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World After the Withdrawal of the Warrior Party RAW novel - Chapter 90
EP.90 해주 – 2
필요한 재료와 인력이 모두 모였다면 굳이 해주를 미룰 필요는 없겠지.
“바로 가능한거야?”
“응. 마법의 돌 줘.”
“…그건 성공보수 아니야?”
“아닌데. 해주할 때 필요한 재료야.”
그냥 저주도 아니고 최상급 저주인 용의 저주인만큼 해주를 위해서는 막대한 마력이 필요했다.
그 마력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클라우디아 가문의 보물인 마법의 돌이 필수다.
날 빤히 바라보던 세실은 작게 한숨을 쉬고 손을 들었다. 대기하고 있던 기사가 나가고 잠시 후 호화로운 상자가 들어온다.
“오… 이거 멋진데. 상자에서 엄청난 마력이 나오고 있어…”
“냐앙~”
마력을 이용하는 주술사에게도 마법의 돌은 상당한 가치를 자랑한다.
어쨌든 가지고만 있어도 마력이 지속적으로 회복될 정도의 효능이 있는데다가 강력한 주술의 매개체가 될 수 있으니까.
눈을 반짝이며 욕심을 내는 사이론과 레이첼이 상자를 보며 군침을 삼키는 사이 난 상자를 열었다.
은은한 녹색 빛을 내뿜는 주먹만한 보석이 상자 안에 얌전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자. 그럼 해주 작업 시작해보자고.”
“따로 준비할 건?”
“없어. 베로니카. 식스맨. 저기 공국 기사단원들이랑 같이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 지시에 베로니카와 식스맨은 순순히 공국 기사단원들이 있는 곳에 합류했다. 그들이 넓은 방의 여기저기에 자리를 잡자 대리석 바닥 위에 있는 양탄자를 걷어냈다.
“흐흥~ 흥~”
월광을 검으로 변화시키고 주술진을 그렸다. 비싼 대리석이 긁혀나가며 새겨지기 시작한 주술진을 본 사이론과 레이첼은 자기들 무기로 다른 주술진을 그렸다.
역시 실력있는 주술사라 그런지 안시켜도 알아서 하는구만.
“그런데 레이첼. 식스맨의 어디가 좋아?”
“저 반짝이는 머리가 좋다냥~”
“천생연분이네. 그런데 S급 모험가 준비는 다 되가나?”
“우리 자기랑 사이론과 함께 채울거다냥~! 그런데 현자님은 어떠냥?”
“어. 음. 나도 좀 더 해야하는데.”
S급 모험가 승급을 위해서 해야 하는 퀘스트는 아직 남아 있었다.
요새 다른 일 하느라 퀘스트를 많이 안했더니…
슬슬 퀘스트도 하러 가봐야겠네.
“그럼 같이 다니는 것은 어떠냥? 우리랑 같이 다니면 금방 채울 수 있지 않냥?”
“그렇긴 하지.”
“그럼…”
“하나 거절한다!”
보상 생각해가면서 퀘스트 하는 것보다 혼자 다니면서 하는게 더 빠르다.
“…저기. 그렇게 떠들면서 해도 괜찮아?”
주술진의 중앙에 앉아 있던 세실이 꽤나 불안해하며 말했다. 하지만 우리가 그리는 주술진은 완벽 그 자체였다.
해, 달, 별.
주술에서 가장 중요시여기는 세가지 문양이 완성되어 있었다.
“이거 진짜 괜찮은 거 맞지?”
“걱정마시라. 자. 그럼 벗어.”
“…크흠.”
내 눈치를 살피던 그녀가 결국 옷을 벗는다.
완전히 나체가 된 채 저주를 드러낸 그녀가 바닥에 누우며 부끄러운 듯 양 팔로 가슴과 하복부를 가리자 레이첼이 눈을 반짝거렸다.
“걱정마라냥! 원래 새끼때는 작은 법이다냥!!”
“풉!”
“…거기 베로니카 추기경?”
“아아. 미안. 미안.”
웃음을 터트린 베로니카는 전혀 미안하지 않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주었다.
난 얼굴이 빨개진 세실을 내려다보았다.
