공격한 놈들은 삼대를 멸해줬어. 그리고 뒤를 캐봤는데. 그들을 지원한 자가 여기 있다더라고. 브론즈 칼트렌드. 그가 날 죽이는데 앞장섰다네? 그리고… 그자가 바로 검은 반역자의 수장이라더라.”
“잘도 조사했구만. 근데 왜 병력이 저거 밖에 없냐?”
얘가 클레어처럼 포탈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말야.
“저들은 일부에 불과해. 나머지는 상인이나 인부로 위장해서 지금 대기하고 있어.”
분할해서 이곳으로 보냈다는 건가? 확실히 들키지는 않을 방법이다. 근데 공국의 기사단이 왕국에 이렇게 몰래 잠입해도 되는 건가?
“안걸리면 그만 아니겠어?”
한쪽 눈을 깜빡이며 방긋 웃는 그녀를 향해 난 마주 웃어줬다.
“이를 어쩌나? 나한테 걸렸는데.”
“어머? 너. 여왕의 부하였어? 이거 의외네~ 대륙에 위상이 자자하신 현자님이 왕가의 신하일 줄은 몰랐는데 말야.”
“되도 않는 도발은 관둬. 딱히 알릴 생각은 없으니까.”
세실이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자기 일 끝나면 바로 돌아갈 것이 분명하다. 기사단 데리고 왔다고 해서 뭘 더하겠나.
기껏해야 분탕질 정도겠고 그정도는 왕국에서도 해결할 수 있을거다.
“근데 차라리 왕국에 정식으로 항의하는게 낫지 않아? 어차피 왕국 입장에서도…”
“무슨 소리. 현자. 당신은 당신 죽이려고 한 자를 다른 사람이 건들게 놔둬?”
“음. 그건 아니지.”
나도 날 건드린 놈들은 내 손으로 조져놔야 속이 편해지는 사람이다.
“나도 마찬가지야.”
자기 일은 자기가 하겠다는 건가? 참으로 훌륭한 자세이긴 하다만…
“그래도 날 방해하면 용서 못해.”
“누가 할 소리를… 그보다 현자. 당신도 검은 반역자 놈들을 잡으러 온 모양인데 차라리 협력하는 거 어때? 혼자서는 세상을 구할 수 없다고.”
“혼자? 누가 혼잔데.”
“혼자 아냐?”
물론 지금은 혼자다. 하지만 클레어와 레벤티아가 와 있을 거고 여왕이라면 추가 지원병력을 내줬겠지.
그리고…
“루실도 왔을거야.”
“호오. 공주님이 여길 왜 와?”
“이런 일을 처리하면서 점점 성장하는 거니까. 여왕이 생각이 있다면 이 기회를 놓치지는 않겠지.”
마왕 부활 저지는 잘만하면 마왕 처치 여정에 버금가는 명성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요새는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루실은 차기 여왕으로서는 임팩트가 부족하다.
그런만큼 이런 기회를 여왕은 놓치지는 않겠지.
하물며 이번 일에 나와 용사파티가 참가하는만큼 더 기회라 생각할거다.
“하지만… 괜찮을까? 용사파티와 루실 공주의 사이가 그리 좋을 것 같지는 않은데?”
“루실이 내 제자인 이상 클레어는 좋든 싫든 그녀를 보호하려고 할거야. 그리고…”
난 세실을 보다가 웃었다.
루실이 어디가서 당할 정도로 그렇게 만만하지는 않다.
누가 키웠는데.
“전하!”
그때 문을 두드리는 거친 소리가 들렸다. 세실이 문을 열어주자 들어 온 것은 아까 내 팔을 잡았던 여기사였다.
“지금 바깥으로 나와보십시오!”
“뭔데 그래?”
의아해하는 세실과 함께 밖으로 나온 나는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이거 일이 참 재밌게 흘러가고 있네.
“뭐… 야? 저거…?”
벌써 1페이즈를 끝냈단 말야?
공사장에서 검은 기둥이 하늘로 솟구치고 있었다. 그 이상현상에 세실은 어리둥절해하다가 내게 물었고, 난 게임에서 봤던 그 장면을 떠올렸다.
“마왕을 부활시키는 의식이지.”
“…뭐? 마왕이 부활할 수가 있어?”
“아니.”
어차피 조건을 못 채워서 저거 해봤자 마왕은 부활 못한다. 마왕 정도 되는 자의 부활을 일으키려면 역병 수준의 죽음이 퍼져야 한다.
하지만 공왕은 살아남았고 교황도 잡혀 검은 반역자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니 마왕은 죽었다 깨어나도 부활할 수 없다.
“그럼 저건 뭔데?”
“그냥 의식일 뿐이야. 별 거 아냐.”
“별 거 아닌 게 아닌 것 같은데…”
“저게 터진 걸 보니까 브론즈도 지금 똥줄이 타들어가고 있는 모양이네. 저건 거의 자폭이나 다름없는 수거든.”
“그런 걸 어떻게 아는건데?”
“내 소문 못 들었어? 나 현자야.”
