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79
EP.79 쉽지 않다니까 – 2
“자, 잠깐만. 가장 고통스러웠던 일이라니?”
당황한 것은 베로니카 뿐만이 아니었다. 뒤에서 충격받은 얼굴로 서 있는 레벤티아와 에반젤린 역시 다리가 떨리고 있었다.
하긴 그럴만 했다. 저 둘은 마왕과 싸운 경험이 있다.
그때 마왕과 대면하며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잘 알고 있었다.
즉, 저기 들어가면 그 경험을 또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니, 어쩌면…
“말했잖아. 쉽지 않을 거라고.”
게임에서도 이 시련을 파티로 가면 절반 이상은 여기서 리타이어 한다.
그런만큼 차라리 정신력이 가장 높은 캐릭터 하나만 보내 시련을 끝내는 것이 공략법 중 하나였다.
굳이 여럿이 고생할 필요는 없잖은가.
거기에 나에게는 마음의 벽이 있는만큼 피해도 최소화 할 수 있고.
“나 혼자 해도 괜찮으니까 너희들은 여기서 쉬고 있어.”
“하지만…!”
“시련에 도전해서 성공했을 시, 다른 도전자의 과거를 볼 수도 있어. 어쩌면 흑역사가 드러날지도 모르는데도?”
네명은 입을 다물었다. 그런 그들을 향해 난 웃었다.
“그럼 너는?”
“어?”
“내 눈 똑바로 바라보며 말해. 넌 정말 괜찮아?”
난 베로니카의 청록색 눈을 응시했다. 그 눈에 담겨 있는 감정은 불안과 걱정이었다.
“읏.”
“네가 눈 마주치라고 해놓고 피하면 어쩌자는거냐?”
“크흠. 아니 갑자기 그러니까…”
다시 시선을 마주했다. 베로니카의 예쁜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던 나는 바로 말했다.
“진짜 괜찮아.”
“현우 너… 지금 갖고 있는 것들 모두 정신 안정제 아냐…?”
레벤티아의 눈이 내 보유물품을 잡아챘다. 세실과 에반젤린의 눈이 내 장비 쪽으로 향했다. 물약을 끼워 넣을 수 있는 벨트, 그리고 로브의 고리에 있는 것들 모두 그녀의 말대로 정신안정제였다.
마음의 벽이 있다지만 만약은 대비해야 하는 법이니까.
“너… 처음부터 혼자 들어갈 생각이었던 거… 아냐? …내가 아는 너는… 만약 진짜 모두를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면…”
꿀꺽.
침을 한번 삼킨 레벤티아는 날 애절하게 바라보았다.
그녀가 말을 하려는 찰나.
베로니카는 내 손을 잡았다.
“맞아. 너라면 그 정신안정제를 나눠줬을 거라고…”
이래서 오래 알고 지낸 사람들이 무섭다는거다.
설마 이정도로 날 분석했을 줄이야.
“애초에 이 저주를 풀겠다고 한 건 나야. 그러니까 내가 하는 것이 당연하지.”
“아! 악마를 잡는 건 우, 우리 의뢰이기도 해!!”
거 참.
레벤티아와 에반젤린은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날 보고 있었다. 얘들이랑은 말이 안통하겠다. 난 바로 베로니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얘 역시 다른 애들과 별반 다를 바는 없었다.
“여럿이 가면 비효율적이야. 정신안정제가 아깝다.”
“그럼 정신안정제는 이걸 쓰자고.”
쟤는 왜 또 끼어들어?!
세실은 뒤에 있는 기사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받았다. 그녀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내가 만든 것과 비슷한 수준의 최상급 정신 안정제였다.
아니 저게 왜 여기서 나와?
“갑옷을 바꾼 이후로 기사들 중에 아직 적응을 못한 애들이 있거든. 걔들을 위한 거지. 연금술사 길드에 최상급 정신안정제가 나오는대로 구매하고 있어.”