“…뭘 그렇게 보는데?”
“저주의 상태를 확인해야지. 자. 그럼…”
처음은 이거다.
품에서 꺼낸 에우리에의 보석을 달의 진에 내려놓자 주술진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태양의 진에 앉아 있던 세실은 고통을 느꼈는지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어이. 현자님. 이, 이거 장난 아닌데?”
달의 진 쪽에 서 있던 사이론이 눈살을 찌푸렸다. 부담이 되는 모양이다.
“조금만 더 버텨.”
당연하겠지만 이 해주의 중심인 나에게도 고통이 온다.
저들보다 더 많이.
난 고통을 무시하며 그녀를 달래 준 후 나는 마법의 돌을 별의 진에 올려 놓았다.
그제서야 사이론의 표정이 조금 가벼워졌다.
“그럼 시작한다.”
마법의 돌로 마력을 강화하며, 난 지팡이로 변화된 월광을 태양의 진에 내리 꽂았다. 그 순간 주술진에서 빛이 뿜어지기 시작한다.
“카흑! 윽…!!”
세실의 몸에 남아 있는 저주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용이 남긴 저주.
동족의 복수를 위한 길고, 강한 저주.
그에 담긴 원념들이 저주의 대상인 세실에게서 벗어나고 싶지 않다며 발버둥치기 시작한다.
“까불지 말고 가라.”
마법의 돌로 강화된 주술사의 스킬, 해주법이 세실의 몸에 완전히 깃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기다리는 것 뿐.
“아흐…으… 하아아아… 읏…”
“…아니 거 신음소리를 꼭 그렇게 내야하나?”
게임에서는 이렇지 않았었는데.
빨갛게 물든 얼굴로 누운 채 몸을 움찔거리거나, 긴 다리를 굽히거나 펴가거나.
혹은 빈약한 가슴을 들어올리거나.
고통을 호소하는 주제에 왜 저렇게 요염한 반응을 보이려는 건지 모르겠다.
“…따, 딱히 의도한… 바는 아니… 흐으으응…!”
“수컷을 유혹하려는 암컷냄새가 난다냥.”
“…”
코를 킁킁거린 레이첼이 꼬리를 흔들며 말했다. 그 말에 세실은 터질 것 같은 얼굴을 더욱 붉히더니 아예 입술을 꽉 깨물고 아까와 달리 얌전히 있었다.
“…오호. 남은 열심히 해주하는데 이 틈을 놓치지 않는다라… 무섭네. 이래서 마법사들은… 쯧.”
뒤에서 베로니카의 목소리가 꽤나 무겁다.
세상에! 사제가 이정도 프레셔를 내뿜다니!
이정도면 거의 궁극기 익힌 전사급 프레셔인데…
그렇게 꽤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세실의 하얀 피부 위에 자리잡고 있던 검은색 저주의 흔적들이 서서히 이동하기 시작한다.
목 근처에 있던 저주가 가슴 쪽으로, 가슴 쪽에 있던 흉터가 배 쪽으로, 배 쪽에 있던 흉터가 하복부로, 허벅지로, 종아리로, 발로.
자기 집을 찾아 이동하는 개미들처럼 저주들이 주술진을 타고 에우리에의 보석으로 돌아가는 것이 보인다.
“끄으윽… 아윽… 컥…!!”
아까보다 세실의 상태가 더 나빠졌다. 뭔가 잘못되는 것이 아니냐는 듯한 공국기사단원들의 시선을 무시하던 나는 사이론과 레이첼에게 말했다.
“슬슬 준비해.”
“응? 무슨 준비를…”
“리바운드 온다.”
내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세실의 몸에서 검은 기운이 터져나왔다.
해주되지 않으려는 저주의 발악이었다.
그 반동 때문일까? 온 몸에 압박감이 전해짐과 동시에 정신력이 사라지는 것이 느껴졌다.
도끼로 머리를 쪼개는 듯한 끔찍한 두통을 나는 이를 악물며 버텼다.
여기서 못 버티면 지금까지의 고생은 헛수고가 되고, 최악의 경우 용 잡으러 가든가 용의 신전에 쳐들어가야 한다.