그동안 꾸준히 해놓은 일이 있다보니 세실은 납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로 솟구친 검은 기둥 탓일까? 아까 전까지만해도 맑았던 하늘이 점점 먹구름에 감싸지고 있었다. 세실은 긴장한 채 지팡이를 들었다.
“…잠깐만. 이 기운은? 저 하늘…”
죽음의 기운이 점점 퍼져나가고 있었다. 칼트렌드 영지를 뒤덮은 검은 하늘이 만들어낸 죽음의 대지가 불러낼 것이 무엇인가.
그때 골목에서 각양각색의 복장으로 위장하고 있던 건장한 여인들이 달려온다.
“전하! 피하셔야 합니다! 지금 도시 곳곳에…”
“도망칠거야? 그래도 되고. 아니. 그냥 가라.”
“흥! 누가 도망쳐!! 전원 전투 준비!!”
“…예!”
그 말에 여기사들은 움찔하며 내 눈치를 살폈다. 왜 저래? 난 의문을 품었고, 그 의문은 여기사들의 시동어에 의해서 순식간에 풀리게 되었다.
“저! 지금 마법기사가 됩니다!”
시동어와 동시에 그녀들이 입고 있는 옷이 빛나며 사라졌고…
“와.”
비키니 갑옷 기사단이다!
여기 모인 모든 여기사들이 비키니 갑옷을 입고 있었다.
세상에 진짜 비키니 기사단이라니.
내 감탄과 시선에 민망해하던 여기사들은 있었지만, 그래도 상황이 상황이라 그런지 금방 냉정한 얼굴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향해 세실은 무척이나 뿌듯해하며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멋있지? 우리 공국 기사단의 새로운 갑옷이야.”
전부터 괜찮다고는 생각했는데 이정도일 줄이야!
“너 갑옷 볼 줄 아는구나?!”
“비키니 갑옷이야말로 최고의 갑옷이지. 효율, 성능. 패널티를 감수하더라도 모든 측면에서 가장 우수하지. 그야말로 갑옷의 왕이랄까? 그리고 미적인 측면에서도 그렇고.”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손을 내밀었고, 세실은 의아해하다 내 손을 맞잡았다.
“이제부터 우린 친구다!!”
멋을 아는 자야말로 친구가 될 자격이 충분하지.
“그, 그래. 뭐 친구 좋지. 그래서? 친구. 이제 어쩔 생각인데.”
“어쩌기는.”
-끄드득… 끄득…
이 세계에서 언데드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둘 중 하나다.
죽은 자가 부활하거나.
혹은 죽음에게서 기어나오거나.
지금 이곳에 자리잡고 있는 죽음은 자신에게 예속된 이를 풀어내고 있었다.
난 거리를 보았다. 검은 기둥이 만들어낸 어둠이 내리깔린 거리에서 죽음의 발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죽음의 하늘이 만들어낸 언데드들을 뚫고.”
밤하늘에 홀로 고고히 떠 있는 달빛처럼, 월광이 빛을 뿜었다.
난 월광을 지팡이로 변환시키고 어둠 속에서 걸어나오는 좀비들을 향해 겨눴다.
“저 기둥뿌리 뽑으러 가야지.”
-콰아아아앙!!
월광에서 쏘아진 빛이 좀비들을 휩쓴 순간. 세실은 공국 기사단원들에게 외쳤다.
“목표는 저 검은 기둥! 일직선으로 돌파한다!!”
내가 비키니 갑옷을 좋아하는 이유는 디자인 측면 외에도 다른 이유가 있었다.
바로 성능.
가격이 더럽게 비싸기는 하지만 게임 내에서 여캐들의 궁극 갑옷은 일단 비키니 아머다.
물론 노출증이 없으면 착용하는 것만으로 스트레스가 증가해 정신병에 걸릴 위험이 있긴 하지만. 그것을 감안해도 성능이 워낙 압도적이라.
움직이기도 좋은데다가 마법방어력이나 주술 방어력도 좋고, 추가적인 옵션들도 끝내준다.
봐라. 저렇게나 잘 싸우잖은가.
“빛이여! 이곳에 자리잡으라!!”
디바인마크를 들어올리자 성역이 발동되었고, 범위 내의 공국 기사들의 부상이 회복된다.
갑옷의 성능 덕분인지 회복 속도가 일반적인 갑옷을 입은 이들보다 훨씬 빠르다.
이 좋은 갑옷을 왜 다들 안입으려고 하는 걸까?
그와 동시에 언데드들이 약화되었고 기사들은 빠르게 그들의 머리를 부숴버렸다.
“이제 다 왔다!”
세실이 외쳤을 때, 난 몰려드는 언데드들로부터 저택을 지키는 이들을 보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 너희?”
“앗! 현자님!”
역시 보냈군.
백합기사단의 단원들이다. 그녀들은 나를 보며 반가워하다가 내 뒤에 있는 세실과 비키니 기사단을 보고 황당해하다 물었다.
“…저 치녀들은 뭡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오늘은 좀 늦었네요ㅠ 죄송합니다 감기기운 있어서 약먹고 깜빡 잠들어버려서…ㅠ
그럼 재밌게 보시고 내일 만나요!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