세상에나.
이 비싼 걸 그렇게 쓴다고?
너 비키니 갑옷에 내 생각 이상으로 진심이었구나…?
세실에 대한 친밀감이 높아졌다.
“으, 으응. 혀, 현우 너 혼자 고생하게 둘 수는 없… 없어.”
이미 내 의견은 묵살되는 듯 보였다.
세실은 베로니카와 에반젤린, 레벤티아에게 정신안정제를 나눠주었고 자신의 것 역시 손에 들었다.
“…하. 진짜.”
이래서야 아무리 설득 스킬을 쓴다고 해봤자 먹히지 않을거다.
그럼 그냥 가야지. 뭐 어쩌겠나.
“근데 이거 최대인원이 5명이라 그 이상은 의미 없어.”
“…그렇다면.”
“어쨌든 내가 먼저 들어갈테니까 차례대로 들어오고. 버티다가 안되겠다 싶으면 그냥 나가. 이왕이면 안들어가는게 더 좋지만.”
괜히 버티다가 정신력이 완전히 바닥나버리면 그게 더 골치아프다.
난 일렁임 쪽으로 걸어가려 했고 내 로브의 후드 부분이잡히는 감각에 발걸음을 멈췄다.
“윽? 왜. 베로니카.”
“우리가 들어가서 네게 들어갈 부담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네가 가장 많은 부담을 받는거잖아? 그러니까 잠깐 몸 좀 낮춰봐.”
얜 또 뭘 하려고?
베로니카가 나에게 해 끼칠 일을 할 것 같진 않아 난 순순히 몸을 낮췄고.
-쪽.
길고 찰랑거리는 머리카락이 얼굴을 간지럽히며 이마에 따스하고 부드러운 것이 닿았다.
“앗?!”
“윽…”
“…하?”
그러거나 말거나 내 이마에 천천히 자기 이마를 가져간 그녀는 눈을 감은 채 담담히 기도문을 외웠다.
“신께서 가호하실지니. 그 앞에 적은 없을 것이며 그 앞에 놓인 길에 빛을 비추어…”
추기경급 사제의 가호였다. 그것도 꽤나 진심이 담긴.
전체적인 능력치가 상승하는 것을 느낀 나는 그녀가 손을 놓아주자 머리를 빼며 인상을 썼다.
“너 버티다가 힘들면 쓰지.”
베로니카가 쓴 것은 사제들만이 쓸 수 있는 고유스킬인 ‘성인의 가호’ 였다.
효과는 보유한 성력에 따른 전체적인 스탯의 상승과 정신력 강화.
하지만 1일 1회 제한이 있는만큼 네가 쓰는게 나을텐데?
“후후~”
베로니카는 싱글거리며 웃었다. 그리고 내 볼을 쓰다듬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들릴 정도로 말했다.
“나는 네가 지켜줄테니까.”
너무 자신만만해서 뭐라 말하지 못했다.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으…”
“후우우…”
레벤티아와 에반젤린은 울상을 짓고 있었지만 별다른 말은 꺼내지 않았다. 세실은 무표정으로 빤히 지켜보기만 할 뿐.
어쨌든 다들 준비가 된 듯 해 난 월광을 지팡이로 바꾼 후 일렁임을 가리켰다.
“그럼 진짜 간다.”
자. 시련 시작이다.
.
.
.
일렁임 속에 들어온지 얼마나 되었을까?
난 팔짱을 낀 채 눈 앞의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세계로 끌려와 무슨 일이 있어도 귀환하겠다는 것을 결심한 남자의 가장 심한 고통이 무엇인지, 난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세계의 동부에 위치한 버림받은 땅에서 있었던 일들.
그것이 그에게 가장 심한 고통이었다.
수많은 마물들과 독, 언데드, 악신의 신전이 넘쳐나는 저주받은 땅에서.