“냐오오오옹!!”
결국 레이첼이 압력을 이기지 못해 튕겨져 나간다.
“윽… 뭐야… 이거?!”
사이론도 어떻게든 버티려고 했지만 결국 한계에 부딪혔나보다.
그녀도 튕겨져 나가자 남은 것은 나 뿐.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이정도는 아무것도 아냐.
“아아아아아악!!”
세실의 비명이 방에 울려퍼지며 검은 기운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다. 점차 용의 형태로 변하는 검은 기운을 마주하던 나는 월광을 검으로 변화시켰다.
지금이다.
이걸 위해서 여기까지 왔다.
그러니까.
이제 끝내자.
-서걱!!
[최상급 저주 해주자 업적을 달성하였습니다.]
[정신력이 상승합니다.]
게임 내에서 최상급 저주는 해주도 어렵지만 저주에 걸린 사람을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대다수 플레이어들은 최상급 저주 해주자 업적을 따기 위해 세실의 저주를 해주하지만 실패시 다른 방법을 쓴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용의 신전을 공략해 파티원 한명에게 용의 저주에 걸리게 한 후 업적을 따는 것인데.
대부분의 플레이어들은 거기까지 가면 그냥 업적을 안따고 만다.
물론 고인물 중에는 용의 신전을 공략하거나 용과 싸우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나 역시 그렇게 한 적이 있었지만 여기서 그 짓을 하느니 그냥 고통 참고 이걸 해주하는게 낫지.
아무튼 공략대로 실행해 업적을 얻게 되고나서야 난 안도감을 느꼈다.
어휴. 큰 산 하나 넘었네.
난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는 저주를 보며 월광을 지팡이로 변화시켰다.
아까까지만해도 고통 섞인 비명을 터트리던 세실이 점차 안정을 찾아간다.
“…진짜 됐네.”
“냐아아앙… 힘들다냥…”
바닥을 뒹굴며 고통을 호소하던 사이론과 레이첼이 베로니카에게 힐을 받고 일어나며 중얼거리는 것이 들렸다.
그래.
그 말대로다.
“하아… 하아…”
세실의 몸을 뒤덮고 있던 용의 저주는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야. 사이론. 고생했다. 레이첼도 수고했고. 베로니카. 끝났으니까 긴장 풀어.”
“어… 그래.”
작게 고개를 끄덕인 베로니카는 타박타박 걸어와 준비된 로브로 세실의 몸을 가려주다가 내게 샐쭉한 표정을 지었다.
“이제 눈 좀 돌려주면 안될까?”
“아. 예.”
난 좀 더 긴장해야겠군.
해주는 끝났지만 세실은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원래라면 사제의 스킬을 가진 내가 그녀를 간호해야겠지만 베로니카가 자기가 직접 간호하겠다고 나섰다.
하긴 나보다야 베로니카가 훨씬 낫지.
나도 할 일이 있고.
“그런데 베로니카. 너 고생하는 거 아냐?”
“난 괜찮으니까. 너도 좀 쉬어.”
“난 멀쩡한데?”
베로니카는 사이론과 레이첼을 보았다.
“저 둘의 실력은 나도 알아. 저 둘이 저렇게 지쳤는데 너는…”
“아. 뭐 이정도는 괜찮아. 버틸만해.”
“…그래도 좀 쉬어. 걱정된다고. 아무리 힐을 받았다지만…”
“알았어.”
베로니카는 세실에게 다시 한번 힐을 사용한 후 문을 가리켰다. 공국 기사단원들과 함께 있을테니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난 그녀의 요청대로 밖으로 나갔고, 밖에 나가자 사이론과 레이첼, 그리고 식스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럼 우리는 이만 가볼게.”
“가긴 어딜가. 할 일 있으니까 남아 있어.”
“엑? 뭘 또 시키려고?”
“그런게 있어. 물론 공짜는 아냐.”
난 공국 기사단원을 보았고,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귀빈실을 마련해두었습니다. 그리고 필요하신 것이라면 뭐든 준비해드리겠습니다.”