피투성이가 된 채 손을 덜덜 떨며, 남자는 팔에 주사를 놓고 축 늘어졌다.
촛점없는 눈이 하늘을 응시한다.
수많은 병과 상태이상을 거치며 초췌해진 얼굴은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익숙한 얼굴이었다.
그래.
나였다.
계속되는 스트레스를 버틸 수 없어 용사파티와 잠시 떨어져 마음의 벽을 얻기 위해 온 곳.
원래 이 세계에 떨어졌을 때 마지막에나 얻을 예정이었던 업적인 ‘종합 정신병원’을 얻을 때의 나다.
“으… 으으…”
이미 수십번이나 정신병을 얻었다가 해제하는 과정에서 나는 한계에 몰려 있었다.
눈은 충혈되었고 손 발에 힘은 없었으며 몸 여기저기에 전투와 자해로 인해 만들어진 상처들이 가득하다.
머리칼의 대부분은 독으로 인해 탈색된지 오래고 손톱 여기저기는 절규와 절망을 참아내느라 깨지거나 빠진 곳 투성이다.
실어증에 걸렸다가 해제된지 얼마 되지 않아 목소리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멈추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약을 주사한지 얼마 되지 않아 끔찍한 비명이 울려퍼진다. 정신이 약화된 것을 노리고 레이스들이 다가오는 것이다.
너의 몸을 가져가겠다.
너의 정신을 갉아먹어 우리가 새로운 육체를 얻겠다.
다가온 레이스들은 실실 웃다가 파장을 내보냈고, 약으로 정신력이 낮아진 나는 그대로 그 공격에 걸려들었다.
-이 수준 밖에 안되었나? 현자라면서 하는 짓은 광대와 다를 바 없군. 그리고 그런 저급한 농담과 수준 낮은 연주. 오히려 짜증날 뿐이니 관둬.
청백색 머리칼의 미녀가 싸늘하게 매도한다. 가볍게 내뱉는 매도 한마디가 마음을 갉아먹으며 스트레스를 끌어올린 순간 다른 환영이 나타났다.
-뭐하는거야?! 역시 인간은 글러먹었다니까? 바보! 머저리! 이런 요리를 누가 먹겠어? 그리고 내 활이 망가졌잖아! 시위를 당기는 느낌이 이상하다고!
자신을 내리깔며 비웃어 전투로 쌓인 스트레스를 푸는 엘프가 보였다.
그들 너머에서 자신이 맡아야 할 역할을 떠넘긴 채, 그저 안절부절 못하는 것 외에는 하지 못하는 주홍빛 머리칼 미녀는 그저 입술만 달싹거릴 뿐 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저들 모두 너의 적이다.
이곳에 너의 편은 없다.
이 세계에 너와 함께 해 줄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그렇게 발버둥 치는거지?
너의 노력은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
그러니 포기해.
이 모든 것을 포기하면 편해질거야.
어차피 너는 사랑받지 못해.
어차피 너는 인정받지 못해.
어차피 너는 살아남지 못해.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라는 긍정적인 소망을 부정하며 달콤한 유혹이 포기를 종용한다.
굳이 돌아갈 필요가 있어?
그 고생을 해가면서 저들과 함께해야 해?
이 세계 따위 엉망이 되든 말든 그게 무슨 상관이야?
혹시 알아? 그냥 죽으면 지구로 돌아갈 수 있을 줄?
무슨 일이 있어도 저들은 너를 인정하지 않을거야.
그러니까.
그 몸을 우리에게 줘.
레이스들의 절망의 유혹이 점점 짙어져간다.
약에 취한 채 멍하니 앉아 그들의 유혹을 듣던 나는 고개를 들었다.
클레어.
레벤티아.
에반젤린.
자신과 함께 마왕을 쓰러트려야 하는 용사파티의 일원들.
현실처럼 마음을 깍아내리는 매도와 무책임한 방치를 당연하다는 듯 이어나가는 환영들을 무기로 내세우며 날 몰아가는 레이스들에게.
“…오…”
– 그래… 그거야. 손을 내밀…
“…아!!”
– 퍼어어억.
주먹이 꽂혔다.
몽크의 스킬, ‘붕권’에 맞아 레이스들은 소멸되었지만, 이미 걸린 정신병 ‘환각증’은 내 고통의 원천을 유지하며 나를 매도하고 있었다.
눈 앞의 여기사와 엘프 궁수가 비웃는다.
고작해야 그정도에 불과했다고, 가호조차 받지 못한 놈이 꼴같잖은 짓을 한다며 얕본다.
용사는 여전히 그저 멀리서 지켜보기만 할 뿐.
“…하나… 했고.”
생생한 환각이 되려 만족스럽다.
이제 남은 것은 이 정신병을 치료하는 것 뿐이니까.
그나저나 환각증을 치료하기 위해서 뭐가 필요했지?
– 넌 그래봤자다. 이런 훈련조차 버티지 못하면서 무슨…! 하아. 됐다. 가서 이거나 수리하도록.
– 인간 따위가! 가서 밥이나 해와! 이번에도 그따위로 하면 용서 안할테니까!
– 현우야… 미, 미안해… 미안해… 내가 못나서…
저 끝에 있는 레이스 퀸을 잡아 얻을 수 있는 영혼의 자국을 가공해 섭취하는 것.
가공을 위한 기술은 있으니 걱정할 것은 없다.
– 도대체 여기서 뭐하는거야?! 너 때문에 여정이 늦춰지고 있잖아! 저런 사람들을 돕는 것 따위보다 마왕을 처치하는 여정이 더 급하다는 것도 몰라!?
– 하아. 그럴거면 그냥 포기하고 파티에서 나가 혼자 사는게 어때? 하등한 인간.
– 정말 미안해… 조금만 더 버텨줘… 마왕을 처치하면 반드시. 반드시 보상을… 할테니까…
환각증으로 인해 만들어진 환상들이 내뱉는 매도와 방치에 되려 웃음이 나왔다.
너희의 스트레스 때문에 떨어졌는데 너희의 환상에 다시 스트레스를 받다니.
세계 자체가 날 방해하는 듯 하여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래.
너희가 날 공격하는 것이 너희의 뜻만이 아님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나도 이 세계에 속한 만큼 멍하니 있다간 세계에 휘말려 너희와 싸울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나는 내 나름대로 세계를 이용하는 수 밖에 없다.
비록 그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일지라도.
– 현자!
– 인간!
– 현우야…
“…거 참 시끄럽네.”
그들의 목소리 만으로도 생각을 이어나가기 힘들 정도로 스트레스가 치솟는다.
그 증거인 끔찍한 두통을 간신히 억누른 나는 단검을 꺼내 허벅지에 쑤셔 넣었다.
– 푸욱!!
허벅지가 불타는 고통에 몸이 떨렸다. 하지만 그 고통 덕분일까?
정신이 맑아지기 시작하며 두통이 가라앉아간다.
이곳에서 처음 얻은 정신병인 ‘자해증’의 효과로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아직 멀었어.”
마음의 벽까지 37번.
아직 멀었다.
이렇게 주저 앉아 있을 여유 따위는 없다.
난 포션을 들이마셔 부상을 회복하고 다시 저주받은 황야를 걸었다.
.
.
.
“그래. 아직 멀었지.”
이 세계에 들어 온 이후부터 지금까지.
나에게 있어서 가장 고통스러웠던 과거를 지켜보았지만.
우습게도 이 고통의 끝에서 얻은 것 덕분에 나는 지금도 웃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갈 길은 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으아… 휴일이 끝났다… 이제 크리스마스까지 휴일은 없네요ㅠ
에휴ㅠ 남은 한주 잘 버텨봐요….
그럼 내일 봅시다!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