“오. 오오오~! 그렇다면 얘기가 다르지! 술! 술 줘! 공왕님께서 마실만한 술이면 좋은 술이겠지? 그리고 먹을 것도! 배고파 죽겠다!”
“목욕물은? 난 우유목욕하고 싶은데! 욕조에 우유 가득 채워 줄 수 있지? 그리고 난 고급스러운 요리가 좋은데!”
“냥냥! 생선요리 먹고 싶다냥! 바다 생선 요리가 그렇게 맛있다던데! 공국은 마법으로 공수해와서 바다물고기 요리도 있다면서?”
“물론 전부 준비할 수 있습니다.”
기뻐하는 셋이 기사를 따라간다. 그들이 멀어지자 난 싱글벙글 웃고 있는 다른 기사를 툭 쳤다.
“현자님께 마련된 방은…”
“아. 내 방은 됐고.”
업적도 땄으니 다른 작업 해야지.
“걔들 어디 있어?”
“걔들… 이라면.”
“레벤티아, 에반젤린.”
정신병에 걸려 있는 둘을 치료해야 하지 않겠나.
공국 기사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떨떠름한 어조로 물었다.
“설마 지금 두 분을 치료하시려는 겁니까?”
“그런데?”
“제가 드릴 말씀은 아니지만 현자님. 너무 무리하시는 것 아닙니까?”
“그건 내 사정이니까 걱정말고. 어디 있어?”
“…모시겠습니다.”
영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공국기사는 날 데리고 성 안쪽으로 향했다.
화려한 복도를 지나 귀빈실로 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그녀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안에 있는 것은 두개의 침대였다.
둘 다 자고 있는지 별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현자님. 두 분께선 막 잠드셨습니다.”
“그래? 돌보느라 고생했겠네.”
“…레벤티아님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에반젤린님께서…”
난 바닥과 침대 여기저기에 남은 핏자국과 에반젤린의 상태를 보았다.
보아하니 또 자해라도 한 모양이다.
귀가 거의 쥐어 뜯겨져 있고 손목 여기저기에 상처가 남았다.
거기에 레벤티아는…
음.
으으으음.
“…저거 설마 기저귀?”
“…예.”
기사들에게 동경의 대상인 레벤티아가 어린애가 되어버린 것에 공국기사는 꽤나 충격을 받은 것 같다.
난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거 힘들었겠네.”
“…아닙니다. 그리고 이 일은 반드시 함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남일 떠들어봤자 좋은 일은 없지.”
난 기저귀를 찬 채 인형을 꼭 끌어안고. 운 흔적이 잔뜩 남아 있는 레벤티아와 양 팔과 양 다리가 구속된 채 입에 재갈이 물려 혀를 깨물지 못하게 해 둔 에반젤린.
둘 다 이대로 내버려둬봤자 전장에 부담이 생길거고 그럴수록 대륙에 혼란이 가중되니 나에게 좋은 상황은 아니니 빨리 치료를 해야 하겠네.
“음…”
고민이 된다.
둘을 치료하는 가장 쉽고 빠른 방법이 있긴 했다.
다만 그걸 쓰면 내가 너무 감정적이 되는데다가 절제를 못한다가 문젠데…
난 메인 스토리를 끝내고 모험가 생활을 하던 도중 유아퇴행에 걸렸던 일을 떠올리고 웃었다.
그때 샤이론과 식스맨에게 꽤나 민폐를 끼쳤다.
과거를 회상하는 것만으로도 입이 참 쓰다.
난 다른 방법을 생각해보았지만 마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어쩔 수 없나.”
정석대로 치료하며 생길 전선의 부담보다는 그냥 내가 부끄러운게 효율적으로 더 낫겠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안녕하세요! 말물말물입니다! 즐거운 금요일이에요! 다들 즐기고 계신가요?
백신 후유증이 세긴 센가봅니다 아직도 어질어질하네요… 이거 참.
다들 몸 건강합시다ㅠ
그럼 내일 만나요! 안녕~!
ps. 독자님들의 댓글은 항상 감사히 읽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답변해드리지 못하는 점은 매우 죄송스럽네요.
오탈자 지적은 언제나 환영입니다. 감사합니